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을 측근에서 수발하던 직원은 박학봉 비서관과 이광형 부관 두 사람이었다. 이들이 대통령 집무실에 근무하면서 교대로 숙직을 했고, 아침마다 그날 입을 양복과 구두를 챙겼다. 이광형 부관의 회고에 따르면, “대통령께서는 바지를 수선해서 입고, 구두 뒤축은 갈아 신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전날 입었던 양복바지를 든 채 내려온 적도 있었는데, 부관에게 바지를 뒤집어 허리 뒷단의 폭을 손가락으로 재보이며 ‘여기 요만큼만 더 늘려주게’ 하며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석유파동 직후, 대통령은 “수영장에 물을 넣으면 돈도 많이 드는데 마루를 깔고 배드민턴이나 치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리하여 수영장이 실내 배드민턴 경기장으로 바뀌었고, 아침마다 비서관들과 배드민턴을 즐겼다. 그렇게 아침 운동을 하고 나면 젊은 부관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디 그뿐이랴. 욕실 변기의 물통 속에는 대통령이 아무도 모르게 넣어둔 빨간 벽돌 한 장이 들어 있었다. 1층의 집무실 옆 대통령 전용 화장실에도 그렇게 해두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부속실에서는 세 가지 장부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장부’는 대통령을 제외한 두 딸과 한 아들의 씀씀이를 다룬 것이었다. 1979년 10월에는 27만9천388원이 지출되었다. 2층 내실 담당 가정부 미스 원에게 10만원, 신당동의 대통령 사저를 관리하고 있던 박환영 비서관과 아주머니에게 월급 이외의 보조비로 2만원씩, 선물인 듯한 동양란 구입비 3만2천원, 지만 생도의 콘택트렌즈 구입비 5만원, 그리고 세탁비 2만여원 등이었다.
본관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본관 근무자와 대통령 가족이 식사하는 곳이었다. 저녁에 대통령이 주관하는 수석비서관 회식, 특별보좌관 회식도 여기서 했다. 이 식당의 식료품 구입비는 1979년 8월에 80만8천765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 지출을 기록한 장부에 따르면, 1979년에 약 70만원을 양복`허리띠`구두 구입비로 썼다. 10월 3일에 구두 세 켤레 11만2천200원, 8월 5일에 흰색 반바지 두 벌 3만원, 반바지용 허리띠 2만원, 5월 28일에 잠옷 네 벌 2만원…. 그리고 대통령 개인 잡비는 대통령 이름으로 된 통장에서 찾아서 쓰거나 입금해 두기도 했다. 1979년 초에 9만9천830원이 전년도에서 이월되었다가 10월 26일 현재 9만7천330원이 잔고로 남아 있었다.
2층 식당 한쪽 구석에는 전자오르간과 톱악기와 퉁소가 있었다. 대통령은 밤에 홀로 퉁소를 불기도 했는데, 적막한 청와대 본관에 울려 퍼진 퉁소 소리는 애끊는 음률이었다고 한다. 1층에는 피아노가 놓인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대통령은 가끔 그 방을 찾아가 혼자서 ‘황성옛터’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집무실은 서재로 불리기도 했고, 그는 군인 출신이었지만 늘 책 속에서 살았다. 이 서재 겸 집무실에는 600여 권의 책이 꽂혀 있었는데, 사전과 세계대백과사전`파월 한국군전사`난중일기`성경`단재 신채호 전집`한국 헌법 등과 같은 책들로 꽉 차 있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오후가 되면 본관은 적막강산이었다. 대통령과 두 딸, 숙직 당번인 부속실 직원, 그리고 경호원들만이 남았다.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차단된 이곳에서 대통령은 못다 본 서류를 열람하거나 국가의 중대사, 그리고 자신의 몫이었던 고독과 마주했다. 1960년대 중반, 대통령이 패기만만하던 시절에도 청와대는 항상 도시 속의 쓸쓸한 섬이었다. 이 고독의 섬에 아침이 찾아오면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장 차림으로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의 식단은 찌개와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이 전부였고, 식사를 마친 대통령은 언제나 그러하듯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섰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름을 절약한다고, 여름에도 에어컨은 틀지 않고 창문을 열어 놓고 지냈다. 때로는 부채를 부치고, 때로는 날아든 파리를 잡기도 했다. 한번은 이광형 부관이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대통령이 더위를 먹은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관이 보일러실 직원에게 에어컨은 틀지 말고 실내 공기만 순환시켜 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 대통령은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가 근혜 양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놈들이 에어컨을 틀었더군. 갑자기 시원해지던데, 내가 모를 줄 알고. 앞으로는 절대 틀지 말라고 해.” 그는 한마디로 근검절약이 몸에 밴 청렴한 지도자였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