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과 솜이불/강미숙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다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여 식탁 한 가득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장미꽃과 안개꽃을 꽃병에 가득 꽂아 자축했다
이십 삼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늘 행복했던 기억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지내온 날들과 못난 나를 데리고 살아준 남편이 참 고마웠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첫날밤엔 친정어머니가 병풍을 둘러 주어야 한다는 같은 학교 선배교사의 말을 듣고
나는 예단 준비를 해 주실 여력조차 없었던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수예점 언니에게 병풍을 예약 했었다
그런데 막상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신접살림살이를 꼼꼼하게 챙겨두지 않은 터라 정신없던 나는 전화 한 통으로
병풍 구입을 취소했고 수예점 언니는 단단히 화가 나서 경미한 악담을 널어놓았다.
그 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앞만 보고 사느라 한 번도 수예점을 찾아가지 않다가
이제야 새처럼 작은 둥지를 틀어 놓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전화번호와 언니의 목소리가 그대로였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언니는 그때 나의 사정을 늦게야 알게 되었지만
언니 역시 바삐 사느라 나에게 마음 아프게 말했던 일을 사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오늘 오후에 수예점에 꼭 오라고 했다
일과를 마치고 언니에게 갔더니 두툼한 이불을 하나 주었다
솜을 많이 넣어서 부피가 큰 꽃무늬 이불 이었다
‘난 주문 한 적이 없는데’
속으로 걱정을 하며 가격을 물어보니 그냥 가져 가라고 했다
“ 너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시장에 나오시면 늘 병풍이야기를 하셨단다.
집안사정이 한참 어려울 때 네가 결혼을 해서 다른 집 딸처럼 해 주지 못했다고 마음 아파 하셨어
그리고 네가 병풍을 취소한 후에 나에게 미안하다며 많은 손님을 소개시켜 주셨단다.
그러니 이건 내가 축의금을 늦게 준다 생각하고 가져가서 덮어
이렇게 예쁘게 살고 있는 걸 보니 내 마음이 흐뭇해서 주는 거야“
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이불을 건네주며 다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위에 솜이불을 깔았다
어긋난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꼭 맺어지는가
지난날의 가난했던 병풍이
오늘 이렇게 어머니의 살 냄새 베인
솜 이불로 돌아왔으니
긴 겨울 내내
나의 시린 밤을 도담 도담 재워줄것이다
오늘은 잠이 참 잘 올 것 같다
친정어머니의 따스한 손이 온 방을 쓰다듬는 밤
샛바람이 창문 틈에서 시샘을 하며 웅 웅 댄다
첫댓글 이불 하나가 주는 따스함이 읽는 마음에도 온기를 주는듯 합니다.
부실한 글 솜씨를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인과의 거북했던 일이 친정어머니 덕에 오래 기억에 남을 미담으로 마무리되었군요. 사심없는 지은이의 마음에 공감하며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단풍의 노래님 요즘 자주 와 주시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