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본상( 古本商,헌책방) 에서 책을 뒤져 볼 때 가만히 들여다 보면
10쪽 이상 손 때가 묻어 있는 책이 드물다. 즉 서문이나 제1장제1절
만은 붉은 연필로 언더라인을 쳐놓은 것이 많은데 제2장 째만 접어
들어도 깨끗한 신간 그대로다.
책을 읽는 것이 이 모양이니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
[전쟁과 평화] 나 [장 크리스토프] 와 같은 대작이 없다는 것도 결국
작가의 스태미나 문제다. 피카소는 나이 70을 넘어 스무 살의 신부를
맞이했다. 노망(치매) 해서가 아니라 그만한 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은 "피카소가 허니문" 을 떠나는 것과 그의 예술은 결코 무관한
것 같지 않다. 그만한 스태미나가 있었기에 그런 걸작을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외국의 걸작품들은 대개 환갑을 지나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여든 살의 산물이며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예순 살 때,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쉰 일곱 살 때
착수한 것들이다.
결혼식에 주례나 서고 혹은 신간 서평이나 작품집 서문을 쓰는 것으로
여생의 낙을 삼고 있는 우리의 대가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일이다.
ps: 고 이어령 선생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세번이나 통독 했다고
본인이 이야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