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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중소기업,노동생산성 차이와 그 구조
앞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와 현실에 대해 남종석씨의 연재 글을 몇차례 게재할 예정이다. 경제의 문제가 곧 정치의 문제이고 노동의 문제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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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들 대기업이라고 칭하는 대상은 제조업의 경우 300명 이상 고용하는 기업을 말하며, 중기업은 300인 이하 50인 이상 고용한 기업을 일컫는다. 소기업은 50인 이하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격차에 대한 논의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대기업 노동자들보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훨씬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가 심화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격차이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자 1인당 부가가치액으로 표현된다. Y/L로 간단히 쓸 수 있다. 기업의 부가가치 를 피고용자의 수 로 나눈 값이다. 한 기업의 노동생산성은 그 기업이 연간 생산한 순부가가치 총액을 피고용자의 수로 나누어 구할 수 있다.
한 국가의 노동생산성은 거시적 지표이지만 기업별 노동생산성 집계도 가능하다. 노동생산성은 피고용자의 1인당 부가가치의 크기에 의해 결정한다. 이 부가가치는 노동자의 임금 몫과 자본의 이윤 몫으로 분배된다. 부가가치의 총액이 커지면 분배 몫도 함께 커진다. 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크기가 노동자들의 임금 크기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에 의한 재분배, 다양한 형태의 임금협상이 영향을 미치지만 노동자들의 소득은 1차적으로 그 기업의 노동생산성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나는 물론 계급의 힘관계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기업 내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생산된 순부가가치를 4:6으로 나눈다고 가정하고, 고용된 노동자가 10명이라고 하자. 노동자와 자본가가 나누는 몫의 비율을 자본소득분배율과 노동소득분배율이라고 한다. 우리의 가정에서는 4:6이다. 이 기업의 순부가가치가 1000일 경우 자본가의 이윤 몫이 400, 노동자의 임금 몫이 600이 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1인당 임금은 60이다. 단위는 생략했다.
만약 노동생산성이 2배라면, 그 기업의 순부가가치는 2000이 되고, 자본가는 800의 이윤몫을 분배받으며 노동자의 임금총액은 1200이 되고 노동자 1인당 임금은 120이 된다. 매우 간단한 논리이다.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자본가들도 높은 임금을 주고도 더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다.
물론 순부가가치가 주어진 조건에서 자본-노동 간 분배 비율이 바뀌면 노동자들의 임금 몫이 증가할 수 있다. 앞의 가정이 4:6이었다. 만약 자본-노동 분배 비율이 3:7이고, 이 기업의 순부가가치가 2000이면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총액은 1400이 될 것이고, 노동자 개인당 140을 받을 수 있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일정하다면,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총액은 그 기업의 노동생산성에 결정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림 1 : 한국과 일본 대-중소기업 노동생산성 및 임금격차>
대기업-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역시 대기업-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격차에서 비롯된다. <그림 1>은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생산성 격차와 임금격차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대기업 노동생산성과 임금을 100으로 두었을 때 한국과 일본 중소기업들의 노동생산성 및 임금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과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조금씩이라도 좁혀가고 있으며, 1990년 이후 늘 50% 이상 유지해 오고 있다. 임금에 있어서도 일본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65%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80년대 이후 대기업-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1988년 대기업의 생산성을 100으로 보았을 때,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57%이던 것이 2008년 33%이다.
대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IMF 사태 이전부터 극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역시 극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동생산성 격차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역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생산성 격차의 심화가 곧바로 대-중소기업 임금격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의 왼편 그래프에서 대-중소기업 노동생산성 격차가 극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을 보라! 바로 한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웠던 여름인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이후이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 대응하여 신규 고용을 줄이고 자본설비를 대량으로 늘린다. 대기업들은 고용은 적게 하고, 새로운 고용은 가능한 한 줄이면서 반면 설비투자를 늘려 노동생산성 향상을 꾀했다.
그러다보니 대기업들의 1인당 자본집약도(K/L)가 극적으로 증가한다. 자본집약도란 고정자본( ) 대비 노동자의 수( 의 비율이다. 마르크스식으로 표현하면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다. 자본집약도 즉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 높아지면, 노동자 1인당 생산장비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 노동자의 숫자에 비해 고정자본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을 ‘노동절약적 기술진보’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IMF 이후 대기업의 자본집약도는 더욱 증가한다. 대기업들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 해외직접투자를 늘이는 한편으로 중소기업을 하청계열화하고 그들이 시장에서 직면하게 될 위험들을 중소기업에게 전가한다. 해외 자회사를 활용한 조달체계는 국내의 하청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더 약화시켰으며, 대기업들의 지위는 더 강화된다. 대기업들은 이렇게 강화된 지위를 활용하여 중소기업들에 대한 통제력을 더 높이고, 세계시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위험을 중소기업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왔다.
또한 수출대기업들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정자본을 늘리고 연구개발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신규 고용은 줄이고, 새로운 고용은 비정규직, 사내하청 등 불안정 고용의 확대를 통해 저임금화를 확대해 왔다. 반면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에 조응하는 만큼 임금인상률을 적용하면서, 기업 내부의 성장체제에 통합해 왔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과 비교하여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없었으며, 노동생산성을 대기업과 같은 속도로 높일 수 없었다. 노동생산성 향상의 둔화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제약하는 실질적 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독자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왜 노동생산성을 높이지 못했는가? 중소기업들도 고정자본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면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낮아 모험을 감수하며 투자할 유인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식으로 이야기해서 이윤율도 낮고 이윤량도 작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으로 투자할 만큼 유인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가?
한국 제조업은 수출대기업이 최종재를 생산하여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것을 통해 성장해왔다. 대기업들은 최종재를 생산하지만 중간 투입물은 수직 계열화된 계열 자회사나 중소기업들에 하청 생산하여 납품하도록 한다. 핵심부품의 경우 계열 자회사에서 생산하고 그 외 부품들은 중소기업이 납품하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의 경우 기업 간 거래는 중간재를 공급하는 공급업체와 조달된 중간재로부터 최종생산물을 생산하는 구매업체 간의 하도급거래를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
공급업체 중소기업과 고객업체인 수출대기업은 당사자 간에 협상을 통해 납품가격을 결정하다. 이 과정에서 고객업체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대기업이 시장판매의 위험을 부담하고 중소협력사의 기본마진을 보장하는 후견인-피후견인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가 성립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납품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시장 개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대기업들은 지속적인 공급-수요 계약관계를 통해 일정한 질을 유지하는 부품들을 조달하는 체계이다.
그러나 수요독점적 시장구조와 거래관계의 전용성 등으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 있으며, 이런 갑을 관계는 공급업체의 납품단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수요독점적 시장구조란 하청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중간재를 구매하는 업체는 하청을 준 대기업이 유일한 시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거래의 전용성이란 특정 하청업체가 생산하는 중간재는 수요업체인 대기업의 ‘부품’이기 때문에 일반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을 뜻한다. 하청기업들이 생산하는 모든 재화가 전용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하청생산체제가 이와 같은 거래의 전용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다. 수요기업인 대기업은 이와 같은 계약관계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납품단가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책정한다.
대기업은 공급업체인 중소기업의 납품 원가에 일정한 마진율을 덧붙여 납품가격을 책정한다. 이와 같은 가격 책정 방식을 비용연동가격제(Cost Plus Procong)이라고 한다. 공급가격이 시장 경쟁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아래 표는 대기업이 납품하는 공급기업의 납품 단가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도표 1> 자동차 산업 도급단계별 납품단가 결정식
조성재 등(2004)의 연구에 의하면, 공급사슬의 계층구조에 따라 납품단가의 결정방식도 달라진다. 공급사슬의 계층구조라 하도급의 체계를 의미한다. 수요기업인 대기업에 직접 남품하는 기업을 1차 하청업체라 하고 1차 하청업체에 납품하는 기업을 2차 하청업체라고 한다. 하도급 체계는 그 이하로도 연결되어 있다.
1차 도급거래의 경우 재료비, 가공비, 일반관리비, 이익마진율과 연구개발비가 포함되지만 2차 도급거래에서는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책정하지 않는다. 더불어 2차, 3차 도급단계에서는 정례화된 단가인하가 진행된다. 계약기간 중 원자재가격, 에너지가격 등 원가변동 요인이 발생하면 이를 반영하여 단가를 결정한다. 석유가격 인상이나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원가인상요인이 발생하면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인상하긴 하지만 원가 상승률만큼 납품단가를 인상하지는 않는다.
반면 원가하락요인이 발생하면 이를 제품 단가하락에 크게 반영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제조 원가를 낮추어 이윤 마진폭이 증가해도 대기업이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여 공급 가격을 낮추어 버리기 때문에 마진율 상승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중소기업의 비용감소는 중소기업의 수익 증가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원가절감으로 귀결되는 구조이다.
비용연동가격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대기업들은 공급업체들의 생산과정을 체계적으로 감시한다. 중소기업의 제조과정에서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하면 즉시 이를 단가에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룩한 비용절감을 감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더군다나 <도표 1>에서도 보듯이 1차 하청업체이든 그 이하이든 비용연동 계산에서 임금인상률을 제외하고 있다. 공급업체의 임금인상률이 비용 상승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강한 유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고객업체인 대기업은 시장경쟁으로 오는 압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주기적인 단가인하(Cost Reduction) 제도를 운영한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대기업들은 납품단가를 인하시키는 것이다. 단가인하가 대기업의 선정 기준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중소기업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단가 인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중소기업들로서는 이와 같은 관행 속에서 제조원가를 낮추어야만 일정한 수익률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2차, 3차 협력단계로 내려갈수록 하도급단가 인하폭이 크다.
대기업의 지속적인 납품단가 인하는 중소기업의 수익률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중소기업이 새로운 투자를 통해 혁신을 달성해도 이것은 중소기업의 수익률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수익률 개선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투자를 많이 하든 그렇지 않든, 혁신을 하든 그렇지 않든 수익률 개선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낮은 수익률 속에서 중소기업들이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임금의 크기는 근원적으로 제약되는 측면이 있다. 임금인상으로 인한 비용 상승을 납품 단가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2> 대기업과 협력사의 매출액 영업이익률(2011년)
<그림 3> 대기업-중소기업 매출액영업이익률 변동추이 비교
<그림 2>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수출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영업이익률을 보여준다. 수출대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차,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률과 1차 이하 하청단계별 공급업체의 영업이익률은 구조적인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반적인 영업이익률이 현대차와 납품업체의 그것만큼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과 납품업체들 간의 영업이익률의 차이는 구조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림 3>은 대기업 중소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 연도별 변동추이를 볼 수 있다. 매출액영업이익률이란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의 값이다. <그림 3>에서 보듯이 10년간 대기업의 평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6.92%인 반면 중소기업은 5.36%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림 3>에서 흥미로운 점은 대기업 중소기업간 평균 수익률의 차이보다 그래프의 변동폭의 차이이다. 대기업의 경우 경기변동에 따라 매출액 영업이익률의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비교적 일정한 값을 유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5% 내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익률 편차가 매우 작은 것이다.
이는 비용연동가격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소기업은 경기변동의 위험에 노출된 빈도는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작다는 점에서 안정된 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기업이 하청기업들에게 안정된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일정한 영업이익률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소 하청업체들의 경우 기술혁신이나 여타 비용감소를 영업이익률의 증가로 연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대기업의 하청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마진폭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 혁신이나 공정혁신을 통해 비용을 감소시켜도 그 수익은 자신의 영업이익률 개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혁신을 통한 초과이윤을 누릴 수 없고, 중소기업의 혁신 성과는 대기업에 귀속되는 비용연동가격체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게 시장을 제공하는 대가로 하청중소기업의 혁신을 자신의 성과로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낮은 수익률은 투자 유인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의 투자는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새로 도입하는 고정자본(K)에는 새로운 기술이 체화되어 있다.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설비투자를 함으로써 공정혁신, 기술혁신을 이룩하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연구개발투자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 한 국가의 성장잠재력은 고정자본 투자와 연구개발투자를 얼마나 하는가에 의존한다. 이는 모든 경제학 사상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비용연동가격체계 하에서는 중소기업의 경우 연구개발투자를 통해 원가절감은 중소기업의 수익률 개선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소기업의 혁신으로 생산원가가 절감하면, 대기업들은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성과를 자신들의 원가절감, 수익률 개선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비용연동가격제 하에서는 기술개발활동의 비용만 보상될 뿐 그 성과는 보상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소기업이 이룩한 혁신성과를 대기업이 ‘약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2차, 3차 협력업체로 내려갈수록 연구개발비용은 납품단가에조차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는 보수적이게 될 수 있다. 고객업체는 비록 공급업체에게 일정한 수익을 보장함으로써 후견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우월한 협상력을 토대로 공급업체의 혁신성과를 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낮은 수익성이나 투자/연구개발투자를 통한 초과이윤을 향유할 수 없다면 중소기업들로서는 적극적인 투자를 삼가게 되고 이것은 중소기업의 생산성, 기술적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현금 흐름 사정이 대기업보다 좋지 못하고, 수익성도 낮아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지출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투자의 성과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연구개발투자에 대해 점차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상승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궁극적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도 제한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그림 4> 대-중소기업 연구개발투자액/매출액 <그림 5> 중소기업 인력부족률
<그림 4>와 <그림 5>는 중소기업의 연구개발투자집중도와 인력부족률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개발투자집중도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투자액을 나타낸다. 2000년 이후 대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집중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크게 했지만 중소기업은 같은 비율로 연구개발투자를 증가시킬 수 없었다. 연구개발투자집중도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림 5>에서는 중소기업 인력부족의 그래프를 보여주지만 생산직 인력 부족률도 높지만 연구개발직 인력 부족률은 더 높게 나타난다. 우수한 연구 능력을 지닌 연구인력이 중소기업 취직을 회피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투자 부족은 장기에 걸쳐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대기업 협상력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제약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도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산업에서 하청관계나 거래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투자 및 연구개발투자에 있어서 과소투자가 발생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앞에서 보았듯이, 중소기업의 경우 수요기업인 대기업의 요구에 따라 비용 절감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공정혁신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사업 지속성이 수요기업인 대기업과의 하청관계의 지속에 있다면, 중소기업으로서는 하청에서 경쟁업체에 밀리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기업이 요구하는 비용절감 기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원청-하청 관계가 1시점의 계약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이 지속되는 관행 속에서는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 경우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설비도입, 기술혁신을 통해 비용절감 노력을 해야만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혁신노력이 중소기업의 이익률을 개선하는 것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의 성과는 상당부분 수요기업인 대기업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대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격차는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격차에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앞에서도 썼듯이 한 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부가가치액과 피고용자의 수의 비로 나타난다. 대기업의 경우 노동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임금 인상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노동생산성이 대기업의 그것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임금인상의 폭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
그런데 앞 절에서 우리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하청관계 속에서 중소기업의 투자 및 연구개발투자의 성과가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기보다 대기업의 비용절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았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혁신성과가 있을 경우 이를 납품단가 인하로 귀결시키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이룩한 혁신성과는 대기업으로 귀속되고, 대기업의 생산성 증가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납품단가가 하락하면, 비용절감을 이룩한 중소기업의 마진폭은 줄어드는 반면 대기업의 마진폭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투자 및 연구개발 투자로 인한 생산성 향상 결과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청네트워크에 포함된 중소기업의 투자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향유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투자 및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시킨다 해도 자신의 투자 비율에 부응하는 부가가치액을 증가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며, 이는 다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제약한다.
간단히 말해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생산성 격차는 중소기업의 투자 성과를 대기업이 전유하는 구조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격차를 줄이는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 운동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 가지 시사점을 준다는 점이다. 하청중소기업의 투자 성과를 대기업이 전유할 수 있는 구조 하에서 중소기업들의 수익률은 구조적으로 제약되며, 이런 구조적 제약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폭을 근본적으로 제한한다. 대기업의 ‘수탈성’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제약한다는 아주 오래된 직관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대기업의 수탈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은 이유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수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산성 향상만큼 이뤄지고 있고, 대기업의 생산성은, 부분적으로 중소기업의 혁신 성과를 수탈하는 대-중소기업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대기업 노조들이 자신들의 임금인상, 일자리 안정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분명 노동조합으로서 자격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조가 노조다울 때 ‘민주노조’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노총의 존재 이유는 생산성 향상에 조응하는 만큼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일자리의 안정을 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를 줄이고 공장 단위를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실현하는 데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대기업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 수익률 격차, 임금 격차는 대-중소기업 간의 불평등의 관계와도 관련이 깊다.
노동조합 운동이 이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집합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아직 이 과제는 머나먼 미래의 희망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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