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性徹 大宗師 生家 ***
성철 대종사 생가는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法語를 남기고 이 시대 마지막 선승으로
추앙받는 성철 스님의 생가 터에 생가를 복원하고 겁외사라는 절을 지어 놓았다.
겁외사는 일주문이 없으며 돌기둥 위에 번듯한 누각이 있고 앞편에는 “智異山 劫外寺”
뒷편은 “碧海樓”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안에 들어서면 마당 가운데에 사리탑을 세우고 탑 위에 성철 동상이 서있다.
좌측에는 겁외사라는 불교 조계종에서 지은 절이, 대문(惠根門)을 들어서면 큰 기와집
세 채의 건물이 나타난다.
마당 둘레에는 수형이 아름다운 백송, 반송, 배롱나무가 심어져 고고하고 청정한 느낌이
든다.
초가집이려니 하고 찾아오는 방문객은 사방 1 km 이내에서 남의 땅을 밟지 않을
정도의 부잣집 태생이었다는데 놀라고, 호화로운 건물에 놀라고, 생가 위로 지나가는
고속도로의 소음에 놀라게 된다.
성철의 속명은 이영주, 法名은 性徹(自性을 確徹하게 깨쳐 佛을 이루라는 뜻) 이다.
성철의 아버지는 李尙彦, 字는 士文, 雅號는 栗隱, 貫鄕은 陜川이다.
어머니 晋陽 姜氏와의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는데 성철 스님이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상언은 외모가 仙風道骨의 모습으로 威風堂堂하며 자존심이 강한 사대부였으며
전통적인 儒林의 고장에서 儒風이 이어져온 보수적인 집안의 기개가 출중한 장부
였다 한다.
이상언은 부처님에게 아들을 빼앗기고 동네 유림으로부터 배척당한 심경이 오죽했
으면 “석가모니가 내 원수다. 내 아들이 석가모니의 제자가 됐응께 나는 석가모니
한테 복수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가” 하면서 대규모 살생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하인들에게 집앞 경호강에 그물을 치라하여 고기를 잡아다 매일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그러면 어머니 강상봉은 남편 몰래 잡아온 물고기를 도루 강에 방생해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소년시절의 성철은 개구쟁이 괴짜에 고집이 세고 책을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학력이 전부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불 같았다.
출가 전에 동양의 사서삼경 등 고전은 물론 한서, 종교, 서양 철학서까지 70여권의
책을 섭렵하였으니 이때 벌써 진리를 찾고 세상을 관조하는 도가 터졌다고 볼 수
있다.
기골이 장대하고 시원스런 외모에 호랑이 눈같이 불을 뿜는 듯한 큰 스님의 눈빛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惠根門이라는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인 栗隱故家, 왼쪽은 사랑채인 栗隱濟,
오른쪽에 기념관인 鉋影堂이 있다.
율은고가와 포영당에는 부모가 사용했던 문갑, 장롱, 서장, 가구들로 부잣집의
채취가 묻어난다.
그 옆방에 성철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40년 가까이 손수 기워 입었다는 누더기 장삼 두루마기와 헝겊은 덧대어 꿰매어
신었던 검정 고무신, 검정 볼펜 붉은 볼펜, 색연필, 몽당연필 각 1개. 평생을 쓰셨던
나무책상과 의자, 장죽 지팡이, 죽비, 달력을 잘라 뒷면에 글을 쓴 메모지가 놓여있다.
한 개 이상을 갖는 것도 사치라 생각한 검소한 생활 모습을 대하니 경외심이 생기고
마음까지 숙연해진다.
기념관인 포영당은 철저한 수행승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 발자취와 수장 도서,
유필 자료, 스님의 일대기와 친필 서간, 법어들이 진열된 유품 전시관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유품은 물론 뉴턴의 영문 원서를 직접 번역하고 불어 독일어
까지 독학으로 공부하여 플라톤, 칸트, 마르크스의 정치 철학서,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하고 기록으로 남겨놓았으니 불교계에 남긴 발자취가 바다처럼 넓고 깊다
하겠다.
성철이 스님들에게 자주 내려주셨다는 “痲三斤”(마삼근 = 삼서근)이라는 화두가
족자에 걸려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삼서근(痲三斤)’이라고 하며
부단히 참선하면 깊이 깨우쳐 見性成佛하여 부처가 된다고 한다는데 나같은 범부는
화두가 어려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스님이 힘차게 내려 쓴 친필 ‘不欺自心’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는 열두 다짐
(十二銘)을 읽어보니 철저하고 독한 수행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다시 나와 劫外寺를 둘러보았다.
겁외사란 ‘시간 밖의 절’이란 뜻으로 시간을 초월한 절이란다.
佛家에서 말하는 劫은 무한대의 시간이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입고 있는 옷이 광대한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쓸어서
달아 없어지는 시간을 겁이라 한다고 전한다.
절의 네 기둥에는 성철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 적혀 있다.
黃河西流 崑崙頂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日月無光 大地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遽然一笑 回首立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靑山依舊 白雲中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대웅전 외벽에는 성철의 출가부터 열반에 들 때까지의 행적이 벽화로 그려져 있어
한 바퀴 돌며 그림을 음미하는 것도 볼거리다.
지리산 천왕봉 쪽으로 지는 해가 불덩어리를 토해내며 사라진다.
첫댓글 재작년인가 ?
이곳 들렸는데...
사진 한장쯤 ...
유익한 글 읽고가네...
고적답사나 문화 기행의 기회가 많아 돌아다니다보니 백수지만 바쁘고,
자연과 유적과 인물 등에 관심을 가지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 되는듯 합니다.
또 한해가 가는군요. 겨울에는 길조심, 차조심, 여자조심 하며
모자 목도리 두르고 좋은 사진 찍어 올려주시기요. 안뇨옹!
지리산 導士 덕분에 좋은 곳을 잘 둘러 보았습니다.
요사이는 깜양에 몇살 먹었다고 그러는 지.....
때로는 인간의 五慾 七情이 무엔지.....나는 그로부터 자유로운것 아닌가 ....
"천지게 만지게 떼품을 팔아서....술집갈보 치마밑으로 다 들어 밀어도 즐거운인생....
술잘 먹는 이태백이는 돈 걸머지고 놀지만.... 일전 한푼 벌이가 없어도 매일먹고 논다는 ....."
정선아리랑 노랫소리가 가슴에 와 다을 때가 많습니다.
크게 깨치고 세상 오만 걱정 다 하고 사는 인생이나, ..
그렁저렁 흘러가는 물구경하고,....
달 구경하고 사는 인생이나 그게 그거지 별것도 아닌것 같으니...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것 같습니다..
달력 잘 받았다고 인사 올릴 참이었는데...고맙습니다..
도사는 무슨 얼어죽을~~~. 그저 영혼이 자유로운 촌놈유.
도시의 소음이 싫어 도망 온 숨어사는 귀촌자요.
아리랑 고개에 주막집을 짓고 정든님 오기만 기다린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 있나요.
지난 번 변산 반도에서 보니 주량이 많이 줄었습디다.
100세 시대에 건강이 최고여. 깨죽이려니하고 톡 털어넣지 맙시다. ㅋㅋㅋ
김교장, 항문이 깊어요. 아는것 만큼 느낀다고 나는 보아도 그저 절간에 돌덩어리 일 뿐 일텐데..존경스럽네.
불경이 원래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다가 나중에 하이라이트로 부정의 부정을 하여 긍정의 논리를 펼치지 않나 ?
예를들면,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 등, 따라서 나는
성철스님의 법어를 다음과같이 바꾸면 어떨가 싶네. "산은 산이 아닌 것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이 아니로다"
워뗘 ?
장씨 아저씨! 입과 함께 다리도 살아났으니 회춘까지 한겨?
언제 내 엉덩이 까 봤나? 똥구멍(학문?)이 깊다니 ㅎㅎㅎ.
절간에 가면 돌덩어리 뿐만 아니라 목탁도 있고, 쇠덩어리, 나무기둥, 기와지붕,
장형이 좋아하는 여승 보살도 있어유.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맞군.
미끄러지지 않게 겨울 산행 조심하시게.
@김왕회 흐흐흐흐...
하하하하...
ㅋㅋㅋ...
항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