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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스님의 기도 – 32
평정심과 사무량심
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행복 시작 불행 끝
성공 시작 실패 끝
승리자 붓다 축복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사무량심(자·비·희·사) 발원을 하겠습니다.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유정들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들을 얻게 하소서!
모든 유정들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들을 여의도록 하소서!
모든 유정들이 괴로움이 없는 행복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유정들이 친소·애증 등의 양변에서 벗어나서 평등심에 머물도록 하소서!
아미타불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불교의 마음 쓰는 방법은 사무량심인데 줄여서 자비희사로 표현해요.
자(慈)-사랑. 비(悲)-연민. 희(喜)-기쁨. 사(捨)-평등.
이렇게 네 가지 마음을 쓰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행복해지고 사랑이 넘치고 지혜롭게 사는 방법인 ‘강인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결의’가 필요하다. ‘해 보겠어’ 하는 결심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늘 의도적으로 강인함의 감각을 일으키는 습관을 기르라고 배웠어요.
오늘은 붓다 브레인, 제 7장 평정심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옛날 그리스로마 철학에서도 부동심과 평정심을 아타락시아(Ataraxia-우주를 잘인식하여 일체의 공포에서 해방, 현자가 도달 할 수 있는 경지). 아파테이아(Apatheia-금욕적인 생활의 핵심, 곧 어떠한 정념이나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는 상태) 라 해서 굉장히 중요시 했고 오늘날 인류 역사에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지요.
< 평정심 >
평정심은 경험에 의한 느낌을 탐욕으로 부터 분리시키고, 느낌에 대한 반응을 중화시킴으로써 끊임없는 괴로움의 사슬을 부수어 버린다.
일단은 평정심(고요한 마음)을 자꾸 길러가라.
그렇게 하면 괴로움에 빠져있지 않고 내가 왜 괴로워할까 내가 왜 힘들어할까 왜 슬퍼할까 '바라보는 입장'이 되는 거예요 그죠? 한발 빼서.
평정심 하에서는 요구는 사라지고 특성만이 남는다.
평정심은 매정함이나 무심함과는 다르다.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지만, 세상에 의해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사에 일희일비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여러분들이 기도하다 보니까, 지장경 읽다 보니까 매사 일희일비하다가 그냥 기쁜 마음으로 평정한 마음을 바뀌어가니까 이런 일이 나한테도 올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Why Me? -왜 나야? 하필이면? 에서 Why Not-나 일 수도 있어. 하고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된다 말이예요. 누구든지 올 수 있는거네? 울고불고할 필요들이 없어지는 거죠. 평정심이라고 하는 게 지장경 읽다 보면 저절로 생겨요
정열, 사랑과 친절, 타인의 행복에 기뻐하는 마음등을 가질 여유가 생겨난다.
무엇보다도 지장경 읽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정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친절, 타인의 행복에 기뻐하는 마음을 가질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여유가.
카말라 라는 불교 지도자가 한번은 갠지스강에서 보트를 탄 경험을 들려주었다. 왼쪽으로는 햇살이 오래된 탐과 사원을 아름다운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화장터의 불길이 타오르면 통곡의 소리가 연기와 함께 퍼져 나갔다.
왼쪽의 아름다움과 오른쪽의 슬픔 모두를, 한껏 열린 평정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감싸 안을 수 있었다. 이러한 평정심에 의지하여,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와 같이 크나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넓게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 평정심 느끼기 >
만약 원한다면 가끔 평정심을 느껴보기로 하자.
지장경 읽으면 평정심은 저절로 다 이루어져요.
이 평정심은 가장 깊은 명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완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평정심의 상태는 침착함과 명료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평화로움으로 가득 찬 상태이다.
지장경을 읽으면, 내가 걱정거리가 태산인데 이렇게 마음이 편해도 되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러다 어느 순간에 환경 자체가 그렇게(편하게) 되어버리는 거예요. 어느새 되어 있는 거예요. 그지?
어 내가 이렇게 태만무심할 수 있어? 걱정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아무 걱정이 안되는데 그게 평정심이죠? 배짱같은 마음일까 하는데 배짱은 틀림없이 아니고 평정심이 어느 순간에 딱 되면서 그게 거듭되니까 환경으로 나타나서 걱정거리가 없네! 걱정거리가 아니네! 요렇게 된다 말이예요. 그죠?
침착함과 명료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평화로움으로 가득 찬 상태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불안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중생이니까 안느낄 수가 없어요. 그때 기도를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제가 지난 시간에 소중한 기도문을 하나 읽어드렸는데요.
팔부신중(천. 용. 야차. 아수라. 건달바. 긴나라. 가루라. 마후라가) 뿐만 아니라 만달라의 신들과 본존님께 귀의합니다. 지혜안을 갖춘 덕 높으신 호법 신들께 귀의합니다. 했는데 우리가 꼭 부처님과 보살님께만 기도를 하는 게 아니예요.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호법선신들이 계세요.
저도 가끔 마음이 흔들리죠, 가끔이 아니라 매일이겠죠. 매 순간이겠죠. 늘 흔들려요. 갈대는 바람이 불어야 흔들리는데 나는 자동으로 흔들려요. 자동으로. 안흔들릴 수가 없어요. 중생이 있는데 어떻게 안흔들리겠어요 그죠? 늘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마음이 안정될까 하는데, 내 마음이 안정되는데 여기 나오는 호법선신들이 중요한거예요, 아! 이래서 위대한 고승들이 호법선신을 언급을 했구나. 때로는 요기 요기니 요정 이런 분들께도 수행자들이 기도를 하는 거예요. 아! 굉장히 중요한 거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민원 넣는다고 대통령이 와서 전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의해서 담당자가 해주는 거잖아요.
이완 몇 분간 심호흡을 하면서 아랫배나 가슴부위 또는 윗입술 주변의 감각에 의식의 초점을 두라.
변화되어가는 기분(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 또는 중립적인)의 상태에 점점 더 마음을 집중해 간다.
무엇이 일어나든 그것에 대해 편안하게, 이완을 느끼며, 흔들리지 않는 불편부당한 마음으로 느껴보라. 무엇이 일어나든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 계속하여 마음을 일정하게, 조용하게 그리고 집중을 유지해 가도록 하라.
안돼요. 그죠?
안되니까 어떻게 하면 돼요? 지장경 독경! 세상에서 제일 쉬운 방법을 법안스님이 가르쳐준다. 이거는 가장 확실하면서 빠른 방법이다. 지장경 독경만 하면 무조건 된다. 명상의 효과든 모든 효과에서 이보다 더 빠른 건 없다. 그래서 지장경 독경하게 되면 여러분들에게 부처님께서 지장보살님의 불가사의한 능력들을 계속 강조하시게 되는 부분들을 알게 된다.
대한민국 불자들 특히 불교 지도자들, 출가제자나 재가 포교사나 재가 지도자들 중심으로 꼭 읽어야 될 책으로 지난 시간에 해탈장엄론을 소개했고 오늘은 현증장엄론(현관장엄론) 이예요, 미륵보살의 5대 논서에 들어가는 책인데 제가 이 책을 읽고 신해행증 법문을 했다면 좋았을텐데 너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한거예요. 너무너무 좋은 책이라 그래도 행복해요. 늙으막에 죽기전에 만났으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죠?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게 되면 정말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책인지 아무리 얘기해도 부족하다.
사성제가 정말 대단한 법문이라는 것! 사성제는 ’고집멸도‘ 하면 끝나는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했을까 했는데
괴로움이 진리라는 것을 아무도 몰라. 누구만 아느냐 하면 18불공법을 가진 부처님만 아시는 거예요. 18불공법이라는 부처님의 지혜로만 알 수 있어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고성제’
'집성제-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하는 성스러운 진리' 성스러운 진리! 부처님만 아시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나와요.
우리 중생들의 '어 인생은 괴로운거야 고집멸도' 그런 의미가 아니예요.
우리가 영문에 통달하지 않아도 한문에 통달하지 않아도 산스크리트어나 티벳어에 통달하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글을 번역한 스님은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천재중에 천재이신 분이예요. 저하고도 전생에 인연이 있더라구요. 금생도 인연이 있어요. 번역하신 스님께 간절하게 부탁을 했어요. 5대 논서, 한국은 대승불교가 들어오다가 말았다. 교학 체계가 없다. 반야를 얘기하면서 반야에 대한 해설서가 하나도 없다.
현증장엄론(현관장엄론)은 반야경에 대한 해설서예요. 너무너무 좋은 책이어서 정말 많은 불자들이 읽고 함부로 불교에 대해서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해요.
(달라이라마의 ‘삶의 네 가지 진리’ 책은 사성제 법문을 일반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한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제 소원 중의 하나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점 주인이었는데 서점 주인은 못되었지만 좋은 책들을 보면 남들에게 권해 주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강해요.)
의식혁명을 쓴 데이빗 호킨슨은 사무량심을 인간의 마지막 수행단계로 보는 거예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기쁨, 평등(버릴 사를 써서 평등이라고 해요.)
지난 시간에 읽어드린 신앙수기에서 동생이 저승에서 배고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분들이 울컥해서 그냥 말을 이을 수 없는데 모~든 영가들이 자손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다 배고픈 거예요. 제가 천도제를 지내면서 제사 안 지내지? 하는데 제가 제사 지내는지 안 지내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영가들이 배고프다고, 너무너무 배고프다고, 꼴깍 넘어갈 정도로 배고프다고 얘기 하니까 얄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지장 보살님은 지옥 문 앞에서 눈물 마를 날이 없으시겠다. 당연히 없지요, 중생들에게 아무리 일러줘도 엉뚱한 짓만 하고 해서는 안될 짓만 골라서 하니 눈물 마를 날이 있겠어요? 그리고 춥고 배고픈 영가들은 누군가 외부에서 공덕을 짓고 해줘야 되는데 그게 안되니까 얼마나 힘들어?
지장보살님의 자비심, 비심. (悲-연민, 무조건적 사랑)의 사랑.
보살의 길이라는 책은 기도문 모움집이더라구요.
사무량심(자비희사)을 기도문으로 만든거예요.
행복(자)- 모든 유정들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들을 얻게 하소서!
무조건적인 사랑(비)- 모든 유정들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들을 여의도록 하소서!
기쁨(희)- 모든 유정들이 괴로움이 없는 행복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평등(사)- 모든 유정들이 친소, 애증등의 양변에서 벗어나서 평등심에 머물도록 하소서!
'평등심 수행'이 마지막 단계 수행이예요. 그래서 거기서 보살도를 이룬다. 완성한다고 나와요.
붓다브레인, 보살의 길, 현증장엄론 전부 하나같이 일맥상통하는 거예요.
평정심을 기르고 평등한 마음을 기르게 되면 우리가 정말 많은 번뇌 망상으로 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하게 돼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의욕을 포기하고 버려라 이런 건 없어요 그죠? 갈망(갈애, 목마름)은 고통을 끌어오는데, 버려야할 의욕에 들어가요. 이러한 부분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면서 공부하세요. 안늦었어요. 공부를 하게되면 하는 만큼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나게 돼요.
까페 올라온 신앙수기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린 분의 글입니다. 2탄이예요.
< 관음시식 한가지 더(영가 옷) >
안녕하세요!
요즘 부쩍 글을 자주 올리고 있는 각혜행입니다 ^^
지난 번 새해 지장기도 첫날 꾼 꿈 이야기를 올리고 나서
많은 법우님들께서 공감, 격려해주셔서
글 쓰기 전에 개인적인 일을 자세히 인터넷 공간에 쓰는 것에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래도 다른 법우님들과 공유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 어루만져주시는 자상한 댓글 달아주신 법우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 올립니다.
오늘은 한 가지 더 생각난 게 있어서 추가로 적으려고 하는데요.
1월 2일에 동생 꿈 꾸고 나서는 대화 내용에 충격을 받은 상태로 계속 동생이 한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오늘까지 쭉 속상해하면서 지냈거든요.
처음엔 동생이 그토록 배고팠다는 말만 생각나서 슬프고 속상하기만 했는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죽으면 저런 상태가 되는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불교의 생사 문제에 대해서 생각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티벳 사자의 서라든가 여러 불교 지식글에서 보던, 사람이 죽고 나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묘사들 솔직히 지금까지는 크게 와닿은 게 없고 안믿어진다기 보다는 봐도 안 본 것 같은... 체감되지 않는 그저 글로 보는 지식일 뿐이었는데 꿈에서 동생이 한 말, 세상이 온통 깜깜한 어둠 뿐이고 너무 배고파서 죽고 싶었다는 그 말이 너무 생생해서 사람이 죽으면 저런 상태에 놓일 수 있구나 라는 것이 확 체감이 되었어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단멸론을 부정하셨잖아요.
(단멸론은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는 뜻이고 상주론은 영원히 그래도 존재한다)
그것은 즉슨, 사람이 죽어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연장선이 있다는 건데
불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죽음 이후에 저런 곤란하고 힘든 상황에 떨어질 수 있다는 거... 그 사실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지장경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불법 안에서’ 부처님 법안에서, 물 한방울, 티끌 하나 정도의 공덕을 지어도 무량하다. 무량하다 불가사의하다고 계속 강조를 하시는게 바로 이런 부분이예요.
내가 아무리 너네 조상 배 고파. 해도 그런게 어딨어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소리를 흘려보내는게 대부분이라 말이예요. 이거 굉장히 조심해야 해요.
음식을 굉장히 많이 먹는 경우가 있잖아요(*고도비만) 그것도 조상과 관련이 있어요. 제가 너무 생활불교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긴한데 그게 현실 문제잖아요?
안심정사 6개 도량 가면 영단이나 산신각에 소주 박스들이 올라와있어요. 불자들이 와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왜 올리게 했냐 하면 30년 전에 어떤 불자가 알코올중독에 걸린 거예요. 알콜 먹으면 이분은 가족들을 두들겨 패는 거예요. 술 끊으려고 별의 별 짓을 다 해봤대요, 지리산 꼭대기에서 100일 기도도 해보고 했는데 안듣는거예요.
제가 생각이 떠오르기를 이건 분명히 본인이 먹는 것이 아닐꺼다. 그러면 그 관련있는 영가가 마시면 안될까? 제가 기도하다가 찾아냈어요. 그래서 영단에 올리니까 술을 끊는 거예요.
제가 그걸로 굉장히 많은 분들에게 술을 끊게 했어요. 진짜 많은 분들 술 끊게 했어요. 그래서 아 이거 굉장히 좋은 거구나. 이거 괜찮구나! 술을 못끊고 힘든 분들은 영단이나 산각에 술을 올려라. 그러면 어느 순간에 신통 방통하게 술을 줄이거나 끊는다.
10년전에 생활법문 방송 처음 나가고 부산의 어느 법우가 논산까지 와서 펑펑 울면서 남편이 하루에 소주 2병은 기본이라고 35년을 매일 저녁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살까요? 하는데 이 분은 패지는 않는데 술이 깰 때 까지 한 얘기 또 하고 또하고...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출근하다가 법안스님께 감사인사 드리러 안가? 왜요? 나 술 끊었잖아. 어느 순간에 술 끊은걸 모르는거예요. 늦게 시작했으니까 한 독은 기본으로 읽고 한 독은 더 빨리 업장을 녹여야 되니까 보너스로 더 읽어야 된다고 두 독씩 읽어서 술 끊은 거예요.
저는 술 입에도 안댑니다.
얼마전에 어느 도사가 저를 찾아왔어요. 이 도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거예요. 스님! 사주에 무슨 글자가 들어있으면 귀도가 열리구요. 무슨 글자가 열려있으면 아수라도가 열리구요. 어느 글자가 있으면 천도가 열리고 다 열린다고 하는데 내 얘기 하고있는 거예요. 내 사주 얘기 하고있는 거예요. 그런데 내 사주 넣어준 사실이 없거든요. 처음보는 분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내 사주 가서 보고 연락해. 했는데 일주일 만에 편지가 왔어요.
이런 사주는 처음 봅니다. 감명료가 좀 비쌉니다. 얼마요? 적게는 100만원 부터 많게는 1억 받습니다. 1억짜리 입니다 해서 걱정만났네. 그런데 그분이 4월 달에 1억 퉁칠 기회가 생겨서 내가 기다리고 있어요. 사주 팔자에 따라서 육도가 열리고 안열리고 하는게 있다네요. 저는 영가들을 감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영가가 배고픈지 배 부른지 어디가 어떻게 아팠었는지 아는 힘이 있어요. 제 사주는 그런 걸 타고났다네요. 다행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관음시식을 하는 거예요. 배고픈 영가들이 배 부르라구요.)
죽음 이후에 저런 곤란하고 힘든 상황에 떨어질 수 있다는 거... 그 사실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외출하느라 전철 타고 가면서 동생 일 생각하면서 마스크 쓰고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 앞에 앉은 사람들을 보는데 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오늘까지도 계속 때때로 눈물이 났어요...
저 사람들 중에도 죽고 나서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간계 중생들의 모습이 절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금생에 삼보께 귀의했고 지장경 독경도 하고 있어서 죽고 나서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믿고 있어요. 비록 현생에 지은 악업도 무수하지만...
큰스님 지도 하에 지장기도 하면서 지장보살님 위신력과 아미타불 부처님 원력에 의지하면 분명히 구제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제 친척들은 기독교 신자들이라 제가 죽고 나서 저를 위해 관음시식이나 천도재 같은 걸 지내줄 사람은 없겠지만 남은 날들 동안 열심히 염불, 독경 하면서 부처님께 의지하면 분명히 저는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철 안에 같이 타고 가던 사람들 중에 나같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바세계 윤회의 삶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예요. 진짜. 내가 아무리 진짜라고 해도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 하는 분들도 많이 있긴 있지만 진짜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다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늘 글의 본론입니다)
동생 세상 떠나고 얼마 있다가 엄마께서 저한테 꿈을 꾸셨다며 해주신 이야기가 있었어요. 동생이 꿈에서... 옷이 없어서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옷 좀 사줘... 라고 하면서 애원했다는데 그 말씀 하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면 네가 마음이 너무 안좋을텐데... 도저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이거 진짜예요. 내가 진짜라고 하는 것은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에 대해서 확인을 하는 거예요.
20년 전 쯤 논산 본찰에 기독교 신앙을 열심히 하시던 분이 이것고 똑 같은 꿈을 꿔서 찾아온 분이 있어요. 어려서 죽은 딸에게 옷을 전달 해 줄 수 있냐고 찾아왔더라구요. 이런 꿈을 계속 꿨대요. 똑같은 상황이예요. 춥고 괴롭다고 옷 해달라고 하는데 영계에 옷을 전해줄 수 있냐고. 안심정사는 늘 영단에 보면 종이로 만든 옷들이 많이 쌓여있는게 보여요. 옷 해주라고 그러는 거예요. 종이로 만든 옷도 변화를 시켜서 본인한테 가장 잘 맞는 좋은 옷으로 바꿔줄 수 있어요. 영단에 올리면 바꿔져요.)
그 당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동생 세상 뜬 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 밤만 되면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매일같이 들 정도로 동생 사망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때였거든요.
하필 왜 그런 꿈을 꿨어... 하는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면서 어떻게든 동생 관련 일은 다 잊으려고 발버둥을 쳤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잊고 살다가 오늘 전철 안에서 사람들 모습을 보다가
퍼뜩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는데 동생이 배만 고픈 게 아니고...
옷이 없어서 춥거나, 곤란함을 크게 겪었었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제목에는 관음시식 이야기라고 적었지만 그건 지난 글에 이어지는 내용이라 그렇게 쓴 거구요. 엄밀히 말하자면 관음시식 아니고 천도재 때 올리는 옷.공양 이야기예요.
저는 다른 절은 전혀 다녀본 적 없고 안심정사가 처음 절이라 안심정사에서 참석한 것이 불교 의식 경험의 전부인데요.
불교 신자가 된 지 얼마 안되다 보니... 절에서 하는 모든 행사, 의식 등이 참 낯설고 생소했어요. 뭐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 그저 절에서 안내해주시는대로 따라할 뿐이었는데 합동천도재 때 영가들 옷 올려주는 거 그냥 불교 의식의 순서려니 하고 종무소 법우님 권유대로 적당히 올리고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엄마가 해주셨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배고팠다는 그 말과 함께 천도재 때 옷공양 올리는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는 거였구나 라는 걸
뒤늦게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기독교 성직자의 따님이셔서 평생을 교회, 성당 다니신 분이고
영가옷 이란 말은 평생 들어보신 적 없으셨을 분이예요.
저도 절에 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단어구요.
엄마한테 영가옷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데... 그런 꿈을 꾸셨다는 거.
그리고 안심정사 합동천도재 때 올리는 영가옷 큰스님께서 법문 때 해주셨던 영가옷 관련 이야기들... 그런 게 한꺼번에 연결되면서 내가 뭘 몰라도 너무 모르고 지금껏 절에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알게 된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불법의 진리는 정말 우주의 진리이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것!
평생 기독교인이셨던 엄마 꿈에 동생이 나와서 옷이 없다고 호소한 거, 중음신 상태, 혹은 제대로 천도되지 않은 영가가 생존 가족의 꿈에 나와 도움을 요청하는 거...지장경에서 그렇게 수없이 읽었던 구절
기독교인이든 불교신자든 무종교든 종교 불문 누구에게나 불법, 우주의 진리는 평등하게 똑같이 작용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걸 오늘 제대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늘 말씀하셨잖아요.
오계와 십선업을 지으면 믿든 안믿든 천상계에 간다고...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도 불법 외 외도도 선정 수행을 닦으면 색계 무색계에도 간다 하였으니 불법의 진리는 지구 인간계(뿐만 아니라 법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똑같이 차별없이 주어지는 절대 원칙이라는 거. 그것을 다시 철저하게 느꼈습니다.
불법을 믿는다고 적용되고 불교 밖에 있다고 적용되지 않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거요. 어찌보면 참 당연한 건데 이번에 잊고 있던 엄마 말씀이 생각나면서 아,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마음이 탁 들었습니다.
(중략... 전체 내용들은 안심정사 까페에 공지로 올려놓겠습니다.)
우리가 말법시대 박복중생이다 보니까,
헷갈리는데 가서 헷갈리고 다니고 있고 사이비에 가서 헷갈리고 있고 해서 정법에 잘 머물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이 법우님 너무너무 좋은 체험담, 눈물이 앞을 가리게 하는 어려움 또 그 속에서 지장보살이 되는 과정들이 나와 있네요 그죠? 불교를 아무것도 몰랐던 기독교 집안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부처님 법과 인연이 되면서 불교공부 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안심입명을 하고 우주의 진리들을 깨닫게 되게 해주시는 부분에서 너무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도 지장경 읽다보면 지장보살님 닮아가서 우리 눈에도 눈물 마를 날이 없게 되는게 현실 삶이예요. 세상 너무 슬프잖아요 그죠? 슬픈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중생들은 그게 어떤 업인지도 모르고 그냥 업을 지어서 다음 생에는 돌려 받는 다는 것을 모르고 사니까요.
영가뿐만 아니라 살아서도 춥고 헐벗은건 다 지옥 고통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계 십선업을 더욱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복을 쌓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현증장엄론 꼭 읽어보시고 저한테 오세요. 스님 같이 공부하자고 요청하세요. 그러면 공부할 거예요.
모쪼록 새해에는 더욱 더 오계 십선업을 통해서 인간락과 천상락 궁극적으로 극락이 넘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미타불
그리고 여러분 사랑합니다.
첫댓글 그렇더군요. 평정심이 핵심이더군요. 감정적인 반응이 지연되며 생각하게되고 그래서 덤덤하게되는. 그래서 시간이 좀더 천천히 흘러가게되는듯한. 지장경을 읽으며 기도를 하며 얻은 보배 중의 하나가 이것인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배우고 또 배울 수 있어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