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西 戎 易 伐 (서융(西戎)은 치기가 쉽다) [3편]
2021년 04월 03일
○ 세 번째 이야기는, ‘서융(西戎)=서호(西胡)=서로(西虜)’에 관한 것인데, 글자만 봐도 반도(半島) 땅에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요, 해당사항(該當事項)이 없는 글자다.
『반도(半島) 조선왕조(朝鮮王朝)!』 이 땅의 역사(歷史)라고 이야기하는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는, 4∼5살의 유치원(幼稚園) 원아(園兒)가 20∼25살이 된 성인(成人)의 옷을 걸친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반도(半島) 땅의 지세(地勢)를 살펴보면 : 『외침(外侵)을 당했을 때, 침략자(侵略者)들은, 북(北)쪽에서 남하(南下)하거나, 수륙(水陸)군을 동원(動員)해 동해(東海)바다를 건너, 반도(半島) 땅의 서해안(西海岸)에 상륙(上陸)해야만 한다.』
이런 ‘반도(半島)’라는 특이(特異)한 지세(地勢)는, 수십만(數十萬)년, 수백(數百)만년(萬年) 전, 그 이전(以前), 골격(骨格)이 형성(形成)되었을 것으로 판단(判斷)이 된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어떠한 경우(境遇)라고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言及)한 외(外)의 다른 경우(境遇)로 반도(半島) 땅에 쳐들어온다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다.
단 수만(數萬)의 ‘낙하산(落下傘) 군단(軍團)’이 대형(大形) 수송기(輸送機)로부터 낙하(落下)하는 공중(空中)침투(浸透)는 예외(例外)다.
○ 여기서… …압록강(鴨綠江)을 두고, 하늘이 조선(朝鮮)에게 내려준 ‘천혜(天惠)의 해자(垓子) 또는 성호(城壕)’라고 하였고, 이를 통해 ‘화이(華夷)를 나누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옛 기록(記錄)에 따르면, 오늘날의 압록강(鴨綠江) 이북(以北)은 “화(華)=중화(中華)=중국(中國)”이고, 그 남(南)쪽의 조선(朝鮮)은 “이(夷)=동이(東夷)”가 될 수밖에 없는데, 역설적(逆說的)으로 남(南)쪽이 중화(中華)요, 중국(中國)이며, 북(北)쪽은 이(夷)로, 북적(北狄)이 될 수 있는가?
◆ 그런데 왜 조선(朝鮮)에서는 압록강(鴨綠江) 이북(以北)에 살고 있는 “화(華)=중화(中華)”를 야인(野人)이라고 하고, “되놈(胡)”이니 “오랑캐(胡)”니 하여, 가장 ‘비천(鄙淺)=비천(卑賤)’한 말로 비하(卑下)하고 깔보았을까?
또 그들을 조정(朝廷)에서는 신하(臣下)처럼, 속국(屬國)처럼, 야만족(野蠻族)으로 인간(人間)무리 외의 금수(禽獸)처럼 함부로 대했을까? 감히 ‘화(華)=중화(中華)의 당사자(當事者)’를 말이다. 그러면 “사대(事大)”는 무엇이냐? 이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반도(半島) 땅에서는 “서호(西胡)”라는 존재(存在) 자체(自體)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서(西)쪽은 서해(西海)바다가 펼쳐져 있고, 바다(西海)를 건너면 ‘화(華)의 당사자(當事者)’인 ‘중화(中華) 곧 중국(中國)’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사대(事大)의 당사자(當事者)였던 천자(天子)=황제(皇帝)의 나라인 “중국(中國)”이 있었기 때문이다.
◆ 역설적(逆說的)이지만,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 “서호(西胡)”라는 말을 사용(使用)했다면, 그 조선(朝鮮)은,‘중국(中國)=중화(中華)=화(華)였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서호(西胡)”는 서(西)쪽에 살고 있는 야만족(野蠻族) 되놈인 “호(胡)”이기 때문이다. 즉 서이(西夷)니 서융(西戎)이니 하는 바로 그 자(者)들이다.
‘중국(中國)=중화(中華)=화(華)’는, ‘서호(西胡)=서이(西夷)=서융(西戎)=서(西)쪽 되놈=야만족(野蠻族)’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속에는, 이러한 「서호(西胡) 또는 서로(西虜)를 토벌(討伐)해야 한다.」는 왕명(王命)이 있었다. 반도조선왕조(半島朝鮮王朝)에서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 朝鮮王朝實錄 成宗 22년 신해(1491, 홍치 4) 4월 28일(계유)/ 북방 정벌에 반대하는 대사헌 신종호 등의 상소문
《司憲府大司憲申從濩等上疏,略曰:先王之馭四夷也,有不貢則修名,有不王則修德,其愼重也如此. :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신종호(申從濩)등이 상소(上疏)하였는데, 대략(略)에 이르기를 : “선왕(先王)이 사이(四夷)를 부리면서(다스리면서) 공물[貢]을 바치지 않으면 명분을 닦고, 왕(王)으로 여기지 아니하면, 문덕(文德)을 닦는다 하였으니, 그 신중함이 이와 같았습니다.”》하였다.
성종(成宗)때이니, 선왕(先王)이란 누구를 지칭(指稱)하는 걸까? 그 선대왕(先大王)인 “태조(太祖)·정종(定宗)·태종(太宗)·세종(世宗)·문종(文宗)·단종(端宗)·세조(世祖)·예종(睿宗)”까지를 말하는 것일 게다.
「사이(四夷)를 부렸다」는 말은, 당시(當時) 조선(朝鮮)이 중국(中國)이었다는 말과 같다. 사이(四夷)를 다스렸다는 말을 곧 ‘주(周)’를 지칭(指稱)하는, 빗댄 말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왕조(朝鮮王朝)가 “그와 같다”라는 것을 새겨주는 말이다.
여기서 조선왕조(朝鮮王朝)가 ‘화(華)의 당사자(當事者)였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만약(萬若) ‘반도(半島) 조선왕조(朝鮮王朝)’였다면, 왕조실록(王朝實錄)에서 “서호(西胡)”란 말이나 “서방(西方)정벌(征伐)”이란 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이야기다.
○ 『서로(西虜)니 서호(西胡)』란 누구를 지칭(指稱)하는 건가?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 말이다. 서로(西虜)니 서호(西胡)니 하는 말은, 즉(卽) 서방(西方)에 살고 있는 “되놈”을 일컫는 말이다. 아래의 예문(例文)을 보자.
[2] 朝鮮王朝實錄 : 燕山君 5년 기미(1499, 홍치 12)5월 28일(정해)
《丁亥.弘文館上疏曰:臣等竊見,魏相諫漢宣帝之辭曰:兵憤者敗,兵驕者滅. : 홍문관이 상소하기를 : “신 등은 위상(魏相)이 한 선제(漢 宣帝)에게 간한 말을 보옵건대 : 병분(兵憤)한 자는 패하고, 병교(兵驕)한 자는 멸한다하였습니다. 今西虜雖先自搆釁,而見利草竊,此乃戎虜常態,不過訓飭邊帥,謹固防戍耳. : 지금 서로(西虜)들이 비록 먼저 흔단을 만들고 이익을 보고 좀도둑질할지라도, 이는 오랑캐의 상태이니, 변수(邊帥)를 신칙하여 방수(防戍)를 튼튼히 할 뿐이온데, 今朝廷不忍憤怒,欲興兵入其地,臣等未知此兵何名,不幾於憤耶? : 이제 조정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여, 군사를 일으켜 그 지역으로 들어가고자 하오니, 신 등은 이 출병(出兵)이 무슨 명목인지 알지 못하거니와 분노에 의한 일에 가깝지 않습니까? 且虜與我,形勢相懸.秋高塞寒,虜則弓勁,馬肥,我則千里餽糧,士馬已疲.或誤指縱,事有大不可言者矣. : 또 오랑캐와 우리는 형세가 서로 현격하며, 가을은 깊고 변방이 추워지면, 오랑캐는 활이 굳세고, 말이 살찌는데, 우리는 천 리에 식량을 수송하느라, 군사와 말이 이미 피로하여지니, 혹시 지휘 조종을 잘못하면, 크게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今議者皆欲見威於敵,而易言之以爲:以我人民之衆,直往蹂之耳.此不幾於驕耶? : 그런데, 지금 의논하는 자는 모두 나의 위엄을 적에게 보이고자 하여 쉽게 말하기를 : 우리 인민의 대중으로써 바로 가서 그들을 유린해야 한다하니, 이는 교만에 가깝지 않습니까? 今殿下英謀雷斷,睿思神馳.承事者又皆廟堂宿德,敗破之患,萬無如魏相所言,然蠢玆小醜,本處窮荒,遷徙烏擧,難得而制.自古帝王置之度外,恣其隨逐水草,而以禽獸畜之. : 지금 전하께서 영특하신 계략을 뇌단(雷斷)하시고 총명하신 사려를 신령하게 하시며 명령을 봉행하는 자도 또한 모두 묘당의 덕망이 있는 사람들이니 실패할 근심은 위상(魏相)의 말한 바와 같을 리 만무하오나, 우준(愚蠢)한 이 소추(小醜) 들은 본래 궁황(窮荒)에 살면서 옮겨 다님이 일정하지 않으니 제어하기 어려우므로, 예로부터 제왕은 이를 도외에 두어 마음대로 수초(水草)에 따라다니게 하고 금수(禽獸)로서 길러 왔습니다. 今不忍小憤,興不急之師,頗涉無名之擧,以堂堂大朝,欲與小醜爲敵,此所謂因鼷鼠發機,大爲智者之所笑也. : 지금 작은 분노를 참지 못하여 급하지 않은 군사를 일으키심은 자못 명분이 없는 거사이며 당당한 대조정(大朝廷)이 소추를 적으로 삼고자 하니, 이는 소위 ‘새앙쥐로 인해 기틀을 뺀다.’는 것이므로 크게 지자(智者)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중략. 又上疏曰 : 하고, 또 상소하기를, 중략(中略). 今議者多謂:西戎易伐.以啓殿下此擧,以臣等觀之,未見萬全之謀也. : 지금 의논하는 자들은 흔히 말하기를 : 서융(西戎)은 치기가 쉽다하여 전하의 이러한 거사를 열도록 하나, 신 등의 보는 바로서는 만전의 모계(謀計)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중략(中略). 不先務此,徒懷報忿之心,專事征戰,雖蕩覆巢穴,一空漠北,以快目前之憤,亦何有於治哉?中略.皆不報。: 이를 먼저 힘쓰지 않고 한갓 분노한 마음을 품고 오로지 정벌만을 일삼으시니, 비록 그들의 소굴을 탕복(蕩覆)하고 막북(漠北)을 텅 비게 하여, 목전의 분을 쾌설한다 할지라도 무엇이 치도에 유익하겠습니까. 중략(中略), 모두 회답하지 않았다.》고 기록(記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예문(例文)에 등장(登場)하는 몇 개의 단어(單語)는, 반도(半島)와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사용(使用)할 수 없는, 사용(使用)될 수 없는, 생뚱맞은 전혀 관계(關係)없는 것들이 있다.
즉(卽) 『서융(西戎)이니, 서로(西虜)니, 서호(西胡)니, 막북(漠北)이니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반도(半島) 땅으로부터 일만(一萬)리도 넘는, 말 그대로 ‘서토(西土)의 땅, 서역(西域) 땅’에 살고 있던 이민족(異民族)들을 지칭(指稱)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또 “수천(數千)년 평화(平和)만을 추구(追求)하며, 수많은 외침(外侵)을 당했으면서도, 결코 남의 나라를 침범(侵犯)치 않은 민족(民族)이 바로 한민족(韓民族)으로, 반도(半島) 땅의 주인(主人)이었다.”고 침을 튀기며, 설명(說明)하였고, 오늘도 열심히 침을 튀긴다.
그러나 여기서, “전사정전(專事征戰)”이란 말은, “오로지 정벌(征伐)만을 일삼는다.”는 뜻이니, 여러 차례에 걸쳐 누군가를 침공(侵攻), 공파(攻破)했다는 이야기다.
또 “일공막북(一空漠北)”이란 말은, “침공(侵攻)하여 사막(沙漠)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살고 있는 무리들을 모조리 소멸(消滅)시켜 없애버려라.”는 뜻이다. 이게 말이냐? 반도(半島) 땅에서?
➨ 반도(半島)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 이러한 사건(事件)들이 꿈속에서나 가능(可能)했던 일이냐?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다.
(1) 「서로(西虜)」는 누굴 말하는 것일까? 바로 여진족(女眞族)중에서도 건주여진(建州女眞)인 ‘누루하치=노이합적(奴爾哈赤)’을 일컫는 말이다. ‘고전번역원db’에서 몇 종류를 찾아보았다.
…상촌(象村)집 제34권 / 說 26수 / 備虜說 : 《을사년에는 홀자온(忽刺溫) 부족 노인이 동관(潼關)을 함락하고 노략하다가 변방 장수에게 격퇴되었다. 이로부터 홀자온 부락이 서로(西虜)인 노아합적(老兒哈赤)과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노추(老酋)에게 먹히고 말았으며, 무릇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번호(藩胡)들을 노추가 하나도 남김없이 데리고 갔는데, 우리나라에 비로소 국경 부근에 사는 자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乙巳.忽剌溫部虜寇陷潼關.爲邊帥擊退.自此以後.忽溫部落.與西虜老兒哈赤相失.竟爲老酋所幷.凡藩胡之在我國者.老酋盡撤去無一遺者.而我國始無藩底居者矣.》
…열성어제 제7권 / 선조대왕(宣祖大王) 文 / 《수찰로 도체찰사 이항복에게 하교하다〔手札敎都體察使李恒福〕: 내가 보건대, 서쪽 일대는 탄탄대로여서 지세의 험함이 성곽과 같이 믿을 만한 곳이 한 곳도 없다. 방비의 소홀함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여러 차례 말했으니 지금 다시 거론할 것이 없겠다. 덕시(德時)가 만일 노추(老酋)와 함께 서로 이끌고 강물이 얼기를 기다려서 진군하여 동(東)으로 온다면 백성들은 안에서 궤란(潰亂)되고 적들은 뒤에서 기세를 탈 것이니, 일을 장차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비단 이뿐만 아니라 서로(西虜) 또한 우려되는 일이다.》
『로(虜)』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에서 북조(北朝)를 일컬어 “로(虜)” 또는 “북로(北虜)·색로(索虜)·삭두(索頭)·삭두로(索頭虜)”라고 하며, 비하(卑下)하였는데, 북쪽 오랑캐(北狄)란 뜻이다. 북조(北朝)에서는 남조(南朝) 사람들을 ‘인개(鱗介)니 도이(島夷)’니 하면서 서로 욕하며, 비하(卑下)하였다고 한다.
이런 예(例)를 보더라도, 반도(半島) 땅에서 ‘북로(北虜)’라는 말은 사용(使用)할 수 있겠으나, “서로(西虜)”란 말은 아주 생뚱맞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또 ‘화이(華夷)를 가르는 천혜(天惠)의 지세(地勢)가 바로 압록강(鴨綠江)이었다.’고 했기 때문에, 그 북방지대(北方地帶)는 바로 화(華)요, 중화(中華)다. 따라서 북로(北虜)니 북적(北狄)이니 하는 말 자체도 사실(事實)은, 성립(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서호(西胡)니 서융(西戎)”이니 하는 말 또한 결코 사용(使用)될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은 『반도(半島)의 지세(地勢)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卽) 반도조선(半島朝鮮)은 존재(存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위에서 말하는 서로(西虜)는 : 금(金)나라의 후예(後裔)들인 여진족(女眞族)들을 말하는 것이고, 바로 노이합적(奴爾哈赤)이 거느린 서융(西戎) 곧 서로(西虜)들을 말하는 것이며, 당시(當時)의 서로(西虜)는, 여진족(女眞族) 노이합적(奴爾哈赤)을 말하고 있다. 억지로 만들더 라도 이들은 북로(北虜)라고 해야지, 서로(西虜)라고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반도(半島) 땅에서는 북(北)쪽 한 면(面)만이 육지(陸地)와 연결(連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西虜)는 무엇이고, 서융(西戎)은 무엇인가?
『가을은 깊어지고, 추워지면 서로(西虜)들의 활은 강해지고, 말(馬)은 보기 좋게 살이 쳐서, 이웃나라들을 노략(擄掠)질하는데, 가장 좋은 시기』란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던 이야기다. 바로 대륙(大陸) 땅의 왕조(王朝)에서 시시때때로 쳐들어와 침략(侵掠)하고 괴롭히던 이민족(異民族)이었던 유목민(遊牧民)들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使用)했던 말이다.
서로(西虜) : 서(西)쪽의 오랑캐
서융(西戎)이란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 중국(中國)에서 서(西)쪽 변방(邊方)의 이민족(異民族)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 강조(强調)하는 말이지만 : “압록강(鴨綠江)을 한계(限界)로 화이(華夷)를 구분(區分)했다.”면, 『감히 중화(中華)에게 ‘서로(西虜)니, 서융(西戎)이니, 서호(西胡)’란 말은 가당치도 않는 말로, 천자(天子)로부터 패싱당하기 딱 좋은 말이며, 토벌(討伐)되어 어육(魚肉)되기 일보직전(一步直前)일 게다.』
(2) 「서융(西戎)은 치기가 쉽다(西戎易伐)」는 말은? 그러면 반도(半島) 압록강(鴨綠江)·백두산(白頭山)·두만강(豆滿江) 이북(以北)에 있는 자들이 여진족(女眞族)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들은 북적(北狄)이 되어야 한다. 생뚱맞게 ‘서융(西戎)’이라니, 이 또한 글자의 오류(誤謬)란 말일까?
결코 오류(誤謬)가 될 수 없다. 즉(卽) 막북(漠北)을 텅 비게 한다든지, 서로(西虜)니 하는 말들은 모두 서융(西戎)과 관계(關係)가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서융(西戎)은, 서이(西夷)요, 서호(西胡)’다. 이러한 자(者)들이 무슨 방법(方法)으로 반도(半島) 북방(北方)까지 진출(進出)해 조선(朝鮮)을 위협(威脅)하고, 침탈(侵奪)할 수 있겠는가?
…네이버한자사전 / 西戎 : 西 서녘 서戎 병장기 융/오랑캐 융 : 사이(四夷)의 하나. 중국(中國) 한인(漢人)이 서방(西方) 이민족(異民族)을 일컫던 말
…어학사전 / 서융[西戎] 국어 뜻 : 중국에서, 한인이 서쪽 변방의 이민족을 이르던 말. 중국 서쪽 변방의 오랑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서융 : 서융(西戎)은 중국 역사에서 서쪽에 사는 이민족(한족 이외의 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세종 18년 병진(1436) 4월 9일(을사) / 근정전에 나아가 책문의 제목을 내다 : [주-D008] 서융(西戎) : 중국 서방에 있는 오랑캐.
…서호(西胡) : 서양(西洋)을 칭한다고 하였다.【고전번역원DB : 면암선생문집 제23권 / 발(跋) / 최우서(崔禹叙) 전구(銓九)의 《남정록(南征錄)》 발】
…성호전집 제8권 / 해동악부(海東樂府) / 바람이 옷소매를 날려서〔天風吹袖〕: 맹세코 임금 위해 서쪽 오랑캐를 치리니 / 誓將爲君擊西胡
…청음집 제30권 / 묘갈명(墓碣銘) 14수(十四首) / 증(贈) 좌승지(左承旨) 지공 세함(池公世涵)의 묘갈명 병서 :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를 지낸 유용(有容)이란 분이 있었다. 이분이 개(開)를 낳았는데 선공감 직장(繕工監直長)을 지냈으며 공에게는 고조가 된다. 이분이 계강(繼江)을 낳았는데, 용감한 것으로 뽑혀 떨쳐 일어나서 서호(西胡)를 치다가 죽어 병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왕조실록(王朝實錄) 중종 23년 무자(1528) 3월 6일(정축) / 귀성 부사 유상령이 야인을 대처할 소를 올리다 : 귀성 부사(龜城府使) 유상령(柳尙齡)이 상소(上疏)하였다. 지금 서호(西胡)들은 만포진을 귀순하는 장소로 활용하면서, 어염(魚鹽)과 면포(綿布)를 받아간 것이 이미 많은데도 도리어 은덕(恩德)을 저버리고 이곳의 허실을 엿보아 살피다가 우리 장사(將士)를 죽이고 우리의 백성과 가축을 잡아갔으니, 이는 근고에 없던 변란입니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서쪽 변방에 대한 우려를 가지게 되었으니 인신(人臣)된 자 어느 누가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牛溪(우계)先生續集卷之五 / 簡牘 / 與申質夫 樸 : 西胡建州衛㺚子.
◆ 위의 예문(例文)에서 보다시피 : 당시(當時)의 “서로(西虜)=서융(西戎)=서호(西胡)”는 바로 “건주여진(建州女眞)의 달자(㺚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서(西)쪽 변경(邊境)을 맞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즉(卽) 『반도조선(半島朝鮮)이란 존재(存在)할 수 없다.』는 뜻이다.
(3) 「오로지 정벌만을 일삼는다.(專事征戰)」는 말은,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출정(出征), 정벌(征伐)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조정(朝廷)에서 신하(臣下)들이 말하기를, “서융(西戎)은 치기가, 토벌(討伐)하기가 쉬우므로 쓸어버려야 한다.”는 말들이 오고 간 것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은 말하기를, 『오직 평화(平和)만을 추구(追求)하던 민족(民族)이라고 하였다. 이건 비웃는 말이다.
◇ 침탈(侵奪)당 해 굴욕(屈辱)을 당해도, 수십만(數十萬) 백성(百姓)들이 포로(捕虜)로 끌려가 노예(奴隷)가 되고, 부녀자(婦女子)들이 끌려가 성(性)노리개가 되어도 오직 평화(平和)만을 추구(追求)한 민족(民族)이었다고… …이건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이 조선(朝鮮)을, 한민족(韓民族)을 비웃으며, 깔보는 소리다.
그러나 위의 기록(記錄)을 보더라도 당시(當時)의 조선왕조(朝鮮王朝)에서는 여러 이민족(異民族)들을 안무(按撫)하고, 토벌(討伐)과 정벌(征伐)을 수행(遂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신하(臣下)가 지들의 주군(主君)에게 “「오로지 정벌만을 일삼는다.(專事征戰)」는 상소(上疏)까지 했겠는가!
이게 바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실체(實體)다
(4) 『당당대조(堂堂大朝)』란 말은? 당당(堂堂)한 대조정(大朝廷)이란 뜻이다. : 대조정(大朝廷)이란, 〈당연(當然)하게도 중국(中國)의 조정(朝廷)을 말하며, 당시(當時)의 연산군(燕山君)은 천자(天子)였고, 황제(皇帝)였으며, 대조정(大朝廷)의 주인(主人)이었던 대왕(大王)이었다.〉는 이야기다.
(5) 「막북(漠北)을 텅 비게 한다.(一空漠北)」는 뜻은?
이런 기록(記錄)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강토(疆土)가 반도(半島) 땅일 수 없다는 명확(明確)한 증거(證據)다. 역사통설(歷史通說)논자(論者)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막북(漠北)”이란 “북방(北方) 땅에 대한 비유어(比喩語)일 뿐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많고 많은 북방지대(北方地帶)에 대한 말 중에서 하필이면, ‘사막(沙漠)의 북(北)쪽’이라는 특이(特異)한 곳, 지세(地勢)를 표현하는 “막북(漠北)”이란 말을 차용(借用)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事件)은, 차용(借用)한 것이 아니라, 조선강토(朝鮮疆土) 내(內)에 사막(沙漠)이 있었으니, 막남(漠南)도, 막북(漠北)도 있었다는 것은, 기정사실(旣定事實)일 수밖에 없다. 지형지세(地形地勢)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곳 막북(漠北)을 토벌(討伐)하여, 서호(西胡)=서융(西戎)=서로(西虜)들이 말(馬)과 양(羊)을 키우지 못하도록 모조리 쓸어버려, 그곳에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막북(漠北)이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냐?」 막북지대(漠北地帶)는 최소한(最小限) 하서회랑(河西回廊)과 돈황(燉煌) 이북(以北)에 있는 사막지대(沙漠地帶)를 지나 그 북(北)쪽인 오늘날의 외몽고(外蒙古) 서부(西部)로부터 준갈이(準喝爾)분지(盆地) 북방(北方),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방지대(北方地帶)인 러시아(Russia) 땅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달단(韃靼)이니, 와랄(瓦剌)이니 하는 종족(種族), 부족(部族)들이 바로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며, 오늘날의 러시아(Russia) 및 동구라파(東歐羅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동(東)쪽, 바로 동방(東方)엔 조선(朝鮮)이 있었다. ‘동방(東方)과 조선(朝鮮)’은 같은 말로, 수천(數千)년 이어오며 사용(使用)되었다는 것을 알자.
○ 이들이 마치 “반도(半島) 북방(北方)에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이제 마지막 숨을 거둘 때다. 2021년 04월 03일 [글쓴이 : 문무(文武)]
|
첫댓글 위에서 언급한 역사통설(반도사관=식민사관)논자들이 말하는, "평화만을 추구하던 한민족"이란 말은, 비웃고,
깔보는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보수'니 '우익'이니 하는 무리들 중에서 이런 논리를 펴는 자들이 많다.
정치란 도의와 도리를 펼치는 장소다.
대한민국 오늘의 정치계는 말 그대로 "난장판"의 세계다.
무엇이 도리요, 무엇이 도의인지 조차, 실종되어버린 오직 정권만을 잡기 위한 도구로 전략해 버렸다.
최소한의 도리와 도의를 말할 수 있는 여지조차 없다.
이제 일제제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도대체 언제 식민사관의 망령에서 벗어날텐가?
반도사관=식민사관 논자들이 추종하는 일제제국주의의 망령들이 떠도는 열도는 서서히 침몰중이다.
함께 태평양 바닷속으로,
그들과 함께 태평양 심해속으로 사라지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현실은 녹록치 않다.
변화와 개혁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반도라는 특이지형은, 주변 강대국들과의 마찰은 언제일지 모르나 필연적이다.
소멸되지 않으려면,
살아 남으려면,
전진없는 개혁과 변화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