너무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는 “전쟁의 진정한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무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라며 외상으로 음식을 주문한 10대 미혼모의 요청에 선행을 베푼 자영업자 부부의 일화가 알려졌다.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소식에 누리꾼들은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며 감동했다. 서울에서 분식 식당을 운영 중인 김 모(37) 씨는 지난달 29일 배달 외상 주문을 받았다. “임신 중인 미혼모인데 너무 배가 고프다”라며 “당장은 돈이 없어서 다음 주말 전까지 이체해드리겠다”라는 내용이다.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일 뿐 선행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연이 알려진 후 마음씨 따뜻한 사장님이 돼버려 부담스럽고 민망하다”라고 국민일보는 아직 살만한 세상 코너를 통해 이 소식을 처음 전했다. 민초들의 삶터, 왕십리 우리 한번 잘살아 보세! 그 시절 왕십리 이야기. 1945년 중국 심양 출생.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우리나라의 도시 및 취락 역사를 필생의 연구 분야로 설정하고 전국을 발로 뛰며 눈에 담고 기록으로 남겨진 말이다. 자연히 땅-도시-건축-인간의 유기적 관계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지금껏 이를 정식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한 오래된 다세대주택에서 혼자 살던 5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문을 열었을 때 방안에는 음식물쓰레기와 약봉지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다. A씨는 오랫동안 홀로 살았으며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고 한다. 이웃들은 그가 늘 조용했고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곁에는 낡은 옷 몇 벌과 오래된 이불이 전부였다. 연말이면 각종 행사와 송년 모임으로 저마다 들뜨고 분주하다. 백화점은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유명 식당엔 예약이 꽉 찼다는 안내 문구가 걸린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찬바람을 겨우 견디고 살아가며 소리 없이 죽어가는 이웃이 있다. 지난해 고독사로 숨진 사람이 4000명 가까이 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1만명을 훌쩍 넘는다. 쪽방과 고시원 등에서 혼자 사는 수만명의 사람이 최소한의 주거 환경조차 누리지 못하며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소리 없이 살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으면 존재조차 모르기 일쑤다. 주위를 쓱 둘러보면 온통 화려하고 멋진 이미지로 가득하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는 화려한 여행지와 값비싼 음식들, 명품 옷과 근사한 집의 모습이 끝없이 올라온다.
미디어 매체나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웃고 행복하며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삶의 한 단면을 부풀려 보여주는 이미지일 뿐, 현대 사회는 많은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의 피로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청년층에서는 경제적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작은 고시원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청년 B씨,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70대 독거노인 C씨의 기사처럼 세상의 화려한 모습 뒤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을 붙들어 주는 힘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작은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끈이 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에게 “요즘 잘 지내?”라며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도 큰 위로가 된다. 실제로 한 상담소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려던 사람이 “요즘 힘들지 않아?”라는 이웃의 짧은 말 한마디에 자살을 멈췄다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까지 써놓았던 한 노인이 마지막으로 들른 집 앞 슈퍼에서 “요즘 어디 편찮으셨나요?”라는 주인의 따뜻한 관심에 유서를 찢고 상담 전화를 걸었다는 사례도 있다.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
‘전국책’에서는 ‘베푸는 것은 많고 작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당함에 달렸고, 원한은 깊고 얕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상처난 마음에 달렸다’고 했다. 때로는 작은 도움에도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고, 어느 상황에선 작은 위로도 큰 힘이 된다. 단돈 1만원은 점심 한 끼 값에 불과하지만 아프리카 어린이 한 명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학교 급식이 되기도 한다. 적은 돈, 일상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나를 건강한 인간으로 만들고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든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웃의 슬픔에 귀 기울이고 그 고통을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싶다. 연말연시에 주변의 소음과 화려함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보이지 않는 이웃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그 작은 마음이 누군가의 겨울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며, 추운 세상을 함께 살아가게 하는 희망의 불씨가 됨을 A씨의 쓸쓸한 죽음 앞에서 다시금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