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1일. 청평 한샘학원
계곡물이 허리띠처럼 돌아가는 아름다운 공간, 엊그제 내린 비로 물의 줄기는 건너편 움직임이 없는 녹음과는 대조적으로 흐르고 있다. 두 번씩이나 문자가 온 유원장이 기숙학원을 개원한다기에 지난주부터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오늘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유원장은 차분함과 동시에 추진력이 있는 후배로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여학생 기숙학원에 이어 남학생 학원까지 개원한다니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능력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차는 광릉내 입구를 넘어선다. 모친이 작고하던 2009년 4월에 조화를 들고 찾아온 그를 회기동 서울의료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거의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이다.
대일학원을 떠나 한샘학원에서 몇 년을 강의하고 경복궁 수능연구실과 장훈고등학교 학사에서 7년을 정신없이 수업하며 보내고 금년부터는 서대문 국어공간을 운영하며 평일 이틀은 경기도 오산역 앞에서 임대업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인데 돌이켜보니 동료들을 외면하고 달려간 나만의 시간이 아니었나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일이라서 신호등을 통과하면 막힘없이 차는 달리고 OB베어스타운 앞 굽어진 오르막길을 지날 때는 포천에 있는 온천이나 산정호수를 여행한다며 다녔던 시간이 그리웠다. 특히 신팔리 4거리 오른쪽의 전주집 그리고 코너에 있는 순두부와 돈가스 집은 예전의 모습을 지키고 있어 지난날을 반추하기에 충분했고 추억의 순간들이 기억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팔 4거리에서 현리방향으로 가는 길은 과거에는 계곡을 따라 약간 비포장 도로같은 시골길 이었는데 오늘은 산과 산을 사이에 두고 일자로 시원하게 그림처럼 뻗어 고속도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경관에 취해 10여분을 달려 현리 읍내로 들어가 화분을 주문하고 다시 덕현리 입구까지 10분여를 더 가니 초입에 아담하고 산뜻한 한샘학원이 자리를 하고 있다.
차단기가 오르자 머리를 스님처럼 깍은 다부지고 오종종한 선생님이 나를 기다린 것처럼 달려 나와 반기고 주차까지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개원 축하는 물론 반가운 선,후배를 기대하고 차에서 내리니 반대편에 추경문 원장이 나를 보고 있다. 2009년 모친상에 수업을 마치고 왔다며 밤12시 마지막 문상객으로 도착한 사람, 오늘 다시 만나니 잔주름만 하나 늘었을 뿐 편안하고 따뜻한 인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강남에서 학원장으로 있다는데 인품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도 여러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입구에서 유원장을 만나 개원을 축하한다 하니 내가 오리라는 생각은 못 했다면서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넨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며 김남출 원장을 만났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 없고 표정 변화가 없으니 마치 방금 전에 만난 사람 다시 보는 친숙한 기분이다. 펜타스 총괄원장으로 수강생 모집으로 고심을 하는 흔적이 보이긴 했는데 실력이 있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펜타스의 발전도 의심이 되지 않았다. 임완희, 정석재 선생님도 전우와 해후하는 심정으로 반갑게 볼 수 있었다. 강의를 하는지 가방을 들고 있는 임완희 선생에게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집에 있다고 해서 웃겼는데 아마 펜타스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집은 일산이고 과거에 서대문 미동초교를 졸업한 자부심이 있어 보이는 선생님, 대일회에 나와 수다라도 떨자며 참석을 제안하는데 고마움이 가득 넘쳤다. 정석재 선생은 도곡동 근처에 살며 강남에서 개인학원을 한다는데 긴 세월 한 길을 가는 대단한 선생님이 아닐 수 없다. 대일학원에 있을 때는 안경을 착용했는데 오늘은 쌍꺼풀 수술을 한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 할 뻔했다. 조만간 시간이 되면 대치동에서 만나 식사라도 하자고 약속을 했다. 선생님들 모두 대일학원을 떠나고는 거의 처음이니 긴 시간이 흘렀는데 그 중에서 김남출 원장의 외모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점심을 뷔페로 먹는데 대일학원에서 동갑나이로 술잔을 기울였던 구본형 선생이 건너편에서 자리를 잡는다. 그에게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니 밥을 준비하다가 다가와 웃음으로 맞이한다. 그는 여기 한샘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주인공이고 나는 손님으로 와 있으니 서로간 주객으로 나뉘어 있는 형세다. 예전처럼 술은 많이 마시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데 나이에 비하여 배도 나오지 않았고 나름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에서 유명한 강사로 이름이 있는 구본형 선생이 언제까지 강의를 하는지 지켜보는 일도 같은 나이에 재미있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2시30분이 지나 한샘 기숙학원을 나서 계곡 안쪽에 위치한 여학생 기숙학원을 둘러보니 물이 흐르는 계곡 위쪽으로 우뚝 솟아 동화 속 공주가 사는 집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다움이 있었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달린다. 오늘 지난 날 동료들을 만나 반가움이나 기쁨이 컷지만 그것보다 세월의 빠름이 나에게 더 울림의 심정으로 다가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두가 어제 같은 대일의 모습이었는데 어느덧 10여년이 훌쩍 가버렸다니 지난 시간을 붙잡고 통곡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성싶었다. 핸드폰에 담아온 동료들 사진을 다시 보며 그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이 연속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시야에 펼쳐진 갈매빛 여름산에 취해 한참을 달려 나오니 이정표는 서울을 안내하고 있다. 내부순환도로를 올라 정석재 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보이지 않은 영식이 안부를 재차 물었고 그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좋은 만남을 가져달라고 부탁하듯 당부를 했다. 초복을 앞둔 한여름의 고통을 머리에 이고 4시경 사무실로 이동하였다. 한참을 지나 쪽유리 귀퉁이로 여름 하늘을 다시 보니 도도한 모습의 태양은 아직도 이글거리며 나를 보고 있다.
-- 2017년 7월 12일 김종곤
첫댓글 김선생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오늘 이수환 선생님을 만났더니 선생님과 통화하셨다고 하더군요. 조만간 같이 식사한번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