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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9월 추석명절 주일설교
○ 로마서 5장 11절 화목하며 즐거워하라
이번 주 화요일이면 추석명절을 맞이 합니다. 여러분은 명절이 기다려지십니까? 기다려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대감이 없다면 명절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명절인데도 불구하고 가족이나 친척들에 대한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천국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만일 예수님이 안 믿어지거나,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무서운 사람은 예수님 재림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명절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가정이 어느 정도는 화목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먼 거리에 교통체증이 계속되어 평소보다 훨씬 오랜시간이 계속되는 데도 부모님이나 친척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계신 노부모님을 찾기 보다는 명절 연휴를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아졌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기대감이 깨진 것입니다. 이것은 그 가정의 화목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화목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화목한 교회와 화목하지 못한 교회는 다릅니다. 화목한 교회는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싶어지지만 화목하지 못한 교회는 주일날 한 번 가는 것도 겨우 갑니다. 거기다가 화목의 중요성을 모르는 교인들은 주일날 교회 빠지는 것을 밥 먹듯이 빠집니다. 그들의 문제는 교회도 사랑이 없을 수도 있지만, 교회에 자주 빠지는 그 사람도 역시 사랑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없거나 사랑을 잃은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심각합니다.
오죽하면 성령께서 에베소교회를 행하여 너희는 다 좋은데 첫사랑을 잃었다. 만일 그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네 촛대를 다른 데로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촛대가 무엇입니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것 때문에 사명을 다른 사랑이 있는 교회로 옮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사랑없음을 회개하고, 그 첫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찾아보고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사랑은 화목의 절대요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사랑받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주려고는 하지않고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같은데요. 예전에 참 많이 불렸던 복음성가 중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 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그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 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은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사랑하면서 살기 원하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만 나의 못난 자아가 방해를 하고, 입술은 주님을 닮은 것같은데 정작 마음은 아직도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는 추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준다고 하면서 주는 사랑은 마음 속 저편에 계산이 깔려있는 받기 위해서 주는 사랑일뿐입니다. 이런 사랑은 사랑의 모형은 있어도 참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받기 위해서 사랑을 주면서도 자기는 참 사랑을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여러분들의 행동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마음 상태를 보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산제물이 되는 그런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희생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참사랑 안에서 화목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서 참사랑으로 화목하는 사랑의 불이 여러분들의 가슴에 붙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의 충만함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장 11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그뿐 아니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5장 8-1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러분들을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용납하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십자가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길을 따를 때 아직 죄인으로 있는 사람들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을 시작해야 합니다. 화목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자기에게 잘 하는 사람들과 화목하려고 하지 자기에게 죄를 지은 사람과 화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죄는 용납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관대함을 보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이익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죄인들에 대하여 참으며 용납하며 용서하며 그들을 위한 사랑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자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에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들을 향하여 화목의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적이며 무한하십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불변하는 사랑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사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이렇게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두 가지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읽은 로마서 5장 8-10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아니었으면 결단코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하나가 될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고집불통에 융통성도 없는 골칫거리로 보았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할례받지 않은 개나 돼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서로 간에 가까워질 수가 없는 악한 관계였습니다. 그것을 그 누구도 화목하게 만들도록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지시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담이 무너졌습니다. 에베소서 2장 11-18절까지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자기 안에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한 몸으로 만드신 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혼자서나 아니면 교회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가 아니라 혼자와 교회가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의 경건만 중요시 여기면서 교회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의 활동은 매우 중요시 여기지만 개인의 경건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인의 경건만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화목의 역사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반면에 교회의 활동만 중요시 여기고 개인의 경건은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영적인 결핍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일 외에는 모든 것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디. 물론 그 내면에는 자기 사랑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교회 이 둘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화목과 사람들과의 화목이 온전히 조화를 이루는 균형잡힌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 밖에서도 역시 화목을 위해 힘쓰게 됩니다. 영적인 이방인들에게 사랑의 손을 펼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없애시고 이제는 죄인과 의인으로 구분을 지으셨습니다. 유대인 속에도 죄인과 의인이 있고, 이방인 가운데도 죄인과 의인이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할례 받았다고 해서 의인인 것도 아니고, 할례를 안받았다고 해서 죄인인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받은 의인들이 유대인들처럼 우월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끔 하시는 큰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땅의 나라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 안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목회자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땅의 나라에 관심을 쏟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이끕니다. 그에 따라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좇아가는 사람들은 애국이라는 이름에 열광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굉장히 옳은 일을 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에어컨을 바꿀 때 두 아주머니가 남기형제네 집 입구 집에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제가 에어컨을 교체하는 집사님과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분들이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첫 인상이 마치 싸움닭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을 교체하시는 집사님의 인상이 굳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님들이 다가오더니 에어컨 고치는 집사님의 누나라고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누나냐고 물었더니 친누나는 아니고 그냥 누나 동생하는 사이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자기들을 소개하는 데 전광훈목사와 함께 광화문에서 애국운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목사님들이 설교시간에 애국에 대해서 그리고 동성애 반대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하면 우리가 이렇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안하셔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 모임에 가입해 광화문 집회에 나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 안합니다“했더니 버럭 화를 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듣고자 하는 귀만 열어놓고 있지 다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반응이 없자 그들은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임에 가입하고 광화문에 가야만 이 나라가 산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임재하서서 자신의 백성들을 만나시고 함께 하시는 사랑과 기쁨과 정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나라에 소속이 되어 그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적은 북한의 김정은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괴롭히고 시험하는 마귀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에게 애국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게 하신 한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할 일은 나라를 위햐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평화가 여러분들로 하여금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대도 가고, 세금도 내고, 나라에서 요구하는 공무원들을 존중해주고, 또 나라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국민의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에 속한 여러분들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얻는 혜택이 많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수많은 일들이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수많은 범죄자들의 범죄에서도 안전한 것은 국가가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긴 사람들을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범죄가 예방됩니다. 물론 국가의 법이 국민들을 지키는 데는 한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이웃과 화목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면 상당히 많은 안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처럼 옆집 사람이 죽은 지 삼개월이 지나 썩은 내가 진동해야 그제서 경비실이나 아니면 동장이나 이장에서 신고해서 확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화목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화목은 공동체를 강하게 합니다. 가족을 강하게 하며, 교회를 강하게 합니다. 동네를 강하게 합니다. 기업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20절을 읽어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죄는 자꾸만 사람들의 마음을 나눠놓습니다. 분열은 죄의 열매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서라고 화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사람들의 죄값을 속량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갈라진 둘 사이가 하나가 되어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화목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면 화목합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면 화목이라는 열매는 맺습니다. 이와같이 가정과 어떤 모임과 기업과 나라 역시 사랑하면 화목하게 됩니다. 그런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는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물론 사람의 수고로도 어느 정도는 화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그렇게 연합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라든지, 혈통이라든지, 같은 지역이라든지, 같은 나라라든지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아니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서로 모임을 같습니다. 심지어 같은 자동차 모임, 같은 애견가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또 사회에 반항적으로 행동하는 동성애자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는데 사회에서 차별한다고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지 게이로 지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하나님을 대항한 죄의 결과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옛날 로마 황제들 가운데 키가 작은 소인들을 데려다가 자기 놀이개로 삼아 동성애를 저지르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소인들이 그런 것이 좋아서 했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억지로 행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권력자의 횡포에 의해 억지로 희생된 동성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많은 동성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동성애자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나서 그 수치심에 자살 충동을 느끼다가 분노의 마음을 품고 그 집단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들은 정상적으로 이성을 만나 결혼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 가운데는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벗어나지도 못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화목이 아닙니다. 그들의 모임은 범법자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자기들도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진리는 구약의 율법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그 바탕 위에 세워진 사랑을 말씀하고 게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연합된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를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머리인 남자와 몸인 여자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목은 진리의 지식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진리의 말씀 아래 함께 세워져 가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동성애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범죄가 확산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의 악함을 밝히고 자라나는 세대들로 하여금 그들을 경계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그들의 죄를 합법화시키려는 움지임을 갖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그 동성애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서 죄악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죄를 통해 화평을 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툼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다른 사람들과의 화목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교회가 바로 이를 위해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온 세상의 화목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한 화평의 도구가 되길 구하십시오. 진리 안에서 화평을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화목을 위해 일하십시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화목을 위한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평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부터 훈련시키셔서 점차 큰 화평의 역사를 위해 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여러분들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이 추석명절을 예수님 안에서 화목함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명절로 보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