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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SBS Youtube 동영상 캡처
지난 10월 27일 국회 국정감사가 모두 끝난 후, 올해도 어김없이 시정연설이 있었다.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 및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정부와 국회에 설명하고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어제 필자는 일정이 있어 일정 끝난 저녁에 유튜브로 시청했다.
먼저 윤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고금리, 고물가 상황이 계속돼 경제가 위축되고 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로 인한 안보 리스크까지 겹쳐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며, 거시경제 리스크 관리에 만전 기해, 경기회복과 민생안정에 주력하고 있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어 그동안의 정부 노력으로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금융세제 지원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초격차 확보, ▲교권보호 4법 개정 노력 등 다양성·개방성을 존중하고 공정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교육개혁 추진, ▲북한의 불법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핵 억지력 강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 안보, 경제, 기술 등을 망라한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 구축 등을 윤 대통령은 소개했다.
내년 예산 총지출은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8% 증가하도록 편성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했다며, 이와 관련해 ▲2025년까지 군 장병 봉급 205만 원 인상, ▲첨단 AI 디지털, 바이오,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예산 대폭 확대, ▲다문화 가정 6만 명에게 연간 60만 원 교육활동비 지급, ▲출산, 양육 부담 경감을 위해 부모급여 인상 및 출산가구에 공공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우선 배정 등을 하겠다고 윤 대통령은 밝혔다.
장애인과 관련해선 ▲국민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생계급여 지급액은 162만 원에서 183만 4천 원으로 인상(4인 가족 기준), ▲장애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에게 1대 1 전담서비스 제공 및 가족돌봄 불가능 시 제공하는 개별돌봄 시범서비스의 전국 확대를 통한 24시간 지원체계 확립, ▲‘묻지마’ 범죄에 신속 대응하기 위한 치안 중심으로의 경찰조직 개편 및 관련 예산 중점 배정 등을 말했다.
연설을 들으면서 조금은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먼저 생계급여 지급액을 약 21만 원 정도 인상하겠다는 건 고무적인 것처럼 들리나, 실은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받는 생계급여는 올해까지는 기준중위소득의 30%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이 소득의 32% 이하에 해당하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기준중위소득이란 기초생활 보장 및 복지 급여 등 정부 지원기준으로 활용키 위해 한국의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매겨 정확히 가운데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을 말하며, 매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소득을 말한다.
장애인단체 등 시민사회 단체들로 이루어진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이 기준중위소득을 현실화하고, 부양의무자 완전폐지 현수막을 들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빈곤사회연대 Facebook
그런데,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소득의 실제 중윗값은 1인 가구 244만 원, 4인 가구는 610만 원이다. 하지만 내년 기준 중위소득은 1인의 경우 222만 8445원, 4인 경우엔 572만 9913원이라, 실제 소득 중윗값에 비해 낮다. 실제 중윗값보다 낮은 기준 중위소득에 연동되는 생계급여인 점을 고려하면, 결국 이는 수급자들의 삶을 팍팍하게 할 여지가 높다.
더군다나 노동시장 배제를 통한 차별을 겪는 요인 등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급여를 받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은데, 실제 중윗값보다 낮은 기준 중위소득과 연동돼 내년도 생계급여가 책정됐으니, 이는 장애인들의 삶도 팍팍하게 할 여지가 높은 거다. 결국 기준 중위소득의 현실화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의료급여에 대해선 돌봄 요구가 큰 장애인이 있는 가구에 대폭 완화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전 폐지가 되지 않았기에 실제 부양하는 가족이 있기라도 하면 의료비 등은 예외 상황이 아닌 이상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거다. 결국, 장애인 등의 부양을 일차적으로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장애인단체 등 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인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에선 정부의 대책이 생색내기라며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인 거다.
‘묻지마’ 범죄에 대해선 치안 중심의 예산 편성 계획인데, 소위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정신장애인들도 언론에서 언급된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교육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사회적·제도적인 차별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정신장애인의 범죄에 대해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기보단 범죄만을 부각하는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등, 언론은 과도한 일반화를 통해 정신장애인 혐오를 부추긴다. 실은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장애인 비율은 비장애인에 비해 15배 낮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정신장애인들은 큰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껴 사회적 결핍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범죄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로 통합되도록 교육, 고용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고 이들이 배우고 일할 수 있도록 예산울 지원해야, 이들은 자존감이 올라가는 건 물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의 예산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오로지 치안 중심의 예산만 시정연설에 있었다. 오히려 정신장애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고, 이들의 자존감 하락은 물론 범죄를 통해 정신장애인 혐오를 부추기는 지금의 상황보다 악화될 게 우려되는 바다. ‘자유가 치료다’라는 정신장애계의 대전제를 시정연설을 한 당사자는 정말 알기나 할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올해 1월 19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남부터미널 앞에서 “장애인도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게 해달라”면서 시외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행진을 펼쳤던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첨단 AI 디지털, 바이오,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예산 대폭 확대를 시정연설에선 언급했는데, 장애인과 관련되어선 얼마 전 장애인 저상 광역버스 개발 연구지원 대대적 삭감이란 소식을 들었다. 이 연구의 목표는 휠체어 사용인 등 교통약자 중거리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 가능 저상 수소 전기 좌석버스 개발이다. 다시 말하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버스 또는 광역버스를 개발하려는 시도의 일환인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부 지원협약엔 1차 연도 40억 원, 2차 연도 61억 5000만 원, 3차 연도 114억, 4차 연도엔 34억 5천만 원을 언구개발에 지원하도록 명시돼 있단다. 그런데 실상은 내년 지원금은 8억 8600만 원만이 지원된단다. 그러니까 시외버스 또는 광역버스용으로 이용할 저상버스 연구개발 지원금이 삭감된다는 거다. 이런 배경엔 재정 건전성이란 명목 하의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보통 1000억 원 이상이 차량 한 모델 개발에 쓰이고, 장애인 차량 개발이 수익성이 낮은 걸 고려하면, 정부의 예산 삭감 조치를 통해 현대자동차 등의 대기업들은 이런 차량의 개발에 투자를 회피할 여지가 높아질 것이고, 재정 여력이 없는 기업 등은 연구를 지속할 수 없을 거다.
2027년까지 광역버스 등에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정부는 계획을 밝혔단다. 그러려면 그때까지 저상버스는 대량생산이 되어야 할 터인데,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연구개발은 차질을 빚게 될 터이다. 그러면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에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하겠다는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되어 물 건너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외에도 내년도 정부 부처 장애인 예산 조사결과, 예산액은 증대됐지만 교육 및 고용 등 장애인 일상활동에 필요한 예산 일부는 삭감되었다는 한 의원실의 보고가 있었다. 대표적으론 대상자 감소로 인한 장애수당·장애인연금 예산 감소, 최저임금적용제외 근로장애인 전환지원 예산의 삭감 등이 있다.
최저임금적용제외 근로장애인 전환지원은 보호고용에서 벗어나 일반노동시장으로 전이하려는 것과 연관되기에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에 필수적인데, 이런 예산을 삭감했다니 장애인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바다. 장애수당·장애인연금 예산감소의 경우엔 사회적 보호 및 빈곤 경감계획을 강화하라는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와 전혀 맞지 않는 거라, 역시 장애인 인권침해가 우려된다.
또한, 장애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에게 1대 1 전담서비스 제공 및 가족돌봄 불가능 시 제공하는 개별돌봄 시범서비스의 전국 확대를 통한 24시간 지원체계 확립이 시정연설에 언급됐지만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알 권리와 결혼할 권리보장 등 이들이 권리의 주체가 되기 위한 예산은 시정연설에 언급도 없고, 예산안에도 없다. 더군다나 미등록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한 대책 역시 시정연설이나 예산안 어디에도 없다.
미등록 장애인과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등의 신경다양인의 인간다운 삶과 관련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신경다양성 포럼 전경 중 일부. ⓒestas
한편, 그동안의 정부 노력으로 교권보호 4법 개정 노력 등 다양성·개방성을 존중하고 공정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교육개혁 추진이 연설에서 언급됐는데, 사실 여기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서이초 및 주호민 사태 등을 계기로 교사가 교육 활동 과정에서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될 시,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교사 직위해제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담긴 ‘교권보호 4법’이 지난 9월 국회서 통과됐다.
물론 교원의 교육활동과 생활지도가 무분별한 신고와 악성 민원으로에서 보호되는 법적 기반은 마련되고, 학교 민원은 교장이 책임진다는 내용 등은 고무적 측면은 있지만,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될 경우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은 오히려 장애아동 등 아동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 왜냐면 ‘정당한’이라는 용어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에, 예를 들어 자폐성 장애 학생 등 장애학생이 겪는 인권침해도 교사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할 시 ‘정당한 생활지도’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시끄러웠던 주호민 사태를 보면, 자폐성 장애가 있는 그의 아들 행동을 보고 특수교사가 “여학생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것은 고약한 일이야. 그래서 네가 지금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지 못하고 있어”라고 말했단다. 교사가 아닌 간수의 언어란 느낌이 들고, 장애학생인 그의 아들에게 특수학급이란 교실이 아닌 감옥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게 특수교사 개인만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면 장애인의 행동에 대한 교사 훈련 부족 등 통합교육 환경 미비 및 분리 교육 팽배 등의 학교와 사회 잘못으로 인해 주호민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고 특수교사가 이 지경까지 가게 된 사회적 맥락들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맥락들을 철저히 분석하기보단 오로지 주호민 아들의 행동 자체에만 초점을 두는 기사들이 대부분을 이뤘다. 그러니 교사는 교육적 목적으로 훈육시켰기에 정당한 생활지도이고, 학대가 아니며, 장애 학생을 당연히 분리해야 한다는 발언 등 장애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네티즌 등이 거침없고 가감 없이 쏟아내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선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사회의 분위기에서 장애 학생 등 학생의 인권은 상대적으로 고려가 부족했을 터이고, 그런 상황에서 교권보호 4법이 통과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상당히 아쉽다. 교사의 인권과 장애 학생의 인권이 함께 가도록 신중하게 법을 논의하고 개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하고 공정 교육시스템 구축을 통한 교육개혁 추진했다는 시정연설 내용은 별로 와닿지 않고 회의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거다.
전체적으로 종합해보면 장애인 권리 증진 희망은 내년도 예산은 물론 시정연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장애인의 권리 증진은커녕 오히려 장애인의 권리는 침해당하며, 장애인은 예전과 같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인 건 여전한 게 불을 보듯 뻔할 정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는 장애인의 권리 예산을 통제하는 등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고수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해 답답하다.
이런 현실이기에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 등의 투쟁은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장애인의 욕구, 선호, 의지를 중시하고 장애인 존엄성을 중요시하는 등의 장애의 인권적 모델로의 사회가 정착될 때까지 이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록 더디더라도 그렇게 해야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질 터이니 말이다. 이런 싸움에 나도 조금이나마 함께 할 걸 다시금 다짐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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