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옥의 「안반데기」 평설 / 전해수
안반데기
신동옥
서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건 목성이다 가을걷이가 막 끝난 고랭지 육백마지기 산마루 게으른 고집불통의 건축가가 짓다 말았을 너덜겅 밭두둑을 따라가면 해거리로 놀려둔 목초지 둔덕이 펼쳐지고 어스름에 붉은 칠이 바스러지는 헛간 벽 틈에 번지는 어둠 그 너머로 쏟아지는 은하수
어느 계곡으로는 양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는가 지분거리다가도 우지끈 이마를 치받는 굉음 바람은 호주머니 속에서 맞잡은 손아귀 사이로 잦아드는데 언덕 너머 구름장 아래로 우박과 서리를 퍼부을 듯 별이 진다, 뿔 하나 돋지 않았을 밋밋한 이마 웅크리고 잠든 양들의 등성이에도
별은 지고 내 삶에도 언젠가 한 번쯤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다만 내 몫으로 두 손 마주 잡은 온기와 불빛들 나란히 서서 보면 은은하게 별자리를 그려왔을 다정한 이름들 그 곁에서는 여행마저 일상이다
기억을 믿지 않았고 회감을 돌보지 않았다 뼛속까지 지쳤지만 위로는 멀었다 그러한 보잘것없는 어느 사이에도 도둑처럼 서정이 깃들이곤 했다 안반데기 은하수 안온한 빛을 품어오는 것들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걸 일깨우려는 듯
저 별빛 가시고 나면 얕은 골짜기를 골라 디뎌 물 위를 걸어가리라 은하수 건너 건너 내게로 온 당신으로 하여금 이 비릿한 숨 더운 피 마저 건너시라고 우리 언젠가 천 개의 바위를 덮은 흰 눈을 함께 보리라고
—《현대시학》 2022년 11-12월호 ................................................................................................................................................................
신동옥의 「안반데기」는 “은하수”와 그 곁의 “어둠”을 함께 주목하면서 “내 삶도 언젠가 한 번쯤” “두 손 마주 잡은 온기와 불빛들”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음을 인식한다. 그것은 “은하수”가 깨닫게 한 “일상”의 발견이면서도 별이 가까워지는 생각에 혼자가 아닌 “우리”가 존재하던 날들이 있었음을 다시 깨닫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안온한 빛을 품어오는 것들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걸” 일깨워주는 “안반데기”에서 바라본 “은하수”처럼 “천 개의 바위를 덮는 흰 눈”만큼 작디작으나 서로 어울리면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무릇 은하수 아래에 서면, 닿을 것 같은 은하수가 닿지 않아, 더욱 그리운 생각이 출렁인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에 북받치는 일도 가능한 일이 된다. “안반데기”는 안반덕(대기)의 강릉 말인데, 험준한 백두대간 줄기에 펼쳐진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넉넉한 지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1100미터에 이르며 국내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곳으로서는 가장 높은 지대가 “안반데기” 지역이다. 특징적인 것은 낮에는 생활의 터전으로 고랭지 배추가 자라지만, 밤에는 낭만적 장소로 은하수를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회감(懷感)을 불러온 장소, “안반데기”는 각자의 거리에서 “우리”라는 감정을 오래전의 일로 잊고 지낸 묵은 시간으로 새삼 불러들이면서 불현듯 “우리”는 선명한 별빛으로 반짝인다. “안반데기”에서 마주한 “서정”과 “기도”와 “별”은 그런 의미에서 “어둠” 너머로 쏟아지는 저 “은하수”의 빛으로, 어둠 속에서 다시 생성된다.
---------------------------- 전해수(문학평론가) / 저서 『목어와 낙타』 『비평의 시그널』 『메타모포시스 시학』 『푸자의 언어』 등. 현재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