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가 놓치기 쉬운 점 ..
수행하는 사람 정진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고,또 가장 잘 빠지기 쉬운 마(魔)이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그리 살고 있는
꼭 짚어두고 싶은 주의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도 초심자들이, 처음 막 신심내어 마음공부 하려는 사람들이 잘 하고 있는 점이면서,
조금 공부한 사람들 공부했다는 상이 많은 사람들,
또 수행이라는 겉치레에 잔뜩 빠져 든 사람들이 항상 여기에 걸리고 빠지게 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모르긴 해도 처음에 초심자 때는 잘 실천하다가 조금 공부했다 싶으면서 다시금 놓치게 되고, 또다시 공부가 참으로 여물게 되면서 조금씩 다시금 되짚게 되는 점이기도 하겠네요.
무슨 얘기를 이렇게 궁금하게 하느냐고요?
예... ‘나’는 아니겠지 하고 덮어두지 마시고
나의 행이 그렇지 않는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참 순수하고 맑은 신심이 있습니다.
작은 가르침에도 깊이 감동하고, 부처님과 가르침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느끼고, 부처님 전에 공양 하나 올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고, 절에 가서 법문 듣기 위해, 또 수행에 동참하기 위해 온갖 정성스런 마음을 다하곤 합니다.
집에서도 몇 일씩 날짜를 정해두고 정진도 하고, 새벽예불이며 기도를 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도 염불이며 독경을 꾸준히 하고,
책도 사서 보고, 법문도 찾아다니며 듣고, 그야말로 공부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고 정성스러우며 순수한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공부를 조금씩 하다 보면 나태한 마음도 생기게 되고, 뭐 이런 것 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염불하고 절 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도 들고,
법문을 들어도 그 법문을 내 잣대로 분별하고,
부처님과 가르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정성스레 공양하고픈 마음도 사그라 들고,
내 안에 부처님 있는데 꼭 절에 찾아가서 부처님께 공양 올릴 필요 있나 싶기도 하고,기도하는 마음도 정성스러움이 사라져 타성에 젖은 습관이 되기도 하고,
염불, 절, 독경 같은 것은 다 방편이고 필요 없는 거라고 하면서 염불하고 절하는 신도들에게는 ‘나도 옛날에는 저랬지’ 하면서 한 수준 아래라고 깔보는 마음도 생기고, ...
혹은 참선 조금 배워 가지고오래 앉아 있음을 자랑삼아 이야기 하면서 염불하고 절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다른 수행 안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수행하는 사람이니 너희들과는 다르다’ 하며 상대를 얕보고 깔보면서 ‘나 잘난’ 마음을 키워가고,
근본법에 대해 자꾸 많이 듣다 보니 방편법을 무시하게 되면서, 일배가 삼천배인데 뭐하러 절하냐고 하지를 않나, 가족에게 공양하면 되지 절에 부처님께 뭐하러 공양하냐고도 하고, 3000배 절하는 것 보다 한 시간 앉아 있는게 낫다고도 하고, 늘 관하고 살면 되지 무슨 기도가 필요하냐고 하질 않나,
선악이 따로 없다면서 악행과 막행을 서슴지 않고, 걸림없이 살아야 한다면서
제 멋대로 남들 피해를 주고, 절에 가서 스님들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수행을 많이 했는지 요목조목 따져가며 분별하고,
오히려 스님들 앞에서는 자기 수행 잘하는 것 자랑하려 하고,
참...
말 하려면 그 폐해가 한도 끝도 없지요.
그렇듯 수행한다는 아상만 자꾸 커지고, 정성스런 마음, 진지한 마음, 맑은 신심이 자꾸 나약해지고,
방편은 저버리고 알음알이로 배운 근본법만 나열하면서 공부 많이 한 사람 행세를 하고, 또 대접 받으려고 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까지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누구나 이런 마음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법 운운하려면 어디까지나 근본자리에 계합이 되어 제 성품자리 확연히 깨친 뒤에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냥 그렇다고 알음알이로 배우고 나서제가 깨친 줄 알고,또 그렇게 해야 더 도가 높은 줄 알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말로써 큰 도인이고, 대단한 수행자고 말로써 그러는 사람은 그냥 말 잘하는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은 될 지언정 수행하는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겠어요?
우리가 수행하면서, 마음 공부 열심히 하면서, 어디까지나 초발심 때의 그 겸손과 하심 그리고 순수한 믿음과 정성스런 공양 기도의 마음을 놓치만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이란 마음이 나온거 아니겠어요?
작은 예로 조금 공부 한 사람들은 절에 올 때도 부처님께 공양도 않하고, 공경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그래 놓고, 이웃에게 살아있는 부처들에게 공양하는게 더 낫지가만 앉아있는 부처님께 공양할 필요 있겠냐고알음알이로 배운 지식 가지고 꾀나 그럴싸 하게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정말이지 그런 말을 할 만큼의 실천력과 수행력또 깨달음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꽃이며, 떡, 쌀, 그도 아니면 무엇이 되었든 양이나 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담아 얼마나 정성스레 공양올렸어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올리고 말고가 아니고
그런 정성스런 마음이 법계를 감동시키고,
그런 정성스런 공양이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수행 할 수 있는 힘으로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요즘도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그러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큰스님들께서는 부처님과 가르침을 얼마나 정성스레 모시고 공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지 모릅니다.
요즘 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없어졌어요.
기도의 본질이 ‘감사’입니다.
이 우주 법계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하늘과 땅과 풀이며 대지에 감사하고, 우리 모든 이웃들에게 감사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이 기도의 본질이고 바로 그러한 감사의 마음, 정성스런 마음이 모든 수행의 깊은 뿌리가 되고 불성을 일깨우는 순수한 깨우침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공양 올리려는 마음도 나오고, 온갖 정성을 쏟으려는 마음도 나오고, 이 감사한 은혜를 갚겠다는 회향과 보시의 마음도 나오며,
이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고 부처님으로 보는 따뜻한 마음도 나오고, 나아가 수행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큰 정진심이 일어나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