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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민을 모두 죽이는 길
쌀은 우리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민족은 주식인 쌀을 수천년 동안 자급자족해왔다. 우리민족에게 이렇게 중요한 쌀을 미국은 장사를 하겠다고 쌀시장을 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 글은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는 글이다. 독자여러분의 애독을 바란다. –편집자 주
한호석 (뉴욕청년학교 교사)
1. 우리 역사는 곧 쌀의 역사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세 끼 먹고 살아가는 쌀밥. 그 쌀밥에 얽혀있는 사연이 요즈음처럼 새로운 뜻으로 왈칵 눈 앞에 다가서게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야포니카종이라고 부르는 찰진 쌀을 먹으며 살아온 우리 겨레. 쌀은 우리 겨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물질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쌀을 식량 뿐아니라, 화폐로도 썼으며, 정치. 경제. 문화를 이루고 사는데 빼놓을 수 없는 구심점이었다. 쌀은 우리문화의 뿌리다. 쌀밥은 우리 겨레의 주식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 살림이 한참 어려웠을때, 우리는 이른바 안남미라고 부른 쌀을 들여 쌀수입 하다가 배급 받아 먹은 적이 있었다. 입으로 불면 못골시장에서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쌀은 인디카종이라고 하는데 미국에 와서 중국음식점에 가면 나오는 쌀밥이 그것이다. 야포니카종이건 인디카종이건 쌀은 아시아 역사와 그맥을 같이한다. 7천년 전에 인도와 중국에서 시작한 벼농사가 우리땅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11-13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부지방 나주 유적과 중부지방 혼암리 유적에서 찾아낸 벼농사 혼적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 역사는 쌀의 역사다. 사람몸과 흙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 겨레는 우리 흙에서 우리 농민들이 가꾼 쌀을 먹어야 살아가게 되어있다. 의학자들이 말하는 우리나라 사람 체질을 보면 이빨 생김새, 창자 길이, 소화액 분비, 창자안 세균 같은 것들이 모두 쌀밥을먹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고 한다.
쌀은 여러가지 반찬들과 잘 어울려 균형잡힌 식생활로 이끌어주고 단백질이 많아 우리나라 사람이 먹는 단백질의 28%가 쌀밥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이 한 해 동안 먹는 쌀은 평균 1백10 킬로그램이나 되는데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70 킬로그램을 먹는다는 사실에 견주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쌀때문에 얻는 이익은 어디 그것 뿐인가. 벼농사는 흙과 물이 마구 흘러나가는 것을 막아주어 토양자원을 보존하고, 녹색공간을 만들어주어 산소생산으로 대기를 깨끗하게 하며, 논의 물담아 놓는 능력이 댐의 다섯 배나 된다.
2. 누가 쌀시장 열라고 윽박지르고 있는가
1990년도에 우리나라 쌀생산량은 7백78만6천톤이었고, 미국은 7백2만7천톤이었다. 전세계에서 나는 쌀은 한 해에 5억톤이 조금 넘는 양인데, 거의 모두가 입으로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이고 우리가 먹는 야포니카종 쌀은 4천여만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우리나라, 일본, 중국 북부, 캘리포니아,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몇 군데에서만 나온다. 교역량도 '안남미'는 5천만톤에 이르고 있지만, 우리가 먹는 야포니카종 쌀은 겨우 2백만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쌀 3천6백60만섬을 생산하고 3천5백여만섬을 먹어 쌀자급률은 100%를 간신히 넘어섰다. 그런데 양곡전체를 아우르는 식량자급률은 91년도에 겨우 37.5%였다. 지난 85년 식량자급률이 48%였는데, 다섯해만에 5%가 낮아진 것이다. 모자라는 식량은 결국 다른 나라에서 돈을 주고 사와야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쌀시장을 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쌀시장을 열라는 윽박지름은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농산물 교역문제와 맞물려 있다.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농산물 부문은 7개 부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 농산물 부문 가운데서도 쌀문제는 아주 적은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강대국이 식량을 '무기'로 삼아 약소국들을 억누르는 시대에서 식량문제는 그저 먹고 사는 경제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안보문제다. 그래서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은 국익과 국익이 서로 날카롭게 맞서며 부딪히는 싸움판이 되고 있다. 쌀시장 개방문제는 조국동포들이 국익을 지키느냐 아니면 미국에게 빼앗기느냐 하는 운명을 결판짓는 위기를 몰고온다.
3. 위기를 벗어날 길은 있는가
우리나라가 눈앞에 닥친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일차적 책임은 정권이 져야한다. 우리나라가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에 나가 우리 농민을 살리자는 생각에서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길은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러한 길은 없는 듯하다.
사실 따지고보면 민자당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단호하게 대처할만한 능력도 자격도 없다. 민자당 정권은 농산물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공동체가 협상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막바지에 가서는 몇 가지 이익을 얻어내는 대신 쌀을 양보하는 이른바 연계협상전략을 쓰려고 할 게 뻔하다.
우리나라가 우르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들은 쌀에 대한 관세화를 예외로 할 것, 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대를 인정해줄 것, 수입물량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면 수입을 제한하는 긴급조치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해달라는 건데, 이런 요구조건은 강대국인 미국과 유럽공동체가 농산물 부문에서 합의를 이루어내기만하면 대세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민자당 정권은 지금 쌀시장을 순순히 열자고 했다가는 농민들이 들고 일어날까 두려워 눈치나 슬슬 보면서 쌀시장은 열 수 없다는 빈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영삼 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 시장을 열지 않겠다고 큰 소리를 쳤으나, 그것은 농민표를 생각해서 한 말이지 정작 쌀시장을 어떻게 지키겠다는 말은 없었다.
김영삼 씨는 2천년까지 농업에 42조원을 투자하고 농민연금제도를 만들며 농민에 대한 직접 보상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그 많은 재원을 어떻게 만들어낼런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이 그저 농민들이 듣기 좋게 빈말만 늘어놓은 듯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민자당 정권이 쌀시장 개방압력을 반대할만한 아무런 능력도 자젼도 없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 까닭은 민자당 정권이 쓰러져가는 우리나라 농업정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 커녕 더욱 짓밟고있기 때문이다. 제 나라 안에서 농민을 살리는 농업정책을 바로 펴고 있다면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오는 압력이 아무리 드세다해도 떳떳하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지만, 우리 사정은 그게 아니다. 제 나라 농민을 짓밟아온 정권이 다른 나라들 앞에서 무슨 낯짝으로 큰 소리를 칠수 있을까?
민자당 정권이 하늘끝까지 뛰어오르는 물가를 붙잡아두어야 한다는 구실로 농산물 값을 오르지 못하게 누르고, 그것도 모자라서 농산물 수입을 계속 늘리는 바람에 우리나라 농산물 값은 땅에 떨어졌으며 결국 이래저래 죽어나는 건 우리 농민들이다. 91년도 농축산물 수입은 70억달러나 되어 한 해 동안에 19.6%나 늘어났고, 시장개방율은 이른바 선진국 수준인 87.2%에 이르렀고 내년에는 마침내 선진국들을 앞질러 92.1%까지 올라갈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무역적자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어 야단인데, 91년도만 보더라도 무역적자의 41%를 차지하느 것이 다름 아닌, 4년 동안 10 곱절이나 늘어난 농림수산물 무역적자 39억달러다. 저들이 말하는 물가안정대책이란 게 농민을 죽이는 '살농정책'이 아니면 뭔가?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재정과 금융에 대한 긴축정책을 써야 마땅한 데도 민자당 정권은 이처럼 농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하는 '살농정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4. 아우성치는 농민들
그래서 우리나라 농업분야는 성장하기는 고사하고 자꾸만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농림수산부가 내놓은 '91 농업기본통계조사'를 보면 1990년 12월 1일 현재 우리나라 농가수는 1백70만2천가구, 농가인구는 6백6만8천명이라고 한다. 89년에 1백76만7천가구에 6백66만1천명이었는데 한 해 사이에 각각 4%, 9%나 줄어들었다. 농가인구 가운데 60세가 넘는 노년층은 20.7%인 1백25만5천명으로 한 해 동안 6%나 늘어나, 일할 수 있는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 땅이 한 뼘도 없는 농민이 10만9천명으로 2%, 1정보(3천평)도 못되는 적은 땅을 가지고 있는 농민은 3백30만명으로 54%나 된다. 이러한 소작농과 영세농들은 쌀시장이 열리고 미국쌀이 밀려들어오면 곧 농촌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에 놓여있다. 91년 한 해 동안 농촌에서 살 길이 막혀 밀려난 농민들은 자그마치 59만여명으로 1백명당 9명꼴이다. 전체인구에 대한 농민의 인구비는90년 15.3%에서 91년에는 14%로 낮아졌다.
지난 1993년 2월 1일 우리나라 통계청이 내놓은 '도시. 농촌 가구의 평균소득 비율'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지난 91년도 우리나라 농가소득은 도시 노동자 가구의 94.3%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농가소득이라는 것도 농사를 지어봤자 손해만 나니까 건설공사장에 가서 일을 하는 농민들이 많아져서, 농외소득이 상당히 많은 몫을 차지하고 있는 소득이다. 그래서 우리 농촌에 가보면 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두는 논밭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전남 나주군 경우, 91년도에 7만2천평이나 되는 농토가 버려진채 있었는데, 이것은 한 해 사이에 4곱절이나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모두 이러다간 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농민들은 쌀수입을 강요하는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1991년 11월에 있었던 쌀수입개방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에는 목표인 1천만명을 훨씬 웃도는 1천2백93만명이 참여했는데, 이것은 전체인구의 31%가 참여한 것이다. 온나라에서 서울로 모여든 2천여명 농민대표들이 그 서명지 뭉치들을 소달구지 4대에 나누어 싣고 주한미대사관 앞으로 행진한 사건은 오늘도 우리 기억에 새롭다. 농민들은 우리쌀 지키지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르과이 라운드협상이 열리는 제네바에까지 쫓아가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볏가마를 쌓아놓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앞날은 어둡기만하다.
5. 쌀시장이 열리고 나면
앞으로 우리나라 쌀시장이 열리면 우리 농민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기도 끔찍스런 일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농민은 모두 사라지게 되고 조국동포들은 미국쌀로 지은 밥을 먹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쌀생산비와 쌀값을 국제시세와 견주어보면 왜 그러한 비참한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에 펴낸 연구보고서를 보니까, 87년에서 89년까지 3년 동안 우리나라 쌀생산비는 10헥트아르당 평균 4백35달러로, 미국의 쌀쌩산비 1백22달러와 견주자면 세 곱절이나 높다는 것이다. 또 쌀값을 보더라도 91년도에 미국에서는 3백28달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천30달러나 되어 무려 여섯 곱절이나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쌀생산소득은 총노업소득의 52%를 차지하고 있는 판인데, 만일 미국쌀이 우리땅에 밀려들어가기만 하면 그날로 국내 쌀값은 땅에 떨어지고 농민들은 농토와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쌀은 모두 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전세계 교역량이 2백만톤에 지나지 않는 그 쌀을 사려고해도 미국이 만일 안 팔겠다고 배짱으로 나와 도저히 살수 없을 때가 온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쌀을 생산하는 캘리포니아 농업자본가들의 손안에서, 그리고 쌀을 내다 파는 시카고 곡물시장 자본가들의 손안에서 우리 겨레 4천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참으로 가련한 신세가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입으로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나 다시 들여다 먹어야 할 판이다.
80년대초 쌀수입에 관계했던 농림수산부 담당자는 쌀을 사려고 미국, 일본 심지어 이탈리아까지 찾아다니며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다 겪었다고 털어놓은 말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농협중앙회가 낸 연구보고를 보면, 쌀시장이 열리고 나면 한 해 농가소득 피해액은 3.4조원, 쌀생산을 그만두는 농가는 44%, 쌀값은 29%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피해에는 농지를 버려두는 데서 오는 피해액이나 쌀에 관련한 산업이 입는 피해는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조국땅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우리 농민이 지은 쌀을 더이상 먹지 못하게 될 날이 차츰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땅에서 수천년 동안 해오고 있는 벼농사는 더 이상 지을 수 없게 되고, 뒷날 후손들은 벼농사 이야기를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 고향마을에서 대대로 땅을 일구며 벼농사를 짓고 살아온 우리 농민들이 모조리 망해서 논밭과 집을 버리고 도회지로 쫓겨나게 생겼다. 그들이 쫓겨나면 어떻게 살아가나. 무허가 판자집에서 살아가는 도시빈민이 되거나 아니면 공단에 있는 닭장집에 지친 몸을 뉘어야 하는 값싼 노동력이 되어야 할 운명이다.
6. 개방과 개항은 다르지 않다
시장개방 문제는 그저 경제협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무역전쟁이다. 강대국들끼리 벌이는 시장개방싸움은 무역전쟁이고, 강대국이 약소국들에게 벌이는 무역전쟁의 본질은 침략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이 침략전쟁이 벌어지는 싸움판에 끌려나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에도 오늘과 같은 싸움판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에 제국주의 열강이 대포와 상품을 들이밀며 쳐들어왔을 때, 나라 운명이 양놈 왜놈 오랑캐들 침략 앞에서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 속에서 우리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던가. 그 무렵 농민의 피땀을 쥐어짜던 썩어빠지고 힘없는 조선의 봉건관료세력과 양반사대부들은 뭘 했던가. 그들은 싸울 생각은 일찌감치 내던지고 나라 이권을 모조리 외래침략자들에게 내주고 제 감투자리나 지키고 있었다.
오늘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이른바 쌀시장 개방 불가피론자들이 나타나 어차피 미국쌀이 밀려들 것이니 공연히 헛주먹질이나 하지 말고 순순히 쌀시장을 여는 게 좋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 1월 23일자 국내 짜신문에는 최 아무개라는 논설위원이 이 개방 불가피론자들을 대변해서 글을 한 편 실었다.
그는 말했다. "그저 쌀수입시장 개방반대를 외쳐야만 '멀쩡한 사람'으로 대접 받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개방반대가 애국적이며 개방 불가피론이 매국적이라는 이분논법은 가당치도 않다."
쌀시장을 어차피 열 수 밖에 없다는 그의 논리는 언뜻들으면 매우 현실에 밝은 논리처럼 들린다. 세계경제가 개방으로 흘러가고 있는 판에,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차피 수출을 해야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개방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지만, 만일 거스른다해도 피해만 입을 뿐이지 되는 건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개방 불가피론자들에게 묻는다. 국제독점자본이 세계경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오늘 '개방'이란게 도대체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하고 말하고 있는가? 개방이란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지 사실 그 내용을 들추어내면 약소국들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침략행위가 아닌가.
1세기 전에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에 대해 대포와 군함을 들이밀면서 '개항'을 하라고 쳐들어왔던 역사를 저들은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교묘하게 뒤로 감추고 있다. 개항이침략이었던 것처럼 개방도 분명히 침략이다. 단지 달라진게 있다면 개방에는 대포와 군함이 없을 뿐이다. 옛날 개항 불가피론자들은 한결같이 친일 매국논리를 뒤에 감추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않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약소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치고 과연 누가 오늘 세계경제가 제국주의 열강들이 힘없는 나라들을 밀어부치는 이른바 '개방'이라는 전략을 아무런 비판이나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뭐, 개방은 어차피 될꺼라고? 어차피 우리 농촌은 망할 거니까 미리 순순히 손들고 흰깃발이나 들자고? 개방 불가피론, 그것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개방불가피론자들에게는 쳐들어오는 오랑캐에 맞서 싸우려는 공격심리가 마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을사 오적들처럼 아예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매국논리가 스며있다.
7. 이 어둠을 몰아낼 횃불은 어디에
우리는 개방이 세계적인 추세니 어쩌니 하고 떠들기 전에 개항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땅에 밀려들어와 침략과 약탈을 저지르고 있었던 1세기 전 피묻은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에 묻는다. 외래침략자들을 몰아내려는 싸움판에 목숨 걸고 나선 사람들은 정작 누구였던가. 이름없는 농민들이었다. 죽창과 햇불을 치켜들고 침략자들이 퍼붓는 포탄 속으로 몸을 던져 쓰러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했던 그 뜨거운 얼은 오늘 어디 갔단 말인가. 피묻은 역사의 갈피마다 스며있는 항쟁정신은 우리 대에 와서는 모두 죽고 말았는가.
반침략 항쟁을 이끌던 우리 농민군들은 비록 힘이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나라를 식민지로 빼앗겼지만, 대포연기 자욱한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드리운 것은 오직 하나 농민군 손에 들린 햇불 밖에는 없었다.
오늘 우리 농민들이 미국의 쌀시장 개방압력에 반대하여 벌이고 있는 쌀지키기운동은 나라를 지키려는 농민군이 치켜든 햇불을 다시 보아야 한다. 이 어둠 속에서 누가 다시 그 햇불을 손에 들 것인가.
1993년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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