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5부 30
한편 바실리 루끼치는 처음에는 그 귀부인이 누구인지 모르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서야 그녀가 남편을 버리고 간 세료자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안나가 떠난 뒤에 들어온 그로서는 그녀를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세료자에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니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 알려야 하는 건 아닌지 망설였다. 마침내 자신의 의무는 정해진 시간에 세료자를 기상시키는 것이며, 어머니든 다른 누구든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것 없이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그는 옷을 입고 문쪽으로 가서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들의 애무와 그들의 목소리, 그들이 나누는 얘기들, 그 모든 게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고개를 내젓고 한숨을 내쉰 뒤 문을 닫았다. ‘10분만 더 기다리자’ 그가 헛기침을 하고 눈물을 닦으며 생각해싿.
그 시각 집안 하인들 사이에서는 작은 소요가 일었다. 마님이 오셨으며 까삐또니치가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는 것, 그래서 그녀가 지금 도련님 방에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 터였다. 한편 주인 나리는 항상 9시 조금 지난 시각에 도련님 방에 들르시는데, 부부가 마주쳐서는 안 되니 그녀를 제지해야 한다고 다들 생각했다. 조인 나리의 몸종인 꼬르네이는 수위실로 달려가 누가 어떻게 그녀를 들여보냈는지 묻고는 까삐또니치가 들여보내고 데리고 갔다는 걸 알게 되자 노인에게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이 일로 그를 쫓아내야 한다고 꼬르네이가 말하자, 완강하게 침묵을 지키던 수위는 마침내 꼬르네이에게 달려들더니 그의 얼굴 앞에서 두 팔을 휘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자네 같으면 들여보내지 않았겠지! 10년 동안 마님을 모셨는데, 내가 본 건 인자한 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네. 그래, 지금 가서 말하지 그래. 자, 어서 나가라고 말이야! 자네는 정치라는 걸 세세하게 잘 알고 있지 않나! 아무렴! 주인 나리의 너구리 털 외투를 몽당 긁어다가 훔쳐 가질 않나, 자신이 한 짓이나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걸!”
“졸병 놈 같으니!” 꼬르네이가 경멸스럽다는 투로 내뱉고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유모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생각을 좀 해보세요, 마리아 예피모브나. 집에 들이고서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답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께서 이제 나오셔서 도련님한테 가실 텐데 말이죠.”
“일 났네. 일 났어!” 유모가 말했다. “꼬르네이 바실리예비치, 어떻게든 나리를 붙잡아 두세요. 나는 어서 가서 마님을 모시고 나올테니. 일 났군, 일 났어!”
유모가 들어섰을 때 세료자는 어머니에게 나젠까랑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다가 둘이 같이 엎어져 세 바퀴나 굴렀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나는 세료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과 변화무쌍한 표정을 바라보며 손의 감촉을 느꼈지만, 그가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 가야 한다, 아이를 두고 가야만 한다. 그녀가 느끼고 생각하는 건 오로지 이 한 가지뿐이었다. 문가로 와서 기침을 하는 바실리 루끼치의 발소리와 점점 가까워지는 유모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앉은 채로 목석이 된 듯 말을 하지도, 일어나지도 못했다.
“마님, 사랑스러운 우리 마님!” 유모가 안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과 어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하느님께서 생일을 맞으신 도련님께 기쁨을 안겨 주셨네요. 마님께서는 하나도 안 변하셨군요.”
“아, 유모, 집에 있는 줄 몰랐어요.” 순간적으로 정신이 든 안나가 말했다.
“여기 사는 건 아니에요. 딸아이랑 살고 있답니다. 도련님 생일을 축하드리려고 왔어요, 안나 아르까지예브나, 어여쁘신 마님!”
유모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또다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세료자는 두 눈과 미소를 환히 빛내며 한 손으로는 어머니를,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를 잡고서 통통한 맨발로 양탄자 위를 굴렀다. 자기가 좋아하는 유모가 어머닐르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자 신이 났던 것이다.
“엄마! 유모는 자주 날 보러 와요. 그리고 올 때면…..” 세료자가 하던 말을 멈췃다. 유모가 어머니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건네자 그녀의 얼굴에서 수치심 비슷한 겁먹은 표정이 번지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어머니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안나는 세료자에게 다가갔다.
“사랑스러운 내 아들!”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안녕’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그것을 말해 주었고, 세료자 또한 알아차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꾸찌끄!” 그녀가 세료자가 아기였을 때 부르던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엄마 잊지 않을 거지? 너는…….” 그러나 더 이상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때 아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말들을 그 뒤로 얼마나 많이 떠올리곤 했던가!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세료자는 어머니가 자기한테 뭘 말하고자 하는지 전부 이해했다. 어머니가 불행하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심지어 그는 유모의 귓속말도 알아들었다. “항상 9시 지나서…….” 그것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이는 눈치챘다.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왜 어머니의 얼굴에서 수치심과 두려움이 번진 것일까…….. 어머니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아버지를 두려워했고, 무언가를 부끄러워했다. 의혹을 풀기 위해 그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 어머니가 가여웠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어머니에게 꼭 안긴 채 속삭였다.
“아직 가지 마세요. 금방 오시지는 않을 거예요.”
어머니가 아들을 품에서 떼어 냈다. 아들이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나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세료자의 겁먹은 표정에서, 그녀는 아들이 아버지에 관해서 말하고 있을 분 아니라, 마치 자신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듯한 기색을 읽어 냈다.
“세료자, 아가야…….” 그녀가 말했다. “아빠를 사랑해 줘. 아빠는 나보다 더 착하고 좋은 분이야. 그리고 나는 아빠한테 잘못을 저질렀어. 네가 어른이 되면 판단할 수 있을 거야.”
“엄마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어요……..!”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어깨를 부여잡고서, 긴장한 탓에 떨리는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내 사랑하는 아가!” 안나가 말했다. 그녀 역시 세료자처럼 가늘게, 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바실리 루끼치가 들어왔다. 다른 쪽 문가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유모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시나 봐요.” 그러고는 안나에게 모자를 건넸다.
세료자가 침대에 털썩 주저않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안나가 세료자의 두 손을 떼어 내 눈물 젖은 아이의 얼굴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춘 다음 재빨리 문밖으로 나갔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를 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걸음을 멈추고서 목례를 했다.
바로 조금 전에 그가 자기보다 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눈길로 그의 외모를 세세한 부분까지 한눈에 포착하자마자 그에 대한 혐오와 악의,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있다는 질투의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베일을 내리고는 걸음을 재촉하여 거의 뛰쳐나가다시피 방을 빠져나갔다.
어제 가게에서 그토록 절절한 사랑과 슬픔에 잠긴 채 골랐던 장남감을 꺼내 놓을 경황조차 없었기에, 그녀는 그것들을 그대로 숙소로 가져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