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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만큼 등번호 18번이 어울리는 선수가 또 있을까? 아마도 2009년 세네갈전이었던 것 같다. 3년 만에 돌아온 차두리가 이제는 정말 소년이 아닌 어른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했던 그날 유난히도 그의 주변을 얼쩡대는 하얀 얼굴의 미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상대 팀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롱패스와 그라운드를 누비는 하얀 에너지가 한눈에 꽂히는 사람이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차두리에게 안겨있는 그를 보며 문득 7년 전 엑티브한 소년 차두리를 떠올렸다. 스포츠에 별반 흥분하지 않는 필자에게도 기성용은 시선이 따라붙게 하는 마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 기성용에게 18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숫자다. 2007년 올림픽 예선전으로 대중의 비난이 쏟아지자 열여덟의 기성용은 본인의 미니홈피에 과격한 돌직구를 남겼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 이 멘트는 그가 스물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기성용의 아이덴티티로 남아있다. 2009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FC로 이적하게 된 기성용은 무려 18번이라는 어마어마한 등번호를 갖게 되었다. 초록색 스트라이프티에 숫자 18을 박은 기성용의 모습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HJ SY 24 더이상 18이 아닌 그의 등번호를 문득 아쉬워하는 순간이 있었으나 이날만큼은 18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한 취재진이 공개한 기성용의 축구화. 그 위에 새겨진 암호 같은 이니셜과 숫자.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성용의 등번호 24가 아닌 HJ라는 이니셜에 남겨진 한 사람의 의미를 떠올렸다. 수시로 기성용의 연인이라 열애설을 추측 당했던 배우 한혜진의 이름을.
기성용이 흩뿌린 복선들은 이것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끊임없이 네티즌의 추측을 부르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언젠가는 H라는 이니셜로 네티즌을 열광하게 하더니 '자유로운 연애 중' '6월...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시간이 되겠다'는 의문의 표현으로 우리를 설레게 했다. 한쪽에선 한혜진의 소속사가 열애설을 반박하는 기사를 냈고 한쪽에선 기성용이 열애 사실을 제보했다. 한혜진 측에서 막고 나서면 기성용이 건수를 남겨주는 도돌이표의 반복이었다.
당시에는 경박하다며 욕을 먹기도 했던 기성용이었다. 필자 또한 그의 행동이 한혜진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스러웠다. 의도가 어찌 됐건 한쪽에서는 아니라고 못을 박는 와중에 지속적인 가십의 실마리를 남겨주는 그의 행동이 다분히 경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이러다 한혜진이 서동요의 선화공주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우려스러웠다. 아니라는데. 소문 때문에 억지 시집을 가야 했던 선화 공주처럼. 내게 한동안 기성용은 네티즌에게 마를 건네주고 소문을 내달라 사주하는 서동으로 보였다.
"여러분들께 좋은 소식? 일지 아닐지...ㅎ모르겠지만 ^^ 좋은 감정 가지고 잘 만나고 있다는 거 알려드립니다." 아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진짜였다고 하니 이보다 더 로맨틱한 드라마는 없었다. 3월 27일. 기성용은 드디어 모호하게 둘러대던 실마리를 인정했다. "어제 경기 마치고 어떻게 보냈어요?" 헤비급 폭탄선언에 기성용을 둘러싼 기자들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기성용의 주변을 가득 메운 취재진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필자 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같이 싱글벙글. 그야말로 아빠 미소를 하고 기성용을 바라보는 그 훈훈하고 이질적인 분위기에 그가 얼마나 재밌는 캐릭터인가를 체감했다. 스물다섯. 이 저돌적이고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한 이 남자가 그동안 얼마나 애가 타고 몸이 달았을까 싶어서. 수시로 던져댔던 감정의 실마리들 또한 난감한 입장의 여자친구를 배려하느라 그나마 꾹꾹 눌러 참다가 폭발한 찌꺼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애달픈 느낌이 들었다.
"저는 일단은 혜진이 누나 같은. 이 정도 여자면은 제가 바로 결혼합니다." 한혜진이 엠씨로 출연 중인 '힐링캠프'에 등장한 기성용은 의미심장한 멘트를 남겼다. 돌이켜보면 장난을 빙자한 구애였다. 이날 이경규는 솔직한 기성용에게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고 그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한혜진을 지목하여 그녀를 놀라게 했다. 립서비스라고 생각했던 그의 발언이 돌이켜보면 꽤나 진중했다. "진짜 누나 같은 여자친구 있으면 저 바로 결혼할 거 같아요." 그는 몇 번이나 한혜진을 향한 의문의 프러포즈를 퍼부었던 것이다.
"연하 같은 스타일 되게 싫어서. 그냥 오빠 하는 게 싫어요. 오글거려요. 차라리 연상이 좋아요." 쭉 연상만 사귀고 있었다던 기성용은 진한 눈빛으로 한혜진을 바라보며 "난 연상이 좋아요"라고 못을 박았다. 세 살 연상까지만 가능하다는 그에게 한혜진은 "이거 봐. 난 안돼."하며 장난을 쳤고 이런 한혜진을 기성용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바라봤다. 아무리 연상을 좋아한다던 그이지만 세 살 플러스까지만 허락한다던 그에게 무려 8살 연상의 한혜진은 사랑의 조건마저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기성용이 한혜진을 처음 만난 곳은 힐링캠프가 아닌 박지성 자선 축구대회에서였다. 이날 한혜진은 수수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타고난 미녀의 아우라만큼은 어찌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긴 머리의 청순한 누나. 한혜진을 바라보는 기성용의 심장은 아마 순간이 멈춰버린 영화와도 같지 않았을까. 2년 전. 한혜진이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을 무렵 기성용이 남긴 투정 아닌 투정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누나는 그분 있으시다고 없는 우리한테 너무해..." 장난을 거는 기성용에게 "떽!"이라고 야단을 치는 한혜진과 이에 멈추지 않고 의미를 남기는 기성용의 멘트. "임자 없는 사람은 이거 뭐 살겠나 참..ㅋ"
물론 언제나 논란과 호불호를 몰고 다니는 기성용에게 이번 일 또한 너무 경솔했다,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비난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스물다섯의 기성용이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토록 저돌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참 설레는 그림이다. 너무나 기성용답기도 하고. 너무나 스물다섯스럽기도해서. 한 취재진이 밝힌 어느 날의 기성용은 그야말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드라마의 제목은 '남자가 사랑할 때' 열애설이 터지고 한혜진의 얼굴을 잠깐 보고 헤어진 그는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 듯 자리를 빠져나와 홀로 한혜진의 집을 찾았다. 새벽 세시였다. 이런 시각에 약속도 없이 한혜진의 집을 찾은 그의 열망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는 다음날 촬영이 있는 새벽 세시의 피곤한 연인을 차마 깨울 수 없었다.
친구와의 모임에서 사무치게 연인이 보고 싶어져 새벽 세시에 그녀의 집을 찾았다가 차마 불러내지 못하고 돌아섰을 그의 뜨거운 마음. 어느 멜로 드라마가 이보다 더 애틋할 수 있을까. 언제나 화제를 흩뿌리고 다니는 스물다섯의 기성용. 등번호 18번이 누구보다 어울렸던 남자. 토크쇼에서까지 거침없는 욕설로 한혜진을 당황하게 했던 기성용의 솔직함이 이토록 뜨겁고 설레는 그림이 될 줄은 몰랐다. 드라마보다 뜨거웠던 스물다섯 남자의 구애가 눈부시다.
첫댓글 멋져요^^이쁜사랑하시길~~
기성용같은남자가 구애하면 안넘어갈여자없을듯ㅠ
넘 부러워요
정말.......진심으로 부럽습니다.ㅠㅠ
근데 8살 나이차가 좀..부럽다~~!
나이차는 숫자에 불과~~ 이쁜 사랑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