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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안드레이(안드리) 멜니크 부부의 유골이 25일 덴마크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장(移葬)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100년 여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 러시아어로는ОУН, Организация украинских националистов)의 수장을 지낸 멜니크와 그의 아내 소피아가 이날 키예프(키이우) 인근의 국립 묘지에 이장됐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율리아 스비리덴코 총리, 루슬란 스테판추크 국회의장 등 국가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100년여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 멜니크 부부의 유해 이장식 장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군 소속의 멜니크 대령(полковник армии Украинской Народной Республики)이 떠나야만 했던 우크라이나가 아닌, 그가 꿈꿔왔던, 다른(독립) 우크라이나로 돌아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러시아 연해주나 만주 등지에 흩어져 있던 항일 독립투사들의 유해를 현충원(국립 묘지)으로 모셔온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당연히 전쟁 중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다.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목표의 하나인 '나치즘'(나치 독일 추종 민족주의 세력) 척결에 대해 역사를 되새기며 국민 감정을 앞세운 저항 움직임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이를 위해 1910년대 유럽의 지정학적 혼란을 틈 타 우크라이나 독립을 부르짖은 주요 민족주의 조직, 즉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UNR), 서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ZUNR), OUN-UPA(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및 반군 조직) 등의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추모하기로 했다. 소위 '국가 영웅의 전당' 조성 계획이다.
이날 성대한 이장식을 치른 멜니크와 같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세계 역사에서 상반적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부역하고, 홀로코스트에 참여했다는 과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부정적인 평가를 무시하고 독립 투쟁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예기치 못한 국제적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캐나다를 방문했던 지난 2023년 9월, 하원 연설에 앞서 캐나다 거주 우크라이나 출신의 야로슬라프 훈카(98세) 노인과 주먹 인사를 나눴는데, 그의 나치 부역 혐의가 드러난 것. 앤서니 로타 캐나다 하원의장이 훈카 노인을 러시아(소련)에 맞서 우크라이나 제1사단에서 독립을 위해 싸운 '우크라이나와 캐나다의 영웅'이라고 소개하자, 젤렌스키 대통령도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려 그에게 인사했다.
로타 캐나다 하원의장의 소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주먹을 들어올리며(위) 훈카 노인은 방청석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 출처:영상 캡처, The Canadian Press
문제는 그 이후. 로타 의장이 소개한 우크라이나 제1사단은 나치의 히틀러 친위대(Waffen-SS친위대) '갈리시아(현재의 우크라이나 서부 르보프 일대/편집자) 분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유대인 단체들은 훈카 노인의 정체를 알고 분노했고, 서방 외신들도 이를 규탄하면서 로타 의장은 닷새 후(9월 27일) 의장직을 사퇴해야만 했다.
당시 스트라나.ua는 로타 의장의 사퇴 전날(26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은 우크라이나에서 나치의 준동을 막기 위해 특수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전쟁 명분에 딱 맞는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었다.
멜니크 부부의 우크라이나 이장도 비슷한 후폭풍을 낳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불가리아 외교부는 26일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멜니크의 우크라이나 국립묘지 이장은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박해하고 학살한 나치 독일을 지지하고 협력했던 조직의 지도자를 기리는 것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진실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 관장은 "역사적 진실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무시하는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행사에 크게 분노한다"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루보시 블라하도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서방을 충격에 빠뜨렸다"며 "그는 거리낌 없이 '파시즘'(나치즘)을 인정하고, 우상들을 공개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들이 (우크라이나, 당시에는 폴란드) 볼린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수만 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어떻게 고문하고 죽였는지 알고 있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금 바로 그 사람들, 히틀러의 협력자들을 미화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파시스트와 히틀러 추종자들을 우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제 세계 어느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멜니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동유럽에서 이같은 반발을 불러일으킬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이자 OUN의 수장을 지낸 안드레이 멜니크/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는 20세기 초 유럽 대륙의 혼란을 틈 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민족주의 세력을 규합한 단체들 중 하나(OUN)를 이끈 지도자다.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UNR) 군대의 대령 출신으로, 감옥에서 걸출한 민족주의 지도자 예브게니(예브헨) 코노발레츠를 만나 OUN를 만들고 이끌었다. 코노발레츠가 1938년 암살당하자, 그의 뒤를 이어 OUN의 수장이 됐다. 당시 멜니크와 경쟁하던 민족주의자가 오늘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스테판 반데라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반데라 동상/사진출처:위키피디아
반데라의 존재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를 내세우면 러시아측에 나치 척결이라는 전쟁 명분을 안겨 주고, 무시하자니 국민적 대(對)러시아 저항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민족주의자 멜니크와 이름이 같은 안드레이(안드리) 멜니크 전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현 유엔 대표부 대사)는 전쟁 초기인 2022년 6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반데라가 나치에 부역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러시아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가 한 달 만(7월)에 경질됐다(미 뉴욕 타임스 보도). 반데라는 그만큼 우크라이나 국내외 평가가 상반되는 인물이다.
그는 코노발레츠의 암살 뒤 OUN을 이끌던 멜니크와 대립 끝에 OUN 조직을 양분한 인물이다. 역사가들은 온건파 중심의 멜니크의 조직을 OUN-s(러시아어로는 ОУН-солидаристы 혹은 ОУН-с)로, 과격파인 반데라 중심의 조직을 OUN-b(러시아어로는 ОУН-бандеровцы 혹은 ОУН-б)로 분류한다.
모든 역사가 증명하듯, 과격파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그 세를 더욱 떨치기 마련인데, 반데라도 그랬다.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했으며, 이후 가장 강력하고 조직적인 무장 세력인 '우크라이나 저항군 혹은 반군'(UPA, 러시아어로는 УПА, Украинская повстанческая армия)을 조직했다. 독일 나치군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했을 당시, UPA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도왔다는 게 역사적 평가다.
반면, '캐나다 하원 스캔들'의 주역인 훈카 노인이 복무했던 '갈리시아 분대'는 멜니크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한 부대다. '갈리시아 분대'도 폴란드 등지에서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OUN(무장세력은 UPA)은 1950년대 후반까지 소련의 우크라이나민족공화국에서 공산당에 맞서 지하 사보타주(비밀 폭파 음모)를 벌이는 등 투쟁을 계속했다. OUN(UPA)와 반데라가 과격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독일 나치즘과의 결탁을 상징하게 된 이유다.
반데라는 1959년 독일 뮌헨에서 옛 소련의 스파이에 의해 암살됐고, 멜니크는 전쟁이 끝난 뒤 망명지인 덴마크에서 우크라이나 망명자 조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의 노력은 1967년 세계 우크라이나인 대회로 이어졌지만, 정작 그는 이 대회의 창설을 보지 못하고 1964년 눈을 감았다.
스트라나.ua는 멜니크가 의외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유로 반데라와의 충돌을 꼽았다. "OUN의 첫 지도자 코노발레츠의 후계자인 멜니크를 소개하려면, 그가 왜 이미 전설이 된 반데라의 경쟁자였는지 설명하고, OUN내 두 파벌(멜니크와 반데라)이 나중에 서로 죽이고 독일군에게 고자질하고 동료를 넘겼다는 사실, 즉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OUN의 역할에 대한 공식적인 해석과 모순되는 불편한 진실을 다시 들춰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특히 멜니크와 그의 동료들(갈리시아 분대)은 반데라보다 나치 독일과 협력한 흔적을 훨씬 더 많이 남겼는데, 여기에는 홀로코스트 가담도 포함된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당국이 멜니크를 다시 들춰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멜니크의 우크라이나 이장에 이스라엘과 동유럽 일부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멜니크의 우크라이나 이장식에 참여한 사람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반데라가 아니라 국제적 반발이 더 클 게 뻔한 멜니크를 이장한 것은 반데라의 이장을 후손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데라는 독일에 묻혀 있는데, 그의 이장은 지나치게 엄격한 독일의 법 규정에 막혀 있다. 이장의 전제 조건인 반데라 후손의 동의를, 우크라이나 정부는 30년 넘게 받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젤렌스키 정부는 지난해 반데라에 관한 영화 제작에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다.
멜니크와 반데라에 비해 시기적으로 조금 앞선 민족주의 지도자 코노발레츠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묻혀 있다. 그는 1938년 로테르담에서 소련 정보 장교(스파이) 파벨 수도플라토프에게 암살당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멜니크 이장에 앞서 지난 19일 대국민연설(영상)을 통해 코노발레츠란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역사적 인물들로 국가 영웅의 전당을 꾸미겠다"고 말했다. 강력한 역사적 인물에는 코노발레츠가 반드시 포함된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민족주의 성향의 부대로 알려진 '아조프 연대'(혹은 아조프 군단 러시아어로는 Бригада «Азов»)는 100년 전의 독립 추진 민족주의자들과 이어지는 접점은 없다. 이 부대는 2014년 유로마이단(친러 성향의 정부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에 이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내전 당시, 마리우폴에서 친(親)러시아 무장 단체에 맞서기 위해 내무부 순찰 대대로 창설됐다. 이후 한달 만에(2014년 6월) 친러 분리주의자들로부터 마리우폴을 빼앗아 주목을 받았고, 그해 11월 연대급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에 소속(아조프 국가 방위군)됐다.
이 부대가 또 다시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2022년 5월 러시아군이 약 3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마리우폴을 점령했을 때다. 아조프 연대는 마리우폴에서 결사항전을 벌였으나 역부족을 인정하고 러시아군에게 모두 항복했다.
3개월 간의 항전 끝에 항복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의 아조프 연대 군인들/영상 캡처
멜니크의 이장에 맞춰 나온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독립심 고취 조치는 매일 아침 9시에 1분간 진행되는 묵념 방송이다. 원래 하르코프주(州)에서 희생자 추모를 위해 시작한 묵념 행사였는데,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총리는 22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인구 밀집 지역(대도시)에서는 매일 오전 9시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 시간이 공영 방송을 통해 안내될 것이라고 밝혔다. 묵념 방송은 시작을 알린 뒤 1분간 '메트로놈 카운트다운'이 울린다.
묵념은 전쟁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비극인 '골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 희생자들도 기린다.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 최고라다(의회)는 70여년이 지난 2006년 골로도모르를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집단학살 행위로 규정했다. 반소(러시아) 여론을 업고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이 주요 원인이 된 학살 행위(골로도모르)라고 주장한 것인데, 서방의 30여개 국가들이 이에 동참했다.
최고라다(의회)는 지난 2월 묵념 방송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3월 이 법안에 서명했다. 그리고 멜니크 이장 시점에 맞춰 실행에 옮기는 듯하다.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조치들은 전쟁이 4년을 훌쩍 넘기면서 전쟁 피로에 푹 젖어 있는 국민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지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득(得)만 있는 게 아니라, 러시아에게 군사작전의 명분을 안겨주는 실(失)도 무시할 수 없다.
인근 국가인 폴란드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들은 지난해(2025년) 10월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발의한 법안을 채택하지 말 것을 폴란드 정부 측에 촉구했다. 이 법안은 OUN과 UPA를 나치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체제와 동일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국 간의 역사적 상처는 소위 '볼린 참사'인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이 나치 독일을 도와 폴란드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을 폴란드 민족 감정과 동기화한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2025년 8월 OUN-UPA 상징물 전시를 범죄화하고 이를 어기는 자에게 투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OUN-UPA를 "살인자이자 변태"라고 비판했다.
멜니크가 OUN-UPA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민족 감정을 고양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일련의 조치가 부메랑이 되어 폴란드로부터 돌아올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