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북 안동에 사는 농민입니다. 오늘, 키우던 소를 땅에 생매장시키고 통곡을 하는 친구를 보며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몇자 적어봅니다.
이곳 안동은 유사 이래로 이런 난리가 없었을 정도로 열흘 넘도록 탄식과 울음이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애지중지 자식처럼 키우던 소와 돼지들이 이미 10만마리 이상 살처분 되었습니다. 간혹 뉴스에서 들으셨겠지만 구제역 발생때문이랍니다. 직접적으로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이웃 농가에 있는 소들은 모두 함께 매몰됩니다. 그렇게 생매장된 소가 13만 마리,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안동 인구가 그정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산방지를 위해서는 백신주사를 놓으면 괜찮다는데 그건 후진국에서나 하고 청정국지위를 위해서는 매몰이 최상이랍니다. 어느게 옳은 일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초기에 돼지들은 수천마리씩 땅 속에 생매장되었고 소들은 주사를 맞힌 후에 땅에 묻어버립니다.
한쪽에서 소를 몰면 수의사가 한마리씩 주사를 놓습니다. 큰 소들은 3-4분만에, 송아지들은 1분여가 지나면 쓰러진다 합니다. 뒤에서 몰려서 우왕자왕하는 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앞에 쓰러진 자기의 새끼들과 동료들을 보며 왕방울처럼 큰 눈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소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땅속에 묻힐 때 그들을 알틀살틀 키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제발 우리 새끼를 살려달라고, 아니 나를 함께 묻어달라며 통곡, 통곡을 합니다. 더 이상 목이 쉬어 소리가 나지 않을 때 까지 말이지요..
그렇게 사람도 울고 소도 울 때, 우리의 잘난 지역구 의원님들은 예산안날치기 통과에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그 일이 끝나고 이제서야 우리 지역구 의원님들은 안동과 영덕과 영주와 예천 그리고 봉화가 보였나 봅니다. 9일에, 관계 장관님들과 한나라당 당직자분 그리고 관련된 지역의 의원님들이 모였는데, 지역 신문은 의원들이 한마음으로 구제역방제에 목소리를 함께 했다며 칭송일색입니다.
이미 10만마리가 생매장된 다음에 말입니다.
그나마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모여 지역의 구제역 대책을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가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의미있고 뜻깊은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보는 순간 저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것도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가축의 매몰등에) “비협조적인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하는 등 제도적으로 강력한 제재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이신지요?
가슴 미어지도록 슬픈 농민들에게 대못을 박아도 유분수지요.. 멀쩡한 소를 땅에 묻어야 하는 농가들을 진심으로 고민해 본걸까요?
달래고 달래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안동 국회의원님'과 '안동 시장님'의 초기대응 불찰로 인해 이런 일이 생겼으니 용서해 달라고, 정말 용서해 달라고, 그러고나서 정말 죄송하고 민망하지만 안동시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당신의 자식같은 짐승을 묻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병 걸린 자식을 생매장 시키라면, 아니 전염병걸린 사람과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아프지도 않는 멀쩡한 자식을 땅에 묻으라면 당신은 협조적일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답니다. 물론 사람과 소는 다르겠지요.
하지만, 막막해지는 생계에 대해 책임을 져 주지도 않으면서, 평생 소와 동거동락한 농민들의 찢어지는 마음은 그저 하루 와서 둘러보고 사진이나 찍고 가는 의원과 행정가들이 알리가 있을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픈마음과 원통하고 분한 상황에서, 소나 돼지를 생매장 시키는데 망설이는 농민들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그런 제재조치를 건의하는 그 국회의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누구의 국회의원입니까? 제가 제 손으로 그런분을 위해 한표를 행사했다는 것이 마음저립니다.
제 친구는 자식같이 키운 소를,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얼마되지 않은 유기인증을 받은 소를 묻고는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농장 한가운데 있는 텅빈 축사와 땅을 파고 묻은 곳을 매일 매일 봐야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 제 마음에서도 한없이 눈물이 흐른답니다..
<사진은 워낭소리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