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저를 도구로 써주소서! / 남기업
발행일2020-10-18 [제3215호, 3면]
매년 새해가 되면 본당 중고등부 학생회에서 ‘폴라리스의 밤’이라는 공연을 개최했다. 어느 날 우연히 잘 활용하지 않는 공간인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하는 청소년들을 보게 됐다.
추위와 먼지 속에서 율동 연습을 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고민 끝에 형제님들과 뜻을 모아 대청소를 하고, 벽엔 페인트칠을 했다. 기왕 일을 벌인 김에 장판까지 깔기로 하고 도배업을 하는 자매님에게 부탁해 헌 장판을 구해왔다. 헌 장판을 퍼즐 조각처럼 맞추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건축업에 종사하는 형제님이 데코타일을 제공해 주겠다 하였고, 타일공사까지 마무리해 주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을 마쳤다.
벽과 바닥 공사가 끝나자 천장 조명은 전기업에 종사하시는 형제님이 도와주었고, 바닥 온돌은 또 다른 형제님이 보일러를 기부해 공사를 마쳤다. 교리와 회합을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도 기증받았다. 본당 경비를 한 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완성된 공간에 학생들이 지속해서 머물며 즐길 수 있으려면 그들 눈높이에 맞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다. 오디오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학생과 교사들 의견을 받아 와이파이와 빔프로젝터, 블루투스 등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 음악 감상은 물론 영화 관람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 또한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형제님의 기증과 설치로 이루어졌고, 율동 연습에 필요한 대형거울 및 에어컨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청소년을 위한 최첨단 시설을 갖춘 완벽한 다기능 공간이 여러 형제님, 자매님 도움으로 탄생했다.
또한 본당의 청소년 활동을 위한 지원은 미비할 수밖에 없어 청소년 활성화를 위한 일일 호프를 몇 번 개최했는데, 할 때마다 생맥주를 기증해주시는 분, 판매 물품을 기증해주시는 분, 무료공연을 해주시는 분, 협찬금을 주시는 분 등 말 그대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처음엔 청소년위원장으로서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뿐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일은 “너희가 원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요한 15,7)”이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해주신 것이었다. 이를 알아차린 순간 손에 땀이 차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봉사직을 맡아 할 당시에는 어렵고 귀찮고 힘든 일이라 틈만 나면 그만두려고 하였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결국 내가 하고자 해서 된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활용하신 커다란 은총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주님! 저를 도구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남기업(바오로) (제2대리구 본오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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