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요즘은 발길을 딱 끊고 출입하지 않은지가 여러 해 되지만
예전엔 클래식 음악회에 참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죠.
음악회에 가서 연주가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오지만
연주자가 혼신의 힘과 정성을 다해서 연주를 하면
음악회가 끝난 후 대기실로 찾아가서 프로그램에 꼭 사인을 받았는데
그렇게 해서 모은 프로그램이 꽤 많이 쌓였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어떤 성악가(테너)가 KBS 열린 음악회에 나와서
나훈아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는 그 길로 음악회장에 발길을 끊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음악가들의 사인이 든 프로그램도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대중가요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나도 대중가요 많이 들어요.
하지만, 클래식과 대중가요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클래식 연주자가 대중가수와 한 무대에 선다거나 혹은,
클래식 연주자가 대중가요를 연주해서는 안 됩니다.
비유를 들자면, 그것은 마치 신부· 수녀· 중이 섹스를 한 것과 같은,
파계 행위예요.
내 기억으로는 서울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중가수와 가요를 부른 것으로 기억되는 데요,
그렇게 저명했던 테너가 가요를 부르면서 중앙선을 넘어 버리자
돈과 인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클래식 연주자들이
서로 앞다투어 대중가요를 연주하고 있고,
특히 소프라노 조수미는 공개적으로 대중가수와 성악가라는 직업을 병행하면서
힘겹게 자기 영역을 계율처럼 지키고 있는 다른 성악가들의 명예에
심각한 훼손을 가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가 아니라도,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만 가지고도
한 해에 수십억을 버는 사람이 꼭 그렇게까지 악하게 해야 하는지.
『야, 강봄아! 빅 쓰리인 미국의 플라시도 도밍고도 팝송 불렀는데?』
예. 박인수도 사실은 도밍고를 따라 한 것인데요,
하지만 그 말은, 도밍고가 하면 도둑질도 죄가 아니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연주자에게는 토굴 속 수도승 못지않은 비장한 수행정신이 꼭 필요하고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이 없이는,
클래식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 인생을 벅찬 감동으로 끝마칠 수 없습니다.
한 10년 전, 클래식 기타 독주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주 문화회관엘 간 적이 있는데요,
관객이 너무 없더라구요.
내가 세어보니 1천 석인 객석에 달랑 19명!
시간이 됐는데도 연주자는 나오지 않았고
한 20분 지나서 무대에 나온 연주자가 『죄송합니다.』하더니
짧은 곡을 한 5분 연주하다가 그냥 들어가 버리더라구요.
어떤 면에서는 나도 연주자입니다.
내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명은 민중혁명이고
관객은 열 명.
그래도 10년째 연주를 계속하고 있고
관객이 열 명에서 다섯 명으로 준다고 해도
나의 연주는 계속될 겁니다.
끝없는 인내심으로 장장 10년째 객석을 지켜주시며 내 연주를 들어주시는 관객 열 분께
앞으로는 더욱 화려한 연주로 보답할 결심입니다.![](http://i1.daumcdn.net/deco/contents/emoticon/things_34.gif?v=2)
2019년. 4월. 29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http://cafe.daum.net/rkdqha1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