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 변호사
수필원고를 심사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구조조정으로 군에서 퇴직한 장교들이 사회에서 처절하게 고생을 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쓴 글들이다. 한밤중에 일어나 책상 위에 두툼하게 쌓인 백여 편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 첫 장면은 진급에서 빠지고 앞이 캄캄해지는 절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 의미가 단순하지 않았다. 전역 명령과 함께 살던 집마저 즉시 반납해야 하고, 진급한 승자인 동료와는 극명하게 대치되는 운명의 전환점이고 삶의 상실이기도 했다.
‘용접공 유 대위’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스팩 없는 지방대 출신, 사회초년생으로는 부담스런 나이, 아내와 돌이 된 딸을 둔 그가 소령 진급에서 누락되어 사회로 나왔다.
생활정보지를 종류별로 챙겨 줄을 그어가면서 전화기를 돌렸으나 취업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새벽 우유배달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일을 찾았다.
텔레비전에서 가장이 과일을 사서 퇴근하는 공익광고를 봤을 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3D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제출했으나 인사담당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장교출신이라는 게 흠이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했다. 대형 할인매장 주차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정체가 심해 차가 나가기 어렵자, 한 남자가 다가와 욕지거리를 하면서 따귀를 갈겼다. 청소일을 할 때는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화장실부터 닥치는 대로 쓸고 닦았다.
155마일 GOP에서 적과 대치하면서 중대장 임무를 했지만, 삶은 그보다 훨씬 치열한 전투였다.
그는 우연히 ‘특수용접 무료교육’이라는 직업훈련생 모집 현수막을 봤다. 용접은 기술이라 배우기만 하면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직장이 생길 것 같았다. 이력서를 보면서 담당자가 그에게 물었다.
“용접일은 3D업종인데 막노동 공원 생활을 장교님이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장교로 군 생활을 했지만, 짦은 사회생활을 통해서 아무 준비 없는 자에 대해 이 사회가 얼마나 혹독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온갖 일을 하면서 저를 낮추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물려받은 유산 없이 이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기술 하나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뽑아주십쇼.“
그는 뒤늦게 어린 용접공들한테서 기술을 배웠고, 마침내 한 회사의 용접공이 됐다. 그는 새로 태어난 듯 진정으로 그 자리에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가슴이 찡했다. 대부분 비슷한 입장인 그들에게는 절실한 생존 앞에 불평할 마음마저 없었다. 철저히 없는 자에게 삶은 순간순간이 절박하고 처절한 싸움터였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면 쓰나미 같은 물결에 휩쓸리는 것이다.
피라미드 같은 조직구조는 누구나 언젠가 탈락할 운명이다.
고급 장교로 진급했어도 마지막은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다.
더 있다 나오면 그만큼 늙고 쇠약해진 몸이다. 그나마 노동으로 다시 출발할 수도 없다.
새벽녘까지 글 대부분을 읽었다. 갑자기 감사하는 마음이 밀어닥쳤다. 나 역시 젊은 시절 육군 대위로 전방에서 직업장교생활을 했다. 눈 덮인 겨울 평야에 납작한 바라크 관사에서 딸을 낳고 아내와 살았다. 철책선 순찰 때면 칼날같이 날카로운 겨울바람 속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잠자는 아내와 딸을 보면서 틈틈이 법서를 들추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나라고 그들의 운명과는 다른 예외일수 없었다. 조직에 있다가 보면 언젠가는 물러 나와야 하듯, 세월이 가면서 인생이라는 강물에서 옆으로 밀려 나와야 할 때가 된 걸 느낀다. 나는 조용히 내 골방에서 글 만드는 일로 제3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심사를 마치고 창밖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글 속에서 슬퍼하고 울고 달리고 뛰는 모든 주인공에게 격려의 박수를 힘껏 쳐주었다.
―――요즘같이 어려운세상 마음에 와닺습니다.―――
◆좋은생각중에서◆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0^
또다른세상을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