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또 하나의 허망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영국 웨일즈 카티프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웨일즈간의 축구 A매치결과는 새벽에 힘든 잠에서 일어나 시청한 사람들이나 현지에 가서 응원한 사람 모두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전후반 90분동안 졸전끝에 웨일즈와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니 지지 않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불과 며칠전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손흥민과 세계적인 수비수라 칭송받는 김민재 등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늘 축구대표팀의 경기력은 수준이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들이 속한 클럽에서는 날고 기다가 국가대표로 차출되면 죽을 쓰는 경우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적 월클 선수들도 간혹 자국의 대표로 나서면 뭔가 나사가 풀린듯 조합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팀이란 것이 클럽보다 함께 모여 훈련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축구 강국들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월클 선수들은 왜 그들이 월클 선수로 불리는 지를 대부분 잘 증명해 보인다. 바로 해당 국가의 대표팀 감독의 역량때문이다. 유능한 선수들이지만 그냥 경기장에서 뛰라고 하면 전술과 전략이 어긋나게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이 소속된 클럽에서 하던 식으로 경기에 나선다. 구성원들이 전혀 달라졌지만 그들의 축구 스타일은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대로 조합시키고 융화시켜 한팀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역할이요 책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아니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알려진 사실대로 그는 독일의 슈퍼스타출신이다. 1988년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1995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최고 선수를 거쳐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과 바이에른 뮌헨 감독,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경력이 있다. 현역 축구선수로서만 아니라 다양한 축구팀의 감독을 맡아왔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축구선수보다는 축구 감독으로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16강으로 이끈 벤투감독의 후임으로 지난 3월 한국 대표팀을 맡았다. 잘 생긴 외모와 스마트한 체형의 59살 월클 감독에게 한국의 대다수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새롭게 한국 축구팀을 지도해 한국 대표팀의 역량이 더욱 향상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때 그라운드를 호령하던 독일팀 리더인 클리스만 선수를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가 한국 대표팀을 맡고 그동안 벌였던 2무 2패의 부진한 성적을 이번에는 종식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물이 오른 손흥민에 김민재 그리고 최근 유럽으로 이적한 한국의 유능한 젊은 선수들이 가세해 그 기세는 대단한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고 말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략에서도 전술면에서도 그야말로 무색 무취 다시말해 감독이 있으나 마나한 상태였다. 주장 손흥민에게 그냥 맡겨놓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웨일즈팀이 그다지 약체도 아니고 그래도 축구 종주국의 일원인데 한국팀이 만만하게 볼 팀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경기장안에서 선수들을 리더하는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어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냥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편안하게 보는 관객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무엇하러 경기장에 왔는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 경기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클린스만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그가 벌인 행보는 질타를 받아도 마땅했다. 그는 특정 국가의 대표팀 감독임을 잊고 사는 듯 했다. 물론 특정국가 대표팀 감독이라고 그 특정국가에 상주하라는 법은 없다.개인적인 용무나 집안일때문에 출국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그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서 보인 여러 모습은 실망을 넘어 한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특정국가의 대표팀 감독은 특정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나타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그 나라의 선수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유능하고 키워야 할 재목이 있으면 불원천리하면서 십고초려하면서도 그런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간혹 돌아오는 A매치때 경기장에서 서 있고 시간이 되면 연봉을 타가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그동안 행한 행보는 과연 이사람이 특정국가 대표팀 감독인지 아니면 국제 축구 비지니스맨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혹자는 이 감독이 현재 자신의 팀 선수들 이름이라도 다 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한다. 자신 스스로 스타여서 아직도 월클이라는 그 달콤한 명성에 심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축구대표팀의 욕을 클린스만 혼자 먹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그를 선발한 기준과 그의 어떤 점을 높이 샀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클린스만이 한국 대표팀을 맡고 정신상태가 완전히 변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는 원래 스타일이 그랬다. 자유분방하고 외유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특정국가의 감독보다는 월클 스타로 남고 싶은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스타일의 인물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는지 대한축구협회는 밝혀야 한다. 정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지 알았지만 그의 스타성에 기대보려 했던 것이지 대한축구협회는 언급해야 한다. 모르고 선택했다면 그 무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것이고 알고도 선발했다면 무책임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한다.
한국에 있어 축구대표팀이 끼치는 영향력은 정말 지대하다. 한국민들의 정서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축구이다. 물론 다른 인기 스포츠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도 축구에 기대하는 국민들이 많고 그 축구에서 힘든 나날을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그런 면에서 대한축구협회의 역할은 대단하다. 하지만 지금 대한축구협회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냥 재벌가 인물이 협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그 하부구조도 그다지 원활하게 운영되는 것같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 축구의 수준은 예전 1960, 70년도가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여러명 배출되었고 그들은 지금 세계 프로축구계를 주름잡고 있다. 유튜브 등을 보면 수준높은 경기분석 방송이 상당하다. 일부 허접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국민들의 축구 수준은 높아만 가는데 그런 축구 열기와 관심을 잘 콘트롤해야할 대한축구협회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이번 웨일스 경기를 본 뒤 과연 클린스만 감독만 돌맹이에 맞아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가 제역할을 못하면 한국 축구의 앞날은 순탄하지도 발전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2023년 9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