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7.31~8.5) 가족 여행으로 선교단체 JDM(예수제자운동) 제8차 선교대회 Mission17에 다녀왔다. 여행 치고는 고된 일정이었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학생 기숙사(세연2학사) 3인실에 5명의 가족이 쪼그리고 잠을 자야했고, 아침이면 김밥이나 빵, 음료로 아침 대용으로 나오는 끼니를 받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가서 줄을 서야 했다. 점심과 저녁식사는 1600명의 참가자의 틈바구니에서 학생회관에 있는 식당에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고된 행군을 5일 동안 쉬지 않고 했다. 저녁 집회가 거의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났으니 하루하루가 체력과의 싸움이었지만 육체적 쉼보다는 고갈된 영적 쉼을 충전했던 터라 우리 가족에게는 의미있는 여행이었다고 본다. 집에 돌아와 나는 이틀 동안 설사로 고생했고 우리 집 막내는 나를 이어 아파하고 있다.
책 읽는 시간이 없었지만 식사 후 주어진 짧은 시간을 이용해 읽어보겠노라고 결심한 뒤 집에서 챙겨간 책이 김훈 에세이의 <자전거 여행>이다. 교회 청년이 타 지역으로 이사가면서 주고 간 책이기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청년은 제법 비싼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제주도까지 비행기에 자전거를 실고 가서 일주를 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자전거 여행의 대가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청년이 주고 간 <자전거 여행>은 거의 손 떼가 묻어 있지 않은 새 책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자전거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구입했는데 몇 쪽을 읽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 여행 마니아들이 생각하는 자전거 여행집이 아니다. 풍륜(김훈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이 지나간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숨결을 더듬어 보는 책이다. 그렇기에 젊은 그 청년의 기대와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었으리라.
작가 김훈을 평가하는 이들은 그의 문장이 다른 이들보다 세밀하다고 평한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그 사물의 실체 뿐만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이구동성 평가한다. <자전거 여행>에서도 김훈의 문장력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의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까를 두고 오랜 시간 생각한다고 한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다음과 같이 첫 문장으로 글을 연다.
"자건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길이 몸속으로 지나갔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문장을 쓰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 김훈은 이 책에서 사진을 남발하지 않았다. 장마다 1~2장 정도만 실었다. 그것도 자연 또는 자연과 어울리는 조형물 중심으로 글 속에 배치했다. 대부분 글로 풍경을 묘사했다. 세밀화를 그리듯이.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철학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그 문장에 붙잡힐 수 밖에 없다.
"낭가파르바트 봉우리가 눈보라에 휩싸이는 밤에 비행 진로를 상실한 새들은 화살이 박히듯이 만년설 속으로 박혀서 죽는다, 하회마을 집들은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고 비스듬히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역사 속에서 진흥왕의 무기와 우륵의 악기는 비긴 것 같다, 멸치회도 좋다. 멸치는 양식되지 않는다. 모두 자연산이다. 포구 마을 좌판에서 3천 원어치만 사면 셋이서 충분히 먹는다, 난중일기는 의주 피난 정부에서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정치 상황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문장들은 김훈만의 특징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탐구가 없다면 이런 문장을 언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그 청년이 의욕을 가지고 책을 샀지만 몇 장 읽지 않고 책을 덮은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