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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과 근대 토론방 제가 바라보는 조선시대 상공업에 대한 시각과 유사한 견해글을 소개합니다.
선구자 추천 0 조회 264 08.06.29 21:01 댓글 4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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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6.29 22:07

    첫댓글 선구자님의 그동안 견해와 유사한 글이기는커녕, 오히려 선구자님의 그 동안 견해와 가장 반대되는 편에 가까운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윗글에 의하면, 조선의 경우에는 생산, 소비 모두에서 '낮은 양' 에 머물 수 밖에 없는 한계(낮은 소비, 낮은 생산)에 머물러 있어 상공업 발달도 더디었다는 이야기인데, 이에 반해 일본은 100만에 달하는 에도라는 대도시, 잦은 전쟁 및 귀족의 사치품 수요 등으로 인한 수요가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해 상업이 꽤 발달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결국 윗글에 의하면 한일간의 상공업 발달수준의 격차는 그 나라가 처한 상황에 의해 '내재적' 으로 결정되어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 08.06.29 22:07

    선구자님은 조선 말 한일간의 소득수준이나 상공업발달수준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의견이시지 않습니까? 윗글은 조선의 내재적발전론보다는 내재적 발전 한계론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작성자 08.06.29 23:15

    부분적으로 그렇게 인식될수도 있지만 핵심적으로 제 생각과 가까운 문구로써 산업혁명전에는 상공업이 아무리 발전해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귀절입니다. 즉 산업혁명전 상공업발달이라는 것은 현대적 시각에서의 국민경제생활과 국부라는 측면에서의 국가경쟁력이라는 사항을 적용할수 없다라는 의미죠.

  • 작성자 08.06.29 23:17

    가령 일본이 에도시대 조선을 능가하는 상공업발달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일본이 한국보다 국가경제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식의 개념을 당시시대에 적용할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조선과 유럽을 비교해도 마찬가지이고. 어디까지나 산업혁명전에는 농업이 기간산업의 중심이고 상공업은 그것을 기반으로할수밖에 구조하는 것이죠.

  • 작성자 08.06.29 23:20

    유럽의 경우도 17세기 제일의 농업대국은 프랑스이고 언뜻 보면 네덜란드가 가장 상공업관련 무역을 활발히 진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네덜란드의 농업생산역량이 프랑스보다 훨씬 떨어지고 무역으로 번돈을 농산물수입에 할애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네덜란드가 프랑스보다 선진국이라고 평가할수 있을까요?

  • 작성자 08.06.29 23:27

    그리고 이 소개글이 한계란 표현을 쓰지만 되려 부족한 환경때문에 외부로 눈돌릴려고 하는 사항이 더 상공업과 무역을 촉진시킨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조선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농업생산 자급자족이라는 환경을 한계적상황이라고 표현할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 충분하기에 구태여 외부와 무역에 급박히 목메일필요가 없다라고 해석함을 생각해볼것입니다. 그런측면에서 유럽은 중국 한국등 아시아국가들과 비교해서 외부와 무역을 더 지향하려고 하는 성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 08.06.30 01:12

    선구자님이 링크로 올린 글만을 보면 오해가 생길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님이 지적한 부분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앞서 조선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이 가지는 오해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상공업에 대한 부분중 하나이고 에도시대(1603년 ~ 1867년)와 조선을 곧 잘 비교하며 그래서 조선을 상대적으로 더욱 열등함의 비교대상의 인식으로 말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18세기의 일관기나 승사록을 보면 에도시대의 서민들의 삶이 조선에 비해 윤택하다고 볼수 있는시대는 아닙니다. 이것는 에도 시대 당시의 키를 봐도 성인의 키가 도리어 전기의 고분시대나 야요이 시대보다 더욱

  • 08.06.30 01:13

    열악한 최저점을 보이고 있는 시대입니다.그리고 그런 연구는 앞서의 기록에 일반인들의 생계가 상당히 힘든 시대임의 진실성의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고 보이는 것이지요.물론 이후에 판화등에서 보이는 여러 모습들도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서민보다는 일부의 상류층이나 과장이 들어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조선의 500년을 어느 한면으로 진단하기에는 당연히 맞지 않습니다.. 일제의 전형적 역사 부각 패턴이 말기적 상황의 상세한 묘사로 그들식의 어떤 당위성을 끌어내고 그런 부분으로 인해 일반인들이 각인화되고 조선사회전반에 대한 오해나 여러 편견들이 생겨난 부분들이 있다고 봅니다. 조선 초기의 상공업보다

  • 08.06.30 00:55

    농업의 중시성이 조선 시대의 상공업의 낙후성의 사회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조선의 도시는 고려시대보다 규모면에서 후퇴하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도시나 상공업도 근대적 이전에서는 결코 낮은 인식으로 볼수는 없는 규모와 활동들을 만나게 됩니다. 고려말의 상공업 인구의 증가로 일부 귀족계층으로 쏠리는 사치성 풍조에서 조선 시대에는 전반적 백성의 삶의 기초 국력 강화를 위한 정잭적 일환으로 농업을 중시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지 그렇다고 상공업이 열악하다는 표현이나 조선이 상공업을 등한시로 갔다는 시각은 오해가 있습니다.

  • 08.06.30 01:10

    조선에 앞서 고려시대 이미 한양 즉 남경은 궁궐이나 불교의 융성과 상당한 도시 규모를 갖추고 있는 발달을 이루어 왔고 이후 이런 인프라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좀더 계획화되고 주도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도시로 바뀝니다.나아가 3,300여칸에(혹 2600여칸) 달하는 시전행랑이 1414년에 만들어지고 기타 관료적 사회의 관료 5천여 규모에서의 한양내의 상공인의 수나 천민의 양인화등의 법제적 신분승격 그리고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보부상 기타 방대한 인쇄시설이나 도자기 수공업등 조선 전기은 고려의 도시 인프라에 기타 상공업적 부분에서도 상당히 활발한 규모와 활동력을 보여 주고 있으며 서민들의

  • 08.06.30 01:11

    가내적 쌀이나 무명등이 여러 재화로 바꿀수 있는 상업적 관례등 조선 전기의 전반적 사회는 상당한 상공업적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물론 조선 중, 후기적 상황에서도 전란이나 일부적 쇠퇴를 보이는 부분도 있으나 평균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하는등 기타 선구자님의 지적처럼 단순히 상공업적 부분만으로 전근대적 사회에서 그나라의 전반적 국력이나 생활수준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의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보입니다. 이후 시간이 되면 이부분에 좀더 구체적 내용들을 올려 보겠습니다.

  • 08.06.30 02:00

    어차피 전근대 사회에서 서민들의 삶은 거기가 거기입니다. 내재적 발전론이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국가차원의 논의입니다. 조선에는 부국강병을 방해한 무언가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일본은 '전체 국가'적 차원에서 근대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만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변론을 편다하여도 조선 후기의 경직된 사회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습니다.

  • 08.07.01 16:44

    우리나라는 고구려,신라등의 천년 사직이나 앞서 고조선의 기간 그리고 기타 5백년은 기본으로 간 왕조들로 중공대륙에서 고구려 천년 사직에 수십개가 생겨났다 흥하다 망하는 식의 짧은 패던으로 우리 한국사를 어느 한부분만으로 조명하는것은 맞지 않는 안목입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대표적 패턴이 우리 한국사의 다른 나라 왕조에 비해 견실하고 상당히 오랬동안 전성기나 평균성을 구가한 점들은 무시해 버리고 단순히 몰락한 시기의 상황만을 강조 구체화해서 묘사하는 형태들을 취하며 각인화 시켰지요

  • 08.07.01 17:02

    <조선 후기도 단순히 조선의 힘이 약했다와 조선이 근대화의 역량이 없었다와 동급의 비교대상은 될수 없습니다. 마치 섬나라는 일제 식민지 지배당위성을 이런 식으로 직결 시켜 버림으로서 이전의 조선 전체를 막장 찌질 역사로 몰고 감으로서 한층더 식민지배를 당연한 귀결로 선진화를 가속화 시킨 역할을 일제가 일제의 의해서만을 강조하며 이루어 졌다는 식으로 말합니다.그러나 이는 지극히 섬나라 전범 극우 위주의 일방적이고 정치적 발언일 뿐이지요>

  • 08.07.01 17:21

    물론 당시 조선은 명청으로 이어지는 대국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섬나라보다 더욱 긴밀함의 상황이었고 이런 것는 발전적 문명적 패러다임이 동북아에서 피어 났을 경우에는 플러스적 요인이 될수 있지만 근대에서의 산업혁명후의 이념적 문명적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이런 것은 단점적 요인으로 작용할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기에 비해 섬나라는 도리어 탈 아시아적 사고에서 자유로울수 있었던 것처럼 좀더 기존의 적극적 문물 수입의 패턴에서 다른 사고 체계의 선회로의 적극적 수용이 가능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볼수 있겠지요. 조선 후기 대한제국이 나름의 독자성을 발판으로 시작하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역시 이런 앞선

  • 08.07.01 16:59

    기존의 조선 사회적 풍토의 명청적 사고와 습성에 대한 자각을 통한 정치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적 패러다임을 주체적 시각에서 받아 들이고 수용하려는 의지적 상황으로 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먼저 근대화를 사회 전반적으로 이루고 나아가 제국주의적 무력침공에 함몰되어 버린 조선으로서는 정치적 독립성을 통해 그런 역량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적 아픔으로 갔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 08.07.01 17:03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선 전기의 왕성한 상공업적 활동과 규모를 말하지 않더라도 근대 이전의 조선 사회의 전반적 상공업의 수준은 세계사적으로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08.07.01 10:42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선구자님의 견해와는 반대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영국의 산업혁명이 발달하게된 결정적 원인이 대영제국의 상업패권이 7년전쟁에 의해 확정되어 막대한 상업자본이 대거 기술분야에 투자되었기 때문인데 조금 제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갑니다.

  • 08.07.02 10:52

    역사님,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 줄로 압니다만 꼬리말이 길어질 경우 답글로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한두번 정도가 아니라, 꼬리말이 길어진 것을 수차례 보아왔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 08.07.06 16:01

    조선초기 상업발달이 고려보다 후퇴한 이유는 원말명초의 국제적 환경변화입니다... 원때는 국가가 통상을 장려되는 구조였고, 명은 해금정책으로 통상이 억제되었기 떄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거래 상대방이 없으니, 동남아시아, 이슬람상인 거래도 경제성이 떨어진 것으로 봅니다... 조선 내부적인 요인보다 국제 환경변화가 더 큰 이유라고 봅니다.. 일본 상업이 에도막부때 성장한 것은 에도막부의 지방호족(번주)를 제압하는 정치입니다... 에도막부의 평민 삶은 조선보다 불행했지 절대로 윤택하지 않았습니다.. 잉여 농산물이 아니고 지방통치술로 일본 상업이 발달합니다.

  • 08.07.06 16:16

    서구에서 근대사회 성립은 상업자본 존재가 결정한 것이 아니고, 고대부터 이어온 인간중심,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체제, 계몽사상, 종교신앙 회의등 사상에 기인하였다고 봅니다. 상업자본만의 문제라면 지배층의 변화만 이루워 졌다고 봅니다. 과거 로마의 원로원, 호민관, 집정관(후에 황제) 전통이 중세에도 이탈리아 도시국가에 존재합니다... 동아시아/이슬람 사회는 외세로 부터 서구/일본같이 평온한 것이 아니었고, 출중한 군사능력을 보유한 유목군단의 침략에 대응하여야 하는 절대절명의 숙제를 하나더 가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된 군사동원능력이 사회존재를 유지하는데 필수요소입니다.

  • 08.07.06 16:26

    내가 주장하는 것은 동아시아는 역사발전 능력을 가지지 못한 문화인종적 열등함이 있다는 일제 식민사관, 서구중심 사관에서 자유로와 져야 한다고 봅니다. 편견없이 역사변천과정을 바라보자고 주장합니다. 현대 서구 전성기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흑인 빈곤기가 영원할 수도 없고, 빛나는 역사를 가진 이슬람/동아시아/인도권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인종우월적, 배타적, 국수적 편향된 가치관에서 역사를 자유롭게 하자고 말하고 싶네요. (극우 쪽발이 식민역사관 무시하세요..)

  • 08.07.07 01:07

    상퀼로트님/고려와 조선의 비교가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고려는 당시 세계 제일의 경제 국가라던 송나라와 일절 교류하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할 만큼 경제력도 강한 나라였습니다. 물론 시기에 따라 편차가 나기는 하겠지만, 몽골의 침입 이전에는 확실히 전반적으로 조선시대보다 더 나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가 19세기 세계 열강으로까지 발돋움하게된 계기로 단지 님께서 거론하신 관념적 요소들밖에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분명 산업의 발전이나 국가의 팽창 등 가시적인 부분이 함께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마지막 꼬리말에 말씀하신 것처럼 열등함이라는 편견을 버리고자

  • 08.07.07 01:09

    하신다면, 단지 관념적 측면에서 서구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펴시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서구의 이런 관념이 결국 그들의 발전을 이루었으니, 이런 관념을 갖지 못한, 한국을 포함한 비 서구 세계는 발전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고 마는 것이니까요.

  • 작성자 08.07.08 07:17

    고려가 송과 교류를 안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함은 당시 송나라중심만의 일극세계경제가 아닌 다원화된 세계경제체제였기때문입니다. 원나라 이후 명청때의 중국의 세계경제비중상황과는 다르다는 특성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 08.07.08 09:54

    세계 경제 구도가 어떻든, 고려가 조선보다 경제나 산업 등 전반적으로 발달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특성이 달랐다는 점으로만 말씀하시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 작성자 08.07.08 19:28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나 산업 전반이 어찌 고려가 조선시대보다 선진적이었나요. 차라리 현재의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떨어지는 후진국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것입니다.

  • 08.07.08 23:10

    궁금한 것이... 그럼 선구자님께서는 무엇으로 시대 차이를 보이는 국가들에 대해 비교하십니까? 저는 그 국가가 처한 국제적 위상이나 경제 규모로 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고구려가 조선보다 선진적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시대도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조선 후기가 현 대한민국보다 낫다고 평가한다면 저는 단호히 틀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지난 꼬리말에서도 본 것 같은데, 대한민국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시는게 아닌지 궁금하군요...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3위로 소국이 아닙니다. 단지 그 위치에 걸맞는 위상을 지니지 못해서 대국으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 작성자 08.07.09 00:30

    지금 한국이 경제규모상으로 13위라고 하지만 조선15세기 세종시대 국력은 오늘날로 친다면 프랑스를 능가하는 규모는 족히 됩니다. 조선후기 역시 19세기같이 서구국가들에 뒤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소한 정조조 이전의 국력수준은 현재 대한민국의 3배수준은 된다고 평가합니다. 당시만 해도 유럽국가들에 뒤지는 상황이 아니였스므로.

  • 작성자 08.07.09 00:31

    그만큼 현재 한국이 조선시대 19세기말 같은 상황을 제외하고는 조선시대 평소 시기국력을 회복하려면 통일을 하고 국력을 한참 정비해야 18세기 이전 페이스를 회복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 08.07.09 00:38

    18세기 이전 페이스란 어떤 것인지부터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의 인프라가 조선(중기 이후) 보다는 분명히 낫습니다. 한중일밖에 모르던 우물안 개구리의 조선과 세계 13위인 한국이 같지는 않습니다. 선구자님의 주장은 몇번 보아온 것 같으니, 이제는 조선시대의 상황이 고려나 현재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보고 싶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근거없는 주장은 선언일 뿐이요, 누구도 납득하지 못합니다.// 참고로 저도 조선 초기는 세계적인 수준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 초기만을 놓고 주장하시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 작성자 08.07.09 01:20

    어짜피 문명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야 현대 한국이 조선시대보다야 발전된것이고 조선시대는 고구려시대보다야 발전된 것이지만 주장하고자 하는 국력의 비교라는 것은 각 시대에 따른 상황에서의 상대성입니다. 초등학교때 공부를 1등했는데 고등학교때는 중위권에 머물렀다면 단순히 지적성숙도는 당연히 고등학교때가 초등학교때보다 확대성숙되었지만 각 시기별로 어느때 성적이 좋았다라는 의미의 비교이죠. 현대 한국은 아직은 서구국가들보다는 열세에 있지만 언제부터 서구 선진국들이 조선의 국력을 능가했을까요. 19세기 서세동점시기를 제외하고 가장 논쟁이 될만한 시기인 17~18세기 근세후반기에 유럽국가들이 조선을

  • 작성자 08.07.09 01:22

    압도했다라는 근거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시 유럽 선진국들(영, 불등)이 조선보다 농업생산력이 우수해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해결이라거나 전반적인 과학기술발달에 바탕을 둔 상공업분야에서 조선의 과학기술력을 능가했는가에 대해서 따지라면 제 견해는 No 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기껏해야 그 나라들이 조선을 앞도하기 시작하는 것은 빨라야 18세기 후반이전을 상회할수 없습니다.

  • 작성자 08.07.09 01:23

    그리고 만일 이 나라들이 조선과 동일한 시기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같은 침략을 받았다면 나라가 망해버렸을것으로 봅니다.

  • 08.07.09 01:54

    선구자님은 시대별로 국가간 국력의 순위에 따른 관점으로 보입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서구가 조선을 추월한 시점에 대하여는 다소 차이는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조선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관점에서 입니다. 민권에서 고구려보다 고려시절이 낫고, 고려시절보다 조선이 살기가 좋았다고 봅니다. 앞부분에 통일이야기도 나왔는데 주권재민에 의하여 국가구조, 의사결정을 전재로 개방적으로 논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 08.07.09 01:56

    앞에 신농님 이야기 근세기초 한국 사상발전이 서구보다 떨어졌다 고 한부분은 나는 맞다고 답합니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제자백가중 민子(의회 또는 선거)가 나오지 못한 것 또는 실크로드로 종교교류는 있었는데 철학,과학,사상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쉽네요.

  • 08.07.09 10:17

    선구자님/저는 님의 '근거'를 보기 이전에는 더이상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구가 조선을 압도한 것이 18세기를 상회할 수 없다거나 조선이 유럽국가에 뒤지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씀은 선언에 불과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근거없이는 쉽게 납득하지 못합니다.

  • 08.07.09 10:25

    그리고 상대성이라 말씀하셨는데, 한 학생이 자라나는 것을 두고 고구려-고려-조선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하지요. 역사는 항상 발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퀼로트님께서도 민권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조선시대 민권이 고구려 때보다 좋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근대 이전에는 서구식 개념의 민권이란 없거든요. 고구려가 조선보다 선진적이었다는 것은 국력을 뒷받침해주는 각종 산업들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수레를 통해 물자가 쉽게 운송되고 상공업이 천시되지 않았던 고구려가, 교류에 있어서 폐쇄적으로 되어간 조선보다 나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08.07.09 19:42

    사상, 정치등 형이상학적인 자산을 배제하고, 서구가 동아시아보다 경제산업,기술,군사 같은 실물분야가 언제 높아졌는가 하는 문제는 관점마다 다른데... 나의 관점은 17세기 30년 종교전쟁으로 서구 무기발달이 동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으로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때 청은 최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강희,옹정,건륭의 치세였다. 즉 강희는 서구선교사가 전해준 터지는 대포기술을 습득하여 서구와 무기기술차이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 경제적 능력이 청이 압도하던 때라서 특정 군사기술 몇가지로 청의 국력이 떨어질순 결코없다.

  • 08.07.09 19:47

    서구가 기술이 높아진 산업혁명, 그리고 나폴레옹전쟁때는 서구가 앞설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러나 내가 한가지 지적할 부분은 이러한 눈에 보이는 상황뿐아니고, 발전을 여건을 만들어주는 형이상학적인 부분은 더 빠르다. 뉴튼이 대표되는 과학기술은 이보다 많이 앞서고, 사회사상관련하여 종교개혁 및 계몽사상 인문과학분야는 나중에 실물분야가 앞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을 만들어 준다고 본다.

  • 08.07.09 19:50

    동아시아가 고대, 중세보다 빠르게 발전할수 있는 배경은 나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로 본다. 춘추전국시대이전은 서양(정확히는 오리엔트지만) 산업,기술,경제가 앞서있다고 본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로 호칭되는 형이상학 사상, 혼란기 전쟁으로 인한 무기, 산업기술 발전이 중세 중국이 세구를 앞서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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