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 몸과 마음이라는 관찰영역 안에 '부름'이라는 관찰대상 '꺼짐'이라는 관찰대상, 들고 가고 내림이라는 관찰대상, 따뜻하고 딱딱하고 부드럽고 뜨겁고 차갑고 떨리고 긴장되고 뻣뻣하고 등등에 관찰대상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관찰영역 안에서 어떤 일정한 관찰대상에 붙어가서 주시하는 ‘사띠-알아차림’, 그리고 관찰대상 위에 머무르는 ‘사띠-알아치림’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찰대상 중에도 분명한 관찰대상이 있고 불분명한 관찰대상이 있습니다. 흐릿한 관찰대상들도 있습니다. 관찰대상들은 몸 안에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굉장히 많고 다양한 관찰대상들 중에서 가장 분명한 대상을 골라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분명한 관찰대상으로 ‘위빠싸나’를 먼저 주시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관찰대상으로써 ‘위빠싸나 수행’을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직접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관찰영역에서, 몸과 마음 안에 분명히 나타나는 관찰대상들을 현재 즉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써 네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하셨습니다.
이중에 첫 번째가 ‘꺄야’, 즉 몸이고, 두 번째가 '웨다나', 느낌이며, 세 번째가 '??따', 마음이고, 네 번째가 ‘담마’, 즉 일반적인 것과 특성적인 것들입니다. 이렇게 관찰영역에서 관찰대상 네 가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찰대상 네 가지 중에서,
첫 번째 것인 '까야' 이것은 물질만 따로입니다.
두 번째 것인 ‘웨다나’, 느낌은 정신적인 특성입니다. 즉, 알 수 있는 어떠한 특성입니다.
세 번째 ‘짓따’라는 것도, 즉 마음이라는 것도 정신 적인 것입니다.
네 번째 ‘담마’, 법이라는 것은 물질과 정신,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관찰대상들 중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분명한 것부터 시작해서 주시해야 한다라는 이러한 말을 따르게 되면, 이 네 가지 중 가장 분명한 것인 ‘까야’, 즉 물질의 모임을 먼저 주시해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중에 ‘까야’라고 하는 물질의 모임은 가장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주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빤디타사야도12
<수행 경험담>
위빠사나는 사념처 위빠사나와 동의어로도 쓰인다. '위빠사나'는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 즉 반야관의 지혜인 자성을 일깨우는 명상법인데, 이 관의 대상이 네 곳이다. 즉 몸, 느낌, 마음, 법이다.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 또한 개인의 근기에 따라서 수행의 방법과 수행의 대상이 각기 달랐다고 하셨다. 대표적인 예로 사리불과 목련존자의 수행법이 대조적이라 하셨다. 대개 위빠사나 수행에 입문하면 몸에서 사대관찰을 시작으로해서 느낌의 관찰, 마음관찰, 법의 관찰로 지도를 받게 된다.
처음 참가해 보는 집중수행에서 생전 처음 경행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경행은 걷는 동작에서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인데, 즉 경행에서 12가지 느낌의 관찰, 그러니까 몸의 관찰을 시작한 것이다. 발을 들어올리고 내밀고 내려놓고 할 때 명칭을 붙이면서, 발바닥에서 사대의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긴장되고 이완되던 마음이 미묘하게 조금씩 변화하면서 발바닥의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 느낌이 실날처럼 가늘게 느껴져 그 느낌을 확인해보기 위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움직임이 있을 때도 몸 전체에서 가장 강하게 변화하는 근육의 움직임들이 알아차림될 때도 있었고, 발의 느낌에 변화가 강할 때 특히, 발바닥이 바닥에 닿으려 할 때 두려움이 일어남을 반복해서 알아차림하게 되었다.1년이 지난후부터는 일상에서도 관찰이 하루종일 이어진다.
- 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