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홍콩, 대만에서는 '대장금'의 음식들이 그런대로 먹힐 만한데 중국대륙에서 먹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도인은,
외람되지만,
우리가 그렇게 멸시하는 '왜구'의 피가 생각보다 엄청 많이 섞인 것 같습니다.
북지나와 만주에서는 쌀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만주에 쌀을 보급한 사람들은 조선족들입니다. (소위 '조선족'의 태반이 '경상도'사람들입니다. 그 경상도가 지금의 경상도와 같은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식성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간 지나족들은 몇 대가 지나도, 흰둥이 검둥이의 피가 섞여도, 우유를 잘 마시지 못합니다. 지나족 상점에는 반드시 두내(豆乃, 두유) 가 있습니다.
반도인이 만주에서 왔다면, 주식은 쌀이 아니라 빵과 국수라야 합니다. 그런데 알아본 바론 1882년 원세개의 군대가 지금의 서울에 주둔하며 인천(역시 그 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도시) 에 청나라 상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후에야 중국빵이 반도에 들어왔다는군요.
만주와 가까운 평안도에서 먹는 국수(소위 '평양냉면') 와 만주에서 먹던 국수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밀국수는 6.25 이후 미국에서 주는 원조밀가루를 갖고 부산에서 만들기 시작한 소위 '밀면' 이전에는 반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춘천막국수니 나발이니 하는 것도 다 그때부터 생겨난 것이지요. (지어낸 역사들은 무효. 언제부터 만들었다 이런 거 퍼와서 갖다주지 말기 바람.)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소면을 만들어서 반도에 보급하는 데에 바람잡이로 나섰던 분이 처음으로 만드신 회사가 CJ라나 뭐라나 그렇다지요?
세계에서 '쌀'이라고 하면 푸석푸석한 인디카 (한국에는 '안남미'로 알려져 있음) 를 연상합니다.
한국에서 주로 먹는'자포니카' 는 오직 일본, 남북한, 연길에서만 먹습니다. 지나에서는 '봉래미'(동쪽[일본]에서 먹는 쌀)라고 하여, 잘 안 먹습니다. 남한에서의 찹쌀 수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한반도와 대륙의 식성(과 민족)은 다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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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선왕조의 '수랏상' 은, '수라'라는 말 자체가 반도어가 아닌 몽골어입니다. (즉 현재 '몽골'이란 곳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말에서 왔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니 처음 '수랏상'에 올랐던 음식들도, 현재 몽골에 있는 인간들이 먹는 음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대장금은 중종 때의 일인데, 워낙 원래부터 거기 개구라가 많이 섞였지만 (명나라 때에 만한전석이라니 지나가는 코끼리도 웃을 일이죠) 아마도 장금이는 쌀을 본 적도 없었을 겁니다. 당시 조선은 반도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수랏상'은 원래의 기록은 없고, 해방 후에 '황혜성'씨가 다시 '재현'한, 거의 80% 이상 소설입니다.
왕실의 재정이 바닥났다는 기록이 누차 보이는데, 무슨 수랏상입니까. 최소한 헌종, 철종 시대에는 안동김씨 수령들의 밥상이 '수랏상' 보다 더 화려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