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탑골공원 옆 이발관 >
이발 3,500원, 염색 5,000원
노인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 옆 동편 골목엔
세월을 잘라내는 가위질 소리
착착착 사악삭삭
이마의 주름만큼 질곡의 나날
멀고 오랜 길 돌고 돌아서
회한의 시간을 마주한 지금
삼베처럼 푸석한 세월 한 줌이
조붓한 어깨 위로 흘러내린다
세월의 흔적을 지우는데 3,500원,
세월의 얼룩을 감추는데 5,000원
탑골공원 옆 동편 골목엔
오늘도 무심한 세월이 흘러내린다
( 葭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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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에서 생활하는 나는 가끔 길 건너 탑골공원 옆의 이발관에 가서 이발을 합니다.
그 곳에서 이발하는 사람 중의 대부분은 노인들입니다.
좁고 굽은 어깨, 조용한 걸음걸이, 혹은 단장을 집고 혹은 두셋이 벗하여 종일을
해바라기하고 귀가하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용돈이 넉넉할 리 없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용돈으로도 부담 없이 이발하고 식사하고, 또 막걸리 한 잔을 할 수 있도록
물가가 저렴한 곳이 바로 탑골공원 옆 골목 안의 풍경입니다.
점심 전이라면 탑골공원 담을 따라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골목 2층의 모 불교사찰에서 제공하는 무료 점심공양을 기다리는 행렬이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저 노인들 한 분 한 분이 왕년에는 빛나는 젊음과 삶의 의욕으로
충만한 나날을 지내 보냈을 테지.....
지금 그들의 머리카락은 은발이 되었고, 굽은 몸에 걸린 허리띠 안에는
한 줌으로 쥐어질듯이 메마른 육신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한 이발비와 염색비로 여러 개의 이발소는 항상 성업 중입니다.
이발소 의자에 색시처럼 조용히 앉아 조는 듯 실눈을 뜨고 거울을 응시하는 노인들의
초점 흐린 눈빛에서 지난날의 회한이 느껴졌습니다.
골인 직후 마라토너의 몸처럼 천근의 무게로 누르는 세월의 흔적, 3,500원만 내면
세월의 때가 묻은 삼베처럼 푸석한 머리카락을 곱게 다듬어 주고,
5,000원만 내면 얼룩진 세월을 새카만 머리카락 뒤에 살며시 감춰줍니다.
오늘도 탑골공원 옆에 나란히 선 이발소에서는 수많은 노인들이 회색빛 세월을 떨구고 갑니다.
2010년 7월 7일 수요일
첫댓글 아 ~ 서글프다 할까 하여 진즉 꼬리글을 달지 못하다가 용기를냅니다.
차라리 노인의 백발은 면류관이라 하잔았나 하늘 문전이 가까워 지는
그 어르신들 모인 탑골공원 가게되면 선생님 뵈오리다.
탑골공원의 노인들의 이발하는 모습을 참 잘 그렸네요... 노인이 좀 더 당당하고 멋있어 보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없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탑골공원의 노인들 처럼 하고 싶지 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