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감나무
이 정 식
감나무 잎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이 되면 앙상한 가지마다 감이 주렁주렁 달인 것을 볼 수 있다. 가지가 그 무게를 못 이겨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면 한 폭의 그림같으다. 그런 감나무를 바라보면 향수를 더욱 느끼게 한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집감나무! 내 인생의 유년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닥아 와 가슴속에 젖어든다.
지금도 감나무 생각이 떠오르면 이웃에 있는 감나무추어탕집이라도 찾아가야했다. 그 식당 앞 감나무라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보고자 나만의 위로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와 추어탕에 술잔을 기울 리며 고향집 감나무 이야기라도 늘어놓아야 애타게 그리운 향수병이 풀릴 것만 같다.
6-7월이면 두툼한 감나무 잎 사이에 하얀 감꽃이 만발하여 벌 때가 날아든다. 나무 밑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놀던 옛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옛 부터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는 꺾어서 따야 다음해 새가지가 많이 나온다했다. 그래서 제일 많이 달린 가지를 꺾어 벽에 걸어놓고 홍시(紅柿)가 되기를 기다려 보지만 그동안을 못 참아 누군가 따먹어서 하나둘 없어져 버리면 안타까워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또 한해 많이 달리면 그 다음해는 적게 달리는 해 걸이 성 을 가지고 있다. 감이 풍성하게 많이 달리는 해는 다른 과일도 많이 달려 풍년을 알리는 과실이라고도 말 한다
감나무 가꾸기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감을 따서 상자에 짚을 층층이 끼워 넣어 광에 저장해둔다. 겨울에 눈이 푹 쌓이고 날씨가 추운 깊은 겨울밤이면 건너 방 할머니의 물래 돌리는 소리가 뚝 끝이고 광문 여는 소리가 들인다. 할머니는 큰 바구니에 감을 가득 담아 사랑방 할아버지 계신 곳으로 오신다. 따뜻한 화로 불을 다독거리고 얼은 감을 녹여서 주신다. 나는 졸려도 참고 할머니 감 바구니 가져오는 광문소리 날 때만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본다. 그때 그 손자가 이제 할아버지가 되였으니 흘러간 세월의 무상함을 어찌 한탄하지 않을까.
또 감을 깎아 긴 싸리가지에 끼우거나 실로 엮어 추녀 끝에 달아 말리고 곶감을 만들어 저장해 두면 분이 뽀얗게 난다. 곶감은 감이 풍겨주는 또 하나의 정감을 불러오는 향기로움이 아닐까. 아름다운 그리움은 되새겨볼 수록 곶감 맛처럼 달콤함을 더 해주는 것 같다.
고향집 감나무는 우리 가족들에게 정을 담뿍 실어 고향을 그리는 정을 잊지 못 하게한다. 땀 흘려 농사일에 지친 농부에게 달콤한 홍시는 시름을 달래주는 삶의 향기가 아니 이었던 가. 눈 내리는 겨울밤이오면 할머니 광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할아버지와 화로 불에 녹인 감 먹던 어린 시절이 아련히 떠올라 옛 그리는 정이 넘쳐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북망산으로 가신지 반세기가 넘은 세월의 흐름 앞에 눈시울을 적신다. 그토록 정을 주던 고향집 감나무도 고목(枯木)이 되여 사라졌고 그 뿌리에서 자란 움돋이 나무에 달린 감을 바라보며 감나무도 인생도 함께 가버리고 옛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누구나 고향이라면 산도 물도 모두 그리워한다. 더욱이 사람과 생을 같이하는 얼룩소 감나무가 더 정답고 그리움을 더해준다. 그것은 감나무가 따뜻한 정감을 주기 때문이요 얼룩소가 힘든 농사일을 함께한 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그리운 고향 산천을 북에 두고 온 실향민(失鄕民) 이 수없이 많고 고국산천을 떠나 해외에서 고향의 얼룩소 감나무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래도 나는 내 고향 감나무가 있던 자리라도 가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달래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아름답고 그리운 정을 가슴에 담고 산다는 것은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인생의 향기가 짙어지는 것만 같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 인생의 무덤을 불어오게 되면 감나무에 얽힌 사연도 먼 하늘로 날아가 버릴까 아쉬움이 남는다.
내 인생의 황혼 길 에서 꿈속에 어른거리는 고향집 감나무! 이제는 그리운 정이 물신 풍겨오는 고향 하늘에 떠도는 휜 구름만 한없이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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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에 발표한 작품에 비하여 보다 깔금해 졌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저도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네요, 제 어린시절 돌려주세요 아자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이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