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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을 시험하라 에베소서 5:10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신앙생활은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도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역사해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한 엄마가 초등학교에 1학년 아들에게 헌금 내는 법을 바르게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500원짜리 동전과 1,000원짜리 지폐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는 헌금하고, 하나는 네가 쓰도록 해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하나님을 우선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들이 1,000원짜리를 헌금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엄마가 예배 후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얼마를 헌금했니?”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엄마, 저는 원래 1,000원을 헌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1,000원을 내는 것 보다는 500원짜리를 내는 게 제 마음이 훨씬 기쁘잖아요. 그래서 500원을 냈어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기쁨보다 나의 기쁨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33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해야 합니다.
제가 학원에 다닐 때 학원 선생님이 대전에서 가장 싸가지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릴 때 어머니가 생선국을 끓이시면 몸통은 자신을 주고 어머니는 항상 머리만 드셨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왜 머리만 드세요”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응, 엄마는 머리가 맛있어” 엄마는 아들에게 살코기를 먹이고 싶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이 장성해서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아들은 종종 어머니에게 생선을 한 박스씩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보낸 생선 박스를 받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기뻐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보낸 생선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우신 것입니다. 아들은 생선을 사서 몸통은 자신이 챙기고 어머니에게는 생선 대가리만 보낸 것입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한다고 한 일이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14:18을 보겠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칭찬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해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시험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두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가입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우리를 이용해서 하나님이 기쁨만 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또한 우리에게는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인통합니다.
예전에 부흥사들은 “신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한다”고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관계가 복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복되면 물질적인 축복도 온다는 말입니다.
잠언 16:7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 원수도 감동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원수 하고도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그러니 사람들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는 것입니다.
잡화상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 동네 교회에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이 설교를 아주 잘 한다고 손님들에게 늘 칭찬했습니다. 한 손님이 잡화상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지난주에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하셨습니까?” 그러자 주인이 “저는 시간이 없어 교회에 나가 설교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님이 설교를 잘 하는 줄 압니까?” 주인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 목사님이 오신 후 외상값을 잘 갚아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사람과의 관계도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통하면 인통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복을 더해주십니다.
전도서 2:26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세 가지를 주십니다. ①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지혜와 지식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②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희락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희락을 받아야 진짜 행복합니다. ③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나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그에게 주십니다. 죄인은 수고를 하여 모아 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빼앗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과 사울을 보십시오. 사울은 왕이었고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둘이 싸운다면 당연히 사울이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사무엘하 3:1을 보겠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사울은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사울은 악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역대상 10:13-14을 보겠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하나님은 악한 사울의 것을 빼앗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다윗에게 넘겨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에게 복을 더해주시는 분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1)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히 11:6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 1:12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 하나를 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다른 말로하면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성내동에 있는 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할 때입니다. 함께 사역하는 전도사님에게 시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시온이는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우유병을 들고 뛰어다니며 노는데 잠시도 걸어다니는 일이 없었습니다. 시온이는 뛰어다니며 놀다가 우유를 마시고 또 뛰어다니다가 우유를 마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저를 보면 자기 우유병을 저에게 맡겨놓고 노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빠에게도 우유병을 맡기지 않는데 저에게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시온이는 저를 믿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저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어느 부부가 오랫동안 자녀를 낳으려고 노력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고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고 보육원에 갔습니다. 마치 부부가 원하는 나이의 두 아이가 서랍장 위에 올라가서 놀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한 아이에게 “너, 거시서 뛰어볼래 내가 받아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남자를 믿지 못해서 그런지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자는 그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 거시서 뛰어볼래 내가 받아줄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남자를 향해서 점프를 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점프하면 그 남자가 자기를 받아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남자의 말에 순종해서 자기의 몸을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아이 중에 어느 아이가 입양 되었을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이고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염려와 근심 그리고 두려움과 미래 등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다면 어떤 일이든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찬송생활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좋아하십니다. 시 69:30-31을 보겠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찬송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다윗은 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역대상 16:25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하나님은 극진히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든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은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천지만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가 만들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누가 낳았거나 누가 만들었거나 누가 존재하도록 도운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찬송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흙을 빚어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붙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찬송 받으셔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성품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가 크신 분입니다.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성품은 위대하십니다. 그래서 찬양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존재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인류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온갖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을 자범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 죄를 범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셔서 인류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그냥 보실 수 없어서 인류가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죄인의 생명이 죄를 속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하나 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심판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만큼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를 보여주는 십자가를 허락하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인류의 죄를 심판하는 공의를 행하셨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랑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드리면 구원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4)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삶속에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도와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세우시고 지성소 안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셨고,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게 내리게 하셔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 영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육신을 따르는 자들과 영을 따르는 자들에 관하여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로마서 8:8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육신에 있다는 말은 육신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육신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영에 있는 자들입니다. 영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영으로 사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영으로 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1)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 속에 오셔서 믿는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느 신실한 집사님이 전도하기 위하여 한 아파트에 갔습니다. 집사님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벨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눌러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서려는데 마음속에서 세미하지만 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냥 떠나지 마라.” 성령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초인종을 계속 눌러 보았으나 응답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가 보다 생각하며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포기하지 마라.”라는 음성이 마음속에서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집사님은 다시 돌아가서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동안 두드려도 역시 인기척이 없어 그만둘까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바로 그때 문이 덜컥 열리며 아주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초인종을 누르는 거요?” 퉁명스런 질문에 전도하러 왔다고 대답하려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딴 데나 가보시오” 소리를 지르고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이분이 낙심하여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급한 음성이 또 들려옵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집사님은 할 수 없이 다시 돌아가 초인종을 한참 누르니까 주인이 화난 표정으로 “딴 데나 가보라는데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거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집사님은 말을 걸기가 어려워서 손에 들고 있던 전도지를 건네주고는 “예수 믿고 천국 가세오!”라고 간신히 말하고는 나왔습니다.
몇 집을 더 방문하고는 집에 돌아와 밤늦게 잠자리에 누웠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받아보니 아까 방문하여 문전 박대 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집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오후 당신을 매정하게 쫓아냈던 그 사람입니다. 저는 제 삶에 지치고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 당신이 찾아 왔을 때 죽기로 결심하고 막 목을 매려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밖에서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들었지만 방해받기 싫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다시 빨래 줄을 목에 걸고 의자에 올라서서 의자를 발로 차버리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갈 때까지 기다리니까 잠시 후에 가버리는 듯 했습니다. 이제는 됐다싶어 다시 굳게 마음먹고 의자를 밀어내려는데 웬 사람이 또 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죽더라도 누군가 한번 보고나 죽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을 열어보니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다시 찾아 와서 건네주는 한 장의 종이를 무심결에 받아들고 당신을 쫓아낸 후 죽더라도 이것을 읽은 후에 죽어도 별 다른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이에 적혀있는 글을 읽노라니까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면서 예수라는 분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전도지에 적혀있는 당신의 전화번호를 돌려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튿날 집사님은 그 남자를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해주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냥 두었더라면 죽어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지만 전도를 받게 되어 새 생명이 된 것입니다. 집사님이 성령이 인도를 따르지 않았다면 한 영혼이 자살하여 영원한 지옥에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전도할 때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범사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이고 그런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주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면 부모의 마음이 즐겁고 기쁩니다. 자식이 말대꾸를 하며 자기 고집대로 하면 그 자식은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3)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6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영을 따라 살아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입니까? 그것은 영의 3대 기능 중에 하나가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영의 3대 기능은 영교와 직관과 양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는 말씀대로 살지 않고 또 양심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따라 살기만 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만민중앙교회 이재록목사 때문에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단으로 기독교에서 출교를 시킨 사람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기독교를 욕합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고 또 양심을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양심을 속이는 일을 하니 그 양심이 화인 맞아서 감각을 잃어버렸고 결국 그렇게 더러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우리의 양심의 신호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파란불이 들어올 때는 하십시오. 그러나 빨간불이 들어올 때는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사는 것이 양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기쁘시는 생활 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인통합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복을 더해주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1)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2) 찬송생활을 기뻐하십니다.
(1)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성품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때문입니다.
3) 영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1)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3)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