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반야바라밀을 닦아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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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마음의 성품이 일체 법성과 다르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모든 법성도 일체 모든 법의 성품과 다름이 없는가?"
" 사리불이여, 심성 없는 심성이 일체 모든 법성과 다르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법성도 다르지 않고 변함이 없다."
사리불은 수보리를 칭찬해 말하기를
" 착하고, 착하다. 수보리여, 그대는 참으로 부처의 아들이다. 부처의 입에서 났고, 법에서 났으며, 법에서 화생해서 부처의 법을 이은 사람이다. 분명히 법을 보았고,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부처님이 그대를 여러 제자 가운데서 무쟁정에 사는 제일의 인물이라 하신 것은 무리가 아니다. 반야바라밀을 닦는 사람이 그대 말과 같이 한다면, 그 사람은 물러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3 그때 수보리는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 부처님이시여, 나는 보살과 반야바라밀을 알지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했습니다. 그러한 내가 어떻게 어떠한 것이 보살, 어떠한 것이 반야바라밀이라고 가르칠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나는 아직 일체 모든 법의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모르는데, 억지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만들어 보살이라 하고,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후회가 올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보살과 바야바라밀의 이름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름 그것의 존재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법은 거짓 이름이요, 거짓으로 세운 것입니다. 보살이라는 이름은 있어도 그 보살을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기타 어떤 법 가운데서도 포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그것은 꿈ㆍ허깨비ㆍ그림자 ㆍ물속의 달과 같아서, 허공이라 하고, 땅ㆍ물ㆍ불ㆍ바람이라 하며,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이라 하고 예류ㆍ일래ㆍ불환ㆍ아라한의 사과라 하지마는, 그것은 다 거짓 이름이요, 거짓으로 세운 것으로서, 어떠한 법 가운데서도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착하다, 악하다,영원하다,잠깐이다, 괴롭다,즐겁다, '나'다, 나는 없다, 있다,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말하지 못할 것을 말해서 내 마음은 괴롭습니다. 모든 법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붙잡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 보살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또 그 이름은 존재한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름 그것이 존재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이런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마음 없이 법은 곧 공이요, 공은 곧 법이므로 법을 법이라 생각해서, 거기에 걸려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 다른 이를 이익하게 하는 자비의 방편 없이, 내가 한다는 소견을 일으켜 색ㆍ수ㆍ상ㆍ행 ㆍ식 따위의 여러 법에 집착해서 행동한다면, 이러한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닦는다 해도 그것은 세간의 업으로서, 반야를 일으키는 보살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체의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모든 법의 성이 공한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불수 삼매라고 합니다. 이 삼매로 말미암아 마음이 걸리지 않고 놀리지도 않으며, 무서워 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은 물러서지 않는 자리에 있는 보살일 것입니다. 그것은 멈추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4 부처님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색을 색으로 생각해 집착해서는 아니 됩니다. 다른 모든 법도 다 그러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색은 그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색이 아닙니다. 색을 떠나서 공이 없으나, 색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모든 법의 더럽고 깨끗함과, 선하고 악한 것은 다 성이 공한 것으로서, 성이 공했기 때문에 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을 떠나서 공인 일체의 지혜를 붙잡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성이 공한 까닭입니다. 이 지혜는 모양에 집착하는 행에 의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모양에 집착하는 것은 번뇌입니다. 모양이란 것은 색의 모양, 수ㆍ상ㆍ행ㆍ식의 모양인데, 일반 사람은 색은 색, 수는 수라고 그 일정한 모양에 집착하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킵니다. 이 번뇌가 따르는 모양에 집착하는 행을 닦아, 일체의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선니 범사는 모양이 없다는 법을 듣고 신해를 내어, 그 신해에 의해서 모든 법의 실상을 믿어 알고, 모든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취사선택을 떠나 반야를 얻었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이 일체 법에 집착이 없기 때문에 모양을 취하지 않고, 또 모든 법은 도를 이루는데 돕는 힘이 있기 때문에, 어떤 물건도 버리지 않으며, 세간과 열반은 그것이 곧 그것이기 때문에, 세간을 초월하여 열반에 살고, 그러면서 대비의 본원이 있기 때문에 열반에 들지도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무엇이 반야바라밀인가, 어째서 반야바라밀이라 하는가, 누구의 반야바라밀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해서 일체의 법은 공해서 포착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마음이 침체되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으며, 무섭고 놀랄 것도 없습니다. 이 마음을 가진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습니다.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일체의 법성을 떠난 것, 일정한 성이 없는 데에 일정한 성을 붙이는 것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일체의 법은 그 자성이 공해서, 생할 것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음을 알아, 점점 보살의 일체지를 성취하는데 가까워지고, 마음과 몸과 모양이 다 깨끗하게 되어, 더러운 마음, 삿된 마음이 나지 않으며, 한 불국에서 한 불국으로 다니면서 중생에게 타이르고 불국을 깨끗이 하며, 정각을 이룰 때까지 여러 부처를 떠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