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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일맥)
예수님이 과연 불제자였을까?
난, 철저한 유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물론 외조부님이 서당의 훈장이시기도 하셨지만, 우리 선조에 안향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을 길을 여신 분이시며,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시다. 지금도 성균관대학교에 가면 과거 우리나라의 최고의 유학자들의 순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가리켜 "동국 18인"이라고 말한다. 그 맨 위에 나의 선조인 안향 선생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즉, 나의 선조의 영향으로 조선시대의 국가이념이었던 유교사상이 유행을 하였던 것이다. 요즘 일부의 교수들은 조선시대의 유교 사상 때문에 파당이 생겨 각종 사화(비극)를 일으켰다고 실날하게 비판하지만, 사실 성리학이나 유교라는 사상 때문에 파당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때문에 파당이 생겼던 것이다. 학문과 종교를 제대로 안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공자의 77대 직계 종손인 대만의 국립고시 원장으로 있는 공덕성(孔德成) 선생이 공자(孔子)나 주자(朱子)와 같은 성현(聖賢)들에게만 쓰는『자(子): 안자(安子)』칭호를 친필로 써서 우리 가문에 보낼 정도였다.
즉 중국인들은 안향(安珦) 선조를 동방의 성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공성덕 선생은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는 공덕무(孔德懋)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공덕성 선생은 장개석(蔣介石) 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갔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철저한 유교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학문의 세계가 넓어지면 질수록 모든 학문과 종교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사고력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난, 성장하면서 대략 3천권 이상의 책을 읽었는데, 유교의 경전 사서삼경, 불경, 성경, 고대역사 철학, 과학,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사람을 속이는 학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논할 내용도 그 중에 하나이다. 요즘 불교에서는 예수가 불제자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과연 사실일까? 아무런 편견 없이 그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남의 종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정당하게 평가해야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편견된 사고력과 결론을 미리 정하고 남의 종교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 전개한 학문 연구는 진정한 학문이라고 볼 수 없다. 불교인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예수가 티베트에서 19년이나 불교의 지도를 받는 불제자였을까?
1. 불경의 집필 연대와 성경의 기록 연대
불교의 석가모니는 예수님 보다 연대적으로 약 500년 이전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당연히 불교의 불경도 기독교의 성경보다 먼저 기록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경의 기록 연대는 성경의 기록보다는 아주 후대에 기록이 되었다. 구약성경은 주전 천오백년경에 기록이 되었고, 신약성경은 서기 백년 안에 모두 기록이 되었다. 반면, 불경은 모두 그 후대에 기록이 되었다.
이제 석가모니의 생존 연대와 불경의 집필 연대를 고찰하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생존 연대는 불교 내부에서도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연대는 주전(B. C) 563~483년으로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속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은 모두 글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그분들의 생애와 활동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그분들을 섬겼던 제자들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불경은 석가모니 사후 약 10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불타의 가르침과 불교의 교리, 종교의식 등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수트라(Sutra)라고 한다.
수트라는 산문체로 기록되었는데, 암송하는 짧은 문장에서 긴 것은 수백여 페이지에 달한다고 불교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불교의 교파마다 경전과 암송하는 내용이 서로 달라 교리적인 논쟁이 뜨겁게 가열되었다. 서로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있다는 논쟁이었다. 이런 통일성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결집(結集)이라고 한다. 제 1차 결집은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 사료(史料)가 전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 2차 결집 역시 주전(B. C.) 400년에 소집된 것으로 일부 불교인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증명할 사료(史料)가 없다. 역사가들은 제 2차 결집도 인정하지 않는다.
제 3차 결집도 주전(B. C.) 247년쯤 아소카 왕 재위 기간에 이루어 진 것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을 뿐 역사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들은 제 3차 결집도 역사적인 충분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의 유력한 분파 가운데 하나였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tiv da)의 연대기에서는 아소카 왕 때의 이러한 결집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3번째 결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카니슈카 왕 치세 중에 잘란다라(다른 전승에 따르면 캬슈미)에서 열렸는데, 상좌부에서는 이것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카니슈카 왕의 연대가 확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결집이 언제 있었는가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A D 100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브리태이커 세계대백과사전, CD-ROM, Program 결집에서.”고 하였다.(브리테니커백과사전, 결집).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의 전통성을 계승한 남방불교는 제 3차 결집만 역사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현재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은 1996년 7월 23일 대영 도서관에서 발견된 서기 100년경에 쓰인 것이 최고 오래된 것이다. 이 사실이 1999년 7월 23일 KBS 밤 9뉴스에도 보도되었다
불교 경전의 하나인 법화경도 서기(A. D.) 393~339년 사이에 불교의 일반 신도들에 의하여 파알리어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모세 오경(구약성경)은 주전(B. C.) 1500년경에 기록되었다. 신약성경도 서기(A. D.) 100년 안에 모두 완성되었다.
이처럼 기독교의 성경이 불경의 기록보다 역사적으로 앞서 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성경만큼 다양한 학문이 동원되어 검증을 받은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역사학, 고고학적으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로부터 인정을 받아왔다. 이렇게 보았을 때 과연 어느 쪽이 영향을 받았겠는가? 당연히 불경이 성경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진실한 역사와 학자적인 양심으로 보면 기독교와 불교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어떤 종교가 맨 처음 얼마 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학자라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는 내용들을 모아 남의 종교를 깎아내리기 위해 예수가 불제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남의 종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정당하게 평가해야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편견된 사고력과 결론을 미리 정하고 남의 종교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과 수단으로 전개한 학문 연구는 진정한 학문이라고 볼 수 없다. 더 나아가 명문대 교수가 거짓된 내용을 분별없이 수용하여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소란을 떠는 것은 학자적인 품위는 물론 다니는 대학의 명예에도 손상을 주는 일이다.
2. 불교 학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님께서 불제자였다고 가정(假定)하면 불교 스스로가 자기모순에 빠진다.
한양대 불문학 문희석 교수는 “성경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C. 저, 황보석 역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동국 출판사, 1998), 추천 문에서…추천문의 일부 글 내용”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예수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명확한 구절들이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프랑스의 학자 필립 드 슈아레는 기독교의 성립에 관한 의문점을 푸는 하나의 중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그의 저서 토마스에 의한 복음서는 유럽의 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C. 저, 황보석 역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동국 출판사, 1998), 추천 문에서…추천문의 일부 글 내용)" 고 하였다.
불교 학자들은 예수께서 청년기인 약 17년 동안 티베트에 가서 불경을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주장처럼 사실이라고 한다면 불교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불교 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께서는 학문을 습득하기 가장 알맞은 인생의 황금기에 티베트에서 무려 17년 동안이나 불경을 교육받은 셈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에 비교하면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와 대학원 7년을 모두 포함시켜도 13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과연 불교 교육을 무려 17년 동안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불교의 교리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석가모니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불교 교육은 17년 동안이나 가르쳐도 자신들의 교리도 제대로 설파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종교인가? 불교는 원래 신(神)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석가모니가 탄생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이 잘 반영하고 있다. 즉 “하늘 위에나 하늘 아래에 신은 없고 나, 곧 사람이 있을 뿐이다.”고 하였다. 이처럼 불교는 원래 신을 믿지 않는 종교이다. 즉 무신론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동국대학교 불교학 교수들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중에 밧가리라는 유명한 제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스승은 석가모니는 그 제자의 곁을 찾게 되었다. 그때 제가 밧가리는 석가모니에게 "스승님! 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숨을 거두기 전에 신들에게 드리는 최고의 예를 갖추어 스승님께 경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 유언을 했다
석가모니는 제자 밧가리의 유언을 듣고 난 후에 짤라서 말했다. "난 신이 아니다. 따라서 너의 경배를 받을 수 없다. 다만, 나는 민중의 아버지라는 될 수 있다. " 고 솔직하게 말했다. 말하자면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솔직한 고백인 것이다. 정통 불교에서는 신이 아닌 불교를 내세의 종교로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석가모니가 “그 이름은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그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였다(기명활 천주야, 여이귀의 其命曰 天主也 汝爾歸依=불경). 또한 팔만대장경 나마다경 제 38장 8절에서 석가모니는 “언젠가 예수가 오시면 내가 깨닫는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고 하였다(하시야소래, 何時爺蘇來, 오도무유지등야, 吾道無油之橙也=일본에 있는 불교경전).
모두가 잘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불교는 윤회설(輪廻說)을 믿고 있다. 즉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 교리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동물로 태어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잡은 양고기를 잡수셨다. 만약 티베트에 가서 17년 동안 불교를 교육받았다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하실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불교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성경의 교리와는 물과 기름 같이 정반대 되는 교리들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티베트에 가서 불경을 교육받은 일이 없다. 더 나아가 불제자도 아니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신약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청년기에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 6장 3절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고 하였다. 목수 기술은 하루아침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불교 학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께서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모습을 나타내시고(눅 2:42) 13세부터 티베트로 가서 17년 동안 불교 교육을 받았다면, 언제 예수님께서 목수 직업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했다는 말인가?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청년기에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 활동하셨던 것이다. 성경 기록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논하려면 이런 기본적인 성경 기록 정도는 파악하고 남의 종교를 비판해야 옳지 않겠는가?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규모가 작은 갈릴리 나사렛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다녔다. 예수께서도 12살 때 그 부모를 따라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고 하였다.
이 말씀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까닭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그 성장 과정은 물론 청년기 때의 생활도 주변에서 잘 알고 있었다.
요한복음 7장 15절에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하였다. 이 기록이 잘 반영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청년 시절을 주로 고향 나사렛에서 목수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글을 배울만한 형편도 시간도 없었다.
이런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잘 알고 있던 갈릴리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마 13:57, 막 6:3). 예수님께서는 성경 기록대로 배움이 없는 목수로 활동하셨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성경에 능했다. 당시에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운 유대인들의 지식층보다도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으며, 또 가르치셨다.
누가복음 24장 27절에 “이에 모세와 및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하였다. 인류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은 학문을 많이 배운 분들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예수님께서는 학문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분이셨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었던 유대 전통 학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워할 정도였다.
여기에서는 한정되어 있는 공간이므로 많은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견해를 제시할 수 있지만 이 정도만 해 둔다. 어리석은 말은 항상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무조건 맹종하지 말고 자세하게 살피는 믿는 신중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사야서 기록연대는 주전700년 경이지만 그동안 성경학자들이 가짜라고 물고뜯고 하다가 1948년경 사해에서 목동에의해 사본이 발견됨으로 입에 반창고를 붙혔습니다.성경역사를 바로 알려면 용산전쟁기념관에 성서고고학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가서 보시고 바로알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一脈>
글쓴이:유벤투스