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인턴'은 불가능한가
文 熙 鳳
방송인 전현무씨가 워낙 추신수 선수를 좋아한다니 다행이지만, 2015년 '전무후추'(前茂後秋)라는 사자성어가 유행했었다. 미 프로야구 9월의 선수로 선정될 만큼 놀라운 활약을 펼친 추 선수의 후반기 성적이 만들어낸 조어(造語)인데, 1할 타율도 안 될 정도로 부진했던 4월에는 외모가 비슷한 전씨가 텍사스에서 대신 뛴 것 아니냐는 농담으로 했던 말인데 들을수록 친밀감이 느껴진다.
숫자만의 역전과 반전을 넘어 영화 '인턴'에는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기품과 경륜을 더하는 노년이 등장한다. 그 노년이 바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70세 인턴, 벤이다. 30세 젊은 여성 CEO가 운영하는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신생 벤처)이 정부 시책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용한 시니어 인턴이다. 하지만 로버트 드 니로는 여기서 더 이상 심술궂은 영감님이나 은퇴한 마피아가 아니다. 현란하지만 허술한 젊은 친구들에게 삶의 숙련(熟鍊)이 무엇인지를 윽박지르지 않고 알려주는 노년이다. 40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은퇴한 할아버지다. 그는 어린 상사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고, 상사가 결정 장애를 일으킬 때마다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며, 딸 같은 상사가 삶의 안팎에서 눈물 흘릴 때 다림질한 손수건을 건넨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벤은 살 때는 최고 제품이었지만 40년 된 낡은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비싼 가방을 사는 건 돈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같은 가방을 40년 동안 들고 다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날로그는 이제 뒤떨어진 삶의 방식이라 믿는 후배들에게 '70세 인턴'은 그 자체로 경이(驚異)이다. 그래서 그런가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 도서관은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지혜,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다. 흔히들 노인을 폄하하는 말로 ‘늙은 말은 일은 못하고 사료만 축낸다.’고 한다. 참 듣기 거북한 말이다.
책은 지식을 주고, 노년의 인생은 지혜를 준다. 미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몸을 푸르게 한다. 그런 미소를 주는 사람이 지혜를 주는 노년이다. 신념의 유무로 노소를 구분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의심의 유무가 노화를 조절한다고 하는 말에는 신빙성이 있다. 자신감을 갖고 생활한다면 젊은이의 대열에 오래 머물 수 있다. 희망을 품으면 젊어지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빨리 늙는다.
요즘은 IT와 인터넷이 과점(寡占)해버린 세상이다. 선배는 자신들의 숙련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듯한 세상을 원망하고, 후배는 술 마시고 놀아도 취직하고, 학생운동 한다고 학점 바닥에 깔아도 취직했던 선배들의 젊은 시절을 판타지로 여기기도 한다.
서로 책임을 먼저 묻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어떤 일의 해결을 위해서는 현 시점 이전 것은 하드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 일이 진척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가도 어느 한 편에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화산처럼 분노를 터뜨려야 할 때가 아니라 어깨를 보듬고 함께 걸어가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시스템 문제는 그것대로 당연히 개선해야겠지만, 결국 가장 가깝고 손쉬운 것은 나 스스로의 마음이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보고 젊은 후배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인류를 본 느낌’이라고 평하는 걸 들었다.
부디 우리 기성세대가, 선배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쓰지도 않으면서 뭐하려고 매일 아침 손수건을 챙기느냐는 젊은 후배의 질문에 로버트 드 니로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손수건을 안 가지고 다니지? 근데 자네, 손수건의 진짜 용도가 뭔지 아나? 바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거라네." 의미심장한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