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조 공납(貢納공물을 바치는 것)의 일곱 번째 꼭지 ‘내수사(內需司)(주1)나 제궁(諸宮)에의 상납은 그 기일을 어기면 또한 사단(事端)이 생길 것이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목민심서 봉공(奉公) 제5조 공납(貢納)
7. 내수사(內需司)나 제궁(諸宮)에의 상납은 그 기일을 어기면 또한 사단(事端)이 생길 것이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 내수사나 제궁의 전장이 각 도(道)에 널려 있었는데 환관〔奄人〕이나 숙궁(稤宮)(주2), - 숙(稤)의 음은 숙(肅)인데 속자이다. - 들의 간악한 짓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백성들에게 해독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에 영종(英宗) 이래로 이를 걱정하여 바로잡아 무토면세전(無土免稅田)(주3)의 전세(田稅)는 해당 고을에 납부하여 돈으로 바꾸어서 호조에 납부하도록 하고, 유토면세전(有土免稅田)(주4)은 도장(導掌)(주5)만 보내게 하고 궁노(宮奴)(주6)를 보내지 못하도록 하니, 그 폐단이 비로소 약간 수그러졌다.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주7)가 안산 군수(安山郡守)로 임명받았는데, 군에 내수사(內需司)의 노비(奴婢)가 있어 모두 법에 어긋나게 복호(復戶)(주8)되고 있었다.
공은 법대로 집행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더니, 노비가 내수사로 가서 호소하여 작은 인장이 찍힌 문서를 가지고 와서 내지(內旨)(주9)라 일컬으며 전대로 복호하려 하였다. 공은,
“참으로 왕의 명이 있었다면 정원(政院)으로부터 내렸을 것이다. 작은 인장이 찍힌 내지(內旨)를 외신(外臣)이 어찌 감히 펴 볼 수 있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세화(李世華)(주10)가 영남(嶺南)을 안찰(按察)할 때, 내수사(內需司)의 절수장(折受章)(주11)이 본도에 하달된 것이 잇달아 몇 고을에 걸쳐 있어서 관세(官稅)가 많이 줄어들었다. 서울에서 온 차인(差人)(주12)들이 소란을 피우며 사납게 구니 그들이 지나는 곳마다 전쟁을 겪은 것 같았다. 그는 차인들의 죄를 따져서 장형(杖刑)을 가하고 장계(狀啓)를 올려 극력 논하였다. 왕의 분부가 엄하여 감히 아뢸 수 없었고 조정에서는 그것 때문에 벌벌 떨고 있었는데, 남구만(南九萬)(주13)이 구원하여 무사하게 되었다.
상국(相國) 허적(許積)(주14)이 전라 감사로 있을 적에 후궁(後宮) 조씨(趙氏) 집에서 보낸 종이 감영(監營)에 와서 어떤 일을 부탁하였으나 그는 사리에 부당함을 책망하고 시행하지 않았다. 그 종이,
“순사(巡使)께서 제 말씀대로 하지 않으시면 다른 직책으로 다시 옮겨가실 수 있겠습니까?”
하므로, 그가 나졸들에게 명령하여 도리어 곤장으로 다스려서 죽여 버렸다. 후궁이 이 소식을 듣고 집안 사람들을 단속하여 말하기를,
“주상께서 만일 보낸 종이 내 세력을 믿다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으시면 반드시 나를 문책하실 것이다.”
하고, 끝내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못하였다. - 정재륜(鄭載崙)의 《공사문견(公私聞見)》에 나온다. -
[역주]
[주-D001] 내수사(內需司) : 궐내에서 쓰는 곡물ㆍ베ㆍ잡물과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이다.
[주-D002] 숙궁(稤宮) : 궁방(宮房)의 일을 담당하던 사무원이다.
[주-D003] 무토면세전(無土免稅田) : 조세를 궁방(宮房)에 납부하도록 되어 있는 토지다.
[주-D004] 유토면세전(有土免稅田) : 궁방(宮房)의 소유로서 조세를 내지 않도록 되어 있는 토지다.
[주-D005] 도장(導掌) : 궁방의 토지를 관리하던 이원(吏員)으로 주로 도조(賭租) 징수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주-D006] 궁노(宮奴) : 궁방(宮房)에 딸린 노속이다.
[주-D007] 이귀(李貴) : 1557~1633. 자는 옥여(玉汝), 호는 묵재(默齋), 시호는 충정(忠定),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선조 때 형조 좌랑ㆍ안산 군수 등을, 광해군 때 함흥 판관(咸興判官)ㆍ평산 부사(平山府使) 등을, 인조 때 우참찬(右參贊)ㆍ대사헌ㆍ좌찬성(左贊成)ㆍ병조 판서ㆍ이조 판서에 정사 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연평 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지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저서에는 《묵재일기(默齋日記)》ㆍ《이충정공장소(李忠定公章䟽)》가 있다.
[주-D008] 복호(復戶) : 호역(戶役)이 면제되는 일이다.
[주-D009] 내지(內旨) : 임금의 은밀한 명령이다.
[주-D010] 이세화(李世華) : 1630~1701. 자는 군실(君實), 호는 쌍백당(雙栢堂)ㆍ칠정(七井)이다.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효종 때 정언(正言)ㆍ장령(掌令)을 거쳐 황해도ㆍ평안도ㆍ경상도ㆍ전라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고, 숙종 때 호조ㆍ공조ㆍ형조ㆍ병조ㆍ이조의 판서 등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저서에는 《쌍백당집(雙栢堂集)》이 있다.
[주-D011] 절수장(折受章) : 여기서는 결세(結稅)를 떼어 받는다는 내용이 적힌 문서이다.
[주-D012] 차인(差人) : 여기서는 내수사(內需司)에서 파견된 사람이다.
[주-D013] 남구만(南九萬) : 1629~1711.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ㆍ미재(美齋),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효종 때 정언(正言)을, 현종 때 대사간ㆍ함경도 관찰사 등을, 숙종 때 형조 판서ㆍ도승지 등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고, 저서에는 《약천집(藥泉集)》ㆍ《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 등이 있다.
[주-D014] 허적(許積) : 1610~1680. 자는 여거(汝車), 호는 묵재(默齋)ㆍ휴옹(休翁),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인조 때 의주 부윤(義州府尹)ㆍ경상도 관찰사 등을, 효종 때 호조ㆍ형조ㆍ병조의 판서 등을 지내고 현종 때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숙종 때 오도 도체찰사(五道都體察使) 등을 지냈다.
內司諸宮。其上納愆期。亦且生事。不可忽也。
在昔內司諸宮莊土。徧于諸路。奄人稤宮。稤音肅俗字也。 桀黠四出。其爲民毒。痛極矣。英宗以來。軫念矯革。其無土免稅。付之該縣。作錢以納于戶曹。其有土之稅。止遣導掌。不得差發宮奴。其弊始少息矣。
李延平貴授安山郡守。郡有內需司奴婢。皆冒法復戶。公執不許。奴就訴內需司。持小印文。稱內旨。令依前給復。公曰。苟有上命。當自政院出小印。內旨外臣。何敢發視。遂拒而不納。
李世華按嶺南。內司折受章。下本道者相續。跨連數州。官稅大縮。差人作拏咆哮。所經如兵火。公數罪杖之。馳啓極論。上敎之嚴。有不敢聞。朝廷爲之惴慄。南公九萬救之。得無事。
許相國積爲全羅監司。後宮趙氏家差奴。到營白事。公責以事理不當。却不施。差奴曰。巡使不從吾言。其能更遷他職乎。公命羅卒反接。以大杖殺之。後宮聞之。飭家人曰。主上若聞差奴藉吾勢致死。則譴責必及於吾。終不敢出口。鄭載崙公私聞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