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55
천자문072
동봉
0269같을 여如
0270소나무 송松
0271갈 지之
0272성할 성盛
0269같을 여如
나는 이 글자를 보면 늘 여래가 떠오릅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듯싶습니다
보이는 것이 다 절터고
들리는 게 모두 염불소리고
'향기' 하면 연꽃이 가장 먼저 떠오르듯
같을 여如자는 곧장 여래如來로 이어집니다
후광 효과後光效果Halo effect입니다
갈 데 없는 수행자인가 봅니다
내 기억으로《금강경》제29분에 따르면
여래如來를 약래若來라 표현하십니다
여래의 '여'가 '같을 여如'자인데
약래의 '약'도 '같을 약若'자입니다
세기의 역장 쿠마라지바 큰스님께서는
금강경을 번역하면서 변주를 하고 있습니다
변주의 대가 부처님의 제자답습니다
여래如來 여거如去 여좌如坐 여와如卧라
번역해야 할 내용들을
같을 여如와 같은 뜻 다른 꼴의
같을 약若자를 놓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약래若來 약거若去 약좌若坐 약와若臥로
자유롭게 옮기고 있습니다
역장譯匠 쿠마라지바 큰스님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뛰어난 예술성이 아니고서는
생각하지 못할 문체의 아름다움입니다
같은 주제가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
계속 반복되는《금강경》변주곡은
그래서 경을 읽어가는 재미와 함께
독경 소리를 느끼는 재미가 있습니다
비발디의《사계》가 음의 변주라면
우리《금강경》은 진리의 변주입니다
경전 속에 담긴 심오한 철리哲理를
한 자 한 자 깨달아가는 맛은
그야말로 설명으로는 전달이 불가능합니다
같을 여如자는 계집 녀女에 입 구口입니다
여성女이 생명의 시원始源이라면
입口은 생각을 전하는 최초 기관입니다
여女자가 부수로 들어간 글자들은
대체적으로 성性과 관련되어 있고
저속하고 비속한 내용들로 채워져있는데
그 가운데는 건질 만한 내용들도
나름대로 꽤 있는 편입니다
같은 계집 녀女자가 가로로 놓일 때
시끄럽게 송사하다의 뜻으로
송사할 난奻자가 있는가 하면
같은 계집 녀女자가 세로로 포개질 때
아리땁다 사랑스럽다의 뜻으로
아리따울 교㚣자를 설정해 놓습니다
계집 녀女자 셋을 포개 놓고는
간음할 간姦자라 하여
온갖 허물을 여성에게 뒤집어씌우고
심지어 여성과는 관계가 없는
비역하는 것까지 계집 여女자를 넣어
비역 기㚻자를 만들어냈습니다
계집 녀女가 부수로 들어간 한자가
한자 자전의 3%에 해당하는 632자입니다
사내 남男자가 겨우 3자인데
비속어의 뜻은 한 자도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여성에게 차지하는
성sex의 관심 세계가 다양하기는 합니다
여如가 왜 '같을 여'자일까요
여女는 소릿값이고 구口가 뜻입니다
언어言가 어디서 나옵니까
으레 입口을 통해서 나옵니다
곤충을 제외한 동물들은
조류든 양서류든 포유류든 할 것 없이
입과 부리를 통해 자기 의사를 전달합니다
따라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믿음을 요합니다
사람亻말言에 믿음信을 요하는 것은
사람만이 속이고 거짓을 말하는 까닭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사실대로 표현할 뿐
술수術數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을 신信자는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글자이지요
그런데 여래(여거 여좌 여와)의 언어는
언제 어디서나 '같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 '같음'은 당체當體가 아닙니다
'여래如來'가 오심이 아니라 '오신 듯'이듯
'여거如去'는 가심이 아니라 '가신 듯'이고
'여좌如坐'는 앉음이 아니라 '앉으신 듯'이며
'여와如臥'는 누움이 아니라 '누우신 듯'입니다
여기《금강경》기록대로
같을 여如를 같을 약若으로 바꾸더라도
그 의미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셨나 하면 오신 게 아니고
가셨나 하면 가신 것도 아니며
앉으셨나 싶으면 앉으심이 아니고
누우셨나 싶으면 누우심도 아닌 모습
이를 가리켜 부처님의 정체라 할 것입니다
0270소나무 송松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대접 받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충북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가면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습니다
종이품從二品도 아니고 정이품입니다
사법부에서 정이품이 대법원 판사라면
종이품은 대법원 검사장이며
행정부에서 정이품이 장관이라면
종이품은 차관에 해당합니다
지자체에서 정이품이 광역시장, 도지사라면
종이품은 부시장 부지사입니다
교육부에서 정이품이 장관이라면
종이품은 차관에 해당합니다
군에서 정이품이 참모총장이라면
종이품은 대장일 것이고
경찰에서 정이품이 행자부 장관이라면
종이품은 치안총감이 될 것입니다
조선시대 관제에 있어서
판서 좌참판 우참판이 정이품이라면
참판 관찰사 절도사가 종이품입니다
그런데 소나무가 정이품이었으니
오늘날 1급 공무원보다 높은 장관급이고
광역시장, 도지사급이니 대단하지요
소나무 송松자가 과연 어떻게 쓰였습니까
나무 목木자에 공변될 공公자입니다
다시 말해 나무는 나무로되
사사로운 개체의 나무가 아니라
공적인 나무 공수公樹고 공목公木입니다
소나무 하면 생각나는 민요가 있습니다
이른바《첩타령》이라는 창입니다
나는 내가 어릴 적 어머니가
베를 짜거나 삼을 삼거나
또는 바느질을 하실 때
가끔 읊조리는 것을 듣곤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아내로서 여자로서
한이 서린 아픔을 갖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해는 지고 저무신 날에
옷갓을 하고서 어디를 가오
첩의 집에 가시려거든
나 죽는 꼴이나 보고 가오
첩의 집은 꽃 밭이요
나의 집은 연못이라
꽃 밭의 나비는 봄 한 철인데
연못의 잉어는 사시사철
난초와 더불어 소나무가 지조를 뜻함은
소나무는 계절의 바뀜에 때라
바뀌지 않고 사철 푸르다는 것입니다
엄동설한이 왔을 때 차라리 꺾여
설해목雪害木으로 삶을 마감할지언정
푸른 솔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눈의 무게를 못이겨 부러지는 것은
다름아닌 다북스러운 솔잎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소나무 송松자는
사실 알고 보면 간체자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번체자 소나무 송鬆자입니다
더벅머리 송鬆이라고도 하는데
'따르다' '좇다'할 때는 '종'으로 발음하지요
'소나무 송'자에 다른 자가 있는데
소나무 송鬆외에
소나무 송枀
소나무 송枩
소나무 송柗
소나무 송松
소나무 송䯳
소나무 송㮤
소나무 송梥
소나무 송庺 등입니다
한결같이 공변될 공公자가 들어있지요
배신의 정치가 난무하는 이 때
우리가 깊이 새겨 볼 나무가 소나무입니다
내가 얘기하는 '배신의 정치'의 배신이란
그간의 소속 정당을 저버리고
하루 아침에 다른 당으로 들어가거나
무소속으로 남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가 여가 될 수 있고
여가 야가 될 수 있습니다
진보가 보수가 될 수 있고
보수가 얼마든 진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계절 따라 좋고 싫음好惡 따라 옮겨다니는
철새 정치인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철새 정치인들도 할 말은 많습니다
"자연이라는 것이 다양해야지
사시사철 똑같은 것보다는
철 따라 바뀌는 것도 좋지 않나요?"
이들에게 있어서 공公의 소나무는
특별한 의미 없는 똑 같은 나무일뿐입니다
나는 당당히 얘기합니다
"부디 배신의 정치는 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배신은 국민을 저버림입니다"
0271갈 지之
갈지자로 나아가다
zigzag
go zigzag
갈지자로 걷다
walk zigzag [in zigzag]
reel
totter
갈짓자형이 되다
make a zigzag
지그재그형, 갈짓자 걸음
zigzaggedness
지그재그형으로, 갈짓자 걸음으로
zigzaggedly
갈짓자형의 길을 가다
follow a zigzag course
우리말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나라에도 같은 언어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동서남북이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갈 지之자는 부수가 삐침丿입니다
얼핏 보면 돼지해머리해亠에서
갈짓자를 찾을만도 한데
중간에 들어간 삐침丿이 부수입니다
'왔다리갔다리'도 중간이 있기는 있네요
0272성할 성盛
그릇 명皿이 부수면서 뜻을 나타내고
이룰 성成은 소릿값을 담당합니다
제사용 곡물이 담긴 그릇이라 하여
그릇 명皿자를 밑에 깔았는데
제사용 곡물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찰기장黍과 메기장稷이라고 합니다
그릇 중에 큰 그릇이 있습니다
이른 바 세간이라는 그릇器世間입니다
이 세간 그릇은 모든 것을 담습니다
나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52개월 동안 체류했습니다
말라리아 환자 돕는 사이 사이에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아니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탄자니아 곳곳을 시외버스로 다녔습니다
2006년 추석날 밤이었습니다
탄자니아 북부에 자리한 빅토리아 호수
나는 므완자Mwanza에서 배를 타고
9시간 끝에 이튿날 아침 6시,
호숫가 도시 부코바Bukoba에 내렸습니다
밤새 호수가 담고 있는 하늘의 달과
호수에 담긴 달을 함께 느끼고
하늘의 숱한 별들과 호수에 담긴 별
하늘의 별들 사이에 촘촘히 박힌 어둠과
호수에 비친 어둠이 어우러져
마음껏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레이크 빅토리아Lake Victoria가
세계에서 둘째로 넓은 호수임은 알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니!
사람의 마음도 그래야 했을 것입니다
세상보다 큰 게 마음의 그릇이라
우리는 입만 열면 말 배우는 아기들처럼
열심히 뇌까리고는 있지만
정작 남은 고사하고
자신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일까
천자문 여송지성如松之盛을 읽으며
다시금 나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난초처럼 향기로워라
소나무처럼 무성하라
03/30/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첫댓글 스님!
우리 집안에도
할머니, 어머니, 누나, 이모, 고모 등
"여"자가 많습니다.
여자없는 세상이라면 남자가 없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