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주는 詩”라는 제목으로 정호승시인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대구에서는 드물게 강연중 서너번의 박수가 터져나올만큼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주제로한 그의 강연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몇 년만에 처음으로 소주를 진하게 마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래서 다음날은 근무시간 내내 헤맸습니다. 부득이 며칠지난 지금에 그 감동 일부를 그림과 관련한 그의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렘브란트의 용서(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입니다. 17세기에 그린 것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성서의 이야기(신약성서 15장)가 그 주제라고 합니다. 아들이 부모에게서 자신 몫의 재산을 미리 받아서 객지로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몽땅 다 써버리고는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가족들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너무도 소중한 가족의 곁에만 있을수있다면 어떤 비난과 격경도 견디겠다는 각오로 돌아갑니다. 멀리서 아들이 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달려가서 아들을 포옹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온것을 반기며 잔치를 벌입니다. 아버지의 곁에서 유지를 받들고 열심히 생활하는 큰아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죽은 줄 안 아들이 돌아왔으니 기쁘지 않은가 라며 부모의 자식사랑을 설명합니다. 부모는 모든 자식이 다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인자하게 서두르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으로 아들을 감싸안고 자신의 숨결을 들려줍니다.
아버지의 손을 봅니다. 한손은 남자의 손이요 한손은 어머니의 손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동시에 나타내려함이었다나요?
아들의 모습중 발부분입니다. 헐벗은 모습을 그대로 리얼하게 표현했습니다.
시인은 불평등 사랑과 평등사랑을 설명하며 착한 아들과 착하지 않은 아들을 모두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용서가 필요한데, 용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득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또는 더민주를 탈당하여서도 당선된 분들의 복당문제에 대한 생각과 오버랩 시켜 봅니다.
재미없어도 그림에 대한 상식으로라도 읽어봐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