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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은 지식
성경 전체는 일종의 계시이다. 이는 인간에게 이르러온, 모든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며, 모두 그분 안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으로, 그분의 아들의 소유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수탁자이시다. 우리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들에서,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이다.... (CTr 367.2)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면, 그것은 품성의 변화에, 큰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지적계발의, 유일하고 확실한 수단이다.
젊은이들과 심지어 장년층의 사람들까지도, 너무도 쉽게 유혹과 죄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만큼 그것에 대하여, 명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는, 확고하고 단호한 의지력의 부족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교훈을, 등한히 하는 데서 온다.
그들은 진지한 노력에 의하여, 순결하고 거룩한 생각을 고취시켜 주는 것을, 향하도록 마음을 지도하지 않고, 불순하고 거짓된 것으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더 좋은 편을 택하는 자, 거룩한 교사에게서 배우기 위해,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아래 앉는 자는 별로 없다. 그분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생애에서 실천하는 자는 별로 없다.(8T 319.2)
성경의 진리들을 받아들이면, 마음을 세속과 타락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연할 만큼, 그 진가(眞價:참되고 진실한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노유(老幼:늙은이와 어린아이)를 막론(莫論:누구나 말 할 필요 없이)하고 그들이 유혹을 저항(抵抗:맞서 대항) 할 수 있는, 마음의 염직(廉直:청렴하고 강직한 믿음), 곧 원칙의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8T 319.3)
호기심(好奇心:더 좋은 말씀으로 마음)을 자극함—그분은 모든 진리를, 한꺼번에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한 진리에서 다른 진리로, 한 교훈에서 다른 교훈으로, 호기심을 가지도록 이끄셨으며, 그리하여 성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셨고, 발견한 진리들을 마음에 새기게 하셨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필요한,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 형성에 필수적인 진리는, 그러한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한다.(VSS 97.3)
인기 있는 신학의 거짓 가르침은, 수많은 회의론자와 불신자들을 만들어 냈다. 많은 사람들이 채택한 성경의 거짓 해석을, 성경의 가르침[인 것]처럼 공공연히 비난하는 잘못과 모순(矛盾:진리와 비진리의 대립)이 있다....
성경을 비판하는 대신에, 우리는 생명을 주는 그 신성한 진리들을, 세상에 제시하여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宣傳:널리 전파)”(벧전2:9)하기 위하여, 교훈과 모본으로 노력해야 한다.(AG 30.5)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 빛을 비춰 주고 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은, 구약성경 위에 빛을 던져 주고 있다. 두 성경은 각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계시이다. 노독[믿음의 선조]들에게 나타나시고, 희생 제물로 상징되었으며, 율법으로 묘사되고, 선지자들이 증거 한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의 제물(祭物:구속주-희생제물)이 되신다.
따라서 주님의 생애와 사망과 부활 가운데 나타나신, 그리스도는 신약성경의 보물이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다 같이 열심 있는 탐구자에게, 끊임없이 새롭고 깊은 뜻을 나타낼, 진리들을 증거하고 있다.(LHU 115.4)
성경에는 사람들이 현세에서도 적합하고, 내세에서도 적합한 자가 되기 위하여, 깨달아야 할 모든 원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평이(平易:평범하고 쉽게 알 수 있게)한 것들이다.
누구나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단 한 절을 읽을지라도, 거기서 유익한 사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따금 하는 연구나, 단편적인 연구로서는, 성경의 가장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가 없다.
성경을 급히, 또는 부주의하게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큰 진리체계(眞理體系:창조주와 구속주의 존재)가 깨우쳐지지 않는다. 진리의 보화는 대부분, 표면(表面:나타나 보이는 부분) 아래 깊이 파묻혀져 있으므로, 열심 있는 탐구와 끊임없는 노력으로써만, 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진리들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사28:10)씩 찾아내어 모음으로써, 하나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Ed 123.2)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찾는 자에게, 언제나 그 말씀의 진리들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신다. “오묘(奧妙:심오하고 기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인 반면에,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신29:29)한 것이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여러 진리를 소홀히 하도록 이끌었다.
성경의 오묘들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감추어 두고자 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우둔(愚鈍:어리석고 둔)함과 무지로 인하여, 그것을 깨달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없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그 제한은 하나님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에 있다. 깨달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자주 지나쳐 버리는, 성경의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깨닫기를 원하신다.
“모든 성경은”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시려고,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3:16,17) 주신 것이다.(Ed 170.4) 사람들이 성경에 있는 귀중한 것들을 가르치고 기록하도록 하라. 생각과 재능과 예민한 정신력의 활용이, 하나님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
사람의 추측에서 나온 철학을 연구하지 말고, 진리가 되시는 분의 철학을 연구하라.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저술(著述:글로 만든 책)은 거의 가치가 없다.(8T 319.4)
하나님의 종들이 위대하고 귀중한 성경의 진리들, 곧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하나님의 사랑과 무한한 희생에 관한 진리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이 불변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 조용히 나가 일해야 한다는, 빛을 나는 받았다.
안식일은 분명한 방법으로 가르쳐야 하지만, 우상적(偶像的:우상과 한 가지)인 일요일을 취급하는 데 있어서는, 주의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한마디 말로서도 충분하다.... (Mar 177.4)
다른 사람들이 새 빛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알기 위해 연구함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라—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어떤 형제가 성경에 관해 새로운 빛을 받았을 경우에는, 그 형제는 자기의 견해를 솔직히 발표할 것이며, 또 목사들은 그가 제시한 문제가, 성경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치우침 없이 성경을 연구하여야 한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4,25).(PaM 30.2)
성경에는 사람들을 칭(稱:칭찬)한 곳이 거의 없다. 일찍이 세상에 산 가장 선한 사람들의, 미덕까지도 자세하게 말해 주는 데, 지면이 거의 할애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이 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좋은 자질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들의 선한 행위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해진다.(CTr 147.2) 일반적으로 성경의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이론과 교리가, 성경에 기초를 두지 않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영감의 전체적 체계와 배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과 혼란의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고, 사람이 그 말씀을 곡해한 데 책임이 있다.
성경에 있는 어려운 문제들은, 하나님의 지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멸망당하지 않았을 어떤 사람들이, 그 어려운 것들 때문에 멸망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성경 가운데 그들에게 의문되는, 오묘가 없었을 것 같으면,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영적 식별력의 부족으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넘어짐의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2TT 306.2)
십자가 후에 할례는 아무 가치가 없음(롬2:24-29; 갈5:6; 엡2:14-16; 골2:14-17; 딛1:9-11)—(딛1:9-11, 13,14 인용) ‘바울’의 시대에는 계속 “할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성경에서 많은 증거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셨고, 따라서 육체의 할례는, 더 이상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6BC 1061.5)
세속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데서 기쁨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으로 새로워진 마음에는, 거룩한 책의 페이지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하늘의 빛이 비추인다. 곧 세속적인 마음에는 황량한 광야였던 것이, 영적인 마음에는 생명수의 강이 있는 땅이 된다.(8T 319.5)
외모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마음이 진리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을 때, 마음은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세상에 대해 죽은 자는, 믿지 않는 자들의 조소나 조롱이나, 경멸이 여김으로 동요되는 일이 없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와, 주님과 같이 되기를 충심으로 원한다. 그들은 유행이나 습관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불멸의 유산을 상속받는다고 하는 고귀한 일이. 그들 앞에 전개되고 세속적인 모든 일은. 무가치하게 보일 것이다.(TMK 312.5)
마음은 항상 활동적임—마음은 결코 활동적이 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선악간의 감화력에 노출되어 있다.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윤기 흐르는 접시에, 사람의 얼굴이 햇빛에 반사되어 비추는 것처럼, 어린이의 정신에 생각들과, 인상들이 찍히게 된다. 이러한 인상들이 지상에 속한 세속적인 것이든, 도덕적이며 신앙적인 것이든 간에, 거의 지워버릴 수 없다.(1MCP 293.3)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한다.-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할 지식이다. 제일 처음 이성(異性:서로 다른 남녀의 관심)의 눈이 떨어질 때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생애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맨 처음 교훈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이라는 사실이어야 한다. 그들의 맨 처음 훈련은,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경건하고 부드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이해에 적합하고, 그들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분량만큼씩 그들에게 읽어 주고, 반복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그분의 사랑과 그 위대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8T 320.1)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하고도 완전한 선물인, 그리스도를 보물로 바라보고 우리는, “사랑은 여기에 있다”라고 외칠 수 있다.(SD 243.5)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자로서 오셨다. 하늘 천사들에 있어서, 이런 움직임의 결과는 이루 말로 묘사할 수 없었다. 놀라움과 감탄으로 천사들은, “사랑은 여기에 있다!”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RC 58.5)
‘바울’은 자신의 생애로 그가 가르친 진리를 수범하였으며, 그의 능력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항상 그의 책임감을 깊게 느꼈다. 그는 공의와 자비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가운데 활동하였다. 그는 유일의 성공의 보증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매달렸다.
구주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할 때, 세상의 악의와 원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전진하였을 때처럼, 자아와의 투쟁에서 그리고, 죄악과의 싸움에서 그를 붙들어 준 결코 꺼지지 않는 동기였다.(AA 507.1) 그리스도인의 경험 가운데서 전진하는 발걸음마다, 우리의 회개는 더욱 깊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겔36:31)고 하신 말씀은 주님께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 곧 주께서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하신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분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6:62,63).
그 때에 우리의 입술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만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7:18),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는 사도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삼을 것이다.(COL 160.3)
체험적인 지식-그리하여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경험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의 실체, 그분의 약속의 진실성을, 스스로의 힘으로 입증했다. 그들은 맛을 보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8T 321.1)
사랑받은 ‘요한’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소유했다. 그는 이렇게 증언할 수가 있었다.(8T 32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1:1-3)(8T 321.3)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요3:33) 칠 수 있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증거 할 수가 있다. 곧 그는 이렇게 증거 할 수 있다.(8T 321.4) “나는 도움이 필요했고,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했다. 모든 필요는 채워졌고, 나의 영혼의 굶주림도 충족되었다.
성경은 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거룩한 구주가 되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믿는다. 나는 성경이 나의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다.”(8T 321.5)
놀라운 가능성-하나님의 품성의 더욱 분명한 계시를 위하여 더 높이, 그리고 더욱더 높이 도달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모세’가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33:18) 라고 기도했을 때, 주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에게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출33:19)고 선포하셨다.(8T 321.6)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지각을 흐리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죄가 씻겨 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고, 천연계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출34:6) 분을 점점 더 완전하게 선포할 것이다.(8T 322.1)
그분의 빛 가운데서 우리는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그분의 성결의 형상으로 바뀔 때까지, 빛을 볼 것이다.(8T 322.2)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보증들을, 굳게 붙잡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영광스러운 진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다가와 있다. 성경에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특권과 의무들이, 그들 앞에 열려질 것이다.
그들이 겸손하게 순종의 길을 따르면서, 그분의 뜻을 실천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점점 더 깨닫게 될 것이다.(8T 322.3)
학생은 성경을 그의 지도자로 삼고, 원칙을 위하여 바위처럼 서야 한다. 그리하면 그는 학식의 어떤 높이까지도, 이르고자 열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유 안에 계신, 만유로 인정받지 못하셨을 때, 인간의 본질에 관한, 모든 철학들은 혼란과 수치로 이끌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깨우쳐 주는, 귀중한 믿음은 힘과 품성의 고결함을 나누어 준다.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사랑을 깊이 생각할 때, 진리에 대한 지각은 더욱 분명해지고, 더 한층 분명해질 것이며, 마음의 순결과 생각의 정결을 위한 욕망은 더욱 높고, 더욱 거룩해질 것이다. 거룩한 생각의 순결한 분위기에 싸여 있는,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를 통하여, 그분과 교통함으로써 변화를 입는다.
진리가 너무도 크고, 너무도 원대하고, 너무도 깊고, 너무도 넓기 때문에, 자아는 잃어버린바 된다. 마음은 부드러워져 겸비와 친절과 사랑에 정복당한다.(8T 322.4) 그리고 타고난 능력들은, 거룩한 순종 때문에 확대된다.
생명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학생들은 넓어지고, 향상되고, 고상해진 마음들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요. 행하는 자가 되면, 그들은 그와 같이,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향상할 것이다. 마음이 순결해진 그들은, 강한 마음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 모든 지적 능력은 활기를 띨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연결될 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또한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그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들은 스스로를 교육하고, 단련하게 될 것이다.(8T 323.1)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결과-이것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통하여 얻은 체험이다. 그는 말한다.(8T 323.2)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내 길을 굳이 정 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 하리이다.”(시119:1~6).(8T 323.3)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 이다.”(시119:9).“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시119:30)
.“내가 주께 범죄 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119:45).(8T 323.4)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 이다.”(시119:24).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 이다.”(시119:72).(8T 323.5)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119:97).“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시119:54).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시119:129).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 이다...”(시119:98~100).“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119:104).(8T 324.1)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精微:정밀하고 자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시119:140).“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 하리이다.”(시119:160).(8T 324.2)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 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시119:165~167).(8T 324.3)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 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시119:174~175).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 이다.”(시119:111).(8T 324.4)
순종의 교훈-천연계는 천연계를 위한 하나님의 법칙들을 순종한다. 구름과 폭풍, 햇빛과 소나기, 이슬과 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감독을 받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한다.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하여 곡물의 싹은 땅을 뚫고 나와서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 (마 4:28)이 된다.
열매는 처음에 꽃봉오리 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역사하심을 거역하지 않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것을 적절한 시기를 따라 자라게 하신다. 마찬가지로 새들도 무한한 능력의 손으로, 지도를 받아 무궤도의 공중을 통과하여, 대륙 간의 긴 이동을 할 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8T 327.1)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이성과 언어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홀로 그분의 선물에 감사하지 않고 그분의 법칙에 불순종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고상하고 고결해져서 그분과 협력하는 자가 되기에 적절한 자들이 품성이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 우리의 세상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겠는가? 하나님이 값으로 사신 유업에 속한 몸과 영혼들이 세상에 속한 습관과 불결한 행실로 괴롭힘을 당할 것인가?
그들은 모든 것을 선하게 결론지어 주신 분,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불완전한 사람이 마침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라는 그분의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신 분의 아름다움을 반영하지 않을 것인가?(8T 327.2)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에서 순종의 교훈을 배우도록 우리에게 바라신다.(8T 3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