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2) 全國의 風景돌아보기, 全北 茂朱 德裕山 (下: 白巖峰~頂上~九川洞)
(33) 白巖峰(△1,503m) -全北 茂朱郡 雪川面~慶南 居昌郡 北上面.
松溪寺삼거리인 白巖峰은 북쪽으로는 德裕山脈이 이어져 德裕山 最高峰인 香積峰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白頭大幹을 따라 빼재를 거쳐 珉周之山의 三道峰에 이르는 삼거리이다. (*裕: 넉넉할 유 *珉: 옥돌 민)
(34) 白巖峰삼거리, 일명 松溪寺삼거리
(35) 白巖峰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中峰-香積峰
(36) 中峰 南斜面의 德裕平田
山竹이나 진달래 같은 키가 작은 灌木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灌: 물댈 관)
*平田: 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37) 德裕平田과 中峰으로 올라가는 길
(38) 德裕平田의 山竹
(39) 中峰(△1594m) 頂上
(40) 九千洞朱木群叢과 뒤에 보이는 香積峰
*九千洞朱木群叢 -전라북도기념물 제2호 -茂朱郡 雪川面 三公里
朱木은 높은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로, 껍질은 潤氣가 흐르는 赤褐色이며 짙푸른 綠色잎이 촘촘하게 달리고
꽃은 암수가 한 나무에 달려 4월에 피며, 8·9월에 빨간색의 열매가 익는다. 옮겨심기 편리하며 흔히 觀賞用으로도
재배한다. 九千洞朱木群叢은 德裕山 香積峰 8부능선에서부터 頂上에 이르기까지 樹齡 약 300∼500年生의 朱木
1,000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香積峰에만 있는 나무라고 ‘香木’ 또는 ‘積木’이라고도 부른다.
朱木은 살아서 千年, 죽어서 千年이라고 할 만큼 최고의 목재로 알려져 많은 自生地가 파괴되었다. 茂朱의
九千洞朱木群叢은 전국에서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 朱木自生地로 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叢: 모일 총)
(41) 朱木 枯死木. 죽어서도 千年은 버틴다는데….
(42) 살아있는 朱木
(43) 싱싱한 朱木
(44) 살아있는 朱木과 枯死木의 共生
(45) 香積峰대피소
德裕山 香積峰 100m아래에 있다.
(46) 香積峰대피소에서 보이는 안테나
(47) 德裕山 最高峰 香積峰(△1,614m)
‘北德裕山’이라고도 하는 德裕山의 정상 香積峰은 朝鮮中期의 文臣 葛川 任薰의 <香積峰記>에 ‘옛날 德裕山
最上峰에 향나무가 숲을 이루어 香積峰이라고 했다’는데 숲을 이루었다던 향나무는 다 어디로 갔을까?
家具 만드느라고 다 잘라먹었을까? 아니면 朱木을 香木이라고도했기 때문일까? 香積峰은 茂朱九千洞 33景中
제33景이다. 土曜日이라 山行客이 붐비는데 많은 사람들이 雪川峰에 있는 곤돌라를 이용한다.
(48) [덕유산 향적봉(△1,614m)] 頂上標石
(49) 香積峰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雪川峰(△1,520m)
雪川峰~茂朱郡 雪川面 深谷里 茂朱리조트間에는 곤돌라와 스키리프트를 운행하고 있다.
白蓮寺址 – 전라북도기념물 제62호
全北 茂朱郡 雪川面 三公里 德裕山에 있는 寺刹로 大韓佛敎曹溪宗 第17敎區本寺 金山寺의 末寺이다.
白蓮社는 名勝地 茂朱九千洞을 대표하는 寺刹로 新羅 神文王때 白蓮禪師가 隱居하던 곳으로, 白蓮이 솟아 나와
절을 지었다는 說과 興德王 5년(840) 無染國師가 창건했다는 說이 있다. 이 절터에 光武 4년(1900) 茂朱府使
李夏燮이 再建했으며 6·25戰爭때 건물들은 불타 없어졌으나, 景宗 3년(1723)에 鑄造한 白蓮社鐘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지금 건물은 1962년에 新築한 것으로, 주요건물은 大雄殿, 圓通殿, 禪修堂, 聞香軒(寮舍) 등이
있으며 文化財는 梅月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43), 白蓮寺戒壇(전북지방기념물 42),
靜觀堂浮屠(전북유형문화재 102)가 있다. (*蓮: 연꽃 련 *隱: 숨을 은 *染: 물들 염 *鑄: 불릴 주)
(01) 白蓮寺戒壇 -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백련사 뒤쪽에 있는 佛徒들의 戒律儀式을 행하기 위한 金剛戒壇으로, 길이 17m, 너비 5m의 花崗岩質 岩石으로
壇을 쌓아 만들었다. 단 중앙에는 높이 2.1m, 둘레 4m 크기의 石鐘形塔 1基와, 그 앞에 직경 1m, 높이 0.3m의
圓筒形石造物 1기가 있다. 高麗때 九川洞寺를 창건한 大院大都大師의 부도라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 탑의 주변을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일곱 번 이상 돌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02) 白蓮社 가문비나무
德裕山頂上部 가까이에 있는 白蓮寺는 九川洞溪谷에 있는 유일한 寺刹로 주변경치가 매우 秀麗하다.
(03) 白蓮寺 大雄殿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04) 돌 담장 위에 활짝 핀 연산홍 뒤로 보이는 禪修堂(寮舍·事務室).
(05) 禪修堂 앞의 紅丹楓 -단풍나무科의 落葉闊葉 喬木
높이 7~13m로, 단풍나무와 다르게 잎이 봄부터 가을까지 붉은 것이 특징이다. 公害·病蟲害와 추위에 강하고
재배가 쉬워 어느 곳에서나 기를 수 있으며, 습기가 적당한 沙質壤土에서 잘 자란다. (*楓: 단풍 풍 *喬: 높을 교)
*喬木: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라고, 위쪽에서 가지가 퍼지며 높이 2.5m 이상의 나무.
(*교목보다 작은 나무는 灌木이라고 한다.)
(06) 白蓮寺 梵鍾閣
[梵鍾閣]扁額은 一中 金忠顯의 글씨이며, 내부에는 1988년에 鑄造한 梵 鍾 등 法具四物과 한쪽에
[白蓮寺梵鍾佛事施主芳名錄]碑石을 봉안했다.
(07) 白蓮寺 靜觀堂 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光海君 1년(1609)에 건립한 靜觀堂 郭一禪의 僧塔으로, 圓形座臺위에 높이 1.8m,
둘레 2.3m의 石鐘形塔身을 올렸다. 塔身은 다른 僧塔과 달리 相輪部에 寶輪이나
寶珠 같은 장식이 없는 간단한 형태로, 맨 윗부분을 마치 팽이처럼 뾰족하게 다듬었다.
塔身 아래는 [靜觀堂 一禪塔]塔銘이 있고, 臺石에는 ‘萬歷37年建’이라 되어 있어
光海君 元年에 건립한 것을 알 수 있다.
靜觀堂 郭一禪(1533∼1608)은 朝鮮中期 全北地方의 佛敎普及에 큰 영향을 끼친
大禪師로, 忠淸道 連山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에 入山·修道했으며, 末年에는 西山大師의
弟子가 되어 많은 제자를 남겼다.
(08) 梅月堂 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正祖 8년(1784)에 건립한 梅月堂 雪欣法師의 僧塔으로, 직경 1m, 높이 2.8m의 石鐘形塔身相輪部에는 寶輪을
조각하고, 그 윗부분에 乳頭形寶珠를 조각했다. 塔身에는 [梅月堂雪欣之塔]이라는 塔銘이 있고, 그 옆에
‘乾隆甲辰三月甥姪任善行建立’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어 梅月堂의 조카인 任善行이 1784년에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欣: 기쁠 흔 *銘: 새길 명 *隆: 높을 륭 *甥: 생질 생 *姪: 조카 질)
茂朱 九千洞 -德裕山북쪽斜面에서 發源하는 南大川上流의 계곡.
雪川面 小川里에 있는 羅濟通門(新羅와 百濟의 境界關門이었던 石掘門)에서 德裕山 상봉에 이르는 5.6km의 계곡으로, 33景으로 꼽히는 溪谷美가 뛰어나 德裕山國立公園의 중심부를 이룬다. 九折羊腸 九千굽이를 헤아린다는 계곡에 鶴巢臺·秋月潭·水心臺·水鏡·印月潭·淸流洞·九月潭·琴浦灘·淸流溪·九千瀑布 등 羅濟通門을 第1景으로, 德裕山 上峰을 第33景으로 하는 絶景들이 줄을 잇는다. (*折: 꺾을 절 *巢: 새집 소 *潭: 못 담 *琴: 거문고 금 *灘: 여울 탄)
(09) 九千洞溪谷 標石
(10) 九千瀑布 -九千洞 第28景 -茂朱郡 雪川面 長德里
구천폭포는 層巖을 타고 쏟아지는 2段瀑布로, 자연이 창조한 藝術作品이며, 옛날 天上의 仙女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11) 九千洞溪谷의 화장실
三公里賣票所 부근의 화장실로, 특이하게 외부를 着色유리로 막아 무슨 휴게소로 착각할 정도인데
內部도 외부와 마찬가지로 깨끗하다.
(12) 羅濟通門 -九千洞 第1景 - 茂朱郡 雪川面 三公里
(*필름카메라를 쓸 때 가보았으나 사진이 없어 작은 무주군청 사진을 확대해 희미하다.)
茂朱郡 雪川面 所川里에 있는 石窟門으로 높이 3m, 길이 10m의 自然巖을 뚫은 人工터널이며, 옛날
新羅와 百濟의 境界로, 두 나라가 兵站基地로 삼았으며, 韓半島南部의 東西文化가 교류되던 關門이었다.
이렇듯 三國時代~高麗時代까지 風俗과 文物이 달라, 지금도 言語와 風習 등 特色을 지니고 있어
雪川장날에 가보면 사투리만으로 출신지역을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 이 굴이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日帝强占期 때 뚫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6-5-1-3) 全國의 風景돌아보기, 全北 茂朱 德裕山 雪景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