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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1년 백인천 감독님
백인천 감독님의 야구를 일명 '혼의 야구'라고 한다. 정신력을 강조한 야구라는 것이다.
백인천 감독님이 강조하시던 "프로야구선수는 잠을 자면서도 야구꿈만 꾸어야 한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선수들에게 정신무장을 강조하시던 감독님이셨고, 결국,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난데, 우승을 하지 못하는 팀이였던 MBC 청룡의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 LG라는 이름아래, 창단 첫우승을 시켰다.
결과적으로 보면, 백인천 감독님이 엘지에서 한 최대 업적은 감독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팀웍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1992~1996년 이광환 감독님
이광환 감독님은 LG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감독님이다. 이 분의 야구는 대외적으로는 '자율야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선수들 개개인이 경기를 이해하고, 코치의 지시가 있더라도, 선수가 판단해서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선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선수단 중심의 야구이다.
그리고, 당시로써는 혁명적이었던 철처한 5인 선발시스템과 6,7회를 막는 릴리프와 8회를 막는 셋업맨, 그리고 오로지 9회만 등판하는 클로저의 개념을 정착시켜 투수왕국 엘지를 건설했던 선구자적인 야구를 하셨던 분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광환 감독님은 행운이 따르는 분이었지도 모른다. 백인천 감독님이 완성한 팀웍을 바탕으로 그 위에 자율야구, 시스템야구를 정착시켰고, 92년 93년을 거치며 자율야구에 헤이해진 팀의 기강을 잡아줄 한대화라는 고참선수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모든 조건이 갖추어 졌다고 해도, 화룡정점을 찍은 것은 누가 뭐래도 이광환 감독님일 것이다.
1996~1999년 천보성 감독님
96년 팀성적의 부진을 이유로 자진사퇴하신 이광환감독님의 후임으로 1996년 감독대행을 거쳐 1997년부터 정식감독으로 부임한 천보성 감독님은 97~98 2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룬 LG전성기의 마지막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분의 야구지론은 '한발 더 뛰는 야구' 였다. 이 시기 LG는 가장 강력한 타력을 보유한 팀이었다. 기존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에 심재학이라는 4번타자의 성장, 이병규라는 천재신인타자 등장, 신국환과 같은 기대하지 않은 선수들이 막 성장하는 시기였다. 이시기의 타격코치였던 김용달 코치는 한국 최고의 타격코치라는 찬사와 함께 현대로 이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막강한 타력의 팀이라는 찬사와는 반대로 신인투수들의 성장이 더디면서, 팀 투수력의 절반 이상을 해주던 차명석-이상훈라인업이 무너지면 대책이 없는 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타력으로 모든것을 보완하던 당시 팀의 컬러상 투수진이 7점 내주면 8~9점 내서 이겼다. 특히 팀의 에이스인 이상훈이 일본으로 진출한 98년엔 김성근 감독님을 연상시키는 벌때 투수운영으로 전력을 극대화시키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성적은 좋았지만, 결국 벌때 투수운영의 한계를 드러내며, 99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한다. 재임기간에 투수력문제로 계속 고민했고, 결국 4번타자 심재학을 투수로 변신시키기도 한 감독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0~2001년 이광은 감독님
61승 70패 1무 승률 0.455(1999년 성적)가 저조한 성적이라고 생각되던 시기에 2000년에 감독으로 부임한 이광은 감독은 엘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감독1호로 유명하다.
전임 천보성 감독님 시절 극강의 타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했던 투수력을 정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감독님이다. 당시 제2의 김용수로 불리며 화려하게 등장한 김민기와 선발 중간 마무리 가리지 않고 전천후 활약하던 장문석등 천보성 감독님 시절에는 볼 수 없던 신예투수들의 등장과 성장에 잠시나마 핑크빛 미래를 꿈꾸겠끔 했던 감독님이다.
하지만 선수단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시기이기도 하다. 레전드 김용수의 마지막 시즌이던 2000년 매직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우동수 트리오를 앞세운 두산에 밀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김용수는 중간계투로 선수생명을 연장하기보다는 은퇴해서 후배들의 길을 터주겠다는 각오로 은퇴한다.
하지만 당시 김용수선수 은퇴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2~3년은 더 던질수 있는 선수가 석연치 않게 은퇴했다."라는 반응이 대부분 이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프런트들의 세대교체열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리더를 잃어버린 투수진은 2001시즌을 앞두고 모든 전문가들이 불안하다는 평을 한다. 그리고 LG 프런트는 투수 육성을 위해, 투수조련의 1인자라고 불리던 김성근 전 쌍방울 감독님을 2군감독으로 모셔와서, 투수진 안정을 꾀하지만, 결국 시즌 시작과 동시에 연패를 거듭한다. 그리고 팀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김성근 2군감독님을 수석코치로 올리는데, 이때도 많은 사람들이 감독보다 한참 연배가 위인 수석코치의 등장에 불안해 했지만, 프런트는 그런것에 신경쓰지 않았고, 결국 35경기 9승 25패 1무라는 처참한 성적을 이유로 이광은 감독님은 중도 사퇴를 한다. 이광은 감독님은 자신의 야구를 펼쳐볼 시간을 가지지 못했으며, 아직 채 감독으로써 준비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프런트의 세대교체 열망에 의해 성급하게 감독으로 추대되었던 감독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은 연세대에서 아주 훌륭한 지도자가 되셨다고 한다.
2001~2002년 김성근 감독님
초반 35경기에서 9승 25패 1무를 기록 했던 팀을 그것도 시즌 초반 감독사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감독대행을 맡은 김성근 감독님은 이후 특유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팀을 회복시켜 나갔다. 그간 유망주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LG는 김성근 감독님의 지도아래 투수력의 팀으로 단기간에 변신했고, 특히 LG의 미륵 신윤호의 등장으로 단단해진 뒷문을 앞세워, 매일 라인업이 당라지는 변칙 타선과 선발투수는 가장 먼저 나오는 릴리프일뿐이라는 신개념의 투수운용으로 이후 98경기에서 49승 42패 7무 승률 0.538이라는 기적과 같은 성적을 만들어 냈으며,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타팀의 찬사를 받는 팀이 되게했다. 그해 신윤호는 최우수구원투수상과 다승왕을 동시에 석권 했으며, 대표팀 발탁이라는 영광까지 누린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님이 대표팀 발탁으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신윤호가 망가질 것이다 라고 한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2002시즌 도중 LG의 에이스 이상훈이 팀에 복귀하면서, 뒷문걱정을 없앤 팀은 기적과 같은 상승세로 페넌트레이스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 현대, 기아등 강팀을 꺽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아쉽게도 삼성의 대포 2방에 한국시리즈를 내주었지만, 야구로 사람에게 감동을 줄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성근 감독님의 부임으로 엘지는 투수진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지만, 선발진이 없는 야구를 해야 했다. 일부 투수들만 연일 등판하며, 팀을 위해 희생했다. 그러나 그 투수진 역시 기존의 투수진이 아닌 김성근 감독님이 직접 성장시킨 투수들이었고,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 그런 투구를 할 수 없을 수도 있었던 투수들 이었다. 그리고 이런 투수진을 받쳐준 최대의 힘은 이병규, 김재현등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타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팀의 지휘봉을 놓게 된다.
2003년 이광환 감독님
팀에는 프랜차이즈 선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감독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LG에는 이광환 감독님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너무 잘못되었다. 성적부진도 아니고, 표면적으로 드러났던 일본인 투수코치영입설도 아니었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가 LG구단이 추구하는 야구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어쨌든 어수선한 시기에 백전노장이자, 팀 스타일에도 딱 맞는 적임자인 이광환 감독님의 취임은 나쁘지만은 않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바로 단장이 교체된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단장은 SK로 옮긴다.
60승 71패 2무 승률 0.458 어수선한 팀 분위기에 비하면 크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성적이다. 더구나 이후 LG는 단한번도 60승을 넘기지 못한다.
어찌됐든 이런 성적을 거두고 리빌딩을 준비하던 백전노장 감독님이 계신데 프런트는 선동렬 감독 쟁탈전에 뛰어든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광환 감독님은 자진해서 2군 감독으로 물러나신다.
후에 알려진 사실은 프런트와의 마찰이다. "고참 선수들을 정리하고, 신진 선수들을 기용해서 키워라"라고 말하는 프런트와 "구단의 뿌리를 잘라낼수 없다"는 이광환 감독님의 마찰이다. 아마 시즌 중 단장 교체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운영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SK로 옯겨간다. 프런트 내부에서도 마찰이 있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감동의 2002년 이후 맞이한 2003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수선했다. 결과론적으로 프런트가 그렇게 강력하게 시도했던 선동렬 감독 영입은 삼성에게 보기 좋게 패한다. 애궂은 프랜차이즈 감독만 내친꼴이 되었다.
2004~2006년 이순철 감독님
역대 최연소 감독이 탄생했다. 그것도 LG에서...
당시 LG는 도저히 최연소 감독에게 팀을 맞길 상황이 아니었다. 누가봐도 감독보다 더 강력했던 프런트와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선수단. 이런상황에서 팀을 추스리기에는 너무 연륜이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2001년 이순철 감독님은 처음 LG에 코치로 왔을때부터 구단주가 찍은 감독감이라고 불리었던 사람이었고, 2003년까지 코치 생활을 할때 까지는 선수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코치였다고 한다. 언제나 선수의 편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1군감독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선수들의 기강을 잡기 시작한다. 선수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선수단을 휘어잡는 방법으로 그렇게 행동했을수는 있으나, 결론적으로 선수단은 더 크게 동요한다.
더구나 기타사건으로 명명된 이상훈 트레이드부터 고관절부상을 딛고 돌아온 LG의 4번타자 김재현의 각서파동, 연봉조정신청 최초의 승리자 유지현의 갑작스런 시즌중 은퇴, 서용빈의 병역파동에 의한 재입대등의 상황은 LG의 뿌리를 완전히 절단시켰다.
이런 상황들을 제외하더라도 경기운용 미숙 및 지나친 히트 앤드 런 작적남발, 모든 판단을 각 코치들에게 일일이 물어서 하는 이순철 감독님은 사실 무엇으로 봐도 아직은 감독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분이었다. 이런 분을 감독으로 임명한 프런트의 크나큰 과오일것이다.
이런 것들 조차도 제외하고 이순철 감독님을 다시 보면 2004~2005 2년연속 팀도루 1위, 엄청난 훈련량만이 남는다. 그러나 2년 연속 팀도루 1위는 주전선수가 아닌 대주자 들로 이루어진 것이며, 단지 빠른팀일 뿐이다 라는 것에서 현재의 육상부 두산과는 전혀 다른 영양가 없는 팀도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엄청난 훈련량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개개인의 목표의식없이 이해없이 하는 훈련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결과물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안좋은 것들만 잔뜩남긴 이순철 감독님은 2006시즌 중반 팬들에의해 쫒겨나가듯 자진사퇴를 한다.
안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떠난 이순철 감독님을 그나마 옹호할 수 있는 것은 작년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이상훈 선수의 인터뷰 내용뿐이다.
"(이순철)감독님이 그렇게 한것이라고 생각 하지는 않아요, 그 윗선에서 지시를 내렸겠죠..."
2006년 양승호 감독님
양승호 감독님은 사실 감독대행이셨다. 그러나 2006년 6월 전임감독의 사퇴로 인해 혼란 팀을 의외로 잘 추스렸다. 이대형의 성의없는 주루 플레이에 과감히 2군행을 지시했고, 내야땅볼때 1루로 전력질주를 하지않은 이병규를 결장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2군 홈런왕 최길성을 과감히 기용하고, 0점대 방어율의 최강 릴리프 우규민은 클로저로 기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6시즌이 끝날 무렵 더이상 LG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던 팬들은 비난을 멈추고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구단은 감독님께 2군감독직을 제의 했지만, 속세를 떠나는 사람처럼 양승호 감독님은 고려대 감독으로 홀연히 떠나셨다.
아무런 미련없이...
2007~2009년 김재박 감독님
또한명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감독이 되어 돌아왔다.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유격수이자, 현대감독으로 한국시리즈를 4번이나 제패했던 명장. 김재박 감독님이다.
그러나 김재박 감독님의 영입때부터 삐그덕 거리던 것이 있었다. 김재박 감독을 명장으로 이끈 3개의 축, 코치진, 프런트, 단장을 온전히 데려오지 못한것이다.
코치진에선 정진호수석코치 김용달타격코치를 데려오는데 성공했지만 현대감독이 되어 잔류한 김시진투수코치를 데려오지 못했다.
프런트에선 우수한 신인을 무한히 공급해주던 김진철 스카우터와 외국인 선수 선발에 탁월했던 염경엽 스카우터를 당장 데려오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재박 감독님의 영원한 후원자이자, 선수단과 격없이 지내는 단장 출신 사장인 김용휘사장 또한 데려오지 못했다. LG그룹이 외부인사를 사장단에 합류시키는 것은 힘들었기에 김용휘 사장을 영입하는 것은 어려웠을 수 있다. 그러나 김시진코치를 영입하지 못한 것은 큰 실수 였다.
김재박감독님에 대한 평가를 본적있는데, 감독님의 장점은 경기를 읽는 눈이 뛰어나다는 것이라고 한다. 지고있는 경기에서도 감독님이 오늘은 추격하겠는데 하면 추격하는 경기가 된다고 한다. 1~2점 차라도 오늘은 힘들겠는데 하면 진짜 힘든 경기를 하는 등 경기를 읽는 눈은 거의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님과 같은 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량이 있고 믿는 선수들에게는 정말 확실하게 기회를 준다고 한다. (LG에서도 김상현에게 잘하든 못하든 거의 1시즌을 통채로 기회를 줘서 성장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선수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잡담을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감독이었다고 한다. 감독은 수석코치에게 수석코치는 타격, 투수코치에게 그리고 타격, 투수코치는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의사소통을 하는 스타일이었고, 특히나 투수진 관리 및 운용은 전적으로 김시진 코치에게 믿고 맞겼는데, LG에서는 투수진 운용을 직접해야했다.
이렇듯 현대에서와의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시작한 김재박감독님은 첫해 희망적인 성적으로 팬들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의 확실한 구분으로 선수단의 체력을 비축하였고, 비효율적으로 엄청났던 훈련량을 선수 개개인에 맞는 맞춤 훈련량으로 개별관리했다. 선수들의 입에서는 "훈련량은 줄었는데, 더 관리받는 느낌이다."라는 얘기가 나왔고, "감독님이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라는 얘기 나왔다.
2007시즌을 5위로 마치며 아쉽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자 선수들을 한목소리로 "감독님께서 믿고 맞겨 주셨는데 너무 죄송하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2008시즌부터 무언가 꼬이기 시작했다. 팀은 하위권에서 올라올 줄 몰랐고, 주전선수들은 하나같이 부상에 신음했다. 승부사 김재박 감독님도 아무것도 아무작전도 펴지 못하고, 최하위로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LG프런트가 대폭교체 되었다. 팬들이 성토하던 프런트들이 전부 물러났고, 소위 김재박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신문에서는 "유니콘이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다." "LG 유니콘스"라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프런트의 물갈이는 결국 팬들의 지지를 다시 한번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거액으로 이진영, 정성훈이라는 거물 FA를 영입했고, '김재박 감독에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라고 선언한 LG의 신임 단장의 각오는 연일 인터넷과 신문을 달궜다.
그러나 또다시 2009시즌 7위로 시즌을 마쳤고, 김재박 감독은 자신이 데려다 놓은 자신의 사단에게 뒷통수를 맞는다. 2009시즌중이던 8월에 이미 두산 2군감독이던 박종훈 감독과 계약얘기를 구두로 맞추었고, 시즌이 끝나자 계약했다. 그리고 그렇게 김재박 감독님도 떠났다. 김재박 감독님 재임중에는 프런트가 나름대로 많은 지원을 했다. 박명환, 이진영, 정성훈과 같은 거물 FA도 영입했고, 현대출신의 프런트도 영입했고, 뒷돈을 주고 급이 다른 외국인 선수도 영입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 이미 뿌리가 절단된 LG였다. 절단된 뿌리는 다시 새로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줄기는 좋은 것들을 사와서 접합할 수 있지만, 뿌리는 접합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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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ㅎ 역시 이모씨는 몰락해가는 엘지에 기름을 부었군요
그분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분이 LG 몰락의 표면적 중심에 있었다는 것만은 지울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동안 야그를 멀리해서 그사람이 금지어인줄도 몰랐는데..작금에 하는 모습을 보니..그럴수밖에 없다고 보여지네요
휴우~~한숨만 나옵니다..
저도 쓰고 나니 한숨만... 휴우~~
헐~~~이 긴 글을 언제 다 적으셨을까나~~생각도 생각이지만 그 생각을 정리하는것도 글코...멋지신 글 잘 읽었습니다^^....암튼 우리 엘지 시점은 뿌리부터 썩고 흔들린다는건데 그럼 어찌 해야 뿌리가 살아날까요? 다시 뽑아내서 뿌리에 약도 치고 벌레도 없애는게 젤 정답이겠죠? 어케 뿌리를 살릴라는지 지켜보는 수 밖엔 우리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이 안타까울뿐이네요....
메모장에 적어서 저장하면서, 다듬고 다듬어서 썼네요... 제가 좋아하는 구단이 어수선하니 회사에서 일도 손업 안잡히고 해서 썼는데... 감사합니다 ㅋ 절단뿌리를 되살리는 방법은 아직 남아있는 가는뿌리들을 잘 보호하고 지키는 방법뿐이죠...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야할 문제네요... 구단에서 노력하면 시간이라는 것이 아마 단축될 듯하고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문제를 알면.....해결책도 나오는 법이라 하니.....더 좋은 트윈스가 될꺼라 믿습니다.....나의 트윈스처럼 말입니다....엘지트윈스가 아닌 나의 트윈스...
그렇죠 우리는 모두 어느순간부터 LG의 팬이 아닌 트윈스의 팬이 되었죠...
한눈에 엘지의 역사를 보는것 같군요...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결국 우리팀의 근본적인 문제는 프런트 였네요. 선수스카웃 잘한다던 현대 프런트를 데리고 왔는데도 이 모양 이라면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프런트 교체 이후 아직은 시간이 부족한가 봅니다. 조금더 기다려보죠... 힘내시구요...
할말이.... 안나오네요... 아마도 박종훈 감독님의 평가가 좋게 남길 바라네요..... 아무튼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보니깐 옛날일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가네요..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할텐데
좋은글 잘봤습니다. 여기서도 보듯이 다 프런트에 잘못이네요 ㅠ.ㅠ
엘지의 역사로 글을 옮기 셔도 좋을거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너무 공감이 가네요 ㅠ 양승호 감독님은 고대에서 명장으로 추대 받고 계시는데 기대 됩니다. 고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