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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순] 김유정 소설 문학여행
제72차 김유정 소설 [땡볕] 문학여행 2018. 7. 4
-에이 더웁다!
추억과 낭만의 강섬, 남이섬
06시 04분 춘천행 전동차를 탔다. 소설 [땡볕]을 다 읽으니 가평역이다.
남이섬으로 달려가 그녀 나미 (전상국 소설 '남이섬' 속 나미)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빌어 먹을 거! 왜 이리 무거!” 하고 내뱉으려다 지게 위에서 무색하여질 안해를 생각하고
꾹 참고 있던 [땡볕]의 덕순이, 그의 전격대담기 일부를 다시 읽는다.
이번 문학여행에 동행하는 덕순이, 저만치서 코를 골며 잘도 잔다.
에이 더웁다!
덕순이는 길가 버들 밑에다 지게를 벗어놓고는 두 손으로 적삼등을 흔들어 땀을 들인다.
덕순이 안해는 소리 없이 울고 있다.
나는 덕순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 무거우세요? 두 달 동안이나 햇빛 못 본 얼굴은 누렇게 시들고
병약한 몸으로 지게 위에 앉아 까댁이는 양이 금시라고 꺼질듯 하여 걱정입니다만.”
덕순이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복의 허리를 녹이는 땡볕 아래라서 그런가 봐유!”
나는 빈 곰방대 뿐인 덕순이에게 그래도 희망을 물었다.
“참, 병원으로 월급을 타러 간다구요?”
“그래유. 기영이 할아버지 말씀으론 병원서 월급도 주고 병도 고쳐준대유.”
나는 내 가슴을 탁! 치며 다시 덕순이에게 물었다.
“속 좁은 말씀 같지만, 병도 고치고 월급도 많이 받으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는지요?”
“참! 기자님도 별 생각을 다하네유.”
“그 월급으로 땅이라도 사들이면 되잖아요!”
“자기 땅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이곳 서울엔 넘쳐나지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유.”
“[정조]의 그 행랑어멈 말인가요? 서방님께 수작하여 얻은 200원으로 고뿌술집을 한다는!”
기자의 행랑어멈의 그 수작이란 말에 소리 없이 울던 덕순의 안해가
야윈 두 볼을 만지더니 이내 고갤 숙인다.
병들어 아무것도 못하는 게 남편에게 미안해서 그러리라.
그러다 덕순이의 이 말에 놀란 듯 얼굴을 든다.
“전 제 고향 춘천 실레마을로 돌아가고 싶어유!”
덕순의 말이 너무도 반가운 듯, 덕순의 안해도 한마디 한다.
“저두유. 저두 정말 돌아가고 싶어유! 굶어 죽더라도유!”
“두 분이 그렇게 원하니까 병원가서 병도 고치고 월급도 많이 탔으면 좋겠습니다.”
병이 괴상하면 할수록 혹은 고치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월급이 많다는데, 안해의 병은
얼마짜리가 되겠는가! 그것이 덕순이는 무척이나 궁금할 뿐!
“지게를 꼭 붙들어!”
덕순이는 지게를 지고 다시 일어나며 그 돈을 생각하는 것이니
그의 너무도 벅찬 희망의 행보를 보자니 기자의 두 눈시울이 땡볕이다.
그의 고향은 분명히 실레, 떡시루 같은 마을, 금병산에 푹 안긴 마을! 그래, 그들이
그렇게 다시 그 마을에 안겼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2018년 7월 초.
난 덕순이와 둘이서만 경춘선 전동차를 타고 춘천 실레마을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금강의 색동강이 부여 근처의 백마강이라면 북한강의 색동강은 춘천에서 가평까지의 신연강이다.
(이곳 사람들은 춘천에서 가평까지의 북한강 줄기를 신연강이라 했다)
실레마을 한들에 벼들이 싱싱하다.
춘천시내에서 바라보면 비단병풍 같다는 금병산이다.
김유정문학의 산실이다.
"있다가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그 웃음길에서 만나유!"
덕순이는 함께 사진을 박을 기회도 주지 않고 1930년대 실레마을로 힝하니 달아나 버린다.
웅장한 김유정역 앞에 섰다. 오늘은 소설 [땡볕]의 덕순이와 함께 김유정문학과
1930년대 실레농군들을 만나러 김유정 작가의 고향 실레마을에 왔다.
나의 72번째 김유정소설문학여행이다.
아침 땡볕이 뜨겁다. 드라마 [간이역]의 무대였던 옛 신남역을 향해 걷는다.
하늘엔 여우 모양의 흰 구름이 떠있다. 문득 소설 [동백꽃]의 점순이가 생각나
1930년대 실레마을 향해 "점순아!" 하고 불러본다.
추억의 간이역 옛 신남역이다. 왜 간이역은 삶의 애환이 깃발처럼 펄럭이는가.
이 간이역을 오간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립다.
간이역에 내리는 눈은 왜 다 첫눈 같은가
간이역에서 바라다보는 하늘은 왜 더 푸른가
간이역에 부는 바람은 왜 더 흔들리는가
간이역에 핀 꽃은 왜 더 향기로운가
간이역에 내리는 사람들은 왜 더 인정스러운가
간이역에 서 있는 너는 왜 더 사랑스러운가
오늘도 나는 네 인생의 간이역이 되고 싶어
봄비를 맞으며 너를 기다리고 있다
-권창순 시 [네 인생의 간이역이 되고 싶어 ]
나도 그리움이란 눈물카드로 개표를 하고 간이역을 빠져나오니 1930년대와
오늘이 공존하는 실레마을이다. 찬바람에 밀려 수어릿골 아래로 와보니
소설 [솟] 근식이 아내가 눈 위에 주저앉아 체면도 모르고 울며 발악이다.
지게를 진 사내와 아이를 업은 여자 게숙은 들병이 부부다. 들병이는 들병에 술을 담아가지고
다니며 술도 팔고 몸을 파는 여인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식민정책으로 우리 농민들은
가혹한 수탈을 당했다. 자작농이 소작농이 되고 지주와 마름의 횡포로 결국은 유랑민이 되어
[땡볕]의 덕순이처럼 도회지로 흘러들어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다.
누가 들병이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그 시대엔 목숨을 부지하는데 도덕성이 그리 중요한 게 못되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했고
그 일을 여자들이 능동적으로 해낸 것이다.
소설 [산골 나그네]의 열아홉 들병이도 병든 거지 남편을 물방앗간에 두고 노총각 덕돌이와
위장결혼을 하지만 곧 덕돌이의 옷을 훔쳐 남편에게 입히고 줄행랑을 치지 않는가.
그렇게 그들은 목숨을 이어갔던 것이다.
근식이는 안해를 뜨더말리며 두볼이 확확 딿았다 마는 안해는 남편에게 한
팔을 끄들린책 그대로 몸부림을하며 여전히 대들랴고든다.
그리고 목이 찢어지라고
「왜 남의 솟을 빼가는거야 이도적년아 ──」
하고연해 발악을 친다.
그렇지 마는 들병이 두내외는 금세 귀가 먹었는지 하나는 짐을 하나는 아이를
들러업은채 언덕으로 늠늠히 나려가며 한번 돌아다보는 법도 없다.
안해는 분에 복바치어 고만 눈우에 털썩 주저앉으며 체면 모르고 울음을
놋는다.
근식이는 구경군쪽으로 시선을 흘낏거리며 씀 입맛만다실 따름 ── 종국
에는 두 손으로 눈우의 안해를 잡아일으키며 거반 울상이되었다.
「아니야 글세, 우리것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참!」
매일신보 (1935. 9.3~14)에 발표되었던 김유정 소설 [솟]의 마지막 장면이다.
김유정 작가 (1908-1937)의 생가가 고즈넉하다.
30여편의 소설을 남긴 김유정 작가는 이곳 실레마을 배경으로 [동백꽃], [봄.봄], [만무방]
[금따는 콩밭], [총각과 맹꽁이], [산골 나그네] 등 12편의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이 오늘날에도 지루하지 않고 신선함을 주는 건 따라지나 만무방들의 열린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리라. 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고난과 병고와 실연의
연속이었고 오직 하나 그의 길은 글쓰기였다. 언젠가 청년 유정을 종로에서 만난 기억이 새롭다.
형 유근과 아버지의 고롭지 못한 분쟁 때문에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청년 유정을
종로의 학사주점에서 만났다. 동동주를 서너 잔씩 마시고,
“내 청춘과 행복은 아버지를 따라 갔지요!” 하고 먼저 유정이 입을 연다.
“그 고롭지 못한 분쟁이 없었다면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살진 않으셨을 테니. 안타깝군요!”
“운명이지요, 운명!”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위로가 되지요.”
“끔찍해요!”
“뭐가요?”
“아버지가 형님에게 칼을 던진 것 말입니다.”
“칼을?”
“아마도 그 칼이 정통을 때렸다면 형님은!”
“아마도 큰 변을 당했겠지요.”
“요행 형님이 몸을 비켜서 칼이 땅에 떨어졌지요.”
“그때 무척이나 무서웠겠군요?”
“열 살이 채 못 된 나는 다르르 떨었지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에 새롭겠군요?”
“그 쪼간은 내가 슬플 때, 고적할 때, 눈물이 흐를 때, 혹은 내가 자라난 그 가정을 저주할 때,
제일 처음 나의 몸을 쏘아드는 화살이 되었지요.”
“형님의 허물이라고 생각하나요?”
“부자간의 고롭지 못한 그 분쟁이 발생하길 아버지의 허물인지 혹은 형님의 죄인지
나는 그것을 모르겠어요. 알랴지도 않치만요.”
“아버님은 당대의 수십만원을 이룩한 금만가가 아니신가요?”
“한갓 짐작하는 건 형님이 난봉을 부렸고 아버지는 그 비용을 담당하고도 터보이지
않을만치 재산을 가졌지만 한 푼도 선심치 않는 뚝뚝한 수전노이셨지요.”
“제가 몬돈 저 못쓴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버지도 자기 사후에 재산이 장님인 형의 손에 의해 탕진될 줄 대중은 하셨겠지만
생존시에는 한 푼도 아꼈지요.”
“아버님이 몇백원씩 돈을 걸고 바둑을 하셨다는데?”
“밤마다 출입도 잦고 오입도 즐겨 몸을 망쳤다고 합니다.”
“형님은 원래 아버님 속을 썩였나요?”
“형님이 애초부터 망골은 아닙니다. 사면에 흩어진 전답을 답품하랴 추수하랴
아버지 대신 수고했지요. 강원도 춘천 실레로 이삼백리씩 걸어가 달포씩이나
고생을 하며 알뜰이 가을을 했지요. 그리고 아버지의 병을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았지요?”
“그런 둘도 없는 효자가 어떻게?”
“형이 난봉이 났지요.”
“그때 장가를 들어 안해가 있었잖아요?”
“장가는 열다섯에 들었으나 열여덟 열아홉 그맘 때 지각없는 사랑에 빠졌지요.”
“누구와 말인가요?”
“어느 집 처녀와 슬며시 약혼을 해놓고 틈틈이 드나들었지요.”
“안해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얼굴도 마음에 안 들고, 시부모 섬길 줄 모르는 천치라고, 그러나 저의 형수는
착하고 다정한 분이셨지요.”
“아버님이 반대하셨겠네요?”
“물론이지요. 아버지는 절대로 받아드릴 이 수 없다고 엄명을 내렸지요.
형님은 몸이 달았지요. 아즉 총각이라고 쏘기는 바람에 부자의 자식이렸다 문벌 좋겠다
대뜸 훌걱넘은 모양이지만 그 집서 성례를 독촉하고 돈은 없고 하니 말입니다.”
“형님이 몸이 달았으니….”
“나를 귀여워한 아버지를 배신하고 형님께 아버지의 통장과 도장을 몰래 꺼내주곤 했지요.”
“형님의 폭력이 무서워서요?”
“주먹이 무섭기도 하고 그 놈의 왜떡이 먹고 싶어서! 그러다 아버지께 혼쭐이 났지요.”
“돈이 없으니 생활이 곤궁하고 형님이 힘들었겠군요?”
“그러니 아버지에 대한 보복수단으로 누이들이 매질을 당해 머리가 터지고, 옷이 찢어지고!”
“아버님은 더 노하셨겠군요?”
“그래도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 형님의 효성이 꽃을 피웠지요?”
“꽃을 피우다니요?”
“단지를 하고자 어금니로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었지요. 그러나 출혈이 선치 못함에
다듬잇돌에 그 손가락을 얹어놓고 짓이겼지만 결국 손까락만 팅팅붓고, 피도
짤끔짤끔 아무 효력도 없었지만요.”
“자, 동동주 한 잔 하십시다! 형님과 아버지의 고롭지 못한 분쟁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겠지만, 그래도 청춘이 아닙니까. 물론 몸도 아프고 그러시겠지만 힘내세요!”
“그래야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갈 길이 따로 놓였으니까요.”
“그래요, 유정님을 위해 따로 놓인 그 길을 열심히 가세요.”
우리는 학사주점을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비가 내리는 종로를 비틀비틀 걸었다.
그렇다! 누구나 자기의 길이 있는 것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길을 찾아 갈 일이다.
♣
[동백꽃] 점순이와 [봄.봄]의 점순이와 수다를 떨고 생가 옆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들고 실레이야기길을 걷는다.
금병산이다. 덕순이와 정답게 걷는다.
"모두 반갑게 만나고 달려왔구먼유"
"거기가 여기고 여기가 거기인 걸."
"하긴유! 우리 [땡볕]을 가요 [소양강 처녀]로 불러봐유!"
"좋아! 좋아!"
(1)
우람한 덕순이는 바른팔로서. 왼편쪽 소맷자락 끌어다가 땀을훑고.
네거리 네거리서 다리딱멈춰. 더위에 익은얼굴 사방사방 둘러봐.
아 --중복허리 뜨거운땡볕 처마밑뱅뱅.
(2)
지면은 번들번들 닳아자동차. 지날적 마다숨이 탁탁막혀 먼지풍겨.
덕순이 참아봐도 길물을만치. 그렇게 여유있는 얼굴들이 안보여.
아 --소맷자락 또한번땀을 거북한표정.
(3)
때마침 지나가는 어린깍쟁이. 공손히 손짓하며 대학병원 얼루가니?
이리루 곧장가요 깍쟁이의턱. 그턱이 가리킨길 덕순이는 내걸어.
아 --내어딛는 한발짝마다 무거운지게.
(4)
지게는 어깨배겨 등줄기진땀. 궁둥이 쓰릴만치 물렀다오 물렀다오.
속타는 불김불김 입으로불며. 허더덕 올라오다 엄지손에 코를힝.
아 --옆전봇대 허리에쓱쓱 문댈때답답.
(5)
당장에 지게벗어 벗어던지고. 푸른물 물에가서 자빠지고 싶은생각.
그생각 굴뚝같아 잡으련만은. 그것을 못하다니 짜증난다 짜증나.
아 --빌어먹을 빌어먹을거 왜이리무거.
(6)
그러나 지게위에 무색하여질. 안해를 생각하고 그말그말 꾹꾹참아.
그러다 제속으로 끙끙거리다. 더웁다 에이더워 자탄자탄 나올적.
아 --더갈수는 더갈순없어 더갈순없어.
(7)
덕순이 길가버들 밑에다지게. 벗어서 놓고두손 두손으로 적삼등을.
흔들어 흔들어서 땀을들인다. 바람기 한점없는 거리거리 그대로.
아 --타불었고 그위에모래 이글닳아가.
(8)
하늘을 보았으나 좀체로비맛. 못볼듯 싶어싶어 바상바상 입맛다셔.
다시고 섰을때에 별안간댕댕. 소리와 함께발등 물뿌리네 물차가.
아 --물차물차 비로소산듯 정신기반짝.
(9)
내적삼 호주머니 손을넣어서. 곰방대 꺼내물고 역정스리 집어넣네.
그이윤 담배한알 없었던거야. 그것을 깨달으니 역정역정 또역정.
아 --꽁무니가 배기지않어 안해를본다.
(10)
괜찮유 하고거진 죽는상으로. 눈물이 글썽글썽 안해안해 딱하였다.
두달을 햇빛못본 얼굴누렇게. 시들고 병약한몸 지게위에 앉아서.
아 --까댁이는 그모양모양 꺼질듯안해.
오늘도 따라지고 만무방인 우린 산딸기를 따먹고 훠이, 훠이!
"덕순이, 그날이 그리워요."
"그때 걸었던 '물음표길' 풍경 말인가유?"
"왜 난 김유정문학에 집착할까요?"
"좋아하는 거지유! 그러지말구 그때로 가봐유!"
금병산자락의 실레이야기길!
재미난 이야기 열여섯 마당과 만날 수 있으리니 가슴 설렌다.
원창고개를 향해 혼자 질문도 하고 답도 하며 ‘물음표길’을 걷는다.
“왜 금병산을 진병산이라고 그랬냐구요?”
“지금의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와 신동면 증리(실레마을) 경계에 있는 높이 652미터의
진병산은 마을 동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비단 병풍처럼 둘러섰다고 해서
금병산이라고 하지요. 진병산이라 부른 까닭은 임진왜란 때와 을미의병, 정미의병 때
우리 군사들이 진을 쳤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답니다.”
“신라고분군이 있다는데 정말입니까?”
“정말이랍니다. 그런데 소설가 김유정이 여자야 남자야 하고 묻는 건 너무 우습습니다.”
“동명의 탤런트도 있고 정치인도 있으니까 그런 말이 있을 법 하지만
소설가 김유정은 남자지요. 1930년대 우리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지요.”
“어릴 적 서울로 이사를 간 김유정이 청년이 되어 고향에 내려와 약 1년 7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 조카와 소작인의 아들 조명희군과 야학을 열며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답니다.
그리고 금병의숙이란 야학당도 세웠구요. 그리고 그때 김유정이 직접 목격했거나
체험했거나 들었던 이야기들이 훗날 소설로 만들어졌지요.”
“노란 동백꽃에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는데 사실입니까?”
“소설 [동백꽃]의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을 말하는 것이지요.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 보세요.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지요. 생강냄새 말입니다.”
“김유정 소설에는 실제의 지명들이 많이 나오지요?”
“백두고개, 거문관이 수아리골, 새고개 등 많이 나온답니다.”
“김유정 작가님의 생가 앞에서 첫 번째 마당까지가 물음표길이지요?”
“맞아요. 지금 실레이야기길의 첫 번째 마당인 ‘들병이들의 눈웃음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요. 들병이에 대해 좀 알려주시지요?”
이때다. 가까이서 여인들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우리가 알려드릴 테니 어서 이리와 앉게유!” 한다.
아마도 홍천이나 인제에서 넘어 오는 여인들이리라. 이곳 실레마을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떠날 것이다.
“자, 이 들병에 담은 술 맛! 좋을 테니 어서 한잔 하게유!”
열아홉 쯤 돼 보이는 들병이가 손을 끌어 자리에 앉히더니 술을 따른다.
“자, 떡시루 마을을 앞에 두고 시루떡으로 안주 좀 하시구유!”
계숙이라는 들병이가 시루떡 조각을 입에 넣어주니 사르르 녹는다.
“왜 우리를 들병이라고 부르는지 이젠 아셨지유!” 하고는 들병을 흔들며
저희끼리 눈웃음을 친다.
“그런데 남편들은요?”
“왜 멱살이라도 잡힐까봐 겁나유! 걱정말아유! 밤새 노름을 했을 테니
주막에 자리라도 잡으면 그림자처럼 찾아 올거예유!”
그러면서 어느 들병이는 병든 남편을 물레방앗간에 숨겨놓아야겠다고, 또
어느 들병이는 뭉태며, 덕만이며 사내들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신명난 눈웃음이다.
막걸리 몇 잔을 얻어먹고 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카드는 사절이란다.
“솥도 좋구, 맷돌도 좋구, 속곳도 좋구유!”
“콩이나 좁쌀도 좋아유!”
어느 들병이는 은비녀보다 사내의 솜바지가 더 좋단다.
“우리는 생계형작부지만 그래도 정은 두둑하지유!” 하면서
한마디씩 들병이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데.
“애교를 판다는 것도 근자에 이르러는 완전히 노동화 되었지유!”
“노동하여 생활하는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구유!”
“조선의 집시지유!”
“우리두 성한 오장육부가 있고 낌끌한 희망으로 땅을 파던 농군이었지유!”
“농촌의 유일한 명절인 가을을 역경으로 보냈지유.”
“지주와 빗쟁이들에게 수확물을 주고는 다시 한겨울을 염려하기 위해 땀을 흘렸지유!”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거기서 분발한 것이 우리들 생활이지유!”
“아, 그렇군요!”
“뭇사람들이 구경거리라 할지 모르지만 분발하여 사는 게 중요하지유!”
젓 물린 애기를 등에 다시 들춰 업으며 한 들병이가 힘주어 말한다.
“떡시루마을에 자리를 잡아야하니까 이만 가지유!”
“그래유!”
“저기 술값을 치러야 하는데.”
“됐어유! 그냥 가게유! 조금가면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이니 즐겁게 길 가게유!
그리고 시간 있으면 아랫말 주막으로 김유정작가님과 함께 한잔하러 오게유!” 하고는
여인들이 눈웃음치며 실레마을로 내려간다.
[땡볕]의 덕순이와 막걸리를 마신다. 안주는 금병산의 바람소리와 뻐꾹새울음이다.
"제 안해는 저기서 편히 쉬겠지유?"
덕순이가 수염에 묻은 막걸리를 털며 나뭇잎 사이로 흔들거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럼요. 편안히 지내실 겁니다."
"자! 마셔유!"
"오늘 동행 고맙습니다."
"전 모처럼 왔으니까, 막차로 갈테니 휘이 둘러보고 먼저 가세유!"
난 1930년대 실레마을로 돌아가는 덕돌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잔을 비웠다.
아내는 더위에 속이 탔음인지 한길 건너 저쪽 그늘에서 팔고 있는 얼음냉수를 손으로 가리킨다.
남편이 한푼 더 보태어 담배를 사려던 그 돈으로 얼음냉수를 한 그릇 사다가 입에 먹여까지 주니
아내도 황송하여 한숨에 들이켠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하나 더 사다 주랴 물었을 때 이번에
왜떡이 먹고 싶다 하였다. 덕순이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머지 돈으로 왜떡 세 개를
사다 주고는 그대로 눈물도 씻을 줄 모르고 그걸 오직오직 깨물고 있는 아내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왜떡을 입에 문 채 훌쩍훌쩍 울며,
"저 사촌 형님께 쌀 두 되 꿔다 먹은 거 부대 잊지 말구 갚우."
하고 부탁할 제 이것이 필연 아내의 유언이라 깨닫고는,
"그래 그건 염려 말아!"
"그리구 임자 옷은 영근 어머니더러 사정 얘길 하구 좀 빨아 달래우."
하고 이야기를 곧잘 하다가 다시 입을 일그리고 훌쩍훌쩍 우는 것이다.
덕순이는 그 유언이 너무 처량하여 눈에 눈물이 핑 돌아 가지고는 지게를 도로 지고 일어선다.
얼른 갖다 눕히고 죽이라도 한 그릇 더 얻어다 먹이는 것이 남편의 도릴 게다.
때는 중복, 허리의 쇠뿔도 녹이려는 뜨거운 땡볕이었다.
덕순이는 빗발같이 내려붓는 등골의 땀을 두 손으로 번갈아 훔쳐 가며 끙끙 내려올 제, 아내는
지게 위에서 그칠 줄 모르는 그 수많은 유언을 차근차근 남기자, 울자, 하는 것이다.
1937 [여성]에 발표된 [땡볕]의 마지막 장면이다.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물박달나무는
실레이야기길우체통이다.
이 사연 저 사연에 귀를 대본다.
막걸리 몇 잔에 취한 것일까. 아니면 들병이들의 정에 취한 것일까. 나무를 바라다보니
수 천 개의 날개들이 퍼득거린다.
‘나무에는 겨드랑이도 참 많구나!’ 하면서 걷는데. 어디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한 소년이 저만치 바위에 앉아 웃고 있습니다. 바로 소설 [두포전]의 주인공 두포입니다.
“항상 조심해야지. 그 칠태 말이다.”
“걱정 마세요. 사랑이 있는 생명이란 도끼 같은 걸로 찍는다고 끊어지나요.”
“무슨 뜻이지?”
“늙으신 두 분의 사랑이 지극하시니 제가 그렇게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사랑이라!”
“조금 전에 나무에는 겨드랑이도 참 많구나 하셨지요?”
“그랬지!”
“제 날개 보고 싶지 않으세요?”
“보이지 않는데!”
“상상해 봐요. 여기 제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다구요. 그리고 용마도 곁에 있구요.
상상하면 보이거든요. 저 나무들의 날개인 나뭇잎처럼 말입니다. 저기 스님도 보이구요.”
“그래, 상상하니 보이는구나. 두 눈을 감아도 잘 보이는구나. 스님도 보이구.”
“욕심을 버리면 누구든 제 날개를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자기의 날개도!”
“그럼 내게도 날개가 있다는 거니?”
“그럼요. 그 날개로 일도 하고, 세수도 하고, 악수도 하고, 술잔도 들고, 눈물도 훔치고 그러잖아요.”
“뭐라구! 내 날개로!”
쿵! 잠깐 바위에 기대어 졸았나보다. 두포는 보이지 않고 나뭇잎들이 더 요란하게 흔들린다.
그렇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다! 나의 두 손이 나의 날개 아니던가.
하늘을 날아야만 날개인가.
실레이야기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춘천시내다. 가운데 소보록한 산, 봉의산도 보인다.
가파른 비탈길이다, 오른쪽은 확 트여 신바람으로 달려온 경춘선 전동차며,
실레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갯길을 다 올랐는데 누군가 손짓하더니,
“여보게 자네 기약서 쓸 줄 아나!” 한다.
가까이 가서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를 보니 이게 누군가! 일금 오십원에
안해를 팔아먹은 [가을]의 복만이가 아닌가!
“뭘 쓸 줄 아냐구요?” 그러자, 또
“여보게 자네 기약서 쓸 줄 아나?” 한다. 그래서,
“무슨 기약서(계약서)요?” 하니, 다시
“여보게 기약서 쓸 줄 아나?” 한다.
“그러니까 저기에 누군가 나타나면 센서가 작동하여 손짓하며 그런 질문을 하는군요?”
“그렇지유!”
“이젠,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지 말구 그냥 그때의 복만이가
되어 이야기 좀 하십시다!” 그래두,
“여보게 자네 기약서 쓸 줄 아나?” 다시 묻는다. 그래서 옆에 앉아 복만이의 어깨를 툭 치며,
“쓸 줄 아니까, 이젠 그만 하세요!” 하니
“좋아유! 쓸 줄 안다니까, 그만 묻지유 뭐!” 하면서 악수를 청한다.
“매매 계약서를 썼던 친구 재봉이가 소장사 황거풍이에게 봉변을 당했는데,
친구는 만나 보셨나요?”
“친구에겐 미안하게 됐지유!”
“친구와 짜고 한 일은 아니지요?”
“그럼유! 우리끼리!”
“안해와 짜고 그랬단 말인가요?”
“내가 얼굴에 내천자를 그리고 세상을 늘 마땅치 않게 여기는 놈이지만 그래도
영득이와 셋이서 살아야지유! 그래서 그만! 소장수야 돈 있는 놈이니!”
“그럼 복만씨는 영득이와 덕냉이 큰집으로 갔었나요?”
“큰 집에 들렀다가 안해가 도망 와 있는 마을로 갔지유! 황거풍이 그 놈이
재봉이를 앞세우고 찾아 올 게 뻔하니까유! 참, 기약서 쓸 줄 안다고 그랬지유!”
“쓸 줄 안다니까요!”
“잘 됐어유! 이젠 살 수 있게 됐어유!”
“또 안해를!”
“이번엔 안해가 아니구유! 실레이야기길 제6마당의 가을을 팔려구유!”
“힘들 텐데요.”
“뭐가 힘들어유! 제6마당의 바람, 하늘, 새소리, 꽃향기, 발자국소리 뭐 이런 것 팔겠다는대유!”
“그런 걸 어떻게 팔아요?”
“여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팔지유! 가난한 가을을 팔구 싶어유! 그러니 기다렸다가
기약서 좀 써 주고 가유! 오늘은 바람 한 되 팔려구유!”
“얼만데요?”
“일금 오십원야라!”
“누가 오십원을 주고 바람 한 되를 사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바람을!”
“그래도 가난한 그때의 가을을 팔고 싶어유! 그러니 기약서 좀 써 주고 가유!”
내가 몰인정 하게 일어서자, 복만씨가 웃으며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그럼, 지금의 넉넉한 가을을 내게 파세유!” 한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요” 하니, 충분하단다.
그래서 기약서 쓰고 지금의 넉넉한 가을의 바람 한 되를 [가을]의 덕만이에게 팔았다.
그것은 내겐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소망했다. 가난했던 복만이의 가을이 소장수
황거풍이 재봉이에게 달겨들 듯 내게 그랬음 좋겠다고 말이다.
노란 동백, 생강나무 열매다
[가을]의 복만이와 헤어져 고갯길을 내려가다가 칡덩쿨과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달고 드문드문 박혀있는 도라지와 더덕을 캐느라 산비탈서
고생이 많습니다!” 하여도,
[소낙비]의 춘호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잔약한 몸을 놀릴 뿐이다.
“낡은 치맛자락이 다리로 허리로 척척 엉기어 걸음을 방해하고,
종아리는 숲에 긁혀 쓰리겠습니다?”
“그냥 가시유. 무거운 흙내에 숨이 탁탁 막히도록 가슴을 찌르니!”
“춘호씨가 밉지 않나요?”
“그런 맘 없어유!”
도라지순 하나에 바위를 기어오르려는 춘호처를 보고,
“위험하니 바위엔 기어오르지 마세요?”
“정히 못 기어오를 그런 험한 곳이면 이렇게 칡덩쿨에 매어달리면 되지유!”
“땟국에 절은 무명적삼을 허리춤에 죽찌르고 산골에 매달려 허비적거리면
골바람 지날 때 어쩔려구 그래요?”
“볼려면 보고 맘대로 하세유!”
“어, 치맛자락이 공중에 날리네유!” 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제마다 검붉은 볼기짝이 내보인다고 칡덩쿨이 배를 잡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나도 힐끔 그 모양을 보고 뻐꾸기와 셋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얼마나 웃고 있었을까!
길로 올라온 춘호처가 혀를 찬다.
“그렇게 우스워유!”
“아니요, 우습다기 보다도-”
“이 도라지와 더덕으로 보리쌀과 사발바꿈하여 살아가는 나지만 그렇게 엿보고
웃지 말아유! 사내들이란! 내 목을 따봐유! 돈 이원은 커녕 피가 나올지도
의문이구만유! 그러니 얼찐 갈 길이나 가세유! 소낙비라도 올 것 같구먼유!”
“돈 이원이라니요?”
“알면서 뭘 그래유!”
“노름밑천 이원을 만들어 내라고 춘호씨가 성화군요?”
“그 지랄을 해야만 하는지 원!”
“나도 이주사의 껍쭉거리는 응뎅이가 미워유!”
“어서 돌아가게유! 소낙비가 내리면 쇠돌네에 가야하니까유!”
춘호처가 내려가고 멍하니 서 있는데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치더니 소낙비가 퍼붓는다.
‘흙을 등지고’ ‘따라지 목숨’에 ‘소낙비’라!
‘돈 이원으로 노름을 하여 대충 빚을 가리고 서울로 간다고!’
일확천금의 꿈이라니!
비가 그치고 흠뻑 젖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로또복권이 젖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 -하나>
비에 젖은 [소낙비]의 춘호처가 저만치 서 있다
다가가자 거반 울음인 음성으로 삼가 이뢴다. 또 센서가 작동한 것일까.
“낼 되유! 낼, 돈, 낼 되유!”
그래서 나도, 춘호처럼 목청을 돋아,
“낼?” 하니,
“네, 낼 된다유!” 한다.
그래서 나도
“꼭 되어?” 하니
“네. 낼 된다유!” 한다.
돈 이원이 변통 된다는 것이다.
이 이원으로 춘호는 노름을 하여 일확천금 하려고 하지만, 난 이 이원으로 무엇을 할까!
나도 엉뚱한 투기심에 몸이 달뜬 이 시대의 춘호가 아니던가! 하여,
쑥 빼들은 그 얼레빗으로 교만한 내 마음을 쭉쭉 내려 빗긴다.
도련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16세, [산골]의 이쁜이!
빨간 우체통 옆에 서 있다.
나를 보더니 달려와서 하는 말,
“체부님, 우리 도련님 편지 가지고 왔지유!” 하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기다림에 지쳐선지 내가 우체부로 보이나보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실레이야기길을 걷는
모든 이가 우체부로 보일 것이다.
얼마나 도련님을 애타게 기다렸을까! 이쁜이는!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던가!
씨종의 딸과 김도삿댁 도련님의 혼인이 어디 가당치나 한가!
그러나 죽음보다도 강한 게 사랑 아닌가! 기적을 낳는 게 또한 사랑 아닌가!
“날 잘 보세요. 언젠가 서울의 신림동 한 고시원에 있는 도련님의 편지를 갖다 준
그 사람입니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이뿐이! 애원하듯,
석숭이가 대신 써 준 편지를 내밀며 잘 좀 전해달라고 한다.
“잘 좀 부탁해유! 난 도련님 없인 못 살아유!”
“내 이 편지를 가지고 한번 도련님을 찾아 가보겠지만, 아무래도 고시원을 옮긴 것 같아요!”
“왜유?”
“몇 번 전화를 했었는데, 통 받질 않아요.”
“그럼, 이 이쁜이를 서울로 데려가 주세유!”
“그건 안 돼요!”
“왜유?”
“잘 아시면서! 제가 이쁜씨 서울 데려간 걸 마님이 아시면, 전 전집 속 [산골]에
갈 수도 없어요. 그리고 [산골]에 갔다가 마님한테 잡히면 그 뜰아랫방에 갇혀
며칠 씩 구메밥을 먹고요.”
“그래도 어떻게든 도련님을 만나고 싪어유!”
이때다!
이쁜이를 안해로 맞으려고 애타는 석숭이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구,
“그 편지나 잘 전해주구 그리구 우리 이쁜이 울리지 말구 빨리 경춘 전동차
타구 가게유! 아니면 그때처럼 또 봉변당해유!” 한다.
“알았어요! 한가지만 물어보고 갈 게요. 저 빨간 우체통 가득 전국의 독자들이
이쁜씨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오진 않았나요?”
“몰라유! 이쁜이 맘 건드리지 말구 얼찐 가게유!” 석숭이가 곧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라,
“갈 게요! 열심히 도련님 찾아서 이 편지 전할 테니 너무 상심 마세요!” 하고는
도망치듯 수아리골 냇물의 다리를 건넜다.
산골의 가을은 무르녹았다. 아람드리 노송이 삑삑히 늘어박히고 새새이 끼인 도토리,
벚, 돌배, 갈잎들은 울긋불긋.
[만무방]의 응칠이가 뒷짐을 딱 지고 어정어정 노닌다. 그런 응칠이 들으라고,
“잔디를 적시며 맑은 샘은 쫄쫄거리는구나!” 하니,
“저기 산토끼 두 놈은 한가로이 마주앉아 그 물을 할짝거리네!” 하고 받는다. 하여,
“이따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잎은 부수수하고 떨리네!” 하였더니! 응칠이가 볼기짝게를 두드리며,
“산산한 산들바람, 귀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한다. 다시,
“흙내와 함께 향깃한 땅김이 코를 찌르네!” 했더니,
“아니, 아니, 가시넝쿨속에 숨은 박하풀 냄새로다!” 한다.
나도 볼기짝게를 두드리며,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호아드는 게 꼭 신선 같군요!” 하였더니, 응칠이
“이렇게 코를 공중에 벌렸다 오무렸다 하여 그걸 찾아 한 입 베어 물어야 신선이지!” 한다.
“그것이라니요?” 하니,
“이렇게 구붓한 송목밑에서 코를 지면에 얕이 갖다대이고 한바퀴 비잉, 끼고 돌다가
아하, 요놈이로군! 하고 찾아내야지!” 한다.
“그 썩은 솔잎에 덮이어 흙이 봉곳이 돋아 올랐는데 그게 그것이요?” 하니
“이렇게 손가락을 꾸짖으며 정성스레 살살! 과연 귀여운 송이로다! 그런데
망할녀석, 조금만 더 나오지!” 한다.
“그걸 뚝, 따들곤 뒷짐을 지고 어실렁 어실렁 하니 선하품만 터지는군요!” 하니
“이렇게 두 팔을 벌려 먼 하늘을 바라보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면 그리고 이 송이를
한입 베어 물면 신선이지!” 한다.
나도 만무방인 응칠이를 따라 어실렁 어실렁 송목 사이를 호아드니, 곧 신선이라도 된 것 같다.
“만무방님, 나도 한입 주세요!” 하니,
“에라, 이거나 들게!” 하며 반쯤 남은 송이를 건네준다.
“이제 여기 앉아서 그만 이야기 좀 하십시다!” 하니,
응칠이가 다가와 작은 바위에 걸터앉는다.
“지금은 바쁜 농사철인데 혼자만 한가하군요?” 하고 물으니,
“매인 게 없는 몸 아니유. 오라는 데는 없으나 갈 곳은 많은 몸이유!” 하더니 휴! 한숨을 쉬고는,
“나도 그땐, 안해와 마주 앉으면 살림 좀 늘여볼까 궁리도 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빚 오십사원 갚을 길이 없어 벽에 성명서를 써 붙이고 야반도주 했지유!” 한다.
“이 땅의 모든 만무방들의 아픔이 담긴 그 유명한 성명서 말이군요?” 하니
“유명하긴유. 할 수 없어 유랑을 떠나야만 하는 이 땅의 농군들 마음이 녹아 있을
뿐이지유!” 한다. 그리고는,
“한 세 번이나 걸려서 구메밥으로 사관을 튼 이 만무방 응칠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언어로 즉 만무방들의 열린 언어로 작품을 빚은 김유정 작가님 때문에
이렇게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으니 지금은 행복해유!” 한다.
“한학을 공부했으면서도 한자를 전혀 쓰지 않고 작품을 썼으니 만무방들이
들어도 참 재밌을 겁니다!” 하니,
“그럼유. 그리고 현대를 사는 독자들이 읽어도 현대의 작품이라 생각할 만큼
생동감이 있고 재미도 클 거라고 생각해유!” 한다. 그러더니 씨익, 웃으며,
“배고프지유?”
“조금요!”
“우리 조 아래 무덤으로 가서 알자리를 보는 암탉이나 잡아먹읍시다!” 하며,
다시 뒷짐을 지고 아장아장 걷는다.
이 시대의 만무방인 나도 응칠이를 따라 뒷짐을 지고 아장아장 송림길을 걷는다.
수어릿골 냇물에 발을 담궜다. 발가락 마디마디가 노란 동백 향기처럼 알싸하다.
늘 그랬듯이 알싸하고 향긋한 노란 동백꽃 향기의 작가, 김유정을 생각한다.
강원도 지방, 풍부한 토속어로
익살스러우면서도 재치 있게
현실을 꼬집은 해학으로
민중들의 삶을 잘 그려 낸
1930년대 단편문학의 선구자, 김유정(金裕貞)
방황과 가난, 병고와 실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은 작가 김유정
만 스물아홉의 짧은 생애(生涯)였지만
그의 삶과 문학은
실레마을과 우리들 가슴에
알싸하고 향긋한 노란 동백꽃 향기로 남았네
그리움과 사랑
설렘과 기쁨으로 남았네
[김유정 작가와의 대담기]를 다시 읽으며 김유정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모든 분께 늘 감사드립니다
-고향 춘천 실레에서 김유정 작가를 만나다
“작가님, 우리들의 인연도 꽤 오래 됐지요?”
“그렇군요. 26년 전에 이곳으로 문학여행을 왔으니.”
“그때는 이곳 생가가 밭이었지요.”
“밭가에 제 생가 터라는 표지목만 쓸쓸히 서 있었지요.”
“문학기행반의 일원으로 첫 문학여행을 온 저도 그 표지목을 보고 좀 실망했지요.
그러나 작가님이 서울에서 내려와 얼마간 고향에 계시면서 농군들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야학을 할 때의 제자였던 조문희 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가슴 설레고 그랬지요.”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지요.”
“하늘나라에선 가끔 만나겠군요?”
“그런데 말이죠. (웃음) 그게 참 그래요. 스승과 제자 관계가. 난 이렇게 팔팔한 청년인데,
제자였던 그 분은 옹이시니.”
“그럼, 녹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긴요. 그런데 마음으로 보면 그때의 모습으로 보이지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사실 전 하늘나라에 간지 수십 년이 되었어도 만 스물아홉으로 살지만,
창순님은 지금 오십이 훨씬 넘었잖아요, 그렇지요?”
“숫자로 치면 멈춰선 작가님의 나이보다 제가 많지만, 우리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이니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전 오래토록 독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싶어요.”
“작가님의 작품은 요즘에 쓴 작품처럼 생동감 있고 재미있으니, 오래토록
사랑받을 것입니다. 작가님도요.”
“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과 춘천 사람들 그리고 전국의 애독자들이 저와
실레사람들과 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사랑해주시니, 늘 감사드려요.”
“이렇게 가을한, 가을아침. 작가님과 복원된 생가 마당의 평상에 앉아 차를 마시니,
너무 가을하고 즐겁습니다.”
“저도 가끔 고향집에 돌아와 전국에서 찾아오는 독자들을 보거나, 금병산 산행을 왔다가
잠깐 들렀다 가는 분들을 바라보면 참 행복하지요.”
“아마도 작가님과의 만남은 제 운명이었나 봐요. 그 일처럼요.”
“내가 녹주를 수은동 근처에서 처음 본 날 말인가요?”
“아픈 기억이겠지만 그렇지 않나요?”
“다 추억인데요, 뭐!”
“누군가 어디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든든하고 뿌듯하지요. 저한테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분들입니다. 실레마을도요.”
“어린 왕자가 별나라에 사니까, 모든 별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제겐
독자들이 그런 별처럼 보이지요.”
“저기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있는 조형물. [동백꽃]의 점순이 말입니다.”
“틈만 생기면 또 닭싸움을 시키려고 그러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점순이와 소작인 아들의 사랑은 밝고 알싸하고 향긋한데 비해
작가님의 사랑은 좀 어둡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상대는 생각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사랑을 구했으니 몸도 안 좋고!”
“점순이가 소작인아들에게 원하는 그런 사랑, 풋풋한(?) 그런 사랑은 아니였지요?”
“뭐, 그런 사랑을 원했다면 녹주나 남도의 어느 시인의 동생이나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겠지요.”
“그럼 작가님이 원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나요?”
“사랑보다는 운명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운명이라니요?”
“알다시피 저는 어려서 양친을 잃고 폭군인 형이나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누나 밑에서 눈칫밥으로 자랐지요. 하여 염인증은 거기에 깊이 뿌리를 박았지요.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더 그리울 밖에요.”
“그럼, 작가님이 머릿속 깊이 간직한 여성이 어머니 이겠군요?”
“지극히 존경하는 여성이 바로 어머니였지요. 그런 내 어머니의 한 모형이 된 것이
우연히 보게 되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 녹주였지요. 그러니 운명이라 말할 밖에요.”
“어머니로서 동무로서 연인으로서 녹주가 필요했다고 하셨는데.”
“동무나 연인보다는 어머니의 한 모형으로 녹주가 필요했지요. 애틋한 사랑보다는.”
“그래서 소설 [동백꽃]의 점순이 사랑이 더 향긋하고 알싸한 것 같습니다만.”
“몸과 마음에 상처가 많았지만, 노란 동백꽃 같은 그런 삶과 사랑을 동경했던 건 부인할 수 없지요.”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이곳 실레에 와서 노란 동백꽃 같은 삶과
사랑을 체험했으면 좋겠네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지요.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뿐이지요.”
“강가에 서도 눈을 감으면 강물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린다, 뭐 이런 말도 되겠네요?”
“눈으로만 꽃의 아름다움을 다 보았다 말할 수 없지요. 코로 향기를 알기 전엔 말입니다.”
“작가님의 소설 또한 그렇겠지요?”
“제 소설뿐이겠습니까. 모든 게 그렇지요.”
“작가님, 저는 작가님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의 만남으로 많은 독자들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바람이기도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기 ‘닭싸움을 시키려는 점순이’ 같은, 각 소설마다 중요 등장인물들의
조형물도 필요하리라 생각 됩니다만.”
“저런 조형물이라면 많은 예산이 필요하므로 쉽지 않겠지요.”
“나무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여러 등장인물들을 만들자면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러 해에 걸쳐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방법을 찾아보면 있겠지요. 뜻을 모으면요.”
“소설의 멋진 장면들을 큰 천에 그림과 같이 인쇄하여 실레이야기길
각 마당마다 걸어놓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만, 문학촌에서 여러 행사를 진행하므로 관계자분들의
뜻과 예산 등 모든 게 맞아야지요.”
“한 독자의 생각일 뿐이지요.”
“많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고 상상하면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긴 그렀습니다만. 왜 전 그런 일들이 욕심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욕심이지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자, 이제 차도 마셨으니, 우리 실레이야기길을 걸어 봅시다.”
“그러지요.”
“가을아침, 가을하늘이 참 푸르군요!”
“가을하늘을 보니 겁이 나네요!”
“또 [가을]의 복만이가 ‘기약서’ 써달라고 그럴까봐 그렇지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써달라면 써주지요. 뭐!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