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휴가 기간 동안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 문학책은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었다.
신경숙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바이올렛에서
이미 그녀의 문체에 빠져들었던 나이기에, 그리고 과거에 어머니께서 이 책을 읽으며
훌쩍 훌쩍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눈 앞에 선하기에 무척 기대를 하며 책을 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깊이 슬플까. 너는 나를 보고 나는 그를 보는데 그는 나를 보지 않는다.
이것이 그렇게 슬플까. 슬프지만 깊지는 않다.
나는 이미 익숙한 이 소설의 내용은 내게 깊은 슬픔을 주지 못하였다.
하지만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신경숙의 슬픔을 전달하는 능력은 범죄 수준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잡아먹기 위해 개를 두들겨 잡는 사람들.
두들겨 맞으며 죽어가던 개는 우연히 결박에서 벗어난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 죽을 힘을 다하여 도망간다. 들려오는 목소리. “메리! 메리!”
주인의 목소리. 개는 꼬리를 치며 다시 되돌아온다.
비가 온다. 그녀와 함께 우산을 쓰기 위해 우산 두 개를 샀다.
그녀는 내게 우산을 두 개 사온 남자가 여자에게 거절 당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마음을 파고들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거절에 나는 절망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를 절망시키는 그녀의 문장 하나 하나. 그녀가 말하는 깊은 슬픔.
그것은 정녕 깊다
2.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아니 어느 사이 커져버린
사랑이었기에 스스로도 그 깊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때문일까요.
그 사랑이 너무나 힘겹습니다.
그 여자, 은서
그 사람은 언제나 내게 등을 보이고 서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그 사람, 언젠가 나를 향해 돌아서주기는 할까요.
아직까지는 가끔 돌아봐주는 그의 눈길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눈길, 그것만으로 언제까지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 있는 내 등뒤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려줄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
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너무 뒤늦게 깨달아버린 사랑이었습니다.
그 남자, 완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나만을 바라보는,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진심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겠냐고, 사랑이란 말이 가능하기나 하겠냐고,
사랑…… 사랑으로 살기엔 이미 늦었다고.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 여자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나란히 서 있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가까운 피로를 겪었던 지난 시간, 그 시간들이,
모두 그 여자를 잃어서였다는 것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걸까요.
그 남자, 세
그 여자의 시선은 늘 딴 곳을 향해 있습니다.
그 여자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자는 죽어서도 내가 돌아갈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얻었습니다.
그걸로 된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거면 됐다고……
몰랐습니다. 그 여자보다 내가 먼저 흔들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를 보게 될 줄은……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여자를 보는 것이 견디기 힘들지만,
이젠 어쩔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