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의 산행 무사귀환을 축하(?)해 준다고 양회장이 저녁을 산댄다.
중앙알프스의 사고를 듣고 온 가족이 내 걱정을 했댄다.
골짝나라학교의 강채구도 부르고 나중엔 바보와 주회장도 합류해
노래방까지 가서 술을 마셨다.
마무리 못한 사진 정리를 하다, 광주극장의 영화를 보며 시내를 거닐까 하다가
무등으로 길을 정한다.
중머리재식당에서 김밥을 3,500원에 산다.
가게 두 곳을 들러 비옷값을 묻는다.
10만원 가까운 비옷 구경만 하다가, 콜핑에서 판초우의를 25,000원에 산다.
일본 가기 전에 미리 샀더라면 좋았을 걸.
뵌 적이 있는 퇴직 교장들이 한무더기 내려온다.
고개를 숙이고 오르다 증심사 입구에서 임종환 교장께 인사한다.
11시에 증심사 입구를 지난다.
당산나무에서 물을 마신다. 시원하다.
젖은 옷들을 다 빨아버려 가을 바지를 입은 탓인지 땀이 더 난다.
천천히 오른다. 중머리재엔 40여분이 지나 닿는다.
방학이어서인지 젊은 청소년들이 많다.
샘에 가서 물을 담고 다시 내려와 용추폭포 쪽으로 걷는다.
첫내리막은 풀에 덮혔는데, 용추폭포 내려가는 이정표는 새로 세워 두었다.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따라온다.
폭포엔 물이 많지 않으나 작은 두 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옷을 벗고 물을 맞는다.
처박아 두었던 카시오 카메라를 켜니 배터리가 불안하다.
바위 위에 두고 나의 뒷모습을 찍어본다.
김밥을 먹고 회남자 몇 줄을 읽는다.
어디로 갈까나?
만연산 넘어 화순읍에서 버스를 탈까?
계곡을 올라 참생 장불재 들러
시무지기 폭포의 물을 맞으러 더 걸을까?
정상쪽은 구름에 가렸으니 오르지 말자.
무너져 내린 건너편 절벽을 힘들여 올라,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딛으며
시누대와 키 큰 풀 사이를 걷는다.
다시 계곡으로 들어서 불을 건너 바위를 오른다.
바위가 젖어 있어 조금 미끄럽다.
신발도 바닥이 많이 닳은 것이다.
너와나 목장 가는 길에서 계곡을 두고 다시 중머리재로 걷는다.
중머리재 위 샘에서 물을 담고 중봉 쪽으로 오르는데
숲 속에서 소리를 연습하는 이의 노래를 듣는다.
나도 리코더를 챙겼으면 나의 계곡에서 불고 놀았을텐데.
드문드문 사람들이 짝을 지어 내려온다.
혼자 내려오는 이도 있다.
바람이 좋다.
나의 소나무 아래에 앉는다.
책 몇 장을 읽는다. 지나가는 이들이 쳐다본다.
일본에서 배낭에 남겨진 키 큰 술 한캔을 마신다.
양이 많다. 잠이 온다. 바위에 눕는다. 몸이 미끌려 내려간다.
다리를 소나무에 걸으니 눈에 해가 들어온다.
수건을 덥고 자니 잘만하다.
눈을 뜨니 어느새 4시다.
용추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참나리인가 푸르른 풀 속에 보기 좋다.
카메라는 불안하다. 핸드폰으로 찍어보기도 한다.
중봉으로 오르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무등의 길 중에 몇 번째일까?
입석대에서 서석대 오르는 길은 어느 때든 좋다.
백마능선의 길은 찬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좋다.
동화사터 아래의 돌계단 길은 하얀 눈이 잘 앉아 있어 겨울이 좋다.
중터리길의 덕산너덜 길은 어르신과 걷기 좋고, 백운암 지나 중머리재 가는 길은
가을 단풍이 좋다.
그래도 중머리재에서 20분 정도 가파르게 올라
바위위에 뿌리박은 소나무 아래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용추봉에서 위와 아래를 둘러보고 중봉으로 오르는 이 길이 좋다.
파란 풀이 바람에 굽어지는 것도 좋고, 가을 구절초도 좋다.
주상절리의 부드러운 사각이 드러나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것도 좋다.
바람을 맞으며 걷기도 참 좋다.
중봉을 거쳐 동화사터 쪽으로 호젓하게 걷는다.
방송사 송신탑 아래서 원추리를 찍는데 개가 거칠게 짖는다.
반기는 걸까 경계하는 걸까?
5시 반을 지나 원효사 주차장에 닿는다.
계곡에서 물놀이를 마친 가족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5시 50분에 출발한 빽빽한 차에 서서 타고 내려와 산수시장에서 내린다.
풍암동에서 배가 고파 캔맥주 하나를 사 고구마 빵을 안주 삼아 마신다.
기훈과 통화하여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가 산 아구찜을 먹고
대리운전비까지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