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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유쾌방 이야기 명성황후 민자영에대한 진실.real
잇힝~★ 추천 3 조회 16,012 14.05.25 19:11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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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05.25 19:23

    저때는 국사교과서에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비라고 되어 있었는데 제 국사 선생님은 그래도 나라의 황후를 낮춰부르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명성황후가 맞는 표현이라고 해 주셨어요...그리고 얼마후에 교과서 개정으로 명성황후로 표기되었죠...저도 나중에야 진실을 알고..허거덕 했죠..

  • 14.05.25 20:36

    광무개혁 후 황후로 추존되었으니 명칭은 명성황후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 14.05.25 20:43

    @알 파치노 밑에분이 잘 써주심....'비' 가아니라 ~ 명성황후 민씨....다른 예로도..인현황후를 중전 여흥 민씨 라고 하지 않아요??(동이에서^^;;;;;ㅋ) 기타등등....뭐... 제 국사 선생님은 비하표현이라고 싫어라 하셨지만요...
    뭐..... 어떻든 너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것 같아서 쫌....거시기 하더라고요...ㅜㅜ(그건 쫌 많이....) 행실이 어떻튼.....

  • 14.05.25 19:23

    드라마와 영화가 역사 망쳐놓은 대표적인 케이스죠;;

  • 14.05.26 15:31

    44444444444444반성하고 있습니다....

  • 14.05.25 19:27

    제목을 '진실' 로 넣어야 할까요? 유머글에 진지해서 죄송하지만..ㅠㅠ이것도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의 일부이고 다른 평가도 존재하는데 이것만 참트루라는건...

  • 저기 사진 명성황후가 아니라 이승만이 저서에 명성황후의 사진이다라고 올려놓은 사진이지 정말 명성황후의 사진이라고 확정난 것은 없고 다만 유력한 것들중 하나일 뿐이라고 배웠던듯한.. 한국사 배운지가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나네요ㅜㅜ틀린점은 지적해주세요

  • 작성자 14.05.25 19:56

    오오 엄청 디테일하게 아시네요...수정하겠습니다!

  • @잇힝~★ 앗..잠시만요 지금 찾아보니까 정식 명칭은 명성황후 민씨가 맞다고 해요
    1983년 이후, 공식명칭인 '명성왕후 민씨'나 '명성황후 민씨'가 올바른 호칭으로, '성+비'로 된 '민비'는 공식명칭이 아니니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학계와 대한민국 정부에서 결론을 내렸다.

    엔하미러내용이라서 쪼끔 그렇긴하지만..

  • 14.05.25 19:51

    중학교때 사회선생님이 "그런 민씨 따위가 드라마니 뭐니 덕에 국모의 이미지를 가져간거나, 초대 대통령이란 이름때문에 국부라 불리는 이승만이나 대한민국의 국민이 얼마나 우매한지 잘 알아야 한다. 그러니 배워라. 좋은 대학과 대기업 입사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배워야 한다. 개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고 싶으면..." 그 말씀이 저의 가치관을 바꿨드랬죠. 덕분에 최소한 개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것 같습니다ㅋㅋ

  • 14.05.25 20:11

    딱히 편드는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그렇게 가신건 진짜...... 일본놈들 다 쓸어버리고싶네

  • 14.05.25 20:27

    저도 고등학생 때 열정적이셨던 국사 선생님 덕분에 국사에 흥미 가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였네요. 폭정을 한 명성황후가 죽은것 보다는 어떻게 죽었느냐가 참 뼈져리는 것 같아요.

  • 14.05.25 20:41

    누구더라 애드워드??선교사였나 공사관이었나 그런사람 결혼 지참금도 어마어마하게 줬다고 그러던디요....그때 나라는 안좋은 상황이었었고요

  • 14.05.25 20:48

    드라마를 잘만들어야 하는 이유죠....십여년후쯤 기황후의 진실 막 이러면서 드라마랑 다르게.사실은 나쁜여자였다고 이런글 올라올거 같네요...왕유는 사실 강아지아이 였다네요 대박.. 막이럼서....씁쓸 ㅡㅡ

  • 14.05.25 21:09

    제가 알기로 황현은 1890년부터 구례 만수산에 칩거해서 1905년까지 한양을 방문한 적이 없거든요. 따라서 을미사변 당시 한양 사람들의 반응을 상세하게 기록하기는 힘들었을 거 같네요.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내용이기 때문에 상세하다거나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겠죠. 내탕금도 마찬가지로 명성황후가 내탕금 다 까먹고 호조에서 쓰는 세금까지 까먹었으면 을미사변 후 고종이 활용했던 내탕금과 왕실자금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몇가지는 사실확인이 더 필요할것 같네요.

  • 작성자 14.05.25 21:27

    오오 지적 감사합니다...사실 저도 1차사료를 해석할만큼 대단한 정도는 아니라서 직접적인 확인은 어렵고 역주본에서 봤던 내용입니다. 내탕금은 제가알기로 조선말기 및 대한제국시절 회계년도에 개념이 명확히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라 내탕금은 저량이 아니라 매년 징세에 귀속되는 유량이라는 개념으로 보시면 될듯합니다. 원하시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 14.05.25 21:13

    죽어도 국민들 손에 죽었어야 했는데...

  • 흥선대원군이 일부러 명성황후 민자영을 들였어요. 친지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큰 세력을 만들지 못할거란 생각을 한거죠. 하지만 명성황후 민자영은 영리한 여인이었어요. 고종은 명석한 민자영을 신뢰하고, 나라에 닥친 큰 일과 외교적인 문제들을 아내와 의논할 정도가 되면서 흥선대원군을 쫓아내다시피 궁에서 몰아내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진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실제와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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