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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 윤석중 동요·동시의 해학
1. 동요·동시의 해학성
해학의 사전적 의미는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이며 유머의 순화된 우리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해학은 서양의 유머와 동의어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고유의 정서가 녹아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구비문학에서부터 판소리, 고전문학이나 전래 동화에 이르기까지 해학적인 요소는 다양한 장르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해학은 유머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의 의미망을 우리 문학이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학은 유희본능과 관계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위험이나 손해 없이 청중의 습관적 기대를 깨버릴 때 성립된다. 는 말은 해학적 표현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해학의 문학표현 양상은 유희적인 요소가 잘 반영된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행동, 과장이나 과소의 방법, 대상의 약점이나 특징을 이용한 방법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전되거나 활자화된 옛이야기의 해학적인 부분을 일정 부분 전승하여 현재 아동문학으로 발전해 왔으며, 동화나 동요, 동시는 우리 전통적인 해학의 요소들이 꾸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학의 요소는 익살스럽고 즐거움을 주어야 하지만 그 익살은 조화를 이룬 농담이어야 한다는 말은 해학에도 일반성이 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코믹한 부분을 드러냈다고 해서 해학적인 동시라고 볼 수 없다. 독자(아동, 성인)들이 공감할 수 있고, 철학적인 면모가 드러나 있을 때 진정한 해학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우리 전통의 정서가 투영된 윤석중 동요·동시의 해학미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동요·동시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여 우리 동요 동시가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2. 윤석중의 동요·동시 해학의 원천
윤석중 동요·동시는 해학성과 명쾌성, 건강성 등에서 전래동요의 성격을 전승하고 있으며, 동요·동시를 통해 구비문학의 미학을 계승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윤석중 동요·동시는 전래동요의 여러 특징 중 특히 해학성과 말재롱을 밑바탕으로 창작되었으므로 여타의 윤석중의 비판은 수정되어야 한다.
“부모도 없이, 형제도 없이, 외할머니 댁에 얹혀살았으면서도 외로운 노래가 그다지 많지 않음은 나의 외로움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과 외롭지 않은 세계를 무척 그리워한 것과, 나는 비록 외롭지만은 다른 사람까지 외롭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되도록 외로움을 피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아픈 개인사에 대한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으로서 윤석중의 동요·동시가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윤석중 동요·동시는 세태의 비판이나 현실을 부정하는 것 보다 대체적으로 긍정하고 밝은 아이의 마음과 눈으로 그려지는 해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사용하는 해학은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긴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소라고 본다면, 윤석중 동요·동시에서 터지는 웃음은 아이의 순수하고 진실한 면에서 우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중의 자라온 성장배경과 살아온 시대 배경이 해학의 원류라면, 전래동요 해학의 전승은 윤석중의 동요·동시의 지류가 될 것이다.
낮에 나온 반달
3. 윤석중의 동요·동시 문학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은 일제 치하가 시작된 이듬 해 1911년 5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나 2003년 12월 9일에 93세의 일기로 타개할 때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동요와 동시만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중의 동시 문학의 태동은 그의 나이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읜 모성의 부재가 큰 작용을 했다. 형제들도 어릴 때 유명을 달리하여 외조모 밑에서 자랐는데, 윤석중의 회고에 의하면 “어린 시절은 “~마라”의 시대였다,”고 한다. 외할머니에게 유일한 혈육이었던 윤석중을 애지중지 키우면서 금칙(禁飭) 사항인 “하지 마라”를 자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 늦은 나이인 10살 때 외가에 가까운 서울 교동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교실에서 풍금의 건반을 만지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게 된다. 윤석중은 “마라, 마라, 마라…….‘마라’ 속에서 어린 반항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동시를 지으면서 자신의 심리적 외상(Trauma)을 치유한 것으로 짐작된다.
1924년 만 13세 때 외가에 살면서 재가한 아버지를 만나러 수표교를 건너면서 청계천을 보고 첫 동시인 「흐르는 시내」를 지었으며, 그해 어린이 잡지인 <신소년>에 동요 「봄」이 독자 투고란 실리면서 처음으로 활자로 발표하게 된다. 그 이후 윤석중이 창작한 동시는 1,200여 편이나 되며, 그 가운데 800여 편이 동요로 만들어졌다. “동요하면 윤석중을 연상하게 되고, 윤석중 하면 동요를 생각”한다는 말이 유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광수는 “아기네 노래의 찬탄할 천재” “조선 아기 노래 시인의 거벽”이라고 칭송했다.
윤석중 동요·동시문학은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동요의 현실을 무시한 채 ‘어른의 유희적 취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멍에와 “짝짜꿍 동요”라는 유아적 동심과 현실적 비난이 짝패처럼 따라다닌다. 윤석중 동요·동시를 정로(正路)라고 평가가 주조를 이루지만, 배척해야 할 문학적 유산으로 폄훼하는 일부 학자도 있다.
윤석중 동요·동시에 대한 상반된 견해는 윤석중의 문학의 시계를 좁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윤석중 동요·동시가 자신의 외로운 성장 배경은 물론, 어둡고 우울한 시대에 쓴 그의 대표적인 동요들이 낙천적이며 언어적 유희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4. 윤석중의 동요·동시의 해학 발현 양상
1) 언어유희를 활용한 동요·동시
언어유희는 다른 의미를 암시하기 위해 말이나 소리 은유를 해학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방법이며, 언어와 문자, 동음이의어, 유의어, 수수께끼, 낯익은 어법의 가벼운 변화를 주는 기법 등을 활용한다. 아이러니의 한 변형으로서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기지와 날카로운 어조로 풍자의 형식이 된다고 하는 것은 동요·동시에서는 적용한 예로 들기 어렵지만, 언어유희가 그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유행어나 통신언어 등이 언어유희로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해학은 감미로운 미소를 유발시키고, 즐거움을 주며, 눈물 없이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웃음, 악이 없는 익살이 윤석중 동요. 동시에서 나타난 해학의 집적이라고 하겠다.
네 발로 서 있는 건
밥상다리
세 발로 서 있는 건
지겟다리
두 발로 서 있는 건
사닥다리
한 발로 서 있는 건
바지랑대 (<다리> 전문)
우리는 사물을 지지하는 것을 다리라고 표현한다. 윤석중 동시 「다리」에서 보이는 사물의 다리는 점차적으로 숫자가 적어진다. 동시를 읽거나 동요를 부르는 아이는 줄어드는 다리를 헤아리며 공감을 나타내는 웃음이 배어 나올 것이다. 사물을 사람과 빗대어 동일성을 표현하는 기법은 어린아이에게 사물을 생동감 있게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다. 이런 표현은 윤석중의 동요·동시의 해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말 재롱의 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는 지지대로써 본체를 보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로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리듬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개, 개, 무슨 개/하늘높이 뜨는 개는 솔개구요/
개, 개, 무슨 개/아기하고 노는 개는 삽살개지요./
개, 개, 무슨 개/나들이 때 차는 개는 노리개구요/
개, 개, 무슨 개/병풍처럼 치는 개는 가리개지요./
개, 개, 무슨 개/글씨 지워 주는 개는 지우개구요/
개, 개, 무슨 개/병 아가리 막는 개는 병마개지요./
개, 개, 무슨 개/불을 땔 때 쓰는 개는 쏘시개구요/
개, 개, 무슨 개/잠이 올 때 켜는 개는 기지개지요./
<개노래>
개노래는 다리와 비슷한 유형의 노래이다. 말을 트기 시작하는 아이가 말놀이를 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가깝게 볼 수 있는 동물과 사물들을 통하여 흥미로운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동요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윤석중은 동요시라는 장르를 개척했는데, 동요시는 학술용어는 정형동시로 동시의 한 갈래로 정의되고 있으므로 입에 익어서 동요라고 부르고 있다. 노래로 불러지면 동요이며, 학문적인 측면으로는 동요시가 옳다는 것이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유리 항아리.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꾀꼬리 목소리
개나리 울타리
오리 한 마리.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개구리 대가리
너구리 아가리
우리 종아리.
(< ‘리’ 자로 끝나는 말> 전문)
끝말이 같은 것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낱말을 알아갈 수 있는 동요로 율동과 함께 어우러져 웃음을 유발한다. 따라서 율동을 곁들일 수 있는 동요는 언어유희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윤석중 동요는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구성되고, 얼굴 가득 웃음기를 품게 하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김용희의 지적대로 윤석중의 골계의 정신은 우리말을 잘 살린 언어유희와 기지로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중은 자신의 동요·동시를 폄훼한 사람들에게 일갈한 이유는 ‘웃음기’의 몰이해에 대한 항변으로 보인다.
“웃음기의 동요”로 명명해도 무방한 윤석중의 동요는 아래와 같은 해명을 통해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내 동요를 천사주의, 동심주의, 낙천주의로 몰기도 하고, ‘유쾌한 아동 문학’(불쾌한 아동 문학도 있는 것인지?) 전문가로 치는 이도 있기는 있었으나 그것은 ‘장님 코끼리 더듬기’나 다를 바 없으니, 코끼리가 담벼락(몸뚱이)처럼, 기둥(다리)처럼, 부채(귀)처럼, 무자위(코)처럼, 총채(꼬리)처럼 생겼다고 서로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 비교와 대조기법을 활용한 동요·동시
언어는 우리가 이질적인 사물을 연결하는 유사성을 지각하거나 반대로 두 사물을 분리시키는 차이성을 지각하는데 기여해 왔으며, 차이성에 주안점을 두면 비교이고 유사성에 주안점을 두면 대조가 된다.
비교의 특징인 차이성이이란 두 개 이상 시적 대상이 서로 다른 성질이 드러내는 일이다. 동요·동시에서 이런 차이성을 활용하면 시적 대상의 특징을 명확하게 알 수 있으며, 시적 대상의 숨겨진 이면도 알 수 있다. 대조의 특징인 유사성은 시적 대상의 서로 비슷한 성질의 것을 비교하여 대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부뚝막에 긁어논 누룽갱이를
들락날락 다 먹고 도망가지요.
욕심쟁이 우리 오빠, 꿀돼지
설탕 봉지 일부러 쏟지르고선
엉금엉금 기면서 핥아 먹지요.
울기쟁이 우리 오빠, 꿀돼지
보글보글 잘 끓는 찌개 국물을
쨍긋쨍긋 열 번씩 맛을 보지요.
심술쟁이 우리 오빠, 꿀돼지
「꿀, 꿀, 꿀돼지」 전문
오빠를 꿀돼지와 비교하면서 “욕심쟁이-울기쟁이-심술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적 화자인 여동생은 오빠의 못마땅한 행동을 어린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누구나 겪었을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을 아이들이 제일 친근감 있게 느끼는 동물과 비교하여 ‘웃음기’를 유발하고 있다.
우물에 물이 없다면
두레박이야 있으나 마나
시내에 물이 없다면
물레방아야 있으나 마나
나루에 물이 없다면
나룻배야 있으나 마나
<있으나 마나>
시적 대상의 유사성이 있는 것 끼리 대조하여 존재의 소중함을 드러내고 있다. “우물-두레박, 시내-물레방아, 나루-나룻배”라는 의존관계를 통하여 모든 대상의 화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격언이나 속담에 보이는 유불여무(有不如無)와 같은 말로 대조를 통하여 의미가 더욱 명료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계급주의 문학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신고송(1907~?)은 윤석중의 「꿀꿀돼지」를 읽고 “개념이 아닌 어린이다운 歎呼와 어린이다운 衝動과 情緖의 躍動을 맛볼 수 있다”고 극찬한 작품이다. “어린이다운 환호와 정서의 약동”은 이 동시가 내포하고 있는 해학을 달리 표현한 것이리라.
3) 과장 기법을 활용한 동요·동시
과장의 방법은 동시에서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해학의 한 요소이다. 인물의 행위를 과장하여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전래동화에서 흔히 표현된다. 고장의 표현으로는 대상을 실제보다 크게 표현하는 향대과장(向大誇張)과 대상을 작게 표현하는 향소과장(向小誇張)이 있다. 향대과장은 사물의 모습, 크기, 특징 정도 등을 실제보다 좋고 크고 강하고 무거운 방향으로 확대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감정, 사상, 사물 등을 실제보다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더욱 선명한 인상과 강렬한 감동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향소과장은 사물이나 사실의 크기나 규모 특징, 정도 등을 축소하여 말하는 것으로 과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확대가 된다. 과장해서 말하는 내용은 실제 현실에서는 좀처럼 이룰 수 없거나 불가능한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과장의 효과는 해학적이라든지 진지하게 한다든지 기상천외하다든지 식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과장은 남을 속이거나 골탕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로 화자의 의도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쓰인다.
윤석중 동요·동시에서 과장의 표현 양상은 희망적이고 위무(慰撫)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의 잔혹한 지배와 분단과 동족상잔, 피폐한 경제 상황에서 오는 극심한 생활고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회의식의 결여가 아닌 사회의식의 고양으로 볼 수 있는 윤석중 동요·동시를 “짝짜꿍 동요”라고 깎아내리거나 작품의 범위를 좁게 한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은 바느질도 못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 드리자.
<달 따러 가자> 전문
“달 따러 간다”는 말은 달이 마을 뒷동산에 가까이 드리워져 세상을 편만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로 따서 망태에 담는다”는 순진무구한 어린이 마음뿐만 아니라 불을 켜지 못 할 정도로 빈한하여 “바느질”도 못하는 “순이네” 방에다가 등불처럼 달아 준다고 하는 것은 달처럼 모든 곳을 비추는 밝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정서가 느껴지는 저녁놀이라는 동시도 과장기법을 활용하여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딸랑 딸랑 딸랑/딸랑 딸랑 딸랑/해님 잔등에 불 붙었다.//
가자 가자 가자/가자 가자 가자/서쪽 하늘로 불 끄러 가자.<4ㆍ5연>”
윤석중의 동요선집 「날아라 새들아(1983)」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한 점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달 따러 가자”의 집약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나의 동요 가운데서 이백 여편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징검다리가 지나간 날의 어린이와 오늘을 사는 어린이와 앞으로 태어날 어린이에게 눈물과 한숨과 걱정 대신 즐거움과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마음의 벗이 되어 준다면, 불행한 시대 불행한 나라에 태어나 외롭게 자라서, 고달프게 살아온 나에게 다시없는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한숨과 슬픔을 동요에서 몰아내자!” 라는 윤석중 동시(요)의 시적 결의가 느껴지는 이 말은 “달 따러 가자”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 아기 세수는
코에다 물만 바르지요.
우리 아기 귀엣말은
먼데 사람도 들리지요.
우리 아기 숨바꼭질은
얼굴만 갖다 파묻지요.
「우리 아기」전문
아이의 앙증스러운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로 평소 우스개를 잘했다는 작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관찰자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웃음기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말하고 있다. 과장(향대, 향소)을 이용하여 아이의 씻는 모습을 표현한 코 세수, 귀엣말을 하며 모두 들리게 하는 아이의 말, 몸을 숨기지만 쉽게 드러나게 숨는 숨바꼭질 등 아이의 일상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4) 천진성을 기제(機制)로 한 동요·동시
천진성은 기본적으로 웃음을 내포하고 있다. 아이는 동물이나 형태를 가진 사물을 앙증맞게 흉내 내기도 하고,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어눌한 언어를 통하여 표현하면 자연적으로 웃음을 유발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흉내 내기는 어린아이의 가장 뛰어난 기술이며 어린아이 유희의 대부분을 자극하는 요소라고 했다. 윤석중의 동요·동시는 이러한 점을 적절하게 포착하여 아이의 말과 짓을 동요·동시에 그대로 노출하여 웃음기를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아기가 아기가/가겟집에 가서/"영감님 영감님/엄마가 시방/몇 시냐구요"/"넉 점 반이다" //"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물먹는 닭/한참 서서 구경하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한참 앉아 구경하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한참 돌아다니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엄마/시방 넉 점 반이래." //
「넉 점 반」전문
시계가 귀하던 시절 엄마가 아이에게 가겟집에 가서 시간을 알아보고 오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쓴 동시다. “넉 점 반”은 시간적(오후 4시30분)인 개념인데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는 닭→개미→잠자리→분꽃을 구경하거나 따라다니며 놀다가 해가 져서 집에 돌아온다. 여전히 아이의 시간은 “넉 점 반”에서 멈추어 서 있다. 아이는 어른과 다르게 시간관념보다는 공간관념이 지배되기 마련이다. 아이가 대상(사물)을 시각과 행동으로 쫓아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가겟집 주인이 알려준 시간을 정지된 것으로 인식하고 “넉 점 반”을 되풀이하며 놀다가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시방 넉 점 반”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아기가 꽃밭에서 넘어졌습니다./정강이에/새빨간 피!/아기는 으아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자세 보니/그건 그건 피가 아니고/새빨간 새빨간/꽃잎이었습니다//.
「꽃밭」전문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세밀한 관찰에서 비롯된 동시로 아주 재기발랄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아기 동태의 오랜 주시와 동심이 내재하고 있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아기는 “피”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있다. 아기가 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상처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 두려움이 일순 사라지는 기제는 “꽃잎”이다. “피와 꽃잎”이라는 반전을 통하여 천진한 아이의 모습을 웃음기로 표현한 것은 윤석중 동요·동시의 큰 특징이다.
5. 마치며
윤석중은 1200여편의 동요시와 동시를 남겼으며, 800편이 넘게 노래로 만들어 졌다고 하니 우리 아동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한결같이 “윤석중 동시가 걸어 온 길이 곧바로 한국 동시가 걸어 온 길”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다작의 여파로 조제남조(粗製濫造)가 아닌 동시의 작품성과 동요의 오락성이 뛰어나기도 하다. 부정적인 평가는 대부분 현실외면, 유희세계의 안주와 말재주, 낙천주의로 일관된다. 윤석중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정적인 견해를 수긍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중 동시를 해학적인 측면, 즉 웃음기 동요·동시로 이해하면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이 일거에 해소 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중은 평소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쉽고, 쉽게 쓰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윤석중 동요·동시가 아주 쉬우면서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아이들 귀에 쏙쏙 들어가게 창작하는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고 평가가 유효한 것이다.
건강한 어린이의 밝은 웃음이 해학적이면서도 어린이의 본능적인 웃음이라고 하는 것도 명쾌한 동요·동시가 많기 때문이다. 동요·동시를 쓰는 동안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즐겁고 경쾌한 작품을 빚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해학적인 그의 문학의식과 관계가 깊다. 이번 논고에서 전반적으로 살피기보다는 부분적이고 개략적인 시편을 가지고 해학성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웃음기」문학이라는 윤석중 동요·동시의 특징(特徵)과 특장(特長)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은 차후의 과제로 남기기로 하며, 연구하는 동안 석동 윤석중의 창작 동기 등 많은 부분을 알았다는 것에 여운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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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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