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초반에 압도적인 공중우세를 보이며 공산군을 몰아내는데 큰 전과를 올리던 미공군은 1950년말에 갑자기 나타난 후퇴익의 은빛 제트기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이때까지 한국상공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활동하던 미공군의 주력기인 F-51 머스탱이나 F-80 슈팅스타는 훨씬 속도가 빠르고 날렵한 이 공산진영의 전투기에게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작고 기체에 대출력의 엔진 그리고 긴 후퇴익 과 강력한 무장으로 대표되는것이 미그기의 특징이다]
이것이 바로 소련이 야심차게 선보인 비밀무기 미그-15였다. 미그-15의 등장으로 미공군의 항공작전은 일순간 주춤하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미군에게는 다행히도 실전에 배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신예 F-86 세이버가 있었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미그-15에 맞서 한국상공에서 혈투를 벌였던 창공의 명검 F-86 세이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명검의 탄생 *
2차대전의 최우수 전투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P-51 머스탱을 개발했던 노스아메리칸사는 미공군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를무렵 미국에서도 제트전투기의 개발붐이 일고 있었는데, 노스아메리칸사 역시 곧 다가올 제트시대에 머스탱의 뒤를 미공군의 주력 전투기를 개발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 XP-86의 시험비행 장면, 후퇴익의 날렵한 외형이 특징적이다. ]
이 차세대 전투기는 XP-86이라는 명칭으로 1944년 5월부터 설계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설계는 엔진만 제트엔진으로 변경했을뿐 기존 프로펠러기의 기술을 활용하여 주익이 직선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유럽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후 독일로부터 여러 가지 항공기술이 입수되었고 특히 연합군에게 충격을 주었던 Me 262 제트전투기에 적용된 후퇴익의 기술이 주목을 받았다.
사실 Me 262는 완전한 후퇴익기는 아니었지만 독일의 항공기 개발자들이 생각해낸 후퇴익의 이론은 프로펠러기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제트전투기에게는 매우 적합한 것으로 보였다. 노스아메리칸사의 수석기사였던 L.P 그린이 진두지휘하던 항공기술팀은 독일로부터 넘겨진 후퇴익의 기술을 분석하여 자신들이 개발중이던 신형 전투기에게 적용하기로 했으며, 이로인해서 직선익을 채택한 다른 회사의 경쟁기인 P-80 슈팅스타나 P-84 썬더 전투기보다 실용화가 늦어지게 된다.
[ F-86A의 조종석, 프로펠러기에 비해서 계기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
그러나 노스아메리칸사가 후퇴익을 선택한 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후퇴익은 고속 비행시에 날개의 각도가 뒤로 주어져 저항이 감소되고 그만큼 더 속도를 얻을 수 있어 제트 전투기에게는 매우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속 비행시에는 후퇴익이 양력의 감소를 초래하므로 비행이 불안정해지는 단점이 있었으며 이로인해 이륙시나 착륙시에는 다른 기체들보다 받음각을 더 주어야 안정적인 비행을 할 수 있었다.
1947년 10월 1일, 드디어 최초의 XP-86이 창공으로 날아올랐고,이로서 창공의 명검 세이버가 새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세이버의 비행성능은 예상대로 매우 훌륭해서 고속비행시에는 매우 안정적이었고최초의 3기는 엘리슨사의 J35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나 추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GE사의 J47엔진을 채택하여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4월 26일 세이버는 전속력으로 급강하하면서 음속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룩했는데, 이것은 제트 전투기로서는 사상최초의 쾌거였다. 그러나 이런 고속비행은 조종간의 반응을 둔하게 만들기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모든 조종면을 유압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고속비행시에도 조종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한국의 하늘로!
1948년 6월 11일 미공군은 기존의 전투기 표시기호였던 P (pursuit)를 F (fighter)로 바꾸도록 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세이버의 양산형은 F-86A로 명명되게 된다. 1949년 2월 최초로 실전배치가 시작된 F-86A형은 기체의 전반적인 구조는 XP-86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엔진이 보다 강력한 J47-GE-5로 변경되었으며 이후에는 더 향상된 J47-GE-7을 장비하게 되었다. 무장은 기수에 집중되어 기수의 양측면에 2차대전당시 미공군기에 장착되어 맹활약한 12.7mm 기관총 3정을 배치하여 총 6정이 장비되었다.
[ F-86의 기수에 정렬된 12.7mm 기관총, 2차대전에서는 맹활약했으나 제트시대에는 화력이 좀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어 후에 20mm 기관총으로 대체한 F-86F도 잠시 등장했었다. 그러나 20mm는 탄약 휴대량이 적이 조종사들이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
세이버의 실전배치는 다급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역사적인 라이벌인 미그-15의 등장에 따른 것이었다. 1950년 11월 1일, 중국공군의 도색을한 미그-15가 갑자기 출현하여 미공군의 F-51 편대를 위협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그-15기들은 조직적으로 출현하여 미공군의 항공작전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상에서도 중국군이 인해전술로 UN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한데다가 하늘에서마저 주도권을 빼았길 위기에 처하자 미공군은 다급하게 신예기인 F-86 세이버를 극비리에 한국전쟁에 투입하기로 했다.
[ F-86A의 모습 F-86 은 후퇴익과 최신 제트엔진 그리고 정교한 조준이 가능한 신형 조준기 등이 탑재된 새로운 개념의 제트전투기였다]
1950년 12월 13일 최초로 한국에 도착한 F-86A는 제4 전투요격 비행단에 배치되었으며 미그가 출몰하는 압록강 이남의 지역으로 출동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12월 17일 세이버편대가 미그가 출몰하는 북쪽의 미그통로 (MiG alley)로 출격했다. 이들은 미그-15기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F-80 슈팅스타의 비행대형과 무전방식을 사용하면서 비행했으며, 이 유인전술을 성공하여 곧 여러대의 미그-15가 이들을 공격해왔다. 곧이어 F-86 조종사들은 미그-15에대해 전혀 물러섬이 없이 맞대응을 했고 치열한 공중전끝에 부르스 힌턴 소령이 미그-15를 격추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이날의 전투는 이후 2년간 한국상공에서 벌어질 세이버와 미그의 처절한 공중전의 서곡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해도 이북의 미그통로에서는 제공권을 장악하기위한 양측의 주력전투기인 세이버와 미그-15가 피비린내나는 혈투를 벌였던 것이다.
[압록강 이북부터 중국 국경까지 이르는 빨간 부분이 유명한 미그앨리로 구소련군과 종공군의 조종사들이 기량을 뽑내던 지역이다 1952년이후 최신의 F-86 세이버 전투기와 2차대전중의 에이스급 조종사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이곳에서 미국은 1:80 이라는 대전을 기록하기도 한다]
* 지속적인 개량
미그-15와의 공중전이 계속되면서 F-86A의 후속 개량형인 F-86E형이 배치되기 시작하는데 이 형은 수평미익의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아예 수평미익 전체를 가동식으로 바꾼 것으로 이른 바 'all flying tail'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사용한 것인데, 이는 고속 비행시에 기동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 수평미익의 변화를 제외하고는 겉에서 볼 때 A형에 비해서 별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내부적으로는 혁신적인 개량이 실시되었다.
[ 수원비행장에 주기중인 F-86E 세이버들의 모습이다. ]
그것은 기존에 사용되던 자이로식 조준장치를 대폭 개선하여 레이더와 컴퓨터를 이용한 거리측정식 조준장치를 장비한 것인데 최대 1300m의 거리에서도 조준사격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것이 미그-15와의 공중전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조준기의 등장으로 인해서 프로펠러기에 비할 수 없는 고속으로 공중전을 벌이는 제트시대에의 공중전에서도 미공군 조종사들은 보다 먼거리에서 정확하게 적기를 조준할 수 있었다. 이 조준기는 A형의 후기생산분 47대에도 장착되었다고 한다.
1953년 제16 전투요격 비행단 소속의 F-86E이다. 본 기체는 비행단장이었던 에드워드 헬러 중령의 기체로서 그의 이름을 딴 HELL-ER BUST X라는 노즈아트가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전자장비를 제외한 기체 자체의 전반적인 비행성능에서는 미그-15쪽이 더 우위에 있었다. 미그-15는 9000미터 이하의 고도에서 F-86E보다 기동성이 약간 떨어지는 점 말고는 고고도에서의 기동성과 상승력, 실용 상승한도에서 F-86E를 상회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F-86 조종사들은 2차대전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던데다가 우수한 조준기를 사용하여 미그-15에 대한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1951년 김포에 주둔하고 있던 제334 전투요격 비행단의 도널드 맥린 대위의 기체이다. 탬프테이션이라는 특색있는 노즈아트를 장식하고 있다. 기수 끝단의 검게 칠해진 부분이 신형 레이더 주준기가 장비된 곳이다.]
[1952년 한국전선의 제51 전투요격 비행단 25 전투요격 비행대 소속의 F-86E형이다. 동체와 주익의 노란색띠는 이 기체가 한국전선에서 활동중인 기체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중전에서 앞서고 있다고해도 이런 비행성능의 열세는 미공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이런 보고서를 접한 노스아메리칸사는 즉시 개량작업에 들어갔으며, 미그-15를 확실하게 압도하기위해서 엔진을 더욱 강력한 J47-GE-27로 장비하였도록 했다. 이에 더해서 기체의 운동성을 높이기 위해서 주익 앞전의 슬랫을 폐지하고 주익의 끝부분을 3인치 연장하고 앞부분을 6인치 길게 설계했는데, 이런 주익의 변화는 주익의 면적을 증대시켜 기동성을 현격하게 향상시켰으며 결국 중고도 이상의 고도에서도 미그-15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이 주익은 조종사드로부터 '6-3 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 F-86F형으로 MiG Mad Marine이라는 별명을 가진 기체로 제25 전투요격 비행단의 존 글랜 소령 탑승기이다. 그는 훗날 우주비행사를 거쳐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까지 한다. ]
이 개량형은 F-86F형으로 명명되었으며 곧장 한국전선으로 배치되어 F-86A와 E를 대체하고 미그와의 대결을 위해서 미그통로로 출격했다. 이후의 전투는 거의 일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미그-15에 대해서 거의 10:1의 격추교환비를 자랑하게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전적으로 미공군의 주장이며 최근에는 이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러시아측의 반론이 나오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전반적으로 F-86이 미그-15에 대해서 압도적인 전과를 올린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F-86의 우수한 성능에 더해서 2차대전에서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우수한 조종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1년 한국공군 곡예비행팀에서 활동중이었던 F-86F형이다. 현재의 한국공군 곡예비행팀인 블랙이글의 도색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전통이 이어져 오는 것이 느껴진다.]
[부품구성은 97년에 출시된 세이버 제품과 100% 동일하다 데칼만 빼고 너무 완벽한 제품이라 따로 수정할부분도 없었을듯..]
[이번제품의 유일한 차이점은 바로 이 데칼이다.. 한국전쟁 당시 유명한 노즈아트였던 수원의 K31 기지를 베이스로 하는 제 51 비행단 소속의 ACE 중 하나인 Lt. Jim Thompson 대위의 기체로 불뿜는 용 을 귀엽게 그린 노즈아트로 현재까지 수많은 세이버의 노즈아트중 가장 인기있는 마킹중 하나를 데칼의 황제라 불리는 이태리제 카로트그라프 데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데칼의 품질이야 따로 말할필요도 없지만 1기분만 재현되어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중 하나 입니다. 언제 이렇게 데칼인심이 박해졌데...]
세이버와 미그15로 대변되는 이들 전투는 세계 최초로 제트엔진을 장착한 제트 전투기들간의 공중전으로 기록되며 3년간의 공중전을 통해 총 41명의 에이스가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세이버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자신의 애기에 노즈아트를 그려녛는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이중 "The Huff" 라고 알려진 노즈아트는 가장 유명한 세이버 노즈아트중 하나 입니다.
수원의 K31 기지를 베이스로 하는 제 51 비행단 소속의 ACE 중 하나인 Lt. Jim Thompson 대위의 기체로 불뿝는 용 을 귀엽게 그린 노즈아트로 현재까지 수많은 세이버의 노즈아트중 가장 인기있는 마킹중 하나 입니다.
['THE HUFF' 외에 ㅓ비스로 다른 기체 데칼이 들어있을줄 내심 기대했는데 기대는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달랑 1기분만 들어있는것... 그래도 아카데미 제품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되던 데칼이 말끔하게 해결되어 너무 기쁘다]
[메뉴얼은 97년 발매된 메뉴얼을 손봐 그려낸것으로 예전버젼에 GSI 와의 파트너쉽으로 인한 군제칼러번호및 다양한 메이커의 색번호를 편리하게 지정해주고 있다는점이 다릅니다. 단 여기에도 타미야 에나멜 번호는 빠졌습니다. 타미야는 왕따군요.. 여기저기 타미야 에나멜 번호 지정해주는건 타미야 자기네들 메이커뿐이니..]
[메뉴얼은 97년 출시때 그려진 메뉴얼에 새로운 지정색을 추가한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워낙 매뉴얼이 잘 그려진터라 조립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 제품은 따로 달리 말할필요가 없습니다.
아카데미의 최고의 전성기때인 1997년도에 나온 제품으로 아카데미 에어로 제품중 가장 잘 나온 제품 1~2위에 항상 랭크되는 젶ㅁ으로 F-86F 세이버에 대해서는 하세가와 제품과 더불어 최고의 품질을 가진 제품으로 불리는 제품중 하나 입니다.
파일럿...얼굴도색은 진짜 못하겠습니다.
눈동자가 없는 파일럿.....
결국 이 제품은 나중에라도 카르토데칼로 다시 나와야 그 오명(?)을 씻을수 있는 비운을 타고난 킷중 하나 입니다.
아카데미에서 해주는 김에 이 킷 역시 새옷을 입혀 다시 출시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작례는 예전에 올려주신 신보선 형님의 작품~~~ 아카데미 세이버 제품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멋진 작례 입니다. ]
아카데미는 뛰어난 제품품질에 비해 이를 따라주지 못하는 조악한 품질의 데칼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이 제품은 그 안타까움을 한방에 날린 제품입니다. 이렇게 쉬운일을 왜 14년이나 걸려 나오게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지만 지금이라도 제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최소의 노력을 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세이버는 쓰인 기간이 많은만큼 다양한 에이스들의 회려한 노즈아트들이 많습니다. 이 기체들 역시 차례로 뽑아주길 바라며 비록 난로 연통과 같이 못생긴 전투기이긴 하지만 자랑스런 국산제품으로 결정판 격인 제품입니다. 초기 제트전투기로 업적도 화려하고요 편식하시지 마시고 한번 만들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한국전쟁 공중전 에이스들 *
한국전쟁 중에 미 공군 F-86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산군 MIG-15전투기 792대를 격추하고 F-86전투기 78를 손실함으로써 10대1의 대승을 거두었다, 미 공군은 이와 같은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조종사들의 탁월한 전투경험과 조종기술, 둘째 적보다 우월한 공중전 전술적용, 셋째 우수한 항공기성능과 무기체계 등 3대 요소에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전쟁 공중전의 승리는 무기체계보다 조종사의 전투경험과 기량에 의해 판가름 났다고 평가했다,
[세이버에 의해 격추되는 미그15의 모습 미그15는 세이버 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였지만 대부분 기량이 낮은 중국조종사들에 의해 조종되면서 제대로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이 우수한 소련의 조종사들에 의해 조종되는 미그15는 여전히 무서운 무기중 하나였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 공군의 F-86전투기 편대장들은 풍부한 공중전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불리한 지리적 여건과 F-86전투기특성을 감안하여 적절한 전술을 개발 적용한 반면에 공중전 경험과 기량이 부족한 공산군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유리한 여건과 우수한 무기체계성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고도로 숙련된 편대장 급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탁월한 공중전기량을 과시했다.
[세이버의 건카메라를 통해 격추되는 미그15의 모습을 연속사진을 찍은 스틸사진... 사출좌석으로 탈출하는 조종사의 모습이 선명하다]
미극동공군사령부정보참모부는 F-86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탁월한 전투기량을 과시한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2차 대전 참전경험이 있는 소련공군 조종사들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여러 가지 정보보고와 F-86전투기 조종사들이 격추한 MIG전투기에서 탈출한 조종사가 금발의 백인임을 목격했다고 보고함으로써 입증되었으나 미 극동공군은 이를 대외비밀사항으로 유지했다, 폴란드에서 서유럽으로 망명한 한 조종사는 폴란드에 파견된 대부분의 소련공군비행교관들은 한국전에 참전경험이 있는 조종사들이라고 증언했다, 소련공군의 한국전참전은 구 소련정권이 붕괴된 후 러시아정부에 의해 공표된 기밀문서에서 확인된바 있다,
[한국전쟁은 세계최초로 제트전투기와의 공중전이 일어났던 전쟁으로 그 주인공들은 세이버와 미그15였다]
그러나 소련공군 조종사로 추측되는 숙련된 조종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산군 MIG전투기조종사들은 미 공군 F-86전투기의 공격을 받으면 금방 혼란에 빠졌다.
어떤 조종사는 공중전에 임하기 전에 보조연료탱크를 장탈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허둥대는가 하면 어떤 조종사는 공격목표를 정확히 조준하지도 않고 기관포를 마구 발사했다. 또 어떤 조종사는 F-86전투기의 공격을 받았으나 항공기가 피격되지 않았음에도 항공기를 버리고 낙하산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MIG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계속 패배하자 F-86전투기와 싸우기를 기피했으며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공기와 조종사가 일체가 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미공군은 초반 세이버 A형을 투입하였으나 미그15에 성능적으로 밀리자 개량형인 E형을 투입하게 된다 이때부터 세이버 에이스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게 된다]
한국전쟁에서 공중전승리요건은 조종사의 신체적 젊음보다 전투경험과 정확한 상황판단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52년 3월에 발간된 미 공군통계분석자료에 의하면 한국전쟁에서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의 68%가 28세 이상의 노련한 조종사들이었으며 적기를 1대도 격추하지 못한 조종사의 67%가 25세 미만의 젊은 조종사들이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 중 39명의 에이스를 배출했으며F-86전투기가 격추한 MIG전투기 792대 중 305,5대가 나이 많은 에이스 조종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국전에서 제3위의 에이스인 Capt, Manuel J Fernandez 그는 한국전동안 총 14.5 기의 적기를 격추하면서 통산 3위의 에이스가 되었다]
[Capt, Manuel J Fernandez 의 애기 ]
[기수의 노즈아트로 쌈닭을 그려넣은 Capt, Manuel J Fernandez 의 퍼스널마킹]
공산군은 항상 수적으로 많은 전력을 투입해서 공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으나 미 공군 F-86전투기조종사들은 한꺼번에 많은 전투기를 공중전에 투입하면 효과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어 비능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통상 4대로 플루드 포(Fluid Four) 전투편대를 구성하고 4개 편대 총 16대로 편대군을 구성했다.
F-86전투기들은 통상 압록강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다가 MIG전투기들이 압록강을 넘어 북한상공으로 들어오면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의 미그 엘리(MIG Ally)구역에서 공중전을 했다,
[한국전에서 미공군은 독특한 4대편대를 이용한 전술을 즐겨사용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지만 중공군측의 미그15는 대부분 각개로 움직이는 바람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에서 숙련된 F-86전투기 조종사확보 문제로 애를 먹었다, 초기에 한국전에 참전했던 F-86전투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에이스들 있었으나 이들이 100회 출격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감에 따라 숙련된 F-86전투기 조종사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미 공군본부는 수송기와 폭격기 조종사를 차출해서 한국으로 보냈으나 이들은 전투기조종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또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F-86전투기 비행부대들은 전투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들의 기종전환훈련을 실시해야 했기 때문에 애로가 많았다.
미 제5공군은 숙련 급 조종사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회 출격을 마친 조종사들의 귀국을 보류시켰으며 미 공군본부는 훈련사령부에 신속히 F-86조종사를 대량으로 양성해서 한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F-86비행훈련을 마친 신임 조종사들은 한국에 도착한 후 공중전임무수행 전에 전투가능훈련을 받았으며 교관 조종사들은 신임조종사를 훈련시키는 것이 수송기나 폭격기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F-86전투기 조종사들의 최대 애로사항은 초계비행시간제한 이었다. 그래서 미 제5공군은 서해 진남포 앞 초도에 방공감시레이더를 설치하고 적 MIG전투기활동을 감시하고 있다가 레이더에 적기 활동이 포착되면 지상에서 비상대기하고 있던 F-86전투기를 긴급출동 시키는 전술을 사용했다.
미 공군F-86전투기 조종사들은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용감하게 싸워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F-86전투기 조종사들이 공중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유엔군은 북한지역 공중우세를 계속 확보했으며 종국적으로 한국전쟁을 승리로 종결 지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최초의 에이스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였다, 그는 1951년 5월 20일 MIG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한쪽 보조연료탱크가 장탈 되지 않았음에도 용감하게 싸워 MIG전투기 2대를 격추함으로써 세계 항공전사상 최초의 제트에이스가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적기 3,5대를 격추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는 에이스가 된 후 일단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MIG전투기와 공중전하기를 즐거워했던 그는 자원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국전쟁에서 총 14,5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한국전쟁 최초의 에이스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였다, 그는 1951년 5월 20일 MIG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 한쪽 보조연료탱크가 장탈 되지 않았음에도 용감하게 싸워 MIG전투기 2대를 격추함으로써 세계 항공전사상 최초의 제트에이스가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적기 3,5대를 격추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자바라 대위는 에이스가 된 후 일단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MIG전투기와 공중전하기를 즐거워했던 그는 자원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국전쟁에서 총 14,5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자바라의 애기의 일러스트]
[자바라는 증가연료탱크가 분리되지 않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싸워 2기의 적기를 갹추 미공군 최초의 제트전투기 에이스가 된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는 죠셉 멕코넬 대위였다. 그는 1952년 말에 수원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51요격비행단 제16대대에 배속된 후 1953년 1월 14일에 최초로 MIG 전투기 1대를 격추했으며 2월 16일에 5번째 MIG전투기를 격추함으로써 한국전쟁 27번째 에이스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는 죠셉 멕코넬 대위였다. 그는 1952년 말에 수원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51요격비행단 제16대대에 배속된 후 1953년 1월 14일에 최초로 MIG 전투기 1대를 격추했으며 2월 16일에 5번째 MIG전투기를 격추함으로써 한국전쟁 27번째 에이스가 되었다]
[ 죠셉 멕코넬 대위의 애기 그는 한국전 동안 총 16기의 적기를 격추해 한국전 동안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에이스가 되었다]
메코넬 대위는 1953년 4월 12일 8번째 MIG전투기를 격추한 직후 MIG전투기에 피격되어 서해상에서 탈출한바 있으나 구조 헬리콥터에 의해 곧바로 구조되기도 했다.
그는 5월 18일에 MIG전투기 3대를 더 격추해서 총 16대의 MIG전투기를 격추함으로써 한국전쟁 에이스 선두주자가 되었다, 미 공군본부는 공중전영웅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본국으로 송환했으나 그는 1952년 8월 25일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F-86H전투기 시험비행 중에 비행사고로 순직했다.
한국전쟁 에이스 중 하루에 적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조종사는 조지 데이비스 소령이었다, 미 공군 제4비행단 제33비행대대장 직을 맡고 있던 죠지 데이비스 소령은 12월 13일 하루에 MIG전투기 4대를 격추했다. 하루에 MIG전투기 4대 격추기록은 대단한 전과였으며 미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은 죠지 데이비스 소령의 공적을 높이 치하하고 특별표창 했다.
[한국전쟁 에이스 중 하루에 적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조종사는 조지 데이비스 소령이었다, 미 공군 제4비행단 제33비행대대장 직을 맡고 있던 죠지 데이비스 소령은 12월 13일 하루에 MIG전투기 4대를 격추했다. 하루에 MIG전투기 4대 격추기록은 대단한 전과였으며 미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은 죠지 데이비스 소령의 공적을 높이 치하하고 특별표창 했다. 아래는 그의 애기]
그러나 죠지 데이비스 소령은 1952년 2월 10일 군우리 상공에서 공중전 중 MIG전투기에 피격되어 전사했다. 그는 순직할 때까지 MIG전투기 12대와 YU-2폭격기 2대 도합 14대의 적기를 격추하여 에이스 선두주자였었다.
미국의회는 그의 용맹성과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한국전쟁에서 배출된 미 공군 에이스 39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첫댓글 아카데미가 이제서야 데칼놀이에 눈을 뜬것 같습니다.. 카르토에 20000원밖에 안한다는것..정말 아카데미 만쉐군요.....다만 저는 험비와 수호이가 너무 기달려져서 ㅠ 0ㅠ 이번달에 험비 나올까요ㅠㅠ 잘 보고 갑니다~!
가장 쉽게 돈벌수 있고 아이템도 늘릴수 있고 품질도 올릴수 있는 방법인데 여태 안했다는게 놀랍죠.. 너무 게을러서 그런건지... 멍청해서 그런건지. 암튼 지금이라도 나와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작례보고 구입했다가 은색도장에 많은 분들이 좌절할듯합니다^^ㅋ역시 에어로는 마킹이 화려해야 상품가치가 더있는듯하네요
은색도장에 어렵긴 하지요.. 예전에 유호범님이 작업해주신 제작기가 있습니다. 곧 정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명품 킷에 명품 데칼까지...........................!!! 그것도 아카데미
아카데미가 국산메이커라 행복해지는 순간이지요~~^^
아....제품도, 리뷰도 너무 훌륭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
으엌;;;;;;;;;으엌;;;;;;이거 하나 드디어 나왔다!!!! ㅜㅜ
데칼.......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걸 또 사면 당췌 세이버가 몇대지?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