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 이해해 주세요 -_-;;;;;;;;;;;;;
개인적으로 노모는 야구선수 일본사람 이런것을
떠나서 인생의 선배로서..
본받을 점이 많은 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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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내가 처음 노모히데오라는 야구선수를 알게된건,
누구나처럼 95년, 일본의 프로야구선수가 94년 박찬호가 진출한
LA다저스로 MLB진출을하게 되었다는데서였다...
당시 신문을 통해 난 기사를 생각해 보면,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노모히데오,박찬호의 LA다저스에 입단.'이었다.
(여기서부터 박찬호와 노모를 언론에선 한일로
갈라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의노모이야기를 그의 메이저리그데뷔 후 부터 년별로 써보겠다.
95년.여하튼 처음엔 그냥 "어? 일본놈도 메이저리그에 가네.
이름한번 웃기다. 노모? 노모가 뭐냐?""가 봤자지."정도로
생각했었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메이저리그는, 마이클조던
이뛰는NBA와 같은 전미 프로스포츠무대였기에 전일무했던 동양인의
성공여부를 두고 폄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해 5월,
또 신문을 통하여 '노모히데오 빅리그첫승.'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자식 운이 좀좋았나보지", "그래봤자 쪽발이가...약발이 얼마나
가나 보자.", 얼마후 또 신문에서 '지금 메이저리그는 토네이도
공습.','노모 올스타 선발 투수선정'등등의 기사를 봤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건 그해 말 그가 네셔널리그
신인왕타이틀을 수상했다는것이다...'
5월부터 시작해 191.1이닝 13승6패에2.54ERA,236K를 잡아내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후에99년 MPV를 타낼 치퍼존스를 제치고
ROY(Rookie Of the Year),최다탈삼진타이틀을 휩쓴것이다.
최초의 동양폭풍 강타였다. ........한마디로 재수없었다.
한국인 박찬호는 마이너리그AA로 내려가있을땐데 일본에서 건너온
이름 웃긴놈이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는 메이저리그 신인왕까지
받아내며 돌풍을 일으킨다기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우리언론의 일본죽이기에 노모라는 놈이 '그냥'재수없게 생각됐었다.
그리고 그해 포스트시즌 때 망가진 노모를
크게 보도했었던 기사를보고 고소하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게 ROY수상 전이다.)
96년.. 우리 언론은 박찬호가 후반기에 계투로 빅리그에
진입했을 때부터 노모를 본격적으로 박이 잡아야할
비교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우리 나라에서만...)
그해 노모는 첫 풀시즌으로나서 가며 다저스 에이스역할을 해 내고
있을 때 였다. 나도 그때 즈음 처음으로 그의 피칭으로 하이라이트
삼진퍼레이드를 봤다. 첫인상은 "투구폼 참 독특하다.
어? 넘어질 것 같은데, 어라??~~ 어떻게 저렇게 공을 던질 수 있냐?"
한마디로 이름뿐 아니라 특이한 선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노모가 투수들의무덤 콜로라도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개장이래 최초로 '노히트노런'을했다는 소릴듣고 경악했던게 기억난다
...그해 성적,228.1이닝,16승11패,3.19ERA,234K...
네셔널리그 펴쳐-탑10 선정
그리고 97년,NHK위성방송 BS1을 통해 우연히 그의 선발등판시합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당시 박찬호역시 풀타임 메이저리거 첫시즌을
시작했던 때이고 해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누구나 높았을 때다.
시카고 커브스와의 원정경기였을거다. 리글리필드역시 박찬호가 첫승
을 따낼 때 본적이 있어서 친숙했다."
"박찬호만이 동양인리거가 아니구나..."그 시합에서 그는 7이닝,
3실점을 기록했었는데,승리는 따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그 시합에서 매료됐다.
희귀한 폼에서 뿜어나오는 93,4mph의 직구. 폭포수 같이 떨어지는
포크볼...박찬호가 일승일승했을 때 마다 오버했던 분위기에 빗대어
보면 동양인으로써의 그의 데뷔13승, 2년차 16승은 대단한것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이런 시합내용에서가 아니라, 위기상황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안색. 카운트가 어떻든 게의치않고 결정구를 뿌려대던 배
짱. 과묵해만 보이는 카리스마. 그에게부터 풍기는 모든것이 멋있었다.
요새 말하는 무사같다는 분위기라고 할까??
난 그 시합이후로 노모의 팬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그해 전반기 9승을 거두며 그의 승승장구는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후반기 첫시합인가? 신시네티전이었을 거다
(몬트리울이었나??-,-:) 자신있게 던진 직구를 타자가 받아친 타
구가 투수 정면으로 강습했다. 황급히 피한다는게 노모의 오른쪽
팔꿈치를 강타한다. 당연히 강판됐고 라몬마르티네즈가 부상인 시점에
에이스였던 노모가 부상을 당하게된다.
(당시 우리신문에 조그마하게'노모부상'이라고 떳었다.정확히 기억
하는데'별 이상없어 등판에는 이상없다'고 보도했었다. 훗~~)
어쨌든 부상후(시즌 후에 팔꿈치 뼛조각제거수술을 했다.)첫 등판에
7실점인가 9실점으로 크게 망가졌었다. 시즌후반엔 셋포지션으로만
던졌었다. 그해 후반기엔 단 5승만 추가하며 14승으로 다소 아쉽게
시즌을 오프했다. 그리고 뼛조각제거술을 받았다.
요 3년간 노모는 센디쿠펙스에 이어 LA 팀한경기 최다 탈삼진인
17K도 기록하고, 메이저리그 역대 최단기간 500K도 잡아내고,공3개로
한 이닝을 마무리하기도 하는등 인상깊은 기록을 남겼었다.
98년 노모에게 본격적으로 불운을 동반한 부진이 따르기 시작한다.
수술 역시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알려졌었다.
시즌 개막이후 동양인 최초로 홈런을 때려내는 등 첫승을 했으나
몇 경기동안 단2승만 따내며 거듭 패전의 멍에를 쓴다.
그 후 2승7패 방어율5.05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로스엔젤레스로부터
웨이버공시를 받는다. 방출된 노모는 뉴욕메츠에서 새로운 메이저리그
생활을 하기시작하는데 들쑥날쑥한 성적을 올리며 4승5패.
결국 시즌6승2패, 4.92ERA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남긴다.
99년 메츠는 회복한 노모에게 전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며
3Mil$에 재계약한다. 그러나 시범경기부진은 마이너행으로 이어졌고
이에 반발, 또다시 방출. 커브스를 잠시 거쳐 FA신분를 얻은 그는
메이저리그의 도전만 바라보며 메이저리거 보장이란 조건에 단돈
0.25Mil$에 밀워키브루어스와 계약한다.
MLB사상 두 번째로 빠르게 1,000K를 낚아내는등 예전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으며 후반기엔 다소 따르지 않은 승운으로 간간이 고전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12승5패, 4.54ERA로 밀워키 에이스역할을
독특히 해내며 재기엔 성공해냈다.
2000년 화려하게 부활할거라는 주위의 기대와 함께 노모는 5Mil$을
받고 AL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이적한다. 디트로이트 1선발로
나서 개막전 승리 등을 따내며 전반기엔 보스턴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뒤를이으며 방어율2위로 달려가는등 화려한 시즌을
예고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전과 같은 지질이 따르지 않는 승운
(분명히 연패할만큼 나쁜 투구내용은 아니었다.)에, 또다시 팔꿈치
부상재발로 DL(부상자명단)에도 자주 오르내리며 등판.
시즌 8승12패,4.74ERA,181K를 거두며 시즌을 마감한다.
2001년 올해, 디트로이트와 노모는 5Mil$ 타협에 실패하며
노모를 FA공시 처리했다. 결국 5.25Mil$ 라는 괜찮은 조건으로
강팀 보스턴 레드삭스유니폼을 입기에 이른다.
그러나 잦은 방출과 부진에 결국 '스즈키 이치로'라는 혜성에 밀려
일본에서 그를 취재하던 기자단까지 모두 빼앗기고 NHK메인중계도
99년년부터 요시이 마사토,스즈키 마코도,스즈키 이치로 에게 빼앗
기며 서브적으로만 보여지는 수모를 겪는다. 이렇게 추락하다 올핸
기자도1명밖에 따라다니지 않으며 모두에게 한물간 투수로 인식 되
어가고 있었다.그러나 와신상담을 꿈꿔오며 슬라이더도 익혀가며
변화를 꾀하기시작한 노모.
4월4일.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시즌 개막후 자신의 첫 선발등판.
노모는 잊혀져가는 설움을 실력으로 맞대응 펼치며 자신의 커리어
2번째이자, 역대 메이저리그투수 통산 네번째로 양리그 노힛노런을
일궈낸 투수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투수들의 무덤에서 일을 저지르더니,
자신을 아무도 봐주지 않을때 또 이런 감동의 노힛노런을 저질러
또한번 세인을 놀라게한 인동초 노모히데오.
역시 스타의 기질이 건재함을 그는 보였다.
평범한선수였다면 98년 오프후 좌절하고 은퇴나 귀국했을것다.
99년 브루어스시절 노모가 말했다.
"이젠 일본서부터 지금까지 벌어온 돈으로 가족들과 스포츠카를
굴리며 다닐 여유는 충분히 있다. 다만, 아직도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고 메이저리그마운드에 서는 것 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몸이 따를때까지 야구를 할 것이다."
주위의 평가가 어떻게 변하든 자기일에 끝까지 묵묵하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 참 멋있는 귀감이었다.
또 내가 정말 노모를 좋아하는 것은 포커페이스 자체라는 것 이다...
단적인 예로 대부분 노-히터 후라면 발광 했을텐데,
인터뷰때 보니......경기전 소감예기하는건가??
어떠한 상황이던 그 묵묵함. 멋지다. 나도 배워야겠다.-.-
사실 한일간의 민족감정이나 선입견을 빼고 오로지 야구선수라는
기준으로 노모를 대한다면...... 감동을 주는, 그와 같이 진정으로
야구의 외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NPB최고의 투수로써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위해
아무도 들여놓지 않았던 빅-리그에 몸을 던져 오리엔탈 토네이도 폭풍
을 몰고오며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노모...
오로지 야구에 전념하기 위해 모든 조건을 마다한 채
공을 던지는 진정한 전사... 노모 히데오.
나는 앞으로 그가 어떠한 성적을 내건간에 그를
위대한 투수,본받아야 할사람으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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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노모는 부활했죠..................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좋은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