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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련 서적을 찾다가 변역자가 "변선환" 으로 되어 있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몇 개 모았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신학대학 학장까지 지내신 분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했길래 "기독교 밖에도 구원은 있다"고 말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없을까요?
1. 약력
1927.9.23. 진남포 출생
1945. 평양 상공학교 기계과 졸업
1948. 평양 성화신학교 입학
1951. 부산 감리교신학교 입학
1952.5. 예산지방 봉산교회 개척
1953.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육군 군목으로 종군입대
1960. 한국신학대학 대학원 졸업(M.Th.), 이화여고 교목
1967. 미 드류대 신학부 졸업(S.T.M.)(1962-63,66-67)
1967. 감신대 전임강사
1976. 스위스 바젤 신학부 졸업(Dr. Teol.)
1987. 미 드류대 강의(아시아 신학과 기독론, 대화와 해방)
1987.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장
1988. 감리교신학대학 학장
1991-2. 한국기독교공동학회 회장
1992. 감리교 신학대학 학장
1994. 국제아시아 철학종교학회 고문
1995.8.7. 오후 5시경 소천
2. 감리교종교재판 당시의 관련기사(시사저널)
감리교 종교재판…‘종교다원주의' 주장 두 교수 黜敎
지난 5월12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자리 잡은 감리교신학대학(이하 감신대).시계 바늘이 정오를 가리키자 이 대학 방송국 ‘예언자의 목소리??는 화요일 정규 프로그램 ??기자수첩??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감신대 전통과 명예에 먹칠을 한 교단은 이제부터 우리의 적이다. 그리고 이미 적과의 싸움은 시작됐다.?? 점심시간의 한가한 풍경과 달리 교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일반대학가의 구호를 연상시켰다. 같은 시간, 대학원생들은 본관 2충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무기한 수업거부를 결의했다.
1백7년 역사상 첫 재판…최고형 선고
사랑과 화해를 앞세워야 할 신학대학에서 패 교단과의 싸움 이야기가 나오고 수업거부가 결의됐는가. 앞으로 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감리교 내부 분쟁은 한국 감리교 1백7년 역사상 최초의 종교재판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 5월7일 서울 망우동 금란교회(담임 金弘燾 목사)에서는 감신대 현 학장인 卞鮮煥 교수(65)와 그의 직계 제자인 이 대학 洪丁洙 교수(46)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렸다. 판결은 감리교 재판법에 따라 서울연회 회원15명으로 구성된 연회재판 위원회 (위원장 高在英 목사)가 맡았다. 재판절차의 부당함을 항의하려고 ‘법정??으로 몰려 들어간 감신대생 1백여명과 재판장소를 제공한 교회측 남자신도들이 맞붙어 한차례 몸싸움을 치르는 등 극도의 소란 속에 열린 이 재판에서, 두 신학자는 ??이단사상을 가르쳐왔다??는 이유로 감리교 교회 법상 최고형인 ??黜敎??를 선고받았다. 교리 해석상의 이유로 종교재판이 열려 출교처분이 내려지기는 1884~1885년 미국선교사 메클레이와 아펜셀러에 의해 감리교가 이 땅에 전파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두 신학자를 정죄한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교리수호??를 외치며 종교재판을 이끈 郭典泰 목사(60)가 감리교 조직상 최고위직인 감독회장에 올라 교권을 잡은 지난 90년 10월의 정기총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회장에 선임된 곽 목사는 우선 1905년 설립된 이래 가장 전통 있는 교역자 배출기관이 돼왔고 감리교의 진보세력이 집결해 있는 감신대의 학풍을 개혁하고자 했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온 변선환 학장은 이들에게 ??눈엣가시??가 되기 시작했다. 종교다원주의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듯이 다른 종교의 신자들도 각자 그들 나름대로의 신을 섬길 수 있으며 구원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91년 3월 홍정수 교수가 (크리스챤 신문)에 발표한 짧은 기고문 ‘동작동 기독교와 망월동 기독교??는 내연하던 교단과 신학대학 사이의 평평함에 기름을 부었다. 홍 교수는 이글을 통해 ??생물학적 죽음의 극복과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은 이교도의 어리석음??이라는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 교회는 부활에 관한 한 무신론자들??이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또한 ??기독교가 혼란에 빠진 이유는 성서의 언어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에서의 ??부활??이란 정의의 심판이 시작됨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문자 그대로 인간의 무궁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신학'으로 통칭되는 홍 교수의 신학적 방법론이 단적으로 표현된 이 기고문은 즉각적으로 교단측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기고문이 발표되자 홍교수는 곧 심사 대상이 되었다. 지난해 9월20일 종결된 1차 목사자격심사 결과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해명서를 공개하고 그 결과에 따른 여론을 주시한다"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일부 교역자들은 기독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위원장 김홍도 목사)를 구성해 이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지난해 10월 개최된 제19차 특별총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징계건의가 정식 결의됐다. 징계 이유는 두 신학자가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가 아니라고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무시했고 예수의 부활을 부정함으로써 反성서적인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통일교의 요직에 있는 인사가 감신대에서 5년 동안 수학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홍 교수가 비호했다"는 '혐의'도 덧붙여졌다. 대책위는 이와 함께 징계 이유를 낱낱이 적은 성명서를 일간지 광고란에 게재해 대대적인 여론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지난 5월7일 출교선고 이후 재심청구·상고 등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홍 교수는 "종교재판은 우리를 교회에서 내몰기 위해 대책위가 꾸민 자작극"이라며 재판무효를 주장한다. 홍교수는 그 근거로 판결을 담당한 재판위 위원 15명 가운데 13명이 모두 고발자 단체인 대책위 사람들로 구성됐으며, 재판이 대책위의 안방인 금란교회에서 이뤄졌을 뿐 아니라 기소장 역시 대책위측의 제출자료만을 근거로 한 사실을 들고 있다. 더욱이 홍교수는"지난해 정기총회의 징계결의도 정족수 미달로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홍 교수의 적극적인 태도와 달리 변선환 학장은 현재 자유로운 처지가 아니라며 종교재판 이후의 사태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종교재판의 학문 자유 침해 도구화는 곤란
종교재판은 표면적으로 신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진행됐으나 관계자들은 감리교 내 보수파와 진보파, 교단과 신학대학 사이의 알력이 얼키고 설켜 발생한 일로 본다. 지난해 연말 감리교 특별총회에서 징계가 결의되자 전 고려대 교수 金容沃씨는《TV저널》칼럼을 통해 "교권을 장악한 목원대 계열 교역자들이 오랫동안 감리교의 주도권을 행사해온 감신대를 누르기 위해 일을 꾸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90년 총회에서는 감리교 최고 임원인 감독 7명 가운데 5명이 목원대 계열로 채워짐으로써 교권의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서울연회 사무실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감신대 총학생회는 종교재판에 대해"교권을 잡은 일부 보수적 정치 목사들이 교단 분위기를 완전히 자기 쪽으로 몰고 가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난했다. 농성을 주도하는 감신대 禹三悅 총학생회장(신학 4년)은 "종교재판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교세를 확장해온 일부 보수파가 진보적신학자의 숨통을 막으려는 폭거"라고 규정하며 "보수파의 준동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을 주도한 곽감독회장은 재판 직후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켰다.
감리교 관계자들은 변·홍 두 신학자의 출교처분 사태가 "신학적 입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종교재판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도구로 쓰이는 전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견 목회자 20여명과 함께 재심청구를 준비중인 '감리교를 걱정하는 기도모임'의 尹炳相 목사는 "재판이 공정하려면 우선 그들의 주장이 '이단'인지 여부를 먼저 판정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작업은 재판이 아닌 토론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계의 월로 金燦國 교수(연세대 ·신학)는 "학자에게 학문의 자유가 소중한 것이 사실이지만 교단 밖에서 자신의 주장을 말할 때는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종교재판이후 확산일로를 치닫고 있는 감리교단의 분열사태에 우려를 표시했다.
3. 92년 10월 변선환 학장이 은퇴기념식에서 행한 송별사
존경하는 동료 교수님들과 직원들 그리고 친애하는 동문여러분, 사랑하는 감신대, 젊은 예언자적인 지성 여러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몸담고 있었던 감리교신학대학을 떠나는 저를 위하여서 성대한 이임 예배를 마련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신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1964년 서양철학사를 강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현대철학과 현대문학, 조직신학과 감리교 신학을 강의하며 감리교 교역자 양성을 위하여서 힘썼던 곳 감신대.
탁사 최병헌의 종교변증신학을 이어받은 토착화 신학자 해천 윤성범 선생님과 유동식 선생님의 한국적 신학을 오늘의 다원주의 종교해방신학의 파라다임속에서 재형성하려고 하였던 거룩한 곳 감신대.
1988년 가을, 민주화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전대협이 대학가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폭풍 거세게 불어 헤치던 그때에 학장직을 받은 이래, 역사의 거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뇌하며 저항하는 감신대 젊은 예언자들과 열려진 대화를 시도하며 리이벤다 캄프, 사랑하면서의 투쟁을 통하여서 감신대를 굳게 지켜 나아가야 하였던 곳, 감신대.
고독과 사랑의 감정이 교차되는 나날을, 오직 모교의 무궁한 발전만을 꿈꾸면서 먼곳을 바라보자, 먼곳을 바라보자 노래했던 구약학자 김정준 선생님과 음악선생님 박재훈 선생님의 노래 힘입어서 굿굿하게 서서 달려가려고 하였던 잊을수 없는 거룩한 땅, 감신대.
영광스러운 20세기와 함께하여 왔던 100년의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신학대학, 감리교신학대학에 웨슬리 신학의 유산인 경건·학문·실천이라고 하는 세 가지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혀지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며 동료교수들과 총학이 한마음이 되어서 애썼던 거룩한 예언자 동산, 감신대를 오늘 저는 이곳을 떠나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삶에 있어서 감리교신학대학은 나의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내 고향 이북은 빼앗기고 내 마음의 고향은 감신대였기 때문에 새삼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저는 실존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허나 인생이란 우리가 사랑으로 관계하였던 모든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헤어지고 나중에는 이 손도, 이 몸과도 헤어져야 하는 이별과 죽음을 날마다 연습하는 실험, 실험장이 아닙니까?
추풍낙엽처럼 모든 것은 떨어짐 속에, 헤어짐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떨어짐을 밑에서 한없이 부드러운 손으로 받아주시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의 손길이 있기에, 헤어짐 저 너머에 기다리고 계시는 그 분이 계신다는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넉넉하게 이 어지러운 세상을 이길수 있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우리 주님,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예언자의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감리교신학대학은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모두가 이 대학의 주인이 되는, 청지기 의식으로 뭉쳐져 있는, 대동단결하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고 소외될 수 없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은 광야에 소리치고 굽은 길 곧게하는 예언자들이 모인 아릅다운 동산.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과 진리로 해방하는 그 거룩한 사역을 위하여서 가장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상상력이 불꽃튀며 오늘과 내일의 선교의 다원화를 모색하여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님의 선교의 실험장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가장 자랑하는 학문의 전당, 진리의 산실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힘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그 거룩한 이름과 그 놀라운 영광을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을 보호하고 발전시킨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름아래 돈과 정치를 사용한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하늘아래서 용서될 수 없습니다. 그 돈과 그 정치의 힘은 유한하고 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영원하게 아니예요.
감리교 신학대학을 지켜보고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거룩한 선교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경건의 화신인 이용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학문의 상징이었던 탁사 최병헌과 정경옥 선생님, 윤성범 선생님, 유동식 선생님이 이 학교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프락시스, 실천의 상징인 3·1운동 민족대표 일곱명이, 한국의 본회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피를 토하고서 돌아간 전덕기 의로운 목사님이, 상록수, 푸른 소나무, 푸른 상록수 최용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를 이방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고 나로하여금 신학하는 길에 용감하게 나서게 하였던 내 믿음의 아버지 운재 신석구 목사님이 변선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20년동안 교편 생활을 하였던 구약학자 구덕관 박사님이 신임학장이 되었습니다. 이분은 대쪽과 같이 그 뒤가 없는, 간사한 데가 없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구덕관 박사님은 저를 학장으로 추천하고 1988년 4년전, 감리교신학대학 학장 후보를 깨끗하게 사퇴한 분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형성을 위하여서 몸부림치는 현대세계와 함께 전환기에 서 있는 감리교신학대학의 빛나는 미래를 열어 나아가기 위하여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꾼으로 구덕관 박사님를 학장으로 세웠습니다.
무덥고 길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풍성한 결실의 계절, 하늘 높고 말들이 살찌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가을은 우리 모두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힘써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는 축복받은 게절입니다. 구덕관 학장님과 함께하는 감리교신학대학의 새 역사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길이 길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제가 이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던 1964년 그 이후로 한동안 오랫동안 제가 이사람과 나를 착각하면서 강의하였던 분이 있습니다. 키에르케골이 남겼던 말 가운데에서 한 말씀을 남기는 것으로 제 송별사를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필요한 이는 천재가 아니라 순교자이다. 사람들에게 예수들에게 대한 복종을 가르키기 위하여서 자기를 몸소 죽도록 복종하는 순교자, 순교자. 사람들은 이 순교자를 쳐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들이 가장 필요한 이가 바로 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순교자, 우리는 순교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4. 2005년 고 변선환목사 관련기사 제목
'종교다원론자 변선환', 사후 10년만에 사실상 복권되다
한국교회 근본주의에 맞서다 '출교'…5일 감신대에서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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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지만 기독교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던데, 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 않고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것과 자기지식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저런말을 하는것이지요. 이참에 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밝이는 구절이 얼마나 많은지...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만들어놓으신 단하나의 길인지 우리한번 찾아볼까요??
요한복음 14장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 두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딤전 2장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이 구절도 포함되겠지요?
근데 이런 구절들을 고 변선환목사님은 어떻게 해석을 하셨는지 그게 제가 알고자 하는 것인데.... 다원주의에 대한 글이나 비판글은 많아도 성경해석에 대한 내용은 찾기가 힘드네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구원의 길에 대해서 의문의 여지를 남기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요. 유일한길, 단 하나의 길, 오직 예수그리스도 뿐이다.....하늘지기님..변선환목사가 성경말씀을 해석하다가 저런발언을 하신걸로 생각하시는지요...저건 성경말씀을 해석하며 묵상하다가 발생한 발언이 아닙니다. 자기의 지적욕망을 꿈꾸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무시하는 단계에 절로 들어선게지요.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대학교수로 그 제자들도 있고 그 제자들이 사후 10년만에 추모식을 하였다고 하니 그 제자들인 교수들도 이런 구절들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해석과는 다르게 해석해야만이 가능한 발언이라고 봅니다.
일단 감신대의 상당수의 교수들이 삼위일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스승일뿐, 구원자도 대속자도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감신대에 들어가면, 1학년때는 충격으로 울고, 2학년때는 자퇴하거나 아니면 순응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며, 졸업할 때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 내가 볼 때는 배도)으로 졸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거기에 다녔던 어느 학생과 거기에 근무하는 어느 교수 이야기를 종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죽으신 모범에 불과하고, 성경은 오류투성이의 책으로 단지 참고서적에 불과하게 되지요.
정말 충격적인 일로 들립니다. 도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최야곱님의 말씀대로라면 정말 충격이군요... 이게 단지 감신대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요즘 신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과연 몇곳이나 될까요..감신대말고 다른신학대학교에서도 교리적문제가 심각한 가르침이 있는곳이나 교수들이 전혀 없진 않겠죠??
제가 공부한 장신대에서는 교수들이 현대신학을 많이 가르치지만, 기본적으로 종교다원주의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미 감신대와 한신대의 경우에는... 그 신학에 있어서 정통신학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단적 요소가 아주 많지요.
목사님이신군요?
예, 여기서 말씀하시는 분들은 다 거룩한 제사장들이십니다.
감신대는 구약에 나오는 모세의 홍해기적, 노아홍수등 성경의 여러가지 기적들을 신화라고 설명을 합니다.
감신대 교수들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
감신대 교수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감리교단이 자유신학을 받아들였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실이지요.. 사실, 자유신학이 가장 <거부감 없이> 인정받고 있는 교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나 자유신학에 대하여 가장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쪽은, 침례교단과 장로교단 합동측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학대란곳에서 그 머리지식으로 머리통만 채우는 것으로 가르치니~그 안에 과연 생명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여~현대목사 삯꾼목사들은 너부러지는 듯 합니다.
이런글을 쓰면 어떨지모르겠으나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러는 고위급프리메이슨들과의 친분이아주 두터웠으며 프리메이슨에 영향을 많이받고 협렵했던 사람이며,실상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무개는 프리메이슨에 속했다는 말, 믿기가 힘든 말이 많더라고요... 잘못하다가 성령훼방죄를 지을까 우려됩니다.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웨슬레도 프리메이슨이라...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프리메이슨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요즘 툭하면 멀쩡한 사람들을 신천지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음모론을 조심해야 하고, 확실치 않은 소문이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기독교인들은 프리메이슨 이어떠한조직이며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사람들이 참으로 적다는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며,에큐메니칼 연합운동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을 해야합니다 평범하고 물흐르듯한 신앙생활은 이제 조심해야합니다 우리의싸움이 혈과육이아닌 공중권세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란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겁니다. 천주교,흰두교,마호멧교,불교,여호와증인,통일교,대순진리교,몰몬교,등등 이런종교들은 이미 대통합만들었으며 여기에 기독교 수많은대형 교회들이 포함되어있다는것을 어찌생각들하십니까.... 성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질투의 하나님되심을 깊이 깨달아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