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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임진탐매 단신 Ⅶ - 청화사애도매병(靑華四愛圖梅甁)
눌인 추천 0 조회 29 12.12.04 15: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임진탐매 단신 Ⅶ - 청화사애도매병(靑華四愛圖梅甁)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2012년 11월 24일 중국 호북성 무한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귀주성 치엔둥난먀오쭈뚱쭈자치주[黔東南苗族?族自治州] 레이산[雷山]현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귀주성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무한을 경유하게 된 것이다. 11월 24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묘족(苗族)의 새해 축제인 묘년(苗年)행사와 13년 만에 열리게 되는 고장절(鼓藏節)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귀주성 치엔둥난먀오쭈뚱쭈자치주 방문은 2009년 4월 자매반축제 참관한데 이어 두 번째이고, 호북성 무한은 2009년 5월 토가족(土家族) 조사 차 은시[Enshih, 恩施]를 가기 위하여 들렸던 곳이다. 중국 중부에 위치하는 무한은 호북성의 성도이며 중국 육대도시의 하나이다. 면적은 8,467평방미터로 양자강 상류, 한수와의 합류점에 있는 대 상공업 도시로 북경·광주와는 철도로, 중경·상해하고는 장강에서 연결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로 예로부터 9개의 성으로 통하는 대도(大道)라고 불려왔다.

 

2012년 11월 24일 무한 도착 후 처음 찾은 곳은 호북성박물관이었다. 무창(武昌) 동호(東湖)변에 1953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6.4핵타아르의 부지에 조성되었는데, 1999년 2월 새로운 진열관을 선보이기도 하였으며, 지금도 계속 확장 중이다. 20만여 점의 소장유물 중에는 초(楚)나라와 관련된 유물이 특히 많이 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단다.

호북성박물관

호북성박물관

호북성박물관

 

올해의 첫 탐매여행은 2월 중국 절강성 항주(杭州) 서호(西湖)의 방학정(放鶴亭;Fangheting)을 찾음으로 시작한 셈이었다. 매화와 학을 가장 사랑한 북송시대의 은둔 시인 임화정 처사의 묘소를 찾아 시작한 탐매여행이었다. 그 후 일본과 국내 매화명소를 열심히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직접 매원을 경영하고픈 충동이 일어 땅을 구입하고 15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구입하고, 그동안 키우던 매화들을 옮겨 심어면서 탐매여행은 흐지부지 끝이 났다.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또 잉여 땅이 아까워 작물을 심고 키우다보니 일에 지쳐 허덕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즉 임진년의 탐매여행 소개는 4월 5일 <임진탐매 Ⅵ - 야마구찌현(山口?) 죠후조코마치(長府城下町)의 매화>라는 글을 소개하면서 끝내었다.

임포(林逋)가 살던 옛터에서의 홍매 - 2012년 2월 촬영

 

그 후에도 명매(名梅)가 있다는 곳을 찾아다녔고, 매화 관련 유물을 보러 다녔다. 매화 관련 그림과 도자기 등을 100여점 구입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매달 둘째 일요일에는 공주 계룡산을 찾아 매화 재배와 관련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단국대 조덕성교수님의 강의를 매달 듣고 있는 셈이다. 여하튼 임진탐매의 끝은 이곳 호북성(湖北省) 박물관의 명품 매병 소개와 무한(武漢)의 동호소매령(東湖小梅嶺) 매화들을 만난 것으로 끝내어야 될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에서 박물관을 갈 때 꼭 챙겨보는 유물이 있다. 나의 전공분야인 고고유물은 사진만 열심히 찍어두게 되었다. 요즘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소수민족 자료와 나전칠기 제품, 그리고 매화 관련 유물이다. 올 1월 상해박물관에서는 오창석의 매화도에 심취하였다. 2월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아들로 여기며 살아‘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리던 임포(林逋;967~1024)의 집 옆에 있는 항주 서호 변에 있는 구산의 절강성박물관에서도 매화관련 유물을 찾아다닌 기억이 있다. 5월 서안의 섬서성박물관에 갔을 때도 매화관련 유물을 찾았지만 없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오창석의 매화도(상해박물관)

 

 

 

호북성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고대자기전제전(古代瓷器專題展)>이라는 전시실에 진열된 청화백자(靑華白瓷) 한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화백자(靑華白瓷)의 경우, 한자로 청화(靑華)라 하는데, 중국에서는 청화(靑花)로 쓰고 있었다. 청화모란문탑식개병(靑花牧丹文塔式蓋甁), 청화십이월화훼충(靑花十二月花卉?) 도 훌륭하였지만, 원청화사애도매병(元靑花四愛圖梅甁) 앞에서는 떠나기가 싫었다. 이처럼 호북성박물관에 빼어난 청화백자가 많은 이유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현능(明顯陵)과 주변 왕실의 무덤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리라.

 매화 앞의 열사 왕한(1946년 작. 호북성박물관)

 

 

 

 

 

 

 

 

 

 

 

 

 

 

청화모란문탑식개병(靑花牧丹文塔式蓋甁)

 

청화백자매병(호북성박물관)

청화십이월화훼충(靑花十二月花卉?)

청화십이월화훼충(靑花十二月花卉?)

귀국 후 자료를 찾다가 안 사실이지만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은 이곳 박물관의 4대 보물 중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고대악기진열관에 전시된 편종(曾侯乙 編鐘)과 월(越)국 왕, 구천의 검(越王 勾踐劍), 오왕(吳王) 부차(夫差) 모(矛) 등도 이에 포함된다. 추시대 중국의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BC 497~465)은 오왕 부차(夫差;BC 496~473)와 더불어 와신장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이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오(吳)나라 손무(孫武)와 동시대 사람이기도 하다.

구천의 검(越王 勾踐劍)

 

 

또 이 유물은 우리나라 국보급에 해당되는 중국의 국가일급문물(?家一?文物)이라는 사실도 귀국 후 알았다.《文物藏品定級標準》(文化部2001年第19號令)規定:文物藏品分?珍貴文物和一般文物。珍貴文物分?一、二、三級。具有特別重要歷史、藝術、科學價?的代表性文物?一級文物;具有重要歷史、藝術、科學價?的? 二級文物;具有比較重要歷史、藝術、科學價?的? 三級文物。具有一定歷史、藝術、科學價?的?一般文物。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1328~1398)의 24번째 아들 주동(朱棟)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호북성 종상시(鐘祥市)의 한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이곳에는 2000.11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명과 청 시대의 황릉(Imperial Tomb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明淸皇家陵寢)> 중 명현능(明顯陵)이 있는 곳이다. 태조 홍무제(洪武帝) 주원장의 장자 효강황제(孝康皇帝) 주표(朱標;1355~ 1392)의 무덤이 명현능(明顯陵)이다. 흥종(興宗) 주표는 명나라 개국과 함께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92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고, 1398년 건문제 즉위 후 흥종(興宗) 강황제(康皇帝)로 추존되고 종묘에 배향되었다.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1402~1424) 즉위 후 다시 태자로 추탈되었다가 만력제(萬曆帝;1582~1620) 때 다시 황제로 추존되어 종묘에 합사되었다.

 

주표(朱標)는 베이징에서 1,000㎞ 이상 떨어진 이곳에 능묘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이 능묘를 명 황릉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그리고 황후를 비롯한 가족 묘실이 포함된 또 다른 무덤들을 만들기 위해 추가 공사를 시행하였다는 기록이 『명사(明史) 권 115 열전(列傳) 제 3』에 나타난다. 이곳에는 주표(朱標)의 막내 동생 주동의 묘소도 있다.

 

명 태조 주원장에게는 42명의 자녀가 있었다. 이 중 아들은 26명이었는데, 그 중 24인의 황자(皇子)를 전국의 요지에 분봉(分封)하여 왕으로 봉하였다. 장남 주표(朱標)는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26번째 아들 주남(朱楠)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24명에게만 왕으로 봉하였던 것 같다. 제실의 안정을 도모하기위한 수단이었는데, 주동은 이곳 호북성 종상시(鐘祥市), 즉 옛 이름 영주(?州)의 왕으로 봉해져 주번왕(做藩王)이 되었다. 3살 때 영왕(?王)으로 책봉되었고 현지에는 20살 때 도착하였으나 27살 나이에 급작스런 병으로 요절하였다고 한다. 명조개국원훈(明朝開國元勳) 곽영지(郭英之)의 딸인 왕비 곽씨와 사이에 아들은 없고 딸만 넷을 두었다.

 

중국의 위키백과(?基百科)에서는 주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靖王 朱棟(1388年6月21日-1414年11月14日),

明太祖 朱元璋 第二十四子,母 劉惠妃,明朝 第一代 亦?唯一 一代 ?王,王妃郭氏,武定侯 郭英之女. 他在 洪武二十四年 四月十三日(1391年5月17日)他受封 ?王. 他在位 二十三年,?在 永樂 六年 六月 二十一日(1408年7月14日)就藩安陸. 他在 永樂 十二年(1414年)去世,留有 四?女?:光化郡主, 谷城郡主, 南?郡主,?一位早?. 王妃 郭氏 自?殉?. 因無男,?國被撤除.

 

原因:明太祖封之

明?國國王1391年-1414年

原因:無子明朝廷撤除封國

 

 주동(朱棟)과 그의 부인 곽씨와 합장된 묘에서 출토된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은 높이 39.7cm, 구경 6.4cm 저경 13cm인 매병(梅甁)이다. 송(960~1279)·명(1368~1644) 시대에 특히 인기를 누렸던 중국 도자기의 일종으로 대개 아가리가 좁고 짧으며 어깨는 넓고 밑이 갸름하게 생긴 청자 꽃병으로 매화 나뭇가지 하나를 꽂기에 알맞도록 만든 모양이다. 이 병의 어깨부분에는 모란牡丹)을 장식하였고, 족부(足部)는 복련(覆蓮)과 권초문(卷草紋) 등이 장식 되어있다. 중요한 부분은 복부(腹部)에 그려진 사애도(四愛圖)이다.

 

보통 사애(四愛)라 함은 「羲之愛鵝」,「淵明愛菊」,「茂叔愛蓮」「浩然愛梅」을 일컫는다. 즉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매화사랑(愛梅)’, 동진(東晉) 때의 서예가(書法家) 왕희지(王羲之;307~365)의‘거위사랑(愛鵝)’, 중국 동진(東晉), 송나라 때의 시인 도연맹(陶淵明;365~427)의 ‘국화사랑(愛菊)’, ·무숙(茂叔) 주렴계(周濂溪;1017∼1073)의 ‘연꽃사랑(愛蓮)’을 묶어서 일컫는 말이다. 명가정청화사애도대관(明嘉靖?花四愛圖大罐)이란 유물에는 이 네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다.

明嘉靖?花四愛圖大罐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부분「淵明愛菊」,「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부분「和靖愛梅」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부분「茂叔愛蓮」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부분「羲之愛

 

당(唐)대의 대표적인 산수시인으로 꼽히며, 왕유(王維)와 더불어 이름을 날렸으므로 왕·맹(王孟)이라 병칭되는 맹호연의 매화사랑은 유별났던 것 같다. ‘답설심매(踏雪尋梅)’로 이름났던 그는 이른 봄 깊은 산 속에 매화가 피면, 파교(?橋)를 건너 탐매를 떠났다. 당나귀를 타고 지필묵(紙筆墨)과 음식, 술을 짊어진 시동(侍童)과 함께 가다가, 매화를 찾으면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였다고 하였다. 이를 모델로 한 그림은 많이 그려졌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정의 작품이 유명하다.

 

심사정의 파교탐매도

 

그런데 다른 사애도(四愛圖)에는 왕희지의 거위 대신 난초(羲之 喜愛 蘭花)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또‘매화사랑(愛梅)’의 주인공이 맹호연이 아니라 임화정(林浦, Lin Bu;967~1028)으로 바뀌기도 한다. 임화정은 평생 결혼하지 아니하고(不娶無子) 벼슬도 하지 않았다. 시를 읊고 글을 지으며(吟詩作書), 매화나무를 심고 학을 기르며(植梅放鶴) 살았기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렸다. 사후 "화정(和靖) 선생"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임화정(林和靖)이라 불리게 된 분이다. 맹호연과 임화정은 벼슬을 멀리하고 평생을 은유하며 시를 읊조리고 살았던 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퇴계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선비들이 임포를 기리며 그의 시(詩)‘산림소매(山林小梅)’에 있는 ‘소영횡사(疎影橫斜)’와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는 시어(詩語)를 즐겨 인용하였다. <암향(暗香)>과 <소영(疏影)>이라는 시어(詩語)는 매화를 음영한 모든 시인들에게 회자된 천하의 명구(名句)가 되었다.

 

 

대명만력년제(大明萬歷年制)라는 관(款)이 찍혀있는 명만력청화사애도매병(明萬歷靑花四愛圖梅甁)는 '국화를 사랑한 도연명', '매화를 사랑한 임화정', '연꽃을 사랑한 주돈이', '거문고를 사랑한 백아(伯牙)'이다. 백아는 종자기와 함께 지기지우(知己之友)를 일컫는 사람의 이름이다. 왕희지의‘거위사랑’이 빠지고 백아의 거문고를 사랑이 들어간 셈이다. 이 병의 사애도 구성은 고사(高士)-도연명?임화정?주돈이?백아- 뒤에 각 한 명의 시동이 있으며, 강?산?다리?고목 등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明萬歷靑花四愛圖梅甁("大明萬歷年制"款)

사애도(四愛圖)는 매병이 아닌 다른 기종(器種)에서도 간혹 등장한다. 청화금지개광사애도필삽(?花錦地開光四愛圖筆?)이라는 유물이다. 붓을 꼽는 용도로 직경이 15cm에 불과한 유물인데 도연명 애국,주돈이 애련,임화정 애매 등 사애도(陶淵明 愛菊,周敦? 愛蓮,林和靖 愛梅 等 四愛圖)가 그려져 있다. 2011-11-15 경매에서 ?575,000, 즉 1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花錦地開光四愛圖筆?

 

 

아래는 주동(朱棟)의 묘 출토 청화사애도매병(靑花四愛圖梅甁)

 백두백과(http://baike.baidu.com/view/2150610.htm)에서 소개한 글이다.

 

 

元?花四愛圖梅?

 

求助編輯百科名片武漢博物館館藏國家一級文物元?花“四愛圖”梅?,是罕見的經考古發掘出土的元?花精品。?是?靖王妃郭氏珍愛之物,見證了這位王妃?夫殉情的?婉故事。據記載?王去世後,郭氏對鏡梳?後自盡,與夫君合葬,生前珍愛的四愛圖梅?成?其陪葬品。該器物?江西景德?窯燒造,器型豪放,胎體厚重,?料濃郁,所繪圖案構圖嚴謹,題材獨特,?工細?,優雅精緻,代表了我國?花工藝在元代已達到相當高的水平。

 

名稱:元?花四愛圖梅?

類別:瓷器、?花瓷、元?花瓷

文物原屬:湖北省鍾祥市明代?靖王墓陪葬品

文物現狀:2006年出土,現藏湖北省博物館,國家一級文物。

 

文物簡介

高38.7厘米,口徑6.4厘米,底徑13厘米。?身肩部飾鳳穿牡丹,腹部飾?花“四愛圖”,?王羲之愛蘭,陶淵明愛菊,周敦?愛蓮,林和靖愛梅鶴;足部飾仰覆蓮紋。三層紋樣以卷草紋、錦帶紋?界。白釉泛?,色彩?翠?麗,是罕見的經科學發掘出土的元?花精品。元?花四愛圖梅?因此被湖北省博物館譽??館之寶。

 

藏品構造

梅?通體繪?花紋飾,分三組,肩部飾鳳穿牡丹紋。腹下部繪仰覆蓮紋和忍冬紋一周。腹部主題紋飾?四個菱形開光,分別繪有中國古代四位高士閒情逸致、恬靜自然的場景。其故事取材高雅,?東晉著名書法家王羲之喜愛蘭花,蘭花?傳統寓言紋飾,古人以幽谷蘭花?隱逸之君子;宋代著名理學家周敦?酷愛蓮花,蓮花紋飾以像徵身居高位,廉潔奉公,運用蓮與廉同音,意蘊“一品?廉”之意;人稱“梅妻鶴子”的北宋著名詩人林和靖一生未婚,癡愛梅花的高雅和白鶴的飄逸;東晉著名詩人陶淵明深愛菊花的傲霜品性,淡泊名利,嚮往美好的田園生活。

 

器物鑑賞

該?花陪?的景物結合主題,四組?面情景交融,造型秀美,線條流暢,色澤濃?,可謂元代?花瓷中極其罕見的精品。在?花瓷器中,元代?花反映人物圖案的器物存世較?稀少,有如此精美的四愛人物圖案的元?花梅?更?罕見。這件元?花“四愛圖”梅?,?了解元代?花瓷製造工藝及人物圖案紋飾提供了十分重要的實物資料。(1. 元?花“四??”梅? .??? .2010 )

 

市場價?

元?花瓷質地優良,花卉、走獸、?劇故事、人物等皆躍然瓷上,漂亮悅目。其製作精美而傳世極少,故而十分珍貴。在2005年7月英國倫敦?辦的一次拍賣會上,一件名?“鬼穀子下山”的中國元?花罐拍出了折合人民幣2.3億元的天價,至今還讓業內津津樂道。這件元?花“四愛圖”梅??傳世珍品,上世紀八十年代購自民間,被國家文物鑑定委員會專家鑑定?國寶級文物,已收錄入《中國文物精華大辭典》,可以稱得上是武漢博物館的?館之寶。

 

文化背景

 

四愛圖

林和靖愛梅、鶴:林和靖(967??1028)名逋,字君復,寧波奉化人(一稱錢塘人)。北宋著名詩人,“和靖”是宋仁宗賜的縊號。他隱居於杭州西湖,以植梅養鶴?樂,人稱“梅妻鶴子”。其“疏影橫斜水?淺,暗香浮動月黃昏”的詩句,被譽?千古詠梅?唱。

 

周敦?、愛蓮:周敦?(1017??1073),字茂叔,道州營道縣(今湖南道縣)人,宋代著名理學家。周敦?愛蓮,其《愛蓮說》中膾炙人口的名篇“出?泥而不染,濯?漣而不妖”。

王羲之愛蘭:王羲之(303??361),字逸少,瑯?臨淅人(今山東臨淅),東晉著名書法家,史稱“書聖”。所作《蘭亭集亭》被後世推?“天下第一行書”。相傳王羲之喜愛蘭花。

陶淵明愛菊:陶淵明(365??427),名潛,字亮,洵陽柴桑人(今九江市),東晉著名詩人。陶淵明喜愛菊花,其詠菊名句“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千古流傳。

 

梅?

梅?,作?一種具有儲酒實用、陳設裝飾及明器陪葬等多用途的器物,從唐代開始出現時已受人們喜愛,宋代時已?流行,元明時期隨著?花瓷器的成熟而日趨風行。其造型各時期略不同,但大致不離短頸小口,?肩圓腹,斂腰窄脛等基本特徵。宋代時因體形細長而稱“經?”,

“梅?”之稱謂??方始出現。因口小與梅枝瘦小形態相似,僅能容一小枝梅花而得名。?人許之衡《?流齋說瓷》稱“梅?,口細而項短,肩極寬博,至脛稍狹,折於足則微?,口徑之小僅與梅之瘦骨相稱,故名曰梅?也。”(靖江藩王?粹??桂林出土明代梅?展?明文 )

《文物藏品定級標準》(文化部2001年第19號令)規定:文物藏品分?珍貴文物和一般文物。珍貴文物分?一、二、三級。具有特別重要歷史、藝術、科學價?的代表性文物?一級文物;具有重要歷史、藝術、科學價?的? 二級文物;具有比較重要歷史、藝術、科學價?的? 三級文物。具有一定歷史、藝術、科學價?的?一般文物。

 

http://big5.xinhuanet.com/gate/big5/www.hb.xinhuanet.com/cwh/2012-02/23/content_24765931.htm에 나오는 기사도 참조할 만 하다.

 

龍年“龍日”國寶庫中尋龍跡

 

상략.

與“國寶”四愛梅?齊名

 

龍?見證帝王?美愛情

 

 

在省博綜合館二樓,元代?花瓷極品“四愛圖”梅?,成?遊人和藏家最喜愛的文物,?與曾侯乙編鐘, 越王勾踐劍等被譽?四大“?館之寶”.

 

其實,緊?著“四愛圖”梅?,還陳列著?一件寶貝??龍紋梅?,只是參觀者對?的來歷知之甚少. 梅?腹部描繪有四爪龍紋,龍的外形十分威猛,好像剛剛躍出水面,在空中騰飛舞動,頗具動感. “這兩個?花梅?,都是2006年出土于鐘祥市的一座明代墓葬??鐘祥?靖王墓中. ”萬館長說,這兩個?花梅?的背後,還有一段鮮?人知的愛情故事.

 

?靖王朱棟,是明太祖朱元璋的第二十三個兒子. 他3歲時被封??王,20歲到?州(鐘祥古名)做藩王. 明永樂十二年冬,27歲的朱棟突然身患重病,不久病逝,留下王妃郭氏和四個女兒. 王妃郭氏?明朝開國元勳郭英之女,在?靖王病逝一個多月後悲痛自盡,隨夫而去.

 

?靖王陵墓實?朱棟與王妃郭氏的合葬墓,在?靖王棺木和王妃棺木前端棺床下方,分別放置有?花龍紋梅?和?花四愛圖梅?. 龍王梅?以龍紋?裝飾圖案,是帝王象徵的專屬品,而王妃郭氏的?花四愛圖梅?則極富生活情趣,是一件極?珍貴的古代藝術?寶.

 

萬館長稱,龍?上的龍紋?法,是典型的元代龍紋,元代的龍紋最好,非常矯健有力,?的爪子像車輪似的,?鋼爪一樣,身軀比較瘦弱. 而龍紋是皇家專用的圖案,這個龍紋梅?體現出?靖王高貴的身?和地位.

하략

 

(責任編輯 余?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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