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조윤형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수도 모스크바가 아닌 지방에서 시민들과 만났다. 러시아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 이후 첫 공식 행보다. 그러나 미소 띤 얼굴과 다르게 '피의 숙청'은 시작된 모양새다. 29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전날 러시아 남서부 다게스탄 공화국 데르벤트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데르벤트는 모스크바에서 약 2000km 정도 떨어진 연안 관광도시로, 군사 전략적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관광 촉진에 대해 연설을 마친 뒤 시민들과 직접 대면하며 인사했다. 수십 명의 인파에 둘러싸인 푸틴 대통령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 속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가 하면,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그는 한 소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의 행보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암살 위협을 막고자 수천억 원의 경호비를 쓰는 등 폐쇄적인 면모를 보여온 바. 주요 외신들은 이같은 푸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국민의 지지와 사랑받는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한 것"이라며 "바그너그룹의 반란 이후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 직후 러시아 시민들로부터 환영받는 모습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당시 프리고진은 러시아 시민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고,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편 현지 매체 모스크바 타임스는 지난 28일 러시아 국방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세르게이 수로비킨(우크라이나전 합동군 부사령관)이 바그너그룹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타임스는 "수로비킨이 프리고진을 도와서 무장 반란을 계획했다"며 "반란 종료 다음날인 지난 25일 체포됐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수로비킨이 숙청 대상에 올라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군부 실세인 수로비킨이 바그너그룹의 '비밀 VIP'였다"고 풀이했다. 1987년 임관한 수로비킨은 러시아군 2인자로서 아프가니스탄, 체첸, 시리아 등 분쟁지를 거친 백전노장이다. 유능하면서도 잔인한 그는 '아마겟돈 장군', '시리아 도살자' 등으로 불리며 러시아군 군기를
강화했다.
수로비킨은 지난 2017년 시리아 내전 등에 참여해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반군 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 등 전쟁 범죄 논란에 휘말렸으나, 그는 이 일 이후 러시아 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이 됐고 최고 훈장인 러시아 연방 영웅 훈장을 받았다. 수로비킨은 시리아 임무 당시 프리고진과 함께 일하며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은 과거 수로비킨에 관해 "러시아군에서 가장 능력이 좋은 지휘관, 조국에 충성과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전 남부군 사령관을 잠시 맡았던 수로비킨의 관할 지역에는 이번 반란에서 바그너그룹이 거점으로 삼은 로스토프나도누도 있다. 미국 CNN은 바그너그룹의 '비밀 VIP' 멤버로 수로비킨을 포함해 러시아 군 및 정보부 고위 관리 최소 30명이 함께 명단에 올라있다고 전했다.
[영상] 앞에서 셀카, 뒤에서 배신자 숙청한 푸틴…러군 2인자는 '바그너 비밀 VIP'© 제공: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