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연중 제15주일) 세상 속의 하느님 자녀 가톨릭 신문 한 칼럼 내용에 마음이 간다. 요약하면 세상은 더 이상 교회에 질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글쓴이인 신부가 어렸을 때 『교리문답서』 499개 질문과 답을 다 외어 상까지 받았는데, 새로 진학한 학교에서는 그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었더라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교회에 세상 사는 일을 묻지 않고 또 교회는 세상사와 무관한 대답만 내놓는 거 같다고 한다. 필자는 결론으로 교회가 세상과 더 소통하고 세상의 진짜 문제에 대해 듣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며 ‘회개하라’고 선포하게 하셨다. 세상은 교회에 묻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예수님의 이 명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프란치스코 교종의 깊은 우려처럼 교회는 거대한 박물관이 되어 가는 걸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은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갈릴래아에서처럼 여전히 세상 안에서 일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이전에 세상이 교회에 질문하지 않게 된 이 현실을 반성하는 게 먼저인 거 같다. 글쓴이 말대로 세상과 소통 부족이다. 그런데 교회 구성원은 모두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소통 부족이라는 게 이상하다. 소통 부족이 아니라 세상과 교회가 서로 분리됐기 때문인 거 같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래아로 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아직 다락방에서 기도만 하고, 그 안에서 받는 정서적 위로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들이 교회 안에서 쉴 곳을 찾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당신 안에 머무르게 하시고 다시 세상 속으로 파견하셨다. 미사, 라틴어 missa의 뜻도 파견이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쉬고 사도로서, 파견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애써 세상에 귀를 기울일 것도 없다. 기후 위기, 지구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 환경파괴는 인류 공동의 집에 사는 모든 인류 가족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다. 이를 모르는 이는 없지만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다. 친환경, 생태 친화적인 생활은 아주 귀찮다. 귀찮고 하기 싫은 것을 실천하려고 하니 그것은 사랑이다. 순교자의 후손답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지만 귀찮아도 재활용품 분리 성실하게 한다. 그 이전에 아예 쓰레기를 줄이도록 한다. 그러려면 수도자처럼 청빈은 아니더라도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 구매전에 이게 정말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고(Rethink), 불필요한 것은 겸손하게 거절하고(Refuse), 사용량을 줄이고(Reduce), 고쳐 쓰고(Repair), 다시 사용하고(Reuse), 재활용하는(Recycle), 품격 있는 소비생활을 한다(6R 「찬미받으소서」 22, 192). 또한 대규모 이주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 건설과 농수산업 현장 그리고 식당에서 이주 노동자를 만나는 건 우리 일상이 됐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나라 1차 산업과 제조업은 무너질 거다. 약 150만 명에 육박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일한다. 이스라엘 율법은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 22,20).”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 23,9)” 우리 조상들도 하와이에서, 독일 탄광과 병원에서 지금 그들처럼 말 안 통하는 곳에서 무시당하며 거칠고 힘든 일들을 해서 돈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그들의 손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가족을 위해 이국땅에서 수고하는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외에도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이 많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에 대해 예수님께 여쭙는다. 예수님은 해법을 모두 다 알고 계실까? 예 그리고 아니오다. 서로 사랑함이 그 해법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인내하며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라는 선포는 죄를 뉘우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마음을 바꾸고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하느님의 간절한 호소다. 그러지 않으면 공멸하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3-5).”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알고 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시는(에페 1,10)”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그리스도교 종교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것임을 안다. 하느님의 간절한 바람, 하느님의 이 계획 그리고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놓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제일 먼저 삶을 바꾸고 실천한다.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
예수님, 오늘 다시 회개하고 복음을 새롭게 믿습니다. 저희를 통해서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다가가시려는 주님 마음을 압니다. 저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볼 수 있게 이끌고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