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지륵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고려 문종 때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한 절로 당시에는 국청사(國淸寺)라고 했다. 그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伊院) 마니산성(馬尼山城)에 머물 때 이 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온하게 되었다 해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洗師)국사가 영국사로 바꾸었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현재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과 요사채만 남아 있고, 중요문화재로는 부도(보물 제532호)·3층석탑(보물 제533호)·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망탑봉3층석탑(보물 제535호) 등이 있다. 이밖에 절 입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영국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223호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1.4m, 가슴높이 둘레 11.54m 정도로 영국사 정문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큰 나무로 문화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영국사 만세루
영국사 요사체
영국사 삼층석탑
영국사 대웅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의 3층석탑. 보물 제533호. 높이 315cm. 1942년 주봉조사(朱奉祖師)가 대웅전 앞으로 옮겨놓았으며 원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넓은 석단 위에 2층 기단과 3층 탑신이 놓여 있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3층석탑이다. 하층기단의 면석은 4매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안상이 3구씩 새겨져 있다. 하층갑석도 4매로 이루어졌으며 각 모서리 끝이 반전되어 있고, 중앙에는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 굄이 있다. 상층기단도 4매로 이루어졌으나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 대신에 면을 꽉 채우고 있는 안상이 1구씩 새겨져 있다. 상층갑석은 1매로 아래에는 부연(附椽)이 있고, 윗면 중앙면에는 하층 갑석과 마찬가지로 2단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는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옥신석의 각 면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1층 옥신의 한 면에만 자물쇠가 있는 문비가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모두 4단으로 처마 끝부분이 심하게 올라가 있으며 윗면에는 옥신을 받기 위한 1단의 각형 굄이 있다. 3층 옥개석의 윗면에는 지름 7.5cm, 깊이 8cm의 찰주공이 있다. 상륜부에는 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수연(水煙) 등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기단과 옥개석에 비해 옥신석의 폭이 좁아 다소 불안정해 보이고, 둔중한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사 대웅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정면 3칸, 측면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집으로 천태산을 배경으로 높은 석축 위에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건물의 모습이 남아 있다.
영국사 대웅전내 좌로부터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영국사 만세루
천태산과 영국사
해발 715m의 천태산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돈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많은 명소가
산재되어 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족단위 등산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특히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 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들
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천태산은 4개의 등산코스로 이루어져 특히 75m의 암벽 코스를 밧줄로 오르는 맛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태산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천태산의 입구에서 가을 단풍
길을 따라 20여 분 가다보면 기암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포의 빼어난 절경을 맛
볼 수 있으며, 조금 더 길을 걸으면 1,300 여년 동안이나 이산을 지키고 있는 영국사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 233호)의 뛰어난 자태를 엿볼수 있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
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국창사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
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였다 하여 영국사라
개칭한 곳으로 지금은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영국사 현판
영국사 산신각
산신님과 산신탱화
영국사 석조
영국사 뒤편 바위에 홀로 앉아 계시는 약사여래불
영국사 요사체
굴뚝의 하얀 연기가 옛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적막한 산사의 밤을 제촉합니다.
영국사 원각국사비
보물 제534호
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龜趺)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거북 머리는 퇴화되었고, 거북등의 6각형 무늬와 비를 끼워두는 곳의 덩굴무늬는 생략되었다. 비몸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비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원각국사비명(圓覺國師碑銘)’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원각국사비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몸에 비하여 비받침이 커서 안정감을 주는 반면, 비머릿돌이 지나치게 커서 중압감을 주고 있다.『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이다.
영국사 부도
영국사 뒤편에 자리한 계월암
영국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옥천I.C.-> 4번 국도 -> 이원면 -> 501번 지방도 -> 개심저수지 -> 율치
-> 양산면 누교리 -> 영국사
첫댓글 가 보고 싶은 곳이네요.
올해 남도에 너무 빠져서....ㅎㅎㅎ....아마 이곳은 산행으로만 갈수 있다고 하던데....어느정도 올라가는지 궁금하네요....전에 몇번을 지나쳐서 아쉬웠는데...올해는 가야죠....^^
매표소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차로 영국사 까지 올라가는 길을 알려줍니다.산 뒤편으로 자가용으로 약 20분 가면 됩니다.
노오란 은행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 다녀왔습니다. 천태산이 수려하던데 산행에 미련을 남겨두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